한국동남성경연구원
‘새 예루살렘 성’은 요한계시록의 구원론적 비전의 완성 혹은 정점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것을 장소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참고. 찬송가 541장; 사 65-66), 아니면 인격적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신천신지는 장소적으로, 새 예루살렘성은 예수님의 신부 즉 인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계 21:1절 ‘새롭다’는 형용사는 시간적(neos)인 의미라기보다는 질적인 것(kainos)이다. 미래론자들과 세대주의 자들은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문자적인 천년왕국 이후 혹은 재림 이후의 변화된 신천신지 (新天新地)로 본다.
비문자적-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옛 언약이 지나간 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피조물 됨으로 해석한다 (고후 5:17). 실제로 지상 교회는 이 영광스런 미래의 세계를 이미 이 땅에서 맛보고 있다. 신천지와 그 안에 사는 새예루살렘 성을 묘사하는 계 21-22장 전체는 상징으로 해석되어야지 미래 천국의 장소에 관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21:1절의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구절에서 ‘바다’는 무엇인가? 신화적인 의미로 혼돈(chaos)을 상징하는 것인가? 바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21:4절에서 밝히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옛 질서 속에서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죽음, 슬픔 그리고 고통이 없어지는 것에 상응한다.
따라서 바다는 단순히 신화적 혹은 우주적 의미의 혼돈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이 옛 질서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의 전체적인 영역을 가리키는 듯하다. 바다의 사라짐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대변되는 새 창조를 위한 전제조건과도 같다. 바다가 없어진다는 표현과 유사한 것이 Sib. Or. 5:447-448; 모세의 승천기 10:6; 레위의 유언 4:1, 엘리야 묵시5:9, 14 등 정경 외적인 묵시문학에 등장한다. 이 모든 구절에서 바다가 없어지는 것은 사악한 사람들을 심판하여 새 창조를 이루는 선결조건으로 언급된다.
예수님은 신천지에 사는 새 예루살렘 성인 교회의 눈물을 씻으신다. 죽음, 슬픔, 우는 것과 고통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복의 상태는 여기서는 선취되어 맛 볼 뿐이며, 최종 파루시아 이후에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동남성경연구원 (원장 황창기 박사, www.koseb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