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5일, 그 순간까지도… 뜨거웠던 복음화 열정

송경호 기자  khsong@chtoday.co.kr   |  

병상에서도 제자들 지도, 박성민 CCC 대표 등 회고

▲고인의 빈소를 방문한 방지일 목사가 박성민 CCC 대표와 고인의 딸 김윤희 교수 등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방 목사는 “한국교회가 슬픔에 빠져 있지만 그가 한 일은 열매가 되어 살아 역사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 송경호 기자

▲고인의 빈소를 방문한 방지일 목사가 박성민 CCC 대표와 고인의 딸 김윤희 교수 등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방 목사는 “한국교회가 슬픔에 빠져 있지만 그가 한 일은 열매가 되어 살아 역사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 송경호 기자


민족복음화를 위해 평생을 달려온 故 김준곤 목사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오직 예수님의 사랑과 민족의 복음화에 대한 소망을 당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까지 그가 보여준 열정은 제자들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영원한 청년’이었다.

여든이 넘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던 고인은 올 초 등산을 하다가 낙상하는 바람에 그동안 자택에서 휴식을 취해왔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대한민국 전역의 성시화 운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10월 개최될 인천국제성시축전 대회를 위해 양인평 장로, 전용태 장로 등과 함께 준비 상황을 점검하며 진두지휘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CCC 박성민 대표에 의하면 직접 대회 현장에 참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왔던 김 목사가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된 것은 간암 때문이었다. 평소 간이 좋지 않았던 터라 가족들이 정기 검진을 받자고 권유했지만 김 목사의 뜻은 완고했다고 한다. “주님이 데려가실 순간까지 예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만 집중하고 싶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약 15일 전부터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고, 간암 판정을 받았다.

고인의 생전 마지막 15일에 대해 박 대표는 “굉장히 편안한 시간을 보내셨다”고 전했다. 주치의에 따르면 보통 이러한 상황에서는 굉장한 고통이 따르는데, 고인은 이상할 정도로 평안한 상태와 맑은 정신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격려하면서도, 오직 나라를 위한 걱정과 민족 복음화에 대한 간절함을 나타냈다고 박 대표는 전했다.

29일 오전 10시 40분 경 갑작스레 의식을 잃었고, 30여분 뒤에 곧바로 소천하시는 바람에 박 대표와 일부 가족들만이 곁을 지킬 수 있었다. 박 대표는 고인이 가족들의 손을 힘겹게 잡아 주고 미소지었지만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은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15일간, 그리고 평소에 끊임없이 하셨던 말씀들이 유언과 같이 남았다고 전했다.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사위 박 대표는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흘려 얼굴이 붉게 상기돼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문객들 사이로 잠시 여유를 낸 박 대표는 고인에 대해 “삶 속에 예수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다. 마음에 열정이 가득하셨고 사용하시는 언어마다 감동을 주셨다”며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셨던 분이다. 돌아가서 예수님을 만나면 사랑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상기했다.

박 목사는 “젊은이들에게 늘 예수를 외치라고 하셨다. 그분이 하신 100문 1답, 오직 예수그리스도는 CCC의 기본 틀이 되었다”며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자고 끊임없이 외치신 그 말씀은 목사님의 상징이 되었다. 목사님께서 시작하신 청년 복음화의 길, 남겨진 그 뜻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질문에는 애써 참았던 눈물을 한없이 쏟아내며 한참을 머뭇거리다 “민족의 리더를 잘 키우겠다고 전하고 싶다”며 말을 흐렸다.

이날 빈소에는 고인과 복음화의 길을 함께 했던 이들과 제자들이 방문해 고인을 회고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천성시화대회를 위해 지속적으로 자택을 방문했던 전용태 장로는 “끊임없이 지도를 받고 비전과 방향성을 인도해주셨다”며 “찾아갈 때마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 나라와 민족, 국가 안보와 교회의 사회책임에 대해 말씀하셨다. 앞으로 사역에 막막함이 있지만 목사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계시기에 그 말씀을 붙들고 가겠다”고 전했다.

1973년도부터 약 3년간 고인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극동방송 부사장 민산웅 장로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그의 헌신을 기억했다. 1974년 ‘엑스플로74’ 대회를 앞두고,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인지라 개최가 도무지 불가능하다는 준비위원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느 날 모두를 불러 모은 김 목사는 오직 ‘가능성’에만 집중했고, 결국 성공적인 개최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민 장로는 회상했다.

민 장로는 “목사님이 민족을 두고 생각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애틋했다. 곁에서 모시면서 늘 고독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가 “겉보기에는 가냘프고 양반 같으시지만 그 속에는 불이 스며들어 있었다”고 하자 옆에 있던 선린병원장 이건오 장로는 “별명이 ‘영원한 청년’이었다”고 맞장구 쳤다.

김준곤 목사에 앞서 복음화의 열정을 토해냈던 방지일 목사는 이날 빈소를 찾아 고인을 회고했다. 올해로 백수(白壽)를 맞이한 방 목사는 “1957년 처음 김 목사를 만나 청년운동의 열정을 들었다. 그때 ‘앞으로 한국대학생선교회를 통해 많은 인재들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었다”며 “그로 말미암은 열매를 내가 직접 보았다. 한국의 전 교회가 슬픔에 빠져 있지만 그가 한 일은 다 남아서 살아 역사하고 있다”고 위로를 전했다. 

한편 위로예배는 1일(목) 오전 10시, 오후 1시, 오후 5시, 저녁 8시에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있으며 장례예배는 2일(금) 오전 9시 서울 중구 영락교회(이철신 목사)에서 한국기독교회장으로 치러진다. 하관예배는 2일 오후 2~3시경에 드려지며 장지는 경춘 공원 묘원(춘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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