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결핍으로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 하나님 사랑으로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김충렬 박사의 ‘중독탈출’ (54)-도박 중독[21] 치료와 좌절된 욕망의 해소

▲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도박중독은 좌절된 욕망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욕망이 좌절되면 충족 수단으로 다른 방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도박중독자들이 욕망에서 물러나 도박에 집착하는 현상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중독에 빠져든 사람들도 욕망의 충족에 소홀하거나 멀리하는 점에서 입증된다. 여기서 신체나 심리의 자연스런 과정을 무시하게 되면 다른 억지의 문제로 이행됨을 알 수 있다. 물론 상당히 복합적 성격이라 하나로 제한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서는 그들의 욕망에 초점을 두고 치료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1. 욕망 결핍으로서의 도박중독

도박중독은 욕망 결핍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모든 중독이 그렇듯 도박중독도 심리적 결핍, 즉 애정 결핍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애정에 대한 결핍을 도박으로 충족하려 한다는 점에서다. 이런 애정 결핍을 충족하려는 심리적 작용이 바로 욕망의 충족이다. 연구에 의하면 단도박 회원의 49%가 도박을 하는 동안 성관계에 불만족을 경험했으며, 도박을 절제한 이후에도 19%가 여전히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이는 도박과 욕망의 문제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욕망은 매우 포괄적이기에 단순히 성적으로만 대치되지는 않는다. 욕망은 성적 차원을 넘어 넓은 의미에서 정신적 사랑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존재가 인정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여기서 욕망이라는 단어는 때로는 육체적인 성(性)을, 때로는 정신적인 사랑과 인정을 의미한다.

그러면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충족을 요구하는 욕망이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본능을 가장 집약적으로 설명하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다. 물론 욕망은 쾌락을 위해 나아가지만, 쾌락을 누렸다고 욕망이 모두 해소되지도 않는다. 욕망과 관련하면 그들에게 도박은 심리적으로 기쁨을 누리는 것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수단일 수 있다. 그래서 도박은 그들에게 일종의 축제이며, 삶의 희망과 새로움을 가져다주는 신비한 수단으로 생각된다.

도박이 적어도 그들에게는 삶을 고양시키는 수단임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들이 도박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관점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박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갖고 있다. 모든 삶에서 얻어야 할 것을 그들은 도박에서 일시에,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이런 경우 도박은 그들에게 모든 가능성의 원천이다. 도박에서 돈을 따는 것이 그들에게 존재 가치감과 능력을 일시에 인정받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환상을 갖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생각은 현실과 대립된다. 환상적인 생각을 망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현실이 힘들고 어수선할수록 세상과는 다른 이상(理想) 세계를 무의식적으로 꿈꾼다. 물론 그들은 그렇게 하면서도 스스로를 현실에 충실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쾌락, 즉 즐거움이다. 즐거움을 기반으로 하는 쾌락은 진정한 사랑과 달리 서로간의 배려를 지향하지 않으며, 욕망 역시 상호성을 배제한 채 쾌락을 위한 욕망으로 전환됨이 확실하다. 그러면 그들의 의도가 쾌락을 향해 나아갈 때 다른 것은 모두 그 의도를 성취하는 수단이 되고, 즐거움을 얻으려는 끈질긴 추구는 쾌락 그 자체를 변화시킨다.

치료자는 욕망과 관련, 도박중독이 일종의 쾌락을 추구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비정상적으로 추구하는 쾌락은 일종의 탐욕으로 봐도 무방하다. 물론 쾌락 추구는 정신분석적으로 그 기저에 심리적 갈증이나 결핍을 보충하는 것이며, 거기는 구순적 자리가 감각적 접촉을 통해 쾌락에 대한 초기의 환상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점에서 그들의 쾌락에 대한 생각은 욕망과 마찬가지로 결코 추상적이 아닐지 모른다. 쾌락은 욕망의 구조 안에 있는 점에서다. 도박중독을 욕망과 관련해 이해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쾌락 추구와 변형된 욕망

욕망은 특성상 쾌락을 추구한다고 했다. 욕망은 쾌락을 위해 부단히 나아간다. 이는 심리학 원리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인간의 본능은 무의식적으로 언제나 쾌락을 지향하는 점에서다. 그런데 사랑으로 변환되는 욕망은 그것이 가능하도록 도움이 된 찰나적·순간적인 것들을 관통하면서 지나간다.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욕망은 쾌락의 표현을 활성화시키고,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신호 속에서 즐기기 때문이지만 이런 생각이 때로 그들의 정신을 모두 빼앗아가는 정반대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의 실존과 비교해 욕망 자체가 그들에게 쾌락을 주지만, 그 쾌락은 탐욕스럽게 추구되지 않고 그저 받아들여질 때 가능하다. 이런 원리에서 그들은 오로지 도박에 열중하면서 사로잡히고,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도박으로 지금껏 채우지 못하던 욕망을 채우고,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일종의 축제와 같다는 말은 여기서 이해된다.

그러나 도박을 즐거움이나 쾌락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간에게 쾌락은 그 자체가 무엇인지 매우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쾌락은 특성상 욕망이라는 행위로 나타나기에 그 안에서 기쁨을 얻으려 하거나, 좀더 은밀한 형태로 평화로운 감정 속에서 즐기려 한다. 다만 그들에게 욕망이 결핍되거나 왜곡돼 있을 때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반드시 그들의 욕망이 삶에서 선물로 여겨지도록 도박으로 그들 자신에게 충족되고 그들의 잘못된 과거를 보상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치료자는 도박중독자들이 쾌락을 추구하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만 그들의 쾌락 추구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경향과 다른 것 뿐이다. 이는 그들이 감정을 가졌고 그 감정이 정상적으로 활용되지 않고 도박에 집중하고 있는 점에서다. 그들이 쾌락을 추구하는 점은 성격적으로 맞을지 모르지만 방법론에서 상당히 변형된 점이 문제다. 그들이 도박에 빠져든 원인이자 치료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치료자는 그들의 욕망을 진솔하게 직면하고 대응하는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욕망의 문제는 자신도 모르게 변형돼 도박으로 향하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때 치료자는 그들을 잘못된 욕망으로 지적하는 태도나 덮어놓고 설득하려는 태도를 취하려 들지 말고, 그들 존재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태도만 취해도 치료자를 수용하려는 효과를 올릴 것이다.

3. 욕망의 대치로서의 환상

도박중독자들의 욕망 대치 문제는 이제 올바로 드러나야 한다. 그들의 욕망은 성격을 넘어 내면에서 행위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말했듯 인간의 감정은 모두 진실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가진 감정은 욕망의 원인도 아니고 대상도 아닌 사람에게 옮겨질 수 있다. 우리는 앞장에서 죄책감에 대해 살펴봤지만 인간 감정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도박이라는 환상에 대해서도 욕망의 질서 안에서 분석돼야 한다.

치료자는 그들이 갖는 욕망의 환상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욕망의 환상이 정확하게 분석되지 않으면 치료가 어렵다. 치료를 위해서는 진단(diagnosis), 분석(analysis), 치료(therapy)의 3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박은 욕망과 정감의 원리에서 특별한 혼란으로 나타날 위험이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이런 혼란은 뚜렷한 구분 없이 적당히 생각하는 경향이며 다른 증상으로 이행되기도 한다.

이해를 위해 성적 욕구불만인 히스테리를 생각할 수 있다. 히스테리는 욕망이 내면적으로 숨겨진 채 겉으로 사랑이라 포장돼 나타나는 증상이다. 물론 의학적으로 히스테리는 일종의 신경증이며, 위험한 욕망을 다른 형태로 계속 이행시키려 하고, 사랑으로 성공되지 못한 것이 남아있는 잔존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히스테리는 하나의 신경증으로 두 주체 사이에서 욕망이 관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서 생기는 과정이다. 히스테리 때문에 문제가 되는 정신기제는 이상화(idealization)와 동일시(identification)다. 이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욕망을 성공한 히스테리라 부르면서도 정신분석학 밖에서 히스테리가 때로 오해받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아주 쉽게 변하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이 아직도 욕망을 혼동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히스테리 환자들이 자기가 정말 요구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욕망을 요구하는 경우와도 같다. 여기에는 아내의 성적·정서적 불만 때문에 상처받은 남편, 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몸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 정서적인 고통을 도와달라고 보채거나 너무 뽐내고 조심성없이 헌신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이런 히스테리성 환자들은 종종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억지를 부려, 사람들은 히스테리가 도덕적으로 잘못돼 생긴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히스테리는 그런 억지와 달리 순전히 도덕을 뛰어넘은 욕망의 문제, 즉 성적 결핍으로 일어나는 정신 특유의 질병이다.

이쯤해서 치료자는 도박중독자들을 성적 욕망의 결핍이라는 히스테리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도박중독은 성적 결핍의 문제로 그 쾌감이 도박으로 대치된다. 이런 경우 그들에게는 다른 게 아니라 성적인 결핍이라는 욕망이 문제다. 로렌츠와 야페(Lorenz & Yaffee)의 연구에 의하면 도박치료를 받는 사람들 중 49%가 성관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도박을 끊고 난 후에도 19%가 여전히 불만족스럽다고 나타났다. 이 보고는 도박중독자들의 성적 생활이 그다지 원만하지 않은 사실을 입증한다. 욕망이 문제라면 일종의 히스테리다. 히스테리는 정상적인 사랑의 관계에 있지 않아 성적 욕구에 불만을 가진 정신 특유의 증상을 보인다.

이때 도박중독자들을 이와 관련시키면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이런 분석은 물론 본능의 문제를 깊이 살피는 정신분석에서 가능하다. 어쩌면 그들은 은근히 또는 드러나게 사랑해 달라거나 도와달라는 요청을 집요하게 한다. 그들의 거부와 과시, 고통이 계속 이행되기 때문에 결국 의기소침해져 그들의 위장(僞裝)이 심하다고 비난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그들이 하는 행동이 때때로 매우 거짓되게 나타날지라도, 그들의 복잡한 과거사의 고통스러운 국면에서 끊임없이 정교하게 나오는 욕망의 기계장치 때문임을 알고 있다.

때로 도박중독자들에게 나타나는 강박관념은 방어 전략에 충실하면서 경직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욕망 결핍에서 생각하면 더 변화무쌍한 것이 사실이다. 욕망의 결핍은 도박행위를 지속하게 만들고 유지하며, 또 실패하는 여러 과정들과 관계된다. 치료자가 그들을 욕망의 관점에서 더 신중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억압된 욕망의 변형

억압은 특성상 좌절을 유발하고, 좌절은 욕망을 이상화시킨다. 자연스럽게 분출되거나 발현돼야 할 욕망이 억압받으면 그것은 부정화로 변한다. 이런 부정화는 결국 좌절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는 부정성이 많은 사람이 좌절하는 경향을 더 많이 보이는 데서 입증된다. 그러면서도 좌절은 쉽게 포기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상화된다. 프로이트는 이런 점에 주목해 이상화를 “대상과 관계되는 과정으로, 그 속에서 대상의 본성은 변화되지 않으면서 심리적으로 확장되고 찬양되는 과정”이라 말했다. 이때 이상화는 특성상 승화와 구분되는데, 승화는 성 본능에서 나왔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게 변환시켜서 성적이지 않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도박중독을 욕망으로 생각하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는 도박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사랑에 열정을 쏟기보다는 도박에 정신을 쏟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도박에 열정을 쏟는 것을 그들만의 사랑이라 말한다면 분명 정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환상이다. 그러면 이렇게 되는 원인은 분명히 욕망의 억압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모든 사랑의 환상은 그 대상의 특징을 찬양하지만 이들의 문제는 이상화하려는 그들의 지배적 욕구가 파괴되지 않을 때 생긴다. 여기서 도박중독자들이 도박에 대해 환상을 갖고 이상화시키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제 그들은 도박이 대단하다고 믿고, 거기 참여해 전적으로 수고를 바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이끌리기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결핍된 욕망은 다른 욕망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점이다. 욕망의 결핍은 다른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실망의 수렁 속으로 들어가는 열정 때문에 보통 때는 무시하기 쉬운 신념에 헌신하게 된다. 이는 욕망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끝없는 거짓으로 이어지고 마는데,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적으로는 강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강하지 않다는 심리학 원리에서 이해된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남성에게 다가오는 여성들은 원칙적으로 닫혀있는 남성에게 유혹하는 경우도 있다. 의사, 사제, 정신 치료자들은 흔히 그런 유혹을 받는 대상이다. 이 유혹은 성적 결핍이 있는 여성의 이상화 때문에 생겼으므로, 이상화의 본성이 작용된다. 그들이 처한 입장은 그들에게 욕망에 응답하지 못하게 하면서 거기에 머물러 그들이 흠 없는 남성이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파괴하지 않도록 베일로 가리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욕망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이상화의 역설이다.

욕망의 관점에서 이상화는 특이한 성격을 가졌다. 이상화는 상대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키지만, 자기를 통제하려는 의지는 상대가 흠이 없고 그러므로 아무 욕망도 없는 상대의 비밀스러운 희망 때문에 유지된다. 다시 말해 히스테리 환자는 아무 욕망도 표현할 줄 모르는 그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들이 개인적인 삶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의 사랑을 받으려는 호기심은 어디서 오는가? 히스테리 환자는 내면에서 끊임없이 아직 얻지 못한 그 사람과의 내밀한 삶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알 수 없는 감정에 대해 탐색하고, 언젠가 선택받기를 바라지만 그들을 외면하거나 버리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하면서 미리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이상화의 환상은 여전하다. 이런 이상화는 다른 사람을 바라고 쓸데없이 찬양하는 것은 그 사람 역시 바람직한 존재이며, 그 사람이 특별히 선택된 대상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자존심을 높여준다. 이렇게 상상 속에 자기를 확장시키는 것은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환상을 펼치면서 신경증 뒤에 숨은 과대망상적 요소를 품고 있다. 그것은 우화를 만들면서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나 두드러진 자리를 찾으러 다니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일상적인 일에 종사하기를 강박적으로 거부하고 자기방어적인 거짓말을 일삼지만, 자신은 정작 그런 행동에 대해 분명한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도박중독을 억압된 욕망의 변형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의아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하면 모든 중독이 애정 결핍인 점에서 무리는 아니다. 심리적으로 결핍된 욕망을 도박으로 충족하려는 행위임을 생각해야 한다. 애정이나 사랑을 넓게 보면 인정이나 이해, 인정이나 수용, 용서 등으로 확대할 수 있는 점에서 긍정적 에너지로 표현할 수 있다. 치료자는 이런 점을 고려해 내면이 충족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그들이 도박에 심취되는 이유가 긍정 에너지의 결핍, 즉 인정받고자 하는 사랑에 결핍됐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그들에게 치료자가 취해야 할 태도는 그들을 더 많이 인정하고 격려하며 신뢰하는 것이다.

5. 욕망의 좌절과 병리적 공허

욕망의 좌절은 병적인 공허감을 유발한다. 채워지지 않은 상태의 욕망은 좌절감을 느끼게 만들어 내적으로는 공허감으로 이행된다. 이는 부정성이 아무리 많아도 긍정성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허탈해지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생각하면 긍정성이야말로 내면을 채우는 소인(素因)이다. 이런 원리는 어떤 이론으로가 아니라 임상 관찰로 발견한 것이다. 그 결과 부정성이 아무리 많아도 불안하지만, 긍정성은 축적될수록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

욕망의 좌절은 내적 공허감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임상에서 내적 공허는 병적 허기증으로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절대에 대한 열정으로 대개는 욕망이 결핍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구순적 자리(oral position)는 물론 병적인 허기증을 의미한다. 이런 구순적 자리는 대개 신화적 애착 대상을 탐욕적으로 추구하게 되는데, 이는 마치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 밥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욕망이 결핍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양가성은 강박신경증 환자의 경우처럼 사랑과 미움의 양가감정이 아니라, 탐욕 때문에 어떤 대상에 집착했다가 실망과 무관심 때문에 돌아서는 형태가 교대로 나타난다. 그것은 다른 모습으로, 어떤 것을 빨아들였다가 거부하거나, 뜨거웠다가 차가워지거나, 가득 찼다가 비우는 모습으로도 나타나기에 이런 현상은 일정한 정신의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욕망은 좌절한 만큼 이상화를 추구하게 만든다. 만약에 이런 욕망이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는다면 종교로 분출구를 삼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욕망이 선택하는 종교의 길은 이상화의 원천이 되지만, 이상화를 부추기는 자기애와 이상화를 거치면서 어려운 길로 나가지 않는다면 진정한 마음의 안정을 얻기는 어렵다. 여기에 결정으로 방해가 되는 것은 의식의 장 밖에서 억압이 역동적으로 작용해 자칫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무의식적 고집이 일어난다. 욕망에 좌절된 사람들이 욕망의 대상을 이상화하면서, 그것을 성욕에서 벗어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이상화가 욕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면서 욕망에 대한 방어가 되는 이유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치료자는 도박중독자들을 욕망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때 그들의 욕망과 구순성 및 집착, 그리고 욕망의 결핍과 종교적 욕구 사이의 상관성은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자는 중독이 단순히 심리적 결핍을 넘어 욕망의 결핍을 지향함을 주의해 치료적으로 대응하고, 그들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치료자는 그들이 도박에 빠지는 것을 단순히 도박하려는 심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좌절된 욕망으로 도박 행위가 부추김 당하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즉각 치료 효과를 경험하지는 못해도 서서히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리는 효과를 거둘 것이다. 

6. 욕망의 결핍과 병리적 증상

욕망은 병리적 증상을 유발한다. 그 욕망이 정상이냐 비정상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욕망은 어떤 경우든 결핍이 일어나면 다른 병적인 증상으로 이행된다. 이는 욕망을 억제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할 이유인데, 여기에는 아동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아동의 욕구는 대개 신체적인 것으로 먹고 싶고, 놀고 싶고, 그리고 갖고 싶은 것에 집중되어 있다. 아동에게 어떤 경우든지 간에 욕구의 불만이 되면 내면에 부정성이 축적된다. 부정성이 축적되면 아동에게는 반발이나 거부하고 싶은 심리가 작동한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자신도 가늠할 수 없는 정신장애로 이행되고야 만다.

아동을 욕구의 문제에서 고찰하였다면 성인의 경우에는 욕망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성인의 경우에 욕망이 결여되면 다른 정신적 이상증세를 보이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재능 있는 여성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녀는 우울증 때문에 분석을 받는 도중에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사춘기와 청소년기에 동안 주님과 에로틱한 관계에 빠지는 환상을 가진 사실이다.

그녀는 소녀시절에 침대에 누워서 보이지 않는 주님이 그녀의 옆에 누워 있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그때 주님이 손을 그녀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때의 상상은 그녀에게 아주 따뜻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분석을 받았던 어느 여자 선교사의 경우도 그러했다. 미혼으로 선교사의 일을 감당하는 그녀는 남자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물었더니, 주님과 한 달에 한 번씩 에로틱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독자들은 놀랄 것이지만 임상의 경험에서 몇 건이 있어서 저자도 믿게 되었다. 교회의 집사로 봉사하는 혼자서 사는 이혼녀의 경우도 그러했다. 그녀는 기도하는 순간에 주님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것은 순전히 신앙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으로 히스테리적인 증상이 이상화된 경우로 볼 수 있다.

히스테리적인 증상을 가진 여성의 경우에 어디까지나 신앙이고 어디까지가 병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런 경우에는 신앙으로 채색된 욕망으로 이상화되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증상은 환상이라고 할 수 있데, 심하면 환상이 발전하여 그들의 방식으로 지금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의 음성을 듣거나 보는 등의 ‘환각’ 체험도 가능하다. 그들이 물리적으로 접촉하지도 않았는데, 주님이 쓰다듬어 주셨다면 분명히 종교적이고 이상적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그녀에게는 주님이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기도 하는 기억을 살려내어 여러 성적인 기억들이 되고, 그것은 또한 종교적인 내용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발전되면 여성의 경우에는 주님의 사랑받는 신부로 간택되고, 주님으로부터 임신되어, 성모 마리아에게 적의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런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린 감정일지 모르나 정확하게 알고 보면 질투의 감정이라는 사실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런 증상이 정신분석에서는 치료의 대상이다.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연상이 끼어들면서 성에 대한 혐오가 일어나고, 그 혐오가 강박적으로 씻어야만 하는 청결벽(淸潔癖)을 유발하여 실제적인 물품으로 옮겨지면 그 물품이 공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증상은 대개 성적이고 종교적인 상상의 형태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적인 마음에 매혹적인 몽상의 상태에서 나타나 현존을 경험하기 어려운 상태로 지각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종교적 표상이 주체의 자기애를 충족시키고, 그것에 대해서 방어해주는 이상화 기제를 담는 도구가 됨에는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이 정신치료를 받을 때는 종교적 성애(性愛)의 흔적으로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인간관계는 물론 신앙생활에서도 자신을 마비시키는 의심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교인들이 감사와 사랑을 해야 한다는 요구를 많이 받지만 무의식에서는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무의식에서 억압된 성욕의 표상과 너무나 가까이 있고, 그 표상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어서, 한편으로는 성욕을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는 승화를 위한 상징으로 종교를 강화하는 작용으로 되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점이다.

이런 현상이 남성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남성에게도 여성의 히스테리 같은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남성의 히스테리에서는 종교적 욕망과 여성에 대한 이상화 사이에서 동일한 연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경우 여성에 대한 이상화는 억압된 성적 관계를 극복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 때문에 생긴다. 예를 들어, 언젠가 호숫가에서 보았던 매우 아름다운 소녀에 매혹당했던 사람이 있다. 그에게 그녀는 완벽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의 출현, 그 자체였다. 그는 그녀를 보면서 성욕은 마치 천하고 야비한 것에서나 느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도무지 성욕을 느낄 수 없었다. 그에게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어머니에 대한 찬양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고양된 사랑과 그에게 실제적인 헌신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종교적 신앙과 잘 조화되어 있었다.

여기서 승화는 그에게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것에 정신 에너지를 채우는 원천이 된다. 그런데 승화는 종교적 욕망에서 근거를 발견할 수 있고, 종교적 욕망은 다시 승화의 도움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여성들과의 관계는 그가 보였던 승화에서 방어기능이 작용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그에게 있는 몸의 원리와 너무 반대되게 승화만 추구했던 것이지만 그가 그동안 경멸했던 성욕이나 순수한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이 세상에 대해 그전과 정반대되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게 되면서 성욕을 남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여러 가지 일탈된 행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행동은 저자의 임상의 경험에서도 여러 번 경험되었다. 어느 교회의 여집사는 영적 능력을 갖고 싶어 남편과 거의 1년 동안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교회의 부목사로부터 이상한 행동이 발견돼 치료자에게 온 경우였다. 저자는 그녀에게 오히려 부부관계의 중요성을 설명하였고 오히려 부부관계를 하고 오는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상담 3개월째 그녀는 원만한 관계로 회복됐다. 신앙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그녀는 신앙이 이상하게 된 것이 억지의 승화로 인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끊어버렸던 인간관계도 회복되어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런 경우 억지로 승화의 차원으로 올라가려는 현상이지만 이와는 달리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다른 방향으로 빠져버린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이는 치료자가 욕망으로 인한 행동과 종교적인 행위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7. 결론: 욕망을 정상적으로 발현하도록 도와야

지금까지 우리는 도박중독을 욕망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했다. 도박중독은 욕망의 결여로 도박을 통해 이를 충족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치료자는 도박 행위 중단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그들의 결핍된 욕망이 도박으로 대치되는 현상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게 된다. 진정한 치료는 그들이 욕망을 정상적으로 발현하도록 돕는 것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는 도박중독만 욕망의 충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인에게도 욕망의 결핍은 또 다른 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다. 성적인 유혹을 받는 사람들은 대개 성을 무시하려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나타난다는 점은 이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임상 경험에 의하면 오로지 신앙만을 위주로 생활하다가 어느 날 이상한 유혹에 빠져들어 신앙도 잃어버리고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를 접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영적인 특성에만 집중하다가 욕망을 소홀히 하여 중독의 위험으로 빠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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