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울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2년, 블레셋과 전투가 벌어졌다. 블레셋은 전차와 기마병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공격해 왔다. 이에 맞선 이스라엘 군대에는 변변찮은 무기가 없었다. 제대로 된 칼이나 창을 가진 것은 사울 왕과 왕의 아들인 요나단 정도였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불안하고 초조하기는 사울 왕도 마찬가지였다. 블레셋과 싸우기 전에 사울 왕은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사무엘이 오기로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았다. 그러자 군사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제물을 이리 가져오너라.”
마음이 급한 나머지 사울 왕은 오직 제사장만이 주관해서 드려야 하는 희생 제사를 자신이 직접 주관해서 드렸다. 제사를 드리고 나자마자 사무엘이 사울에게 도착했다.
“아니, 왕은 지금 무엇을 하신 것이오?”
사무엘이 준엄하게 묻자, 사울은 이런저런 변명을 했다.
“왕은 아주 어리석은 일을 하였소. 왕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으니, 앞으로 왕의 나라가 길게 가지 못할 것이오. 주께서는 이미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아서,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로 정해 놓으셨소.”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후, 사울을 떠나갔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신앙과 용맹을 가상하게 보시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사무엘이 왕궁으로 들어와 사울 왕 앞에 섰다.
“당신은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을 공격하여 남녀노소를 모두 죽이고, 그들의 모든 가축까지 다 죽이라고 하셨소. 아말렉 사람들의 소유는 아무 것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없애시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여행할 때 갑자기 후미를 공격하여 노인들과 어린아이 등 약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이오.”
사울은 즉각 이스라엘 전역에서 군사를 소집했다.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울 왕은 21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아말렉을 공격하기 위해 남쪽의 브엘세바와 시내 산 사이에 있는 네게브 사막으로 향했다. 사울 왕은 남부의 광범위한 사막 지대에서 일사불란한 공격을 전개하여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을 생포하고, 그 백성을 진멸하였다. 가축들도 모두 죽였다. 그러나 기름진 가축들은 죽이지 않고 남겨두었다. 이스라엘의 대승리였다.
하지만 그날 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나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 그는 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사울이 자기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생포한 것이며, 또한 아말렉 족속의 기름진 가축들을 남겨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사무엘은 밤이 새도록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이튿날 아침 일찍, 사무엘은 사울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길을 가던 중에 사울이 갈멜 성읍에 승전비를 세우고 길갈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울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기에게 돌린 것이다.
길갈에서 사무엘이 왔다는 보고를 받은 사울 왕은 승리에 대한 칭찬을 기대하며 그를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빕니다. 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 들리는 저 소리는 다 무엇이오? 가축들의 저 울음소리 말입니다.”
“아말렉 족속의 가축들 중에 살찐 소와 양들을 끌고 왔습니다.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요. 그 외엔 다 죽였습니다.”
사울은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러자 사무엘이 슬픈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젯밤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을 전해야겠소. 당신은 어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소?”
글_김영진, 그림_김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