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조 목사의 마지막 설교 ‘변화산에서 생긴 일’]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주일이었던 7월 31일 1부예배에서 마지막 설교를 전하고 있는 하용조 목사의 모습. ⓒ온누리교회 홈페이지 캡처

▲주일이었던 7월 31일 1부예배에서 마지막 설교를 전하고 있는 하용조 목사의 모습. ⓒ온누리교회 홈페이지 캡처

“이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과 기도 뿐입니다. 그들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줄 때 사탄은 떠날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기도의 불꽃을 태워 보십시오. 사랑의 불꽃도 태워 보십시오.”

할렐루야! 하나님께 큰 박수 올려드리십시다. 블레싱 무슬림,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 핵심적인 기도 사역입니다. 이 마지막 종말 때 복음화하기 어려운 지역이 세 곳 있습니다. 북한입니다. 하나님이 북한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그 사람들은 핵으로 무장하고 우리 형제 나라인데도 못 들어오게 합니다. 그 분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교회 세우는 겁니다.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간첩단이 또 발견됐지요. 하여튼 북한이 우리의 선교 제1 타겟입니다.

또 전도하기가 제일 어려운 게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 믿을 때 전도해서 예수 믿지 않고 성령께서 환상을 보여줘야 예수 믿습니다. 유대인들은 거의 100% 이론으로 예수 믿지 않고 환상을 보고 예수님이 꿈에 나타나는 걸 보고 영접합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전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유대인보다 더 전도하기 어려운 분들은 이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으면 죽여버리니까. 그 공포심 때문에 믿고 싶어도 믿지를 못합니다.

저희가 터키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터키 여행에서 본 비참한 상황 때문에 저는 건강 때문에 다시 여행을 못 하고 제 아내가 대신 홀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때 일어난 일들을 보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이 제 아내에게 기도 받으러 왔어요. 기도받으러 왔는데 주 내용이 뭐냐 하면 다 죽음, 살인에 대한 불안함, 그것도 가족들이 살인하기 때문에, 칼로 찌르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 죽을지 몰라서, 그것이 예수 믿는 대가에요. 그래서 불안해하는 그런 기도 제목을 자꾸 내놓는 거에요.

그런 걸 보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예수 믿는다고 감옥에 가두는 것도 아니고 칼에 찔리는 것도 아니고. 한 가정에서 누가 예수 믿으면 그 가정의 수치가 되는 거에요. 그렇게 무슬림들은 예수 믿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을 주셨는데 우리가 무슬림 나라에 가서 전도하려면 누가 말한 것처럼 0.000001% 할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인데. 하나님께서 코리안 드림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200만명 보내셨어요. 95%가 무슬림들이에요. 그런데 한국에 오면 무장해제를 해요. 여기 오면 예수 믿을 가능성이 너무 많은 거야. 황금기에요.

우리가 무슬림을 사랑하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통한 사람들에 의하면 우리가 무슬림을 굉장히 오해를 많이 하고 있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극단적 폭력주의자들을 무슬림이라 오해하는데 그 분들이 무슬림이 아닙니다. 그 분들은 무슬림을 이용한 극단적 폭력주의, 근본주의자들이지 진짜 무슬림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슬림을 사랑하고 무슬림과 더불어 평화를 이야기하면 그들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또 우리 비전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 미국·중국·일본은 목회자들끼리 교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뉴질랜드, 괌, 눈 많이 오는 앵커리지 이런 데는 목사님이 가셔서 3년쯤 지나면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로 어려워요. 그래서 3년만에 빨리 빨리 로테이션을 시켜야 돼. 어느 목사님이든지 3년 이상 있지 않도록. 그래서 서울로 모셔서 좀 쉬게 하고, 또다른 분을 파송하고 그렇게 합니다. 특별히 세 지역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주십시오. 외롭고 힘든 지역입니다. 나라들이야 멋있죠. 뉴질랜드 얼마나 멋있어요? 괌, 관광지죠. 알래스카, 멋진 설경이 있지요. 하지만 산다는 것은 정신이상이 걸릴 만큼 어렵습니다. 꼭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 설교 제목은 변화산에서 생긴 일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은지,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기독교의 분기점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생겼고, 교회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셨고 이제 교회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고백은 교회의 기초가 됩니다.

이 고백을 베드로가 하고 난 후 6일이 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그 중에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스라엘 여행하는 사람들은 꼭 변화산을 가 보게 되는데 언덕인 줄 알았더니 숨이 차요. 땀을 뻘뻘 흘리고 얼마나 높은지. 그래서 꼬불꼬불 돌아서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 변화산까지 올라갔지요. 왜 예수님은 이 세 제자를 데리고 이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을까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절에 그 장면이 나옵니다. “6일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예수님 제자는 12명인데 그 중에 3명만 따로 데리고 간 걸 보면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다 만나는 게 아니라 그 중에 가깝게 만나는 사람이 이 세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특별한 관계가 있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왜 이 산에 특별히 몇몇 제자들을 데리고 갔을까? 누가복음에 보면 똑같은 기사를 썼는데 기도하기 위해서 갔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산에 간 목적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쉬러 간 것도 아니고, 그 힘들게 간 목적이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지금까지 핍박도 없고 평온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변화산 사건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때부터는 기도하지 않으면 견뎌내기 어려운 고난과 역경과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 믿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믿을 때는 하나님이 좋게 좋게 해 줍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을 잘 믿어보려고 하면 우리가 신앙의 현실 앞에 부딪치게 됩니다. 처음에는 왠만하면 다 봐줍니다. 술 먹어도 봐주고 적당히 교회 안 나와도 봐주고 거짓말해도 봐주고, 기독교인답지 않게 믿어도 적당 적당해도 하나님이 그것 가지고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신앙 앞에 깊이 들어오면 작은 것도 하나님이 다 간섭합니다.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죠. 처음 연애할 때는 설렁설렁하죠. 그런데 이게 내 사람이다 하면 달라져요. 작은 것까지도 간섭을 하게 되지요.

기도하러 산에 올라간 이유는 바로 이 장면부터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고 겟세마네 동산이 기다리고 있고 고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 고난을 이겨내려고 하면 기도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이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29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는 동안 얼굴 모습이 변하셨고 옷이 하얗게 빛났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기도하는 모습이라는 말을 안 썼지만 누가복음에는 산에 가서 뭘 하셨나? 기도하셨다는 거에요. 기도하는데 제자들도 기도하고 예수님도 기도하는데 여러분들도 기도해 보면 알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기도 다 못합니다. 기도하다 졸기도 하고 화장실도 갔다 오고 좀 딴 짓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러지요.

기도를 이렇게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갑자기 변하신 거에요. 예수님의 첫째 옷이 변했어요. 천국에서 입고 있던 옷으로 변한 거에요. 세마포같이, 지상에서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설명할 수 없는 하얗게 된, 빨래를 해도 그렇게 하얀 옷은 처음 보는 그런 하얀 옷을 입고 계신 거에요. 얼굴빛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처럼, 태양처럼 예수님의 얼굴이 변했다는 것이죠. 같은 예수님인데 인간 예수와, 땅에 있을 때 예수와 하늘에 계실 때 예수의 차이점. 인간 예수님으로 같이 왔는데 기도 도중에 하나님 나라에 계실 때 예수님으로 변형이 된 거에요.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마가복음 9장 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의 옷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더 이상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희고, 광채가 났습니다.”

또 마태복음 17장 2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요. “예수께서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모돼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새하얗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게 어떤 모양인지 모르죠.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성경 저자는 이렇게 표현을 한 거에요. 아마 이게 천국의 의상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요. 영적인 세계에서 입고 다니는 옷이 아니었을까. 또 영적인 천국에 가면 그냥 내 얼굴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있는데 이런 얼굴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요한계시록 1장 16절에는 예수님을 표현할 때 비슷한 표현을 합니다.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은 예수의 얼굴”. 그래서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어요. 태양을 바라볼 수가 없듯이, 그 빛이 너무나 강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데 그 예수님을 자세히 보니까 누군가 다른 분이 또 두 분 계세요. 그리고 그 두 분과 이야기를 예수님이 하고 계시는 거에요. 그 두 분은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구약의 두 인물이에요.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죠.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똑같은 기사가 써 있기 때문에 서로 기록을 보완하서 제가 이야기를 드립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 부분을 다른 복음서에 써 있지 않은 부분을 보완하는 부분이 있어요. 9장 30-31절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 분이 떠나가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마태와 마가에는 그 말이 없는데, 이 누가복음에는 대화의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무슨 대화를 했는가 하면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될 일을 가지고 이 세 사람이 의논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이 광경을 본 베드로가 혼돈에 빠졌어요. 충격을 받고 혼돈에 빠지고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해석할 수가 없어요. 이 영계에 대해서, 육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들, 물질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이성과 상식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영계에 대해서는 상식과 지식이 없기 때문에, 경험이 없기 때문에 아주 베드로가 굉장한 충격을 받은 거에요.

그래서 5절에 베드로가 횡설수설을 좀 합니다. 말은 해야 되겠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는 모르겠고 자기도 모르는 말을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세 개를 만들어 하나는 주를,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거는 베드로가 너무 급하니까 한 말이지 정신 차려 한 말이 아니에요. 모세도 만나고 엘리야도 만나고 변화된 예수님을 만나니까 베드로가 무슨 말은 해야 되겠는데 여기다 집을 세 채 지어서 한 채씩 모시면 어떻겠습니까? 정신없는 사람이지요. 거기다 어떻게 집을 짓고 삽니까?

그 내용이 6절에 기록돼 있어요. 재미있게 기록돼 있어요. “모두들 몹시 두려웠기 때문에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대답했다”는 거에요. 여기가 좋사오니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엘리야에게, 하나는 모세에게 이렇게 한 거에요. 책임 없는 말이에요. 또 책임질 수도 없는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죠.

아직도 베드로는 신앙의 미숙한 상태에 있어요. 여러분, 신앙이 미숙하다고 걱정할 것 없어요. 있는 대로 사세요. 미숙하면 미숙한 대로, 그걸 인정해야 믿음이 성숙해져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신앙의 실수를 안할 만큼 성숙하지 않아요.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성실히 했는데 결과를 보면 항상 문제가 있어요. 그게 베드로였어요.

그러나 보세요. 베드로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못박힐 때 멀찍이 서서 다 봤어요. 닭 울 때 세 번 부인했어요. 부활하신 주님 다 봤어요. 그러고도 고기잡이로 돌아가잖아요. 그때까지도 베드로는 영적인 성숙함이 없어요. 예수님이 부활하고 나서야 성령 받고 베드로가 그때서야 제자리에 돌아와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한참 기다려야 돼요. 그리고 그 자리까지 못 갔다고 그렇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실수한 채로 열심히 가요. 그러면 하나님이 다 최선의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지금 우리가 최선의 자리에 있지 않아요.

아 그런데 7절에 보니까 갑자기 구름이 나타나요. “그때 구름이 나타나 그들 위를 덮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의 말을 들으라.’” 구름이 나타났어요. 신구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임재할 때도 구름 가운데서 구름 타고 올라가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의미합니다. 그들 사이에 이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 왔다는 거에요.

이것은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가운데 서 있었던 것과 같아요. 우리는 여러 성경에 나오는 장면을 비교해 보면서 아, 이런 거였겠구나 하고 유추해서 보는 거죠. 모세가 시내산에서 떨기나무 위에 불붙는 장면도 이것과 비슷한 거에요.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지어요. 성막을 다 짓고 기름을 다 붓고 난 후에 그 성막 위에 하나님의 구름이 가득 차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서 모세도 그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어요. 너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찼기 때문에.

제가 제 자신에 대해 슬퍼하는 것은 우리 교회를 아무렇게나 들락날락하고 있다는 거에요. 사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능력이 가득 차서 들어올 때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들어와야 해요. 방자하게 들어오면 안 돼요. 함부로 들어오면 안 돼요. 여기는 하나님의 거룩과 임재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그렇게 했어요. 그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이 나타나요.

이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들렸던 음성과 같은 거에요. 여러분,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 받아야 됩니까,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됩니까?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원해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달라고 했어요. 충격은 세례 요한이 받았어요. 내가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나보고 세례를 하라고 하십니까, 말도 안 됩니다. 예수님이 그래요. 거절하지 말라. 나에게 세례를 베풂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라 그래요.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세례 받은 게 아니에요. 온 인류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대신 세례를 받으신 거에요.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고, 우리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그 분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거에요. 그러니까 예수님 사역 초기에는 우리를 위해 대신 세례를 받으셨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신 거에요.

두 가지 음성이 들렸어요. 예수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또 마태복음에는 내 기뻐하는 아들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두번째 말씀은 그의 말을 들으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얼마나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보증수표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확신이에요. 만약 우리가 이 말만 들을 수 있다면 다른 것 다 필요없어요.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여기노라, 이 말만 우리가 마음에 인치심을 받았다면 뭐가 더 필요해요? 뭐가 더 필요해요?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또 사람들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 분의 말을 들으라. 이것처럼 권위있고 분명한 명령이 어디 있습니까? 이 두 가지 음성은 모든 사역자가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못 들은 사람은 사역자가 될 자격이 없어요. 하나님 일 못합니다. 그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터인데 이 두 마디 못 들으면 실족해서 못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 순간 그들은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만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변화된 예수님도 안 계시고 모세도 엘리야도 안 계시고 맨 처음 사건으로 돌아왔어요. 무슨 뜻일까요?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얘기에요. 우리는 변화된 몸으로 항상 사는 게 아니고 일상으로 돌아와 살아요. 그런데 우리가 어느 날 죽으면 변화된 예수님 모습 같이, 변화된 성도들과 같이 그렇게 살 거에요. 그러나 지금은 육의 몸을 입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면서 고난 속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에요.

다시 육으로 돌아왔어요. 예수님도, 제자들도. 9절을 보세요. “산을 내려오시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단단히 일러 두셨습니다. 인자가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말했을까요, 안했을까요? 비밀이야, 비밀이야 그러면서 했겠죠(웃음). 왜 예수님은 말하지 말라 그랬을까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구원만 가지고는 구원이 완성이 안 돼요. 부활을 해야 예수님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이 완성이 돼요. 그런데 도중에 소문을 내면 그렇잖아도 정치적으로 예수를 메시야로 만들려 하고, 빵을 좀 얻어먹으니 경제대통령 만들려 하고, 혁명을 일으키려 하니까, 사람들이 예수에 대한 기대가 진정한 메시야로 보지 않고 정치적 도구로, 경제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너무 광범위하게 생기기 때문에 그런 불필요한 오해를 낳지 않기 위해서 말하지 말라고 말씀한 거에요.

1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이 일을 마음에 새겨두면서도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몰라 서로 물어보았습니다.” 여기서 보면 제자들은 부활이란 뜻을 알았습니까? 몰랐어요. 이렇게 말을 했는데도 몰랐단 말이죠. 빵을 쥐어줘도 모르고 먹여줘도 몰라요. 진리가 가르쳐 준다고 아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자꾸 토론을 해요. 토론한다고 해답이 올까요? 여러분, 교회에서 너무 많이 토론하지 마세요. 토론하면 싸우게 돼요. 토론하면 기분만 나빠요.

10절을 봤죠 우리가? 제자들에게는 아직도 영적 무지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렇게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을 놓고 같이 일하려니, 뭘 좀 알아들어야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을 때도 안심하고 죽고, 부활도 안심하고 할텐데 참. 나는 그거 보면 예수님이 정말 믿음이 좋으세요. 이런 사람 맡겨놓고 십자가에서 죽기도 하고 부활하기도 하고…. 더 놀라운 것은요 그 사람들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너희에게 맡기고 나는 간다 그랬거든요.

제자들이 안 하면 어떡해요? 깨닫지 못하면 어떡해요?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준다, 그 한 마디에요.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하셨어요. 천만다행으로 제자들이 깨닫고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했기 망정이지 그때까지는 제자들이 뭘 몰랐다구요.

제자들이 의심이 생겼어요. 왜 엘리야가 나타났을까? 왜 모세가 나타났을까? 11절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왜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까?” 이것이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야기에요.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온다는 거에요.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12-13절 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참으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킨다. 그런데 왜 성경에는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기록된 것이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에 대해 성경에 기록돼 있는 대로 그를 자기들 마음대로 대했다.”

그 엘리야는 세례 요한이었어요. 엘리야가 이미 세례 요한으로 왔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죽여버렸지요. 단칼에 목을 베어 죽여버렸지요. 메시야는 이 땅에 와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는다는 얘기를 예수님이 또 하셔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시요 참 메시야이십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당시 사람들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창녀처럼 살았던 수가성 여인은 학식도 없고 조롱과 천대를 받았던 이 여인은 메시야를 알아봤어요. 이 여자가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났지요.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이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메시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한복음 4장 25-26절, “여인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저도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압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야다.” 여인은 물항아리를 내버려둔 채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내 과거를 모두 말해준 사람을 보십시오, 이 분이 그리스도가 아니겠습니까?

요한일서 5장 1절에 보면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입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최소한 수가성 여인보다도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고,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마음이 가난해져서 수가성의 여인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메시야임을 여러분들이 발견하고 그 분 앞에 눈물을 흘리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아침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 올려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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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담뱃갑서 콘돔 나와도,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훈계 못 해”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세미나가 ‘생명윤리와 학생인권조례’를 주제로 21일(목) 오후 2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다. 이상원 상임대표는 환영사에서 “학생인권조례는 그 내용이 반생명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고, 초‧중‧고등학교에서 사실상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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