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깔뱅의 시대와 세르베 화형 사건
요컨대, 피와 인명(人命)만이 변화와 개혁을 사는 값이었다면, 폭력의 양으로 따져서 결국 당하는 쪽이 얼마만큼 지불하며 견딜 수 있느냐의 싸움이었을 따름이다. 이 점에서의 역전(reverse)과 역주행은 결코 있을 수도,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 역사의 철저한 사실이었음을 먼저 직시하자.
한쪽은 의식적으로, 온갖 논리와 간절함을 가지고 나아가 변화와 회복, 갱신을 호소하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갖고 있는 모든 힘으로 이 변화의 요구를 거부하고 묵살 방어하며, 기세를 다하여 상대를 깨부수어 그 흐름 자체를 죽여 없애고자 한다. 이것이 16세기 전후에 유럽 교회와 그 주변 사면(周邊 四面)에서 일어났던 일의 기본 양상이었다. 오늘날에도 개혁과 갱신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되었으므로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언명은 여전히 타당성을 갖는다. 그래서 폭력의 양과 흐름, 그 방향성으로만 읽자면 이것만이 유일 불변의 공식(formula)으로서, 종교 개혁 시대 공방(攻防) 사실(史實)의 기본 형식이었던 것을 또한 간과하면 안된다.
맑은 정신과 상식에 입각하여 설명해 보자고 말하면서 자꾸만 “토끼떼가 몰려와서는 호랑이 식구들을 다 물어뜯어 놓았다”라는 신화를 역사화(歷史化)하려 시도한다면, 그건 참 어려운 얘기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표범, 삵괭이, 시라소니, 치이타나 사자처럼 고양이과(科) 동족들의 주장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세상이 아주 이상하게 되다 보니 심지어 “아, 저런 호랑이는 너무 불쌍해!”라고 말하는 토끼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이런 정신 나간 토끼는 꾸짖어야 하나 쓰다듬어야 하나?’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판단은 늘 고양이도 토끼도 아닌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개중에 어떤 토끼들은 자기가 초식 본능을 가진 동물이 아니라고, 자기는 분명히 호랑이를 묻어 뜯어 잡아먹은 적이 있다고 믿으려는 자기 최면을 걸어대기도 한다. 어떡하겠는가! 시절이 하 수상하니……. 지금도 이 토끼처럼 말하면서, 자신은 ‘의식있는’ 양심적 토끼라고 생각하는 토끼들에게도 할 수 있는 한 얼마든지 토끼 노래를 다시 부를 기회를 독자들은 배려해 주어야 할 것이다.
‘토끼떼가 몰려와서는 호랑이 식구들을 다 물어뜯었다?’
어쨋든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려는 시도로서, 너무나 자주 반복해서,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방법으로, 로맨틱하게 잘못 쓰여져 온 이 처참한 신화들의 부당성을 짚어내 보고자 한다. 구부러진 500년이 결코 짧은 세월이라 말할 수는 없겠으나, 수백 년의 오류가 재발견되고 수정, 복구되는 일이 역사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음을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역사의 왜곡 이유와 목적은 지금 역시 여전하다. 오늘, 온오프(On-off)의 자료 창고에 푹푹 썩어 나갈 만큼 쓰레기 주장과 우격다짐들이 쌓여 있고, 긁어낼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곰팡이가 그 위에 두껍게 덮여 있다. 너무 오랫동안, 이를 청소하고 정돈할 의지도 노력도 태부족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한 그릇된 목적하에 일부러 해석되었거나, 조작된 편견을 갖고 재서술된 자료들, 한때를 풍미했던 삐라나 비방, 프로파겐다 문서들은 독자들과 함께 가려내어 배제하고, 가능한 한 1차 자료, 원전들에 접근하는 역사적 증거들을 찾아내고 들고 나와, 분명한 이해 일치를 합의할 수 있는 사실(史實)들만으로 사실(事實)을 재구성해 보고, 그 의미들을 다시 한 번 밝히려 노력해 보려는 것이 이 연재 칼럼을 시작하던 목적이었던 것이다.
당시 발생한 박해에 희생된 순교자들의 수를 다 파악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러나 역사의 주요 기록들에 나타나는 사건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 파리에서, 권현익 선교사
pariskw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