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의 ‘중독탈출’ (41)-도박 중독[9] 도박중독의 유형
도박중독은 그 행동에 따라 일정한 유형이 있다. 그 유형은 특이한 행동적 습관을 나타낸다. 도박을 해도 행동에 따라 동일한 도박이 아니라 조금은 다르다. 도박자들마다 도박에 빠진 정도, 도박 패턴이나 이유, 도박 행위에 대한 태도나 도박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특징은 물론 행동 습관이나 특징을 중요시하면서도 도박과의 관련성을 기준한 것이다. 이런 기준은 도박 개입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이는 도박 행동을 분류하는 가장 보편적 방식으로 실제 병리 정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런 도박 행동을 다루면서 도박중독에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모든 행동은 특성상 중독으로 이행될 가능성이 있는 점에서 정도를 우선 구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도박 행동을 일정한 유형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유형에는 학자나 학파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도박의 성격과 정도를 중심으로 구분한다.
1. 사교성 도박
사교성 도박(social gambling)이란 사교 목적으로 도박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을 사귀는 정도의 가벼운 게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이 일반적인 도박과 다르며 통제력에서도 차이가 있다. 도박을 시도하지만 단순히 사교 목적에서 하는 점과 통제력을 갖고 있는 점이다. 이들은 제한된 기간 동안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손실액을 미리 정해놓고 친구나 동료들과 도박한다. 사교성 도박이 병적인 도박과는 구분되는 점이다.
사교성 도박은 돈을 따거나 승리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즐거움이나 여흥 혹은 친목을 목적으로 행해진다. 또 따든 잃든 상관없이 언제든 중지할 수 있으므로 중독자 및 문제성 도박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아무리 사교적이라 해도 돈을 걸고 하므로 분명히 도박은 도박이다.
사교성 도박은 즐거움이 주된 목적이다. 판돈을 따고 잃는 것보다는 도박을 통해 얼마나 사람을 사귀고 즐거움을 구가하느냐에 목적을 둔다. 실제 사교적으로 도박하는 사람은 도박중독자와 달리 이기고 지는 데 가치를 걸지 않는다. 도박보다 다른 삶의 측면들이 훨씬 더 중요하고 보상적인 가치 기준을 유지하며 대박도 거의 경험하지 않고 대박 기대 역시 적거나 없는 편이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사교성 도박자는 도박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교적이라 해도 습관을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교성 도박을 자주 하면 습관이 될 수도 있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도박이란 마약과 같아서 자꾸만 하게 되고 재미가 붙기 때문이다. 도박중독자들 중에는 사교성 도박을 하다가 점차 더 큰 도박판으로 빠져 들어간 중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도박자들 중 사교 측면이나 가벼운 여흥을 목적으로 하다 큰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2. 자유로운 사교성 도박
사교성 도박에 대해 전술했다. 사교성 도박에서도 그 성격에 따라 정도가 단순한지 좀더 심각한지를 구분할 수 있다. 이때 단순한 정도는 자유로운 사교성 도박(casual social gambling)이다. 사교성 도박은 도박을 사교와 재미로 즐기는 점에서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에 일상과 인과율의 법칙을 벗어나 놀이의 문화로 기능한다. 도박이 주말과 밤에 성행하는 이유는 도박이 놀이요 재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교성 도박은 그 언어가 의미하듯 자유로운 만큼 방어벽이 약한 경우가 있다. 사교를 중요시면 도박이 크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허약성은 그만큼 방어벽을 약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 사교적인 자리에서는 적은 돈을 잃고 따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풀고 사람을 사귀는 것을 중요시해 공감대 형성이 빨라지고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사교적이라는 특수한 분위기가 주는 성격에 좌우될 뿐 아니라, 이런 장소에서는 아무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점도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일종의 놀이와 축제의 성격을 더욱 자극한다.
이는 도박이 대개 일과가 끝난 밤이나 한 주간이 끝나는 주말에 이뤄지는 이유다. 일상의 세계가 합리성과 낮의 세계라면 도박은 비합리적인 밤과 주말의 세계다. 그런 이유로 이제 도박자들은 노동의 세계를 탈출해 부담없이 즐거운 게임에 쉽게 몸을 던진다. 이들은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시간을 보내는 놀이로 받아들인다.
물론 자유로운 사교성 도박이 생활의 중심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사교성 도박은 도박이 중심이 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자신의 충동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이는 도박의 판돈이 크지 않고 작고 대개 재미를 위주로 하기 때문인데, 판돈이 작다는 것은 그만큼 부담이 없음을 의미한다. 판돈이 큰 만큼 마음이 매달리므로 충동 조절이 그만큼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도 도박에서 이기기를 원하지만, 잃어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들에게는 잃고 따는 게 중요하지 않으므로 사람을 사귀기 위해 적당히 잃어주는 양보도 가능하다.
이들은 즐기기 위해 도박을 할 뿐이며, 잃는 것을 즐거움을 위해 정상적으로 치루는 대가 혹은 비용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얼마나 많이, 언제 어떻게 도박을 할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으며, 언제 끝내고 일어서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도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정과 일, 친구이며 그 경계선을 잘 지키고 있다. 자유로운 사교성 도박자에게는 도박이 결코 해롭지 않다.
3. 심각한 사교성 도박
심각한 사교성 도박(serious social gambling)이 있다. 이들은 사교성에서 이미 조금 더 습관성으로 빠져든 경우다. 이런 점에서 자유로운 사교성 도박보다는 조금 더 심각하다. 이들은 처음 단순히 사람을 만나서 사귀기 위해 도박판에 오고, 도박하는 재미를 점차 느낀다. 그런데 이제는 도박하지 않으면 허전하고 심심해서 견디지 못하게 된다. 이런 정도에 이르면 상당히 습관성으로 진행됐기에 도박의 전문성으로 진행하기 쉬운 시점에 있다.
그런 점에서 심각한 사교성 도박자들은 자유로운 도박자들에 비해 도박이 훨씬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많은 것들을 도박에 투자하고, 규칙적으로 도박 시간을 늘리며, 도박에 더 많은 돈을 소비한다. 이런 경로를 거치는 동안 그들은 이제 도박이 삶의 스트레스를 푸는 자리로 비중이 이동되고 있다. 자유로운 사교성 도박자들에게는 도박이 여러 즐거운 여흥거리 중 하나일 뿐이지만 심각한 사교성 도박자들에게는 도박이 그들의 생활에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여흥의 주된 수단이다.
그런다 해도 심각한 사교성 도박이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아직은 도박보다 가족, 일, 친구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박이 일차적인 것이 아니므로 주변의 권유가 있으면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 그래서 간혹 도박에 돈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고, 도박을 너무 많이 한다고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거나 가족들과 주변의 친한 사람들의 압력을 받으면 도박하는 횟수와 액수를 줄이고 가족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실제로 이들에게는 도박에 대한 자제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이들은 얼마나 많이, 자주 도박할 것인가에 대해 자제할 수 있으며 상당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심각한 사교성 도박자라 해도 자제력의 개인차는 존재하지만 도박에 조금 더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정도라면 어느새 축제의 세계로부터 일상의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 점차 느려진다. 이는 도박에 대한 욕망이 점차 싹트는 것으로 본원적 욕망이 되는 위험성이 존재한 경우로 봐야 한다. 인간의 욕망은 한계를 모르고 발전되는 점에서 이들의 위험은 전문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구된다.
4. 전문 도박
전문 도박(professional gambling)이란 문자 그대로 도박이 전문성을 띠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도박을 생활 위주로 삼고 생활하려는 태도다. 그러기에 전문도박사들에게 도박이란 직업이다. 이들은 도박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도박으로 생활을 영위한다. 전문도박사들은 도박에 무분별하게 덤벼들지 않으며, 특정 종류를 선택해 기술을 연마한다.
이들은 전문성을 담보로 하지 않는 도박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은 운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는 슬롯머신이나 룰렛, 복권과 같은 종류에서는 도박하지 않는다. 이런 도박에서는 기술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므로 기술을 발전시킬 여지가 없고 자기의 행위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대신 자기 행위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정한 게임을 선택해, 보통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서 기술을 갈고 닦으며 능력을 발전시키듯 게임에 대한 고도의 기술을 연마한다.
전문 도박자들은 충동 조절능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언제 얼마를 걸고 언제 자리에서 일어날지 아는 자기 통제력을 가진 점에서 도박중독자와 명백히 다르다. 잃는 경우에도 얼마 이상을 잃으면 냉정하게 도박을 중지할 줄 안다. 사실 전문도박사들은 도박판에서 손익율을 존중하며 철저하게 손익율에 따라 행동한다. 전문도박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냉철한 판단력과 자제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은 도박에서 즐거움이나 흥분을 추구하지 않으며 균형된 생활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도박에 사로잡히지 않고 가족, 친구, 일, 안정된 수입과 지출 등에 우선권을 둔다. 이들에게 도박은 수익을 창출하는 일일 따름이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전문 카드 도박사, 전문 주식투자자, 펀드매니저, 위험이 높은 벤처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을 전문도박사라 할 만하다. 전문 주식투자자나 펀드매니저는 주식 시장에 대해서만 기술을 발전시키는 점에서 전문도박사와 유사하다.
전문도박사는 정확한 구분이 요구된다. 전문도박사라고 하지만 실제는 습관성 도박자나 도박중독자인 경우도 있다. 전문도박사들은 이미 도박에 전문성을 갖고, 어떤 경우에도 자기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비해 중독자들은 그런 조절이 불가능하다. 단순히 도박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소일한다고 해서 전문도박자들은 아니므로 이들은 금방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전문도박자들이라 해도 언제나 자기를 조절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전문도박사 중에서도 간혹 자제력을 상실하고 손익율을 지키지 못한 채 무리한 게임을 벌이다 실패하기도 한다.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있지만 때로 내면에 도박중독자가 숨어 있거나 일시적으로 게임 열기에 휩싸여 자제력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실제로 많은 전문도박사들 중에는 전에 습관성 도박자였으나 피나는 고난과 실패, 연습 끝에 복잡한 도박기술과 자제력을 습득한 사람들도 많다.
5. 반사회적 도박
반사회적 도박(antisocial or criminal gambling)은 사회에 해를 끼치는 도박 정도를 의미한다. 이들의 도박행위는 사회에 범죄가 된다. 도박이 일상생활을 방해하고 전문성을 띠며 가정파탄에 이른다. 법률이 금지하는 정도를 넘어서까지 시도한다. 그 결과 반사회적 도박은 많은 돈을 투자하고 주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정도의 도박 규모는 대개 몇 가지 성격을 함유하고 있다. 단순히 법률이 금지하는 정도를 위반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도박행위로 주변 사람들의 정상적 생활에 피해를 주는 정도에 이른다.
실제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사기 수단으로 도박을 이용하거나 도박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돈을 뜯고 착취한다. 이들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이며 도박은 그 수단에 불과하다. 실로 반사회적 도박자들은 도박 그 자체의 문제보다 그 영향력에 문제가 더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반사회적 도박은 이미 문제를 가진 경우가 흔하다. 이들에게는 1차로 유전적 측면이 있거나 그런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이기에 쉽게 도박에 접할 수 있고 그것을 삶의 부분으로 경험한 측면도 있다. 실제 이들의 과거를 살펴보면 도박 외에도 불법이나 범죄, 문제행동을 저지른 이력이 있는 편이다. 다른 사람과 의미있는 관계를 형성하거나 지속하지 못하며, 한 직장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학업이나 직장에서 성취도가 크게 부족하며, 해고를 당했거나 가출을 한 이력도 흔하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때로 법정에서 도박문제가 크지 않는데도 자제력이 없다며 사기나 범죄행위를 변명한다.
6. 병적 도박
병적 도박(pathological gambling)은 도박을 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병적도박자들은 점진적으로 도박에 빠져든 경우로 반복적·만성적 측면이 있다. 이들은 도박하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자신이나 가정 또는 직업생활에 해를 끼치고 파탄을 가져온다. 이들은 도박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반복되는 도박으로 빚을 지며 가정과 직장에 책임지지 않고 불법으로 도박자금을 마련한다.
병적 도박은 강박적인 것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병적 도박 혹은 강박적 도박이란 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도박충동에 휩쓸려 행동하는 중독성 질환이다. 도박에 대한 충동 강도와 절박함이 점점 커지면서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 재정 자원을 소비한다. 병적도박자는 미국 성인의 약 1~3%가, 우리나라는 1%로 추정되며, 남성이 여성보다 많고, 흔히 시작되는 연령은 사춘기다. 특히 가족과 연관이 많다고 보는데, 남성은 아버지, 여성은 어머니의 병적 도박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알려진다.
병적도박자들은 도박에 대한 충동을 참지 못한다. 도박에 지나치게 자신만만해하며 상당히 열정적이다. 이들은 스트레스나 불안, 우울 증상이 있을 때 더욱 열중하며, 돈을 멋대로 낭비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돈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이라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문서위조나 사기, 공금횡령 등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른다. 이런 상황이 심해지면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빚을 지거나 재정적 곤란에 직면해 사회로부터 신용을 잃고 자살한다.
병적 도박은 돈을 잃으려는 무의식적 욕구, 무의식적 죄의식의 완화라는 점에서 프로이트는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도박행위를 자위행위(masterbation)를 대신한 행동으로 분석했다. 이런 분석은 도박에서의 쾌감이 성적 쾌감과 유사하다는 뜻으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특유한 해석이다. 그런가 하면 행동주의는 병적도박을 비적응적 행동으로 설명한다. 잘못된 도박 습관을 정상적으로 돌리지 못해 적응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지이론은 병적 도박을 조절(control)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다고 본다.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조종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학파의 시각이기에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병적도박자들이 도박하면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집착하거나, 도박에 따른 흥분감을 맛보기 위해 내기 액수를 늘리고, 중지하려 노력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실제 그들은 도박하지 않으려 시도할 경우 안절부절하거나 과민해지고, 돈을 잃고 난 후 다음날 잃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가거나, 도박행위를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자금 마련을 위해 위조지폐를 만들거나 사기, 절도, 횡령 등 탈법 행위를 일삼고, 중요한 인간관계나 직업 등의 상실도 감수하며, 도박으로 인한 절망적 자금사정을 완화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등의 행동을 보일 수 있다.
병적 도박은 흔히 남자는 사춘기, 여자는 중년기에 시작된다. 그러나 경과에서는 보통 도박에서 손을 떼지만 대체로 돈을 땄던 재미에 다시 말려들고, 돈을 잃으며 가산을 탕진하고 직업을 잃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그와 같은 절망적 상황에 몰리면 빚더미에 앉으면서도 더 많은 돈을 걸면서 빠져나오지 못하므로 병적 도박이 되기까지 15년 정도 소요되지만 1-2년 만에 그렇게 되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병적 도박은 스스로 치료를 받으려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7. 습관성 도박
‘습관성’ 혹은 ‘문제성’ 도박은 병적 도박보다는 경미한 편이다. 그러나 습관성이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병적 도박과 그다지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습관적 문제를 쉽게 끊지 못하는 경우 병적인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점에서 습관성 도박과 병적 도박 간의 차이는 알콜중독을 심각성에 따라 알콜 의존과 문제성 음주를 구분하는 것과 유사하다.
습관성 도박(habituational gambling)은 가족, 사회생활, 직업기능에 대한 파괴적 영향 등을 포함해 여러 다양한 문제를 경험한다. 그러나 약물 남용과 유사한 중독성 증상을 수반하며 정신장애진단요람의 기준에 의해 의학적 질환으로 인정되는 보다 심각한 문제가 유발되는 경우 병적 도박에 포함된다. 이런 습관성 도박은 첫째 개인적 생활이나 가족, 직업 관련 행위를 손상시키거나 붕괴시키는 도박행동으로 정의된다. 둘째, 대부분 연구자들은 사교성 도박과 병적도박 사이의 중간 수준에 해당되는 도박행동을 지칭하는데 ‘습관성 도박’ 혹은 ‘문제성 도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병적도박보다 도박의 심각도가 낮은 수준을 일반적으로 습관성 또는 문제성 도박으로 부르고 있다.
습관성 도박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정신장애진단요람 4판의 진단기준에 충족되지는 않지만 단기 추격매수(chasing)와 통제력 상실 등 도박과 관련된 문제를 경험한다. 흔히 문제성 도박의 범위에는 경도(mild)에서 중간(moderate) 수준에 이르는 문제들이 포함되며, 금단증상이나 내성과 같이 병적 도박에서 경험하는 심각한 증상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8. 도피성 도박
현대에는 점차 도피성 도박(escape gambling)이 증가하고 있다. 도피성 도박은 복잡한 사회적 여건, 스스로 혐오스러운 환경 등을 도피 및 회피하려는 도박이다. 이런 도피성 도박자들은 불쾌한 기분을 잊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도박에 의지한다. 술을 마시면 잠시 힘들고 우울한 기분을 잊고, 마약을 하면 황홀경에서 근심걱정을 잊어버리듯 도피성 도박자들도 도박할 때 짜릿함과 즐거움, 흥분상태에 몰입해 불쾌한 기분을 잊어버린다. 이런 태도는 도박에 의지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그 사이에 문제해결이 지연되고 회피적 태도가 굳어지며, 그럴수록 문제는 더 심화되는 점에서 매우 병리적이다. 도피성 도박자들은 불편한 정서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맞서 싸우는 대신 편리하게 걱정을 잊을 수 있는 방법으로 도박에 의지한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돼야 할 점이 있는데, 도피성 도박자들은 즐거움이나 쾌감을 얻기 위한 목적에서 도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보다 일상생활의 불편한 기분, 무가치감과 열등감, 직장과 가정의 스트레스, 해결해야 할 일들을 피하거나 압박감을 줄이는 방편으로 도박에 빠진다. 이들의 도박 패턴을 살펴보면 폭음하는 사람과 패턴이 비슷한 경우도 있다. 몇날, 몇주를 술을 안 마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력감에 빠지면 폭음을 하듯 도피성 도박자들도 많은 돈을 단기간에 도박에 날린다. 이런 원인은 그들에게 도박의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도박판에서 괴로움을 잊고 위안을 얻으려는 점이 크다. 예컨대 부부싸움 후 카지노에서 몇백만원 넘는 돈을 하루에 날리고 후련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도박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고통을 잊는 데 대한 정당한 대가로 받아들인다.
9. 결론: 신앙으로 안 채워지면 도박에라도 손 대기 마련
지금까지 도박의 유형을 일련의 순서에 따라 정도가 약한 데서 강한 것으로 다뤘다. 이는 도박의 심각성을 드러낸 것으로 그 성격을 규정하는 측면이다.
그리하여 가장 심각한 도박행동을 ‘병적 도박’ 혹은 ‘강박적 도박’이라 불렀다. 다음 수준으로 병적 도박보다 심각도가 적은 집단은 흔히 ‘문제성(problem) 도박’, ‘습관성(habituational) 도박’으로 규정했다. 도박 행위에 대한 자제력 상해나 위험성이 거의 없는 수준을 유희성 도박(recreational gambling) 혹은 사교성 도박(social gambling)이라 분류한 것이다.
대부분의 도박자들은 시간 차이가 있지만 사교성·유희성 도박에서 시작해 습관성·문제성 도박, 그리고 최종 단계인 병적 도박 혹은 강박적 도박으로 발전하는 경로를 밟는다. 오늘날 대다수 임상가들은 도박에서 특성에 따른 용어의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교성 도박에서 습관성 도박, 그리고 병적도박의 수준으로 분류하는데 동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박의 유형에 따라 도박자는 자신의 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나 치료자를 대하는 심리적 유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가족에 대해 파탄의 책임을 지는 문제에도 그 대응이 달라지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들의 정당성을 시도하며 지속하는 것이 문제로 나타난다. 물론 이런 심리적 대응이란 개인의 욕망뿐 아니라 부부의 경우라면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불만도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탈출구로 도박을 시도하고,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더욱 깊은 스트레스의 차원으로 빠져드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이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도박이 단순히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여흥의 하나로 시도되지만 돈을 따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도박으로 발전된다는 점이다. 이런 도박이 그 성격을 달리하면서 심각한 정도가 달라진다. 이들의 도박에는 전문적인 도박만 있는 게 아니고 사교성 목적이 있는가 하면, 병적 도박, 그리고 반사회적인 성격의 도박도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병리적·전문적 도박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병리적이면서도 전문적인 도박은 누구도 말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의 가정이나 사업, 건강까지 해칠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전문성은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교적이라 해도 무시할 수 없다. 처음에는 사소하게 시작했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전문적으로 발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도박은 그 성격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구분되지만, 성격과 본질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도박은 어떤 유형이든 불확실성에 내기를 걸면서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시합하고 있음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확실히 도박은 어떤 예측이 불가능한데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착각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착각은 도박자의 미래에 일시적으로 상당한 믿음과 힘을 주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점에서 도박이란 실로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도박의 특성이 본원적 욕망을 자극해 무제한으로 도박하고자 하는 욕망 혹은 충동의 노예로 전락시킬 위험이 존재하는 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목회에서 유달리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신앙으로 충만하지 못한 교인이 행여나 도박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성이다. 이런 교인 가운데는 이미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있어 신앙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허탈한 마음에 도저히 누르기 어려운 욕망이 올라오는 상황에서 자칫 도박이란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 교인들이라 해도 어느 때에 친구를 따라갔다 재미삼아 돈을 걸고 한 것이 조금씩 도박에 빠져 들어갈 위험을 묵과하지 말아야 한다. 도박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목회에서 교인의 신앙이 활성화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