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설교] 성경적 삶의 방식(히 10:38~39)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조용기 목사.

▲조용기 목사.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39)

아주 정신이 번쩍 듭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한주일 동안 잘 지내셨어요? 한번 우리 신앙고백을 따라 하십시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기쁘고 즐겁습니다. 평안합니다. 성공합니다. 형통합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에게 좋은일이 생깁니다.

<서론>

오늘 저는 “성경적 삶의 방식”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다 감각을 가지고 살잖아요.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말하고, 느끼고 하는 것...

그리고 그 외에 지혜와 지식과 이성을 사용하여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육이라는 것은 모두다 삼차원적인 감각적인 교육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이 모든 방식 위에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하나더 추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면 기뻐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으니 불가불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면은 믿음으로 사는 방식을 하나님께서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론> 

1. 하나님과 함께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첫째로, 하나님과 함께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볼 때 굉장히 감동적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가나안까지 들어가는 삶이 굉장히 험악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 생각하면 탄식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나고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어려운 환경을 당한 것이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는 좋은 배경이 되었으므로 굉장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이 편안하게 왔으면 믿음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신 기적이 전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주 혹독하게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큰 하나님의 능력이 눈에 나타났다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한다고 말했는데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남을 지도하는 사람은 자기가 많이 죽음의 고통을 당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짐을 받는 체험을 해야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 체험도 없으면 할말이 없잖아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말하고 난 다음에 자기 속으로도 살았는지 안살았는지 내가 어떻게 아나? 그러면 그런 마음으로 남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직업적인 가르치는 것이지 사명을 가지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거든요. 내가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부인하지 못할 뜨거운 마음으로 남에게 가르치려면 죽음의 체험을 해봐야 그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살아난 기적이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초립동이지만 대장군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죽음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버지 양을 치다가 옛날에는 양을 치면은 사자나 곰들이 양을 잡아 먹으러 오거든요. 어찌할 도리 없지요. 양이나 양의 새끼들을 잡아 먹으러 오는 곰과 사자에 대해서 목동인 다윗은 싸워야 돼요. 그때 싸워서 죽으면 죽는 것이고 살면 굉장한 체험이 되는데 다행히 다윗은 야훼의 이름으로 사자와 곰이 새끼를 물고가면 빼앗고 달라들면 수염을 잡고 쳐서 죽였다 말입니다. 그것은 죽음의 체험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는 체험이 있어서 그 체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 앞에서 다 벌벌 떨 때 다윗은 담대하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셔서 사자와 곰도 잡았는데 저 하나님 모르는 이방인 골리앗을 두려워할게 무엇이냐. 담대하게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체험있는 신앙을 갖기를 원합니다. 아멘 하시니까 좋지만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사망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망의 고통이 다가오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가 사망의 고통을 당해서 괴로운데 이것을 체험하고 여기서 건져 나오면 굉장한 간증거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고통을 당하나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이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왜 내가 병들었노?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병이 들었냐. 하나님 원망스럽다. 너무 고통스럽다. 그렇게 말하는 것 하고 하나님 고맙습니다. 병들은 것 고맙습니다. 내가 병이 들어봐야 고치는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으니까. 치료하는 예수님을 체험시키려고 나를 택하사 병이 들게 했으니 감사합니다. 관절염도 감사합니다. 위장병도 감사합니다. 신경통도 감사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감사했으니까 이제 고쳐 주시옵소서. 나으면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내가 체험했다. 내가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다. 얼마나 담대한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홍해수 사건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애굽에서 나오자마자 그들이 홍해가에 왔는데 바다를 건너야 광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배도 없습니다. 교량도 없습니다. 어떻게 3백만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를 건너서 광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애굽의 바로가 전 군대를 동원해서 다시 종으로 포로로 사로잡으려고 포위를 해서 공격해 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에 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해변에 장막을 쳤을 때 바로의 애굽 군대가 공격해 오므로 백성들이 지도자인 모세에게 원망하는 것 보십시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충분히 항의할만 합니다. 이제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물에 빠져죽든지 애굽군대들에게 맞아 죽든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데 다 절망입니다. 인간적인 감각으로 볼 때, 경험으로 볼 때, 과학으로 볼 때,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기회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 믿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감각적으로도 안되고 이성적으로도 안되고 과학적으로도 안되고 지식으로 안되고 인간으로써는 절망에 처했을 때 되는 길이 있다. 믿음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증명을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절망적인 처지에 들어서게 만드신 것입니다. 영화를 보려면 스크린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줄 스크린인 것입니다. 그때 모세가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에 말하기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지금 백척간도에 서 있는데 야훼께서 싸우시리니 가만히 있으라. 믿으라는 것입니다. 정말 힘들지만 안 믿을 도리가 없지요.

출애굽기 14장 21절로 22절에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야훼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이스라엘이 야훼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시는 큰 권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야훼를 경외하며 야훼와 모세를 믿었더라. 이런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야 안 믿을 도리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야~ 이런 방법도 있구나. 살아가는데 감각적인 방법, 지식적인 방법, 경험적인 방법, 이성적인 방법 이런 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것이 다 무용지물일 때는 믿음의 방법이 있구나.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상상할 수 없는 홍해수가 갈라지고 육지로 건너가게 하시고 애굽 군대가 뒤를 따라올 때 홍해수가 도로 덮어 버리니 다 수장되고 말았다.

놀라운 경험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로 들어갔는데 광야가 여러분 살기 쉬운 광야가 아니라 참 살기 힘든 광야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양식도 없고 물도 없고 주거할 수 있는 처소도 없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장정만 60만이니까 그 장정이 있으면 어머니, 아버지도 따를 것이고 처제도 따를 것이니까 대략 계산해서 3백만이라고 신학자들이 말을 합니다. 3백만이 대 이동을 하니 얼마나 큰 군중인 것입니까?

그런데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출 15:22) 목이 말랐습니다. 사흘을 목이 마른데 우리 보통 이런데서 목이 마르면 좀 견디기 쉽지만 광야는 햇빛이 비취고 대단히 더운 곳이기 때문에 낮 동안에 수증기가 다 증발해 버리므로 몸이 바싹 마릅니다. 목이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물이 있어서 마실려고 하니 물에 독이 있습니다. 써서 마실 수 없어요.

그래서 모세에게 또 원망을 한 것은 모세야 차라리 애굽에 두었던지 안그러면 홍해가에서 애굽 군대에게 창칼에 찔려서 죽었으면 좋을 뻔 했다. 이 광야에 와서 목말라 죽다니 얼마나 비극이냐. 탄식을 했습니다. 모세가 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인간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물이 있기는 있는데 쓴 독이 있어서 못마시니 이것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믿음의 방법을 구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셨어요. 이 나무를 물에 던져라. 모세가 그 나무를 꺾어가지고서 물에 던졌더니만 싹 물이 달아졌습니다.

독이 사라졌습니다. 희안합니다. 물론 먼 훗날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우리 죄악의 독을 다 제하시므로 예수님 십자가를 받아들이면 어떠한 죄악의 독도 싹 사라지고 달아질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만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백성들과 짐승들이 실컷 물을 마시고 또다시 희희낙락하고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가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에 보면은 이제 물의 문제 뿐 아니라 이제 광야로 들어왔으니 당장 양식 문제입니다. 3백만이 먹고 자고 깨야 되는데 30명도 힘든데 3백만이 먹자니 양식이 얼마나 많아야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배가 고프니까 또다시 부르짖습니다. 모세야, 우리 굶겨 죽이려고 데려왔느냐. 사람들은 과거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고 현재 고통 가지고서 원망을 합니다. 모세야, 우리를 죽도록 내버려 둘것이지 왜 데리고 나와서 굶어죽게 하느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 모세와 아론에게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며 원망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소리를 들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 때에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

3백만이 세끼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늘에서 양식을 비와같이 내리는데 그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가 양식이 없을 때 안먹여 주시겠어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천부께서는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이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라. 에~ 하나님 속이지 마시오. 그렇게 우리가 말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과거를 돌아보라.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3백만을 하루 삼시 세끼 내가 먹였다. 할 말이 없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믿음이란 이런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어려운 일에 처하면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능히 예비해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장수시대에 들어와서 옛날에 70으로 살던 세대가 이제는 100세를 살게 되었는데 노후에 어떻게 살겠느냐.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노후라는 광야가 다가와도 걱정할 것 없는 것은 만나가 내릴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떻게 내릴 것이냐. 그것은 우리가 몰라요. 방법은 하나님이 아시고 우리가 할 것은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믿으면 하겠네. 이것이 우리 크리스챤들이 사는 방식인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밥만 먹고는 못산다는 것입니다. 고기가 있어야 되겠다. 고기달라. 하나님이 저 같은 사람을 광야로 데리고 나왔으면 그 걱정은 안해도 좋을 것이었는데... 저는 고기가 안 좋아요. 의사 선생들이 저의 건강 진단할 때 꼭 말하기를 조목사님 고기를 잡수세요. 고기를 고기... 그런데 나는 먹기가 싫은데 어떻게 고기를 먹어요? 왜 그런지 고기가 먹기 싫어요. 어릴 때부터... 채소가 좋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채소가 좋은 것보다 고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고기 달라고 고함고함을 쳤는데 하나님이 그것도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야훼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출 16:12~14)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이 밥상을 차려 주었는데 고기 달라니까 메추라기를 보냈고 떡 달라니까 만나를 보내 주셨으니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 믿고 감사하고 찬양만 하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고 하나님은 변역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저들의 아버지, 여러분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떡과 고기를 주십니다. 믿어야 돼요. 의심하지 마십시오.

출애굽기 16장 35절에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40년입니다. 나흘이 아닙니다. 4주간이 아닙니다. 넉달이 아닙니다. 40년 동안 만나로 양식을 주셨습니다. 저는 40년이 되면은 110세가 되니까 그때까지 살지도 못하겠거니와 밥 못먹을까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왜,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 동안 밥을 먹였으면 우리에게도 40년은 능히 먹게 해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다음 문제가 광야를 지나가니까 물 문제입니다. 아예 물이 없잖아요. 그런데 물을 3백만이 먹으니까 몇 드럼을 마시겠습니까? 굉장히 많이 마시는데 물을 달라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외치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이 기도도 들으시고 이것도 해결하셨다 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야훼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야훼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 17:1~3)

보통 큰 원망이 아닙니다.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야훼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야훼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출 17:4~7)

모세가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므로 회중들과 그 백성들이 마시니라. 여러분, 물이 그냥 땅에서 나오면 좀 더 쉽겠는데 바위가 물을 솟는 것 보았습니까? 인간의 감각적인 지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바위에서 물이 어떻게 솟아납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가 믿음으로 바위를 치니 물이 솟아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과 순종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과 순종으로 문제는 해결된다. 여러분 문제 해결되어요.

여러분의 인생이 광야입니까? 해결되어요. 여러분이 반석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해결되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같이 계시지 않지만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해결책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절로 3절에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듣고 믿으면 말씀이 떡고 되고 말씀이 메추라기도 되고 말씀이 물도 되고 말씀이 건강도 되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들을 살린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만들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가지고 있는 이상 우리는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 여기 다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오늘날도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을 그 험한 광야를 지나게 한 것은 하나님이 어떠하신 것을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게 하지 않았으면 만나를 내릴 필요도 없고 쓴물을 달게 만들 필요도 없고 메추라기를 보낼 필요도 없고 바위가 물을 토해내게 만들 필요도 없었다면 이런 기적을 우리가 읽을 수가 없고 읽을 수가 없으니 어떤 하나님인지 몰라요. 너희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 몰라요. 모르면 우리가 믿고 기도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너희 하나님 어떤 하나님이냐? 우리 하나님은 쓴 물도 달게 하시고 광야에서 메추라기도 주시고 만나도 주시고 바위에 물을 솟게 하시고 신발이 닳아지지 아니하고 발이 불어트지 아니하고 40년 동안 병이 들지 않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나는 믿는다. 이렇게 여러분에게 우리 하나님이 어떠하신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 대신하여 사망을 통한 것입니다. 사망은 그들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여 맞이하지 않습니다.

2. 예수님이 가르치신 삶의 방식

둘째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삶의 방식은 어떠합니까?

역시 믿음과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일생 일한 것을 우리가 단축해서 보면은 주님은 주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도움을 청하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너를 도와준다. 너를 불쌍히 여겨준다.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말은 무엇이냐. 우리 모든 사람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 엄마, 내 팔줘 팔.. 팔 달아줘. 그렇게 합니까? 그러면 엄마가 뭐라고 합니까? 뱃속에서부터 달려있다. 밖에 나와서 엄마 나 목 달아줘. 안그러지요? 뱃속에서도 목이 붙어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 믿음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 너 뱃속에서부터 줬다. 왜, 믿는 사람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는 가능할 수 있지만 전혀 안믿는 사람이 와서 주님 앞에 나오니까 그 사람들 보고... 주님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 말 따라하십시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믿기 전에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 믿음 없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예수님을 믿어서 말씀과 성령이 계시니 이제는 한없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믿음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고 했는데 여러분 보통 큰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9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는데 두 맹인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 앉으니 맹인들이 따라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 해주기를 원하느냐. 주님, 보기를 원하나이다. 이 사람들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더구나 맹인으로 태어나서 자랐으니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니까 맹인이 즉시 눈을 떠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수술 받은 것도 아니고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안마를 받은 것도 아니고 침을 맞은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방식이고 하늘나라 방식은 믿음의 방식인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맹인이 눈을 뜬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주님은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은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시고 그 다음 문제를 가지고 왔는데 믿음이 작아서 시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꾸짖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31절에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데 풍랑이 심한데 물 위로 걸어오는데 제자들이 유령인줄 알고 고함을 치니 예수님이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주시어거든 나로 물위로 오르게 하소서. 왜 베드로가 이 말을 했습니까? 베드로는 그 때까지 성령도 안 받았고 여러분과 저보다도 신앙이 못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믿게 된 것은 고기잡이 할 때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나 잡은 것이 없는데 예수님이 자기 배를 빌려서 좀 사용하시고 난 다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 때 뭐라고 말했습니까?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도 잡은 것이 없으되 주님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던지리이다 하고 깊은데 가서 그물을 던지니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지고 배에 가득 채웠던 것입니다.

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말씀을 따라서 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주님, 주시여든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예수님이 걸어오라. 캄캄한 밤에 파도가 치는데 걸어나간다는 것은 정말로 용기가 필요합니다. 보통 사람은 두려워서 못해요.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 경험상 옛날에 고기 안잡히는 곳에도 던지라 할 때 던지니까 고기가 잡히더라. 말씀만 하옵소서. 주님이 오라 하니까 나가서 서보니 물 위로 서있다 말입니다. 저벅저벅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일진광풍이 불어와서 물보라가 그를 치니까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이 물보라를 바라보고 그만 오라는 말을 잊어버리고 두려워했습니다.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물에 빠지기 시작했어요. 주여 내가 죽겠나이다. 나를 건지소서. 주님께서 와서 손을 잡고 건지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이 없는 자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말씀을 놓쳐 버리면 믿음이 적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잡고 있으면 믿음이 크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모두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큰 믿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에 예수님께서 한 동리에 들어갔는데 가나안 여자가 나왔습니다. 가나안 여자는 이스라엘 백성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 아니에요. 이방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개처럼 여기는 이방인입니다. 그중에도 또 여자입니다. 그 당시에 여자들은 정말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자가 따라오면서 주님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고함을 칩니다. 예수님이 무시해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하도 울며 따라오니까 주님, 고쳐 보내지요. 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줄 떡을 취해서 개에게는 안준다. 이방 개인데 이방 개에게 주느냐. 고의적으로 모욕적인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가나안 여자가 무릎을 꿇어서 주 앞에 엎드려 말하기를 주님 옳소이다. 나는 개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아들들의 밥상 밑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그 참 올바른 말 아닙니까? 우리도 어릴 때 우리는 그때는 밥상이 없어서 여름철에 가마니 깔아놓고 그 위에 밥을 갖다 놓고 먹으면 개들이 주위에 왔다갔다 하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먹다가 던져버린 것 주어 먹거든. 그런 생활을 해본 사람은 이해가 잘돼요. 그 여자가 예, 개 좋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예수님이 무릎을 탁 쳤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왜냐, 보통 사람 같으면 뭐라고 말했습니까? 개에게는 안준다. 그러면 뭐 개라고? 안주면 안줬지 사람을 어떻게 보고 개라고 하느냐? 더럽다 더러워! 안해줘도 좋다. 그렇게 능히할 사람인데 이 여자는 겸손하지 않습니까? 딸이 흉하게 귀신 들렸는데 그 모욕을 다 참고 개들도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하니까 예수님이 감동을 받아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여자를 보고 주님께서 오늘부터 금식해라. 철야해라. 세례 받으라. 성경을 읽으라. 그런 조건이 없습니다. 그냥 믿기만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믿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하고 산기도도 가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믿음의 조건은 되지 않습니다. 주님 보면 아무 조건 안세웠어요. 오직 믿음만 조건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 25절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마음에 믿음을 잘못된데 두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데 파도가 나서 배가 물에 잠기게 되어서 죽게 되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으니까 예수님은 배 한구석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주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즉시로 조용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제자들 보고 하는 말이 너희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 왜 두려워했느냐.

여러분 우리도 바다의 파도와 같은 그런일이 많이 생겨나요. 우리 가정에도 우리 사업에도 생활에 파도가 일고 풍랑이 일어나서 무너지게 되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어디 갔는지 찾아볼 수도 없이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고 고함칠 때가 많잖아요.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네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 믿음을 주님께만 두고 있으면 주님은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어라. 그 조건 밖에 없습니다. 믿어라. 믿음을 다른데 두지 마라. 바람에 두지 말고 파도에 두지 말고 죽는다고 믿지 말고 산다고 믿어라. 믿음을 주님께 두라는 것입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그 다음에 주님께서 또 말씀하기를 요한복음 11장 40절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무덤에 파뭏은지 나흘이 되어서 그 더운 지방이니까 나흘이면 벌써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 오셨어요. 너희 오라버니 어디 두었느냐. 무덤에 가자. 그 무덤에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덤은 굴을 파서 시체를 넣고 돌로 막아 버립니다. 땅을 파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굴을 파서 넣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보시고 마르다야 돌문을 옮겨 놓으라. 주님, 안돼요. 우리 오라버니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그러니 주님께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마르다여,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여러분이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계셔도 안 믿으면 안나타난다 말입니다. 마르다여,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마르다가 돌문을 옮겨 놓았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데 믿음만 있으면 행함으로 돌문을 옮겨 놓아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무덤 앞에 서서 나사로야 나오라. 외치니까 수의를 온 몸에 칭칭 묶은채 살아서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기적입니다. 새로운 주사를 맞고 살아난 것도 아닙니다. 수술을 받고 살아난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믿음의 방법으로 일으켜 세우신 것입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마태복음 21장 21절에 내가 마음으로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우리에게 삶의 방식을 믿음의 방식으로 적게 한 것입니다. 제자들 데리고 무화과 나뭇잎을 지나갈 때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고 잎사귀만 있으니까 예수님께서 영원히 사람들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무화과가 사람들 보는데서 말랐습니다. 제자들이 놀래서 주여,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라. 네게 이르노니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해도 될것이라.

그러므로 인생문제의 해답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국적으로 믿음으로 제시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대로 될지어다. 믿음이 크도다. 믿음이 적다. 믿음을 어디다 두었느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모두다 믿음, 믿음, 믿음 말했지 다른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여러분께 말씀합니다. 믿어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왜 두려워 하느냐. 믿어라.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삶의 방식은 믿음의 방식인 것입니다. 안믿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감각이요, 체험이요, 지식이요, 과학이요, 이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으로써 할 수 없는 일을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를 통해서 믿으면 여러분 새로운 기사와 이적이 우리 생애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사는 삶의 훈련

그러므로 세 번째로,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삶을 꾸준히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훈련을 해야 돼요. 팔다리도 자꾸 써야 근육이 생기지 안쓰면 약해져서 안되잖아요. 그러므로 믿음도 자꾸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훈련할까요? 우리가 생각을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겨나면 하나님 생각을 따라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로 생각해야지 아이구 큰일났다.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 죽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믿음으로 도저히 안돼요. 믿음이란 긍정적인 생각의 바탕 위에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죄가 있어서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예수의 보혈로 용서함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 보혈로 용서함 받습니다 라고 해야지 나는 죄인이므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되거든요. 내가 세상의 악한 마귀에게 잡혀서 고통 당하면 하나님은 예수 이름으로 놓여나라고 했는데 나는 못해요. 나는 안돼요. 나는 죽어요. 그렇게 하면 안되잖아요. 병들어서 고통당할 때도 아이구 이 병으로 죽겠다. 약도 없고 희귀한 병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말했는데 하나님처럼 생각해야 돼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24절에 “만군의 야훼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따라 말씀하세요. 내가 생각한 것은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그러므로 하나님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훈련하는 것은 삶의 목표와 바람과 소원하는 꿈을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꿈이 없으면 믿음이 활용이 되지 않아요. 여러분 무엇을 믿습니까? 꿈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되잖아요. 병든 자는 낫는 것이 꿈이요 소원인데 낫고 건강하게 될 것을 소원하고 꿈꾸니 그것을 믿는 것이지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는 것은 꿈이 없으면 믿지도 못해요. 믿음이란 것은 꿈을 믿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누구와 같으냐. 바다에서 항구를 잃어버린 배와 같고 공원 벤치에서 잠자는 노숙자와 같은 것입니다. 제가 아침 출근할 때 더위가 오면 여의도공원에 산책 삼아 걸어서 교회로 오는데 보면 공원에 자는 사람 많아요. 벤치에 노숙자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볼 때마다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꿈이 없으면 믿음의 낙오자가 되어서 저 모양이 되겠구나. 나이를 먹어도 꿈은 놓지 말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여러분 믿음의 노숙자가 되지 말고 방향 잃은 배가 되지 말고 목표가 분명한 꿈을 갖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믿음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을 목표가 있어야지 믿을 목표가 없으면 안되잖아요.

사도행전 2장 17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도 환상을 갖고 꿈을 꾸게 만들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꿈을 가질 때 믿음이 역사하도록 성령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말씀대로 이뤄질 것을 믿고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데 믿었으면 믿은대로 행해야 돼요. 그러니 믿음대로 행하려고 할 때 마귀가 굉장히 방해를 하고 의심을 가져오기 때문에 상당한 투쟁을 해야 돼요. 그러므로 믿음의 근육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한다고 했는데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안보이는 것을 믿음으로 행하기 때문에 상당히 말씀에 굳게 서지 않고는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언제나 우리가 창조적인 믿음의 말을 선언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말입니다. 말로써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고통스러울 때 말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다스려져요. 그러므로 저는 늘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형통한다. 좋은 일이 생겨난다. 그 왜 그러느냐. 내 마음을 다스리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 말을 통해서 내 마음을 다스리면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와서 환경을 다스립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여러분의 사주팔자가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내 입술의 말로써 다스리는 것입니다. 내 입의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힌 바 되었다. 내 입의 말로써 마음을 묶고 사로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밝고 맑고 환하면 환경도 밝고 맑고 환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성공하면 환경도 성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하면 환경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환경도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무엇으로 다스립니까? 믿음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말로써 나는 못살겠다. 나는 죽겠다. 나는 사는 것이 지옥이다.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지옥이다. 못살겠다. 고통스럽다. 이렇게 마음이 흐트러지면 환경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단히 놀라운 일이지만은 여러분이 생각하고 마음먹은 것이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매고 푸는 것이 무엇으로 하는 것입니까? 말로써 매고 푸는 것입니다. 말로써 마음에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말로써 마음에 풀어버리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망 받을 리가 없어요. 여러분 입술의 말로써 마음을 다스려야 여러분의 운명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일에 우리가 우리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알코올 중독자 치료협회에서 재활 프로그램 중에 언어치료를 실시했습니다. 말로써 알콜중독을 치료했는데 약물이나 운동치료보다 놀라운 효과가 있어서 말로써 치료한 결과에 50%의 치료확률을 보았다고 나온 것입니다.

언어 치료는 매일 아침 마다 12단계의 말을 알콜 중독자에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2단계는“우리 스스로는 어찌 할 수 없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3단계“이제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로 작정했습니다.”그렇게 말하고, 6단계에는“하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7단계는“이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11단계에서는“날마다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마지막으로 12단계에는“이것은 효과가 있고, 나는 이대로 행동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말로 그렇게 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 말로 하는 것이 약으로 한 것이나 특별한 주사를 놓는 것이나 이것보다도 50% 이상의 효과가 있다. 말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허공에 맴돌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말은 곧 능력이 되어 우리의 생각과 삶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의 삶은 여러분 말하는데 달려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의 말로써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입의 말로 묶였으며 네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혔다는 말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으니 혀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자는 그 입술의 열매를 먹으리라.

우리가 성경을 수없이 읽었지만은 여러분 다 무심하게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이 말이 중요하기에 하나님이 손으로 천지를 지었느니라. 맞았습니까? 틀렸습니까? 맞았지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느니라. 맞았어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을만큼 중요한 것이 말씀의 파워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말로써 여러분의 천지를 짓습니다.

여러분의 운명이라는 천지를 말로써 짓는 것입니다. 말로써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될 수도 있고 말로써 영혼이 못되고 범사에 못되고 병들 수도 있고 말로써 불행할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그런 힘이 말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었다는 것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하나님이 주신 세계를 다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다스렸는데 우리보고 완력으로 다스리라는 것 아닙니다. 입술의 말로써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로 39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따라 말씀하세요.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옆에 있는 분 보고 당신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십시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반드시 여러분과 같이 계시고 여러분 하나님을 찾으면 믿음으로 상급을 허락하여 주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운명이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결론>

믿음으로 사는 차원은 감각과 이성으로 사는 차원과 완전히 다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 즉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생각하는 방법, 소원하고 희망하는 꿈을 갖는 방법, 믿음의 방법, 입술의 고백하는 방법을 훈련을 잘해서 믿음을 점점 사용하고 믿음이 점점 강해지고 커지면 여러분 인생에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광야를 변화시키고 예수님께서 믿음으로써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모범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약성경 전체는 믿음으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난 것을 말씀해 주시고 신약성경 전체는 예수님이 믿음으로 우리가 영원한 영혼까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서 보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모르면 참 기가 막힌 일입니다. 보배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내 속에 큰 보배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질그릇 같은 여러분 속에 보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우리가 이 보배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는 이상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해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림 바 되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왜, 보배가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값싼 인생이 아닙니다. 보배로운 인생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이 보배를 간직하고 사용하여 기적을 체험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이웃을 도와주며 온 천하에 복음을 증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2011. 6. 5. 성찬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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