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조 목사 주일강단] 성벽 재건 후에 일어난 일

이미경 기자  mklee@chtoday.co.kr   |  

2010년 10월 31일, 느헤미야 7장 1~6절

▲ 하용조 목사

▲ 하용조 목사

비전을 통해 부흥하는 교회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 20년에 수산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술 맡은 관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 사람을 찾아서 다급하게 예루살렘의 상황을 물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이방인의 발에 짓밟히고 성물을 모두 도둑질을 해간 상황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전이 수치를 당했고 이방인의 발에 짓밟혔기 때문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와 금식이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눈치를 채고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벽을 건축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뿐만 아니라 왕은 성벽을 건축할 수 있는 칙령과 함께 건축에 필요한 물건도 공급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벽 건축을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완공될 때까지 사건이 드라마처럼 일어납니다. 건축을 시작한 지 52일 만인 엘룰월 25일에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합니다(느 6:15). 엘룰월 25일은 지금 달력으로 말하면 9월 20일 정도가 됩니다. 성벽 건축을 8월부터 9월까지 했다는 말입니다.

그 시기가 건기이기 때문에 매우 덥습니다. 천천히 걷기만 해도 땀이 나는 기후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52일 만에 성벽을 건축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느헤미야의 불타는 비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밤낮을 구분하지 않고 성벽을 복구하는데 전심전력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비전이 심어지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불가능이 가능해지고, 성벽이 복구되고, 성전이 지어지고,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하게 됩니다.

비전이란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때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는 25년 전에 시작됐습니다. 창립 초기에는 몇 사람이 지하실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25년이 지난 후에 우리는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빌려서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4만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렇게 만드는 것이 비전입니다.

고난을 통해 단단해지는 믿음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 가운데 방해와 모략과 음모가 난무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함께 음모를 꾸미고 훼방을 놓으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두려운 마음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의 목회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일에는 대로가 열리지를 않았습니다. 항상 굴곡과 위험과 시험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죽했으면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표현했겠습니까(고후 1:8).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이런 방해물과 음모와 훼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 단단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떤 선교사님들은 한국에서 선교비가 안 오기 때문에 굶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 선교사들을 봤습니다. 선교사들이 어떻게 선교지에서 돈을 꿀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굶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오면 정상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고난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왜 나에게 불치병을 줬을까?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줬을까?’라는 생각은 예수 믿는 사람의 정답입니다. ‘아, 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구나. 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말 대신에 기도했고, 사람에게 하소연을 하기 전에 금식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침묵을 배워야 합니다. 말하고 싶을 때에도 침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온누리 성도들의 연합과 일치

이번에 교회 창립 25주년 기념 선교축제를 열었습니다. 온누리교회는 그동안 1,200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현실적으로 모두 초청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이번 축제에는 250여 명의 선교사님을 초청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강단에서 무릎 꿇고 안수 받고 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날 선교사들을 보고 설교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보내놓기만 하고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살겠지, 괜찮겠지’라고만 생각하다가 그날 선교사들을 만나니까 꼭 도둑질 하다가 걸린 것 같았습니다. 아주 불편하고 미안하고 괴로웠습니다.

선교사들이 파송 받아 갈 때는 젊음도 열정도 왕성했습니다. 의욕도 많았던 만큼 의견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사람들이 이번에 와서 무대에 섰는데 말을 잃어버린 사람들 같았습니다. 얼굴에 성자와 같은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보다가 눈물이 나서 설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습니까. 아마 느헤미야가 52일 동안 박해와 훼방과 수모를 겪으면서 밤낮없이 성벽공사를 하고 나서 느끼는 심정이 그런 것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리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연합과 일치, 사도행전적, 오순절적인 영성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체육관에서 찬양보다는 기도를 많이 했고 서로 하나 되는 모습을 봤습니다. 또한 축구장의 반은 햇볕이 내리 쬐는데도 불구하고 설교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습니다.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1절을 읽겠습니다. “성벽을 건축하고 문짝들을 달고 나서 문지기와 노래하는 사람들과 레위 사람들을 임명했습니다.”

성벽을 완공한 후에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성공한 후에, 목적을 달성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성벽을 건축할 무렵에는 성 안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았고, 변변한 집도 없었습니다. 성벽을 쌓아 외부의 침입은 막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다음에 어떤 일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문지기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성전 문을 철저하게 보호하지 않으면 또 외세의 침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전쟁에 앞서 무장하지 않으면 마귀가 끊임없이 여러분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문지기를 세워놓은 것입니다.

시편 84편 10절을 읽겠습니다. “주의 뜰에 하루 있는 것이 다른 곳에 천 날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악인들의 장막에 있느니 문지기로서라도 차라리 내 하나님의 집에 있겠습니다.”

세상에서 화려하게 누리면서 사는 것보다 주님의 집에 문지기로 사는 것이 더 큰 기쁨이고 보람이라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의 신앙도 문지기가 없으면 마귀들이 들락날락하면서 여러분의 믿음을 다 파먹게 됩니다. 그래서 성벽을 지키는 문지기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벽을 지키는 문지기를 세우는 것과 함께 예배자를 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배자는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예배자는 레위인이 담당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조용히 묵상해 보았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바로 예배자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나머지 일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머지 일들을 먼저 하고 말씀과 예배와 찬양하는 일은 소홀히 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일날이나 예배시간에 안내를 하거나 스태프로 섬기기 때문에 예배에 소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집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을 읽겠습니다. “이제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여러분,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예배자입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것은 예배입니다.

찬양의 가치

최근에 비전교회 목사님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괌 온누리교회 유수열 목사님이 간증을 하셨습니다. 유 목사님이 그곳에 부임해 갔는데, 목사님들이 여러 번 바뀌니까 교인들의 마음이 상해 있었고, 서로 생각의 차이가 많아 어려운 상황이었답니다. 그래서 유수열 목사님이 서울에서 찬양팀을 데려와 찬양집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뮤지컬찬양팀을 초청해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뮤지컬찬양팀은 초청을 받고 나서 죽을 힘을 다해 기도하며 준비해서 괌 아웃리치를 갔습니다. 가서 아무 것도 안하고 찬양만 했는데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눈물 흘리며 울기 시작했고, 온 성도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 목사님은 찬양의 힘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하며 찬양하는 것 보다 더 높은 가치는 없습니다. 그것만 제대로 하면 교회는 부흥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는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찬양하는 사람들, 예배자를 세우고 온 백성이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느헤미야가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여러분, 참된 예배자가 있을 때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찬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즘 시대에 굉장히 조심해야 될 것이 있다면 엔터테인먼트와 찬양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요즘 ‘찬양이 좋다. 예배가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연예인들을 데려와서 노래를 부르고 세상에서 음악을 하듯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우리 온누리교회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세상에서 인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일본 러브소나타를 섬겨왔습니다. 그냥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기 때문에 오는 게 아닙니다. 러브소나타가 그렇게 은혜롭게 되는 것은 모두 그 사람들이 뒤에서 미리 기도하고 눈물 흘리며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예배자들이 실패하는 것은 찬양을 마치 엔터테인먼트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7장에 보면 노래하는 자들이 245명이었는데, 그중에 아삽의 족속들이 148명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67절). 숫자까지 세서 기록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 찬양팀이 한 팀당 100명 미만인데, 앞으로 한 팀당 248명이 서는 꿈을 꿉니다.

뉴욕에 짐 심발라 목사님이 담임하고 있는 브룩클린 태버내클교회에는 흑인만 3~4,000명이 모입니다. 거기는 거의 백인들을 보기 어려운 곳입니다. 짐 심발라 목사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브룩클린에 갔을 때 그곳에 마약 중독자, 매춘부, 알코올 중독자, 노숙자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도해서 술과 마약을 끊게 하고, 매춘부 생활을 그만두게 하다가 그 교회가 부흥하게 된 것입니다. 그 교회에 가봤더니 성가대만 3~400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브룩클린 태버내클 콰이어가 에미상(Emmy)을 받았습니다. 짐 심발라 목사님 사모님께서 작곡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작곡을 전공하거나 따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작곡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까 모두 울면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예배 드리러 올 때에 모두 정장을 하고 옵니다. 곱슬곱슬한 머리카락도 펴서 오는 것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설교가 시작되면 교인들은 두 마디 반응을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 순수함과 열정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 예배가 너무나 형식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꾼들

45절을 읽겠습니다. “성전 문지기들은 살룸 자손, 아델 자손, 달문 자손, 악굽 자손, 하디다 자손, 소배 자손이 138명이었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성을 지킬 수 있는 사령관을 임명합니다. 느헤미야가 혼자 일을 다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신실한 사람들에게 일을 분할해서 맡겼다는 의미입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나는 내 동생 하나니와 성의 사령관 하나냐를 세워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하나냐는 사람됨이 충직하고 많은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 경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니는 느헤미야의 동생입니다. 동생이라고 해서 사령관에 임명한 것이 아니라 성벽 재건에 제일 앞장서서 일했던 사람이 그의 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의 사령관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는 똑똑한 사람이 일하는 곳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일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부자가 일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문지기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일까요.
3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해가 높이 뜰 때까지 예루살렘 성문들을 열지 말고 문지기가 지키고 있는 동안에도 문을 단단히 닫고 빗장을 질러 놓아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 주민들을 경비로 세워 각기 지정된 초소와 자기 집 앞을 지키게 하라.’”

여기서 철저하게 성문을 지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삶의 원리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집어삼키려고 합니다. 철저하게 문을 막지 않고 작은 틈만 보여도 사탄이 공격합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성은 크고 넓은데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 없고 제대로 지은 집들도 아직 얼마 없었습니다(4절). 여러분, 완성된 것보다 미완성 된 것이 아름답습니다. 완성은 곧 위기입니다. 돈이 많으면 위기가 옵니다. 우리는 돈이 조금만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 채워주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영적으로 깨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채워주시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열 번 올 걸 다섯 번만 올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영적 목적을 위한 인구조사

5절을 읽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귀족들과 관리들과 일반 백성들을 모아 종족별로 인구를 조사할 마음을 주셨습니다. 마침 나는 처음 돌아온 사람들의 족보를 찾게 됐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성벽 재건 이후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느헤미야의 마음속에 인구조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도 바벨론이라든지 앗시리아 등에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군사적 목적이나 정치적 목적 또는 경제적인 목적으로 실시한 것입니다. 인구를 알아야 일을 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인구조사를 한 것은 하나님께서 족보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열두 지파가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알기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목적이 아니라 영적인 목적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계시록에도 14만 4,000이라는 수가 나옵니다. 왜 이렇게 숫자를 정확하게 지정해 주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누구누구의 자손이 몇 명이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아주 정확하게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6, 7절을 읽겠습니다. “이들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가운데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기 자기 마을로 갔습니다. 이들과 동행한 사람은 스룹바벨, 예수아, 느헤미야, 아사랴, 라아먀, 나하마니, 모르드개, 빌산, 미스베렛, 비그왜, 느훔, 바아나였습니다. 이들 이스라엘 사람들의 명단은 이러합니다.”

온 회중의 수가 4만 2,360명이었고, 거기에 남녀종들이 7,337명, 남녀 노래하는 사람들이 245명이었습니다(66~67절). 여기서 노래하는 사람을 따로 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배하는 사람들, 찬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짐승의 숫자까지 셉니다. 말이 736마리, 노새가 245마리, 낙타가 435마리, 나귀가 6,720마리였습니다(68~69절). 특별히 구약에서는 짐승들이 가족과 같이 살기 때문에 부의 복의 의미 중에 하나가 짐승들이 새끼를 잘 낳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헌금과 헌물을 드렸습니다(70~72절).

구분된 예배자의 삶

73절을 읽겠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드디님 사람들과 몇몇 백성들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고향에 정착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안정되게 잘 움직일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본문 가운데 특이한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따로 구분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부르는 찬양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엄청난 복을 누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달란트는 자신만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도록 사용해야 합니다.

이번 25주년 감사예배를 드리기 전에 대학청년들과 성인 공동체 지체들이 밤을 새서 무대장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 트윗에 “밤새도록 그 무대장치 하느라고 힘들었지만 너무나 기뻤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여러분, 기쁘게 사십시오. 땀을 쏟고, 잠을 못 자면서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예배자의 삶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일이 바쁜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러면 세상에서도 복이 넘칠줄 믿습니다.

출처: 온누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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