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특별한성경] 도망자 엘리야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엘리야는 하인을 그곳에 남겨두고 홀로 남쪽으로 네게브 사막을 하룻길이나 더 걸었다. 불 같은 태양과 극심한 갈증에 육체적 피로가 겹쳐 더 이 상 걸을 힘이 없었다. 그는 로뎀나무 그늘에 주저앉았다. 사해 주변과 유대 남부의 광야에 자생하는 로뎀나무는 2m 정도에 불과하지만, 잔가지가 많아 좋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 일러스트 전선영

▲ 일러스트 전선영

엘리야는 갈멜 산의 치열한 대결에서 승리하여 우상의 예언자들을 다 죽였으므로 이제부터는 북왕국 이스라엘도 우상을 떠나 주 하나님을 섬기게 될 줄로 믿었었다. 그러나 못된 왕비 이세벨이 살아 있는 한 종교정책을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헛수고였단 말인가. 허탈감과 좌절감으로 엘리야는 삶의 의욕마저 상실할 지경이었다.

“하나님, 이 못난 자가 살만큼 살았으니 차라리 이 생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그는 나무 그늘에 맥없이 앉아 있다가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잠든 그를 어루만지며 깨웠다.

“일어나 먹어라.”

주리고 목마른 그는 먹으라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과연 그의 옆에 돌에 구운 빵과 한 병의 물이 놓여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천사가 나타났단 말인가. 엘리야는 물과 빵을 다 먹고 잠시 앉아 있었다. 그 천사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피로감과 식곤증이 겹쳐서인지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한동안 곤하게 자고 있는데 다시 또 누군가가 어루만지며 깨웠다.

“갈 길이 멀고 고될 테니 일어나 먹어라.”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은커녕 사람의 발자국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옆에는 아까처럼 구운 빵과 물병이 놓여 있었다. 먹고 푹 자서 한결 피로가 풀린 엘리야는 그 음식을 먹고 나서 다시 길을 떠났다.

엘리야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대략 400km에 가까운 시나이 반도의 호렙 산에 도달하는 데는 40일이 걸렸다. 호렙 산은 일찍이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 내라고 사명을 주신 곳이고, 이집트 탈출 이후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이기도 하다. 어느 굴 속으로 들어가 밤을 보내는데, 갑자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주님, 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요 만유의 주인이신 주를 섬겨 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떠났고, 주님을 섬기던 제단도 허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모두 살해되고 저만 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들은 저마저 죽이려고 합니다.”

“굴에서 나가서 산 위에 서 있거라. 내가 지나갈 것이다.”

부드럽지만 지엄한 명령이었다. 엘리야는 즉시 일어나 산으로 올라갔다. 거센 바람에 산이 갈라지고 바위가 부서졌다. 하지만 주께서는 바람 속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후엔 지진이 일어났지만, 주께서는 그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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