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수 6:1~5)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얼마 전에 몇 년 전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너희 교회가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니 좋은 사마리아인을 본받아 세계에 나아가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도와줄 단체를 만들어라. 그렇게 주께서 말씀하셔서 그 당시 지금 원로장로님이신 이병훈 장로님과 더불어 굿피플을 만들었는데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오늘날 전 세계에 나가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있으니 감사하기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저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평안합니다. 건강합니다. 용서합니다. 사랑합니다. 만사형통합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여호수아가 받은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한 사람이 칼을 뽑아서 들고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그에게 나가서 “너는 우리 편이냐? 적군 편이냐? 우리를 위하느냐 적군을 위하느냐?” 그러니까 그 사람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나는 너희편도 아니고 적군편도 아니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군대 장관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이 말씀은 뭐냐면 하나님은 절대로 편들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편이지 내 편도 안되고 남의 편도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편가르기 하지 하나님은 절대 선하신 하나님,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이 편가를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야지 하나님이 우리편 선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모시고 있었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나는 네 편도 아니고 적군 편도 아니다. 하나님 모시고 있는 군대장관으로써 지금 너에게 왔다.” 그 말을 듣자 여호수아는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주여, 저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
신발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신고 걸어다니는 것이 신발입니다. 다시 말하면 행위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오른편을 가든지 왼편으로 가든 바로 가든 뒤로 가든 걸어다니는데 필요한 것이 신발이고 그 신발은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주권을 상징하는 것인데 네가 마음대로 좌우 전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어느 것이 옳고 나쁘며 어느 것이 좋고 안 좋은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네 선택의 권리를 내놓으라.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신발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행위를 하겠습니다. 내가 부산가고 싶으면 가고 서울가고 싶으면 가고 동경가고 싶으면 가고 미국 가고 싶으면 가고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행위의 주권을 주장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라는데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산 가라하면 가야 되고 내가 동경가라고 하면 가야 되고 내가 미국 가라고 하면 가야지 내가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고 나는 스스로 내 운명을 좌우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네 신발을 벗으라. 여호수아가 신발을 벗고 엎드리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이 책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간적인 주권을 포기하기 전에는 여러분 책임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하는데 하나님이 왜 책임집니까? 우리가 어릴 때는 집에 있을 때는 부모님 시키는대로 합니다. 부모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면 오고 공부하라고 하면 하고 자라면 자고 그럴 때도 우리에 대해서 우리 부모님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가 커지면 그 다음 가고 오고 행하는 모든 일에 부모가 시키는대로 안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책임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에게 그때 하는 말은 무엇이냐면 부모말 들어라. 네 행위의 주권을 벗어 놓아라. 안그러면 내가 너를 책임질 수 없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꼭 그와 같이 여러분 오늘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행동의 주권을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책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신발을 벗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론>
1. 하나님이 무너뜨리신 여리고성
나의 판단과 행동의 권리를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은 기록된 말씀은 로고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로고스를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해서 현재 주실 때 그것은 레마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성경말씀이 성령으로 감동되어서 내 마음에 임할 때 로고스가 레마가 되고 레마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들어도 마음에 아무 감동도 없는 말은 믿음이 안생깁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시면 성경말씀이 마음 속에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로고스가 아니고 레마인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기의 모든 주권을 내놓고 바라볼 때 하나님은 그에게 로고스가 아닌 레마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6장 2절로 5절에 보면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지리라.
이 하나님의 작전 계획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동 방법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머리에서 나온 것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자기 스스로 이 작전을 세운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레마인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레마를 받아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이야기가 여러분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는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 장군과 엘리사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아만은 위대한 장군이었으나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엘리사 집에 문둥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갔는데 나와서 정중하게 대해주고 종교의식을 통해서 고쳐줄 줄 알았는데 나와 만나주지도 아니하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고 나아서 가라! 상당히 이웃나라 시리아 장군은 마음에 섭섭하게 느꼈습니다. 사람을 이렇게 푸대접할 수가 있느냐. 적어도 나와서 인사라도 해줘야 될 것인데 나오지도 아니하고 종을 통해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 하는데 우리 시리아에는 아바나강이나 바르바르강이 요단강보다 얼마나 물이 푸르고 좋으냐. 강물에 들어가서 목욕할 바에야 내가 여기까지 올 리가 어디 있느냐.
반항을 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 사병들이 장군님 장군님, 병낫기 위해서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하라고 하는데 그 못할 리가 뭐가 있습니까? 그보다 훨씬 어려운 일도 하라면 할 것인데 제발 화내지 마시고 순종하십시오. 높은 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좌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말로 보좌해야지 자꾸 나쁜 데로 이끌어가면 일을 그르칠 때가 많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이 깨닫고 요단강으로 가서 물에 들어가서 일곱 번 목욕합니다. 퐁당, 퐁당, 퐁당, 퐁당... 아예 물이 빠진 쥐새끼처럼 물이 쪼르륵 흐릅니다. 그 위대한 장군으로 가슴 펴고 훈장을 달고 당당하던 사람이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니까 완전히 말이 아닙니다. 일곱 번째 순종해서 들어갔다가 일어나니까 문둥병이 싹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도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아 가셨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니 큰일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잔치 주인이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와서 좀 도와달라고 하니까 예수 어머니가 예수님을 불러서 이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어머니 지금 내 때가 아니라. 그래서 이 마리아가 하인들을 불러가지고서 나중에 무슨 말을 하든지 순종하라. 시키는 데로 하라. 그래 얼마있지 않다가 예수님이 거기 하인들 보시고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히 채워 그 물을 떠주어라고 했습니다. 맹물을 채워놓고 떠주라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무엇이든지 명하는 대로 순종하라는 말을 듣고 그 항아리에 물을 채워서 떠보니 아주 맛있는 포도주가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레마의 말씀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감화감동을 해 주시든지 꿈으로 환상으로 믿음으로 말씀으로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이른즉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시인하며 행할 때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영국의 평론가 토마스 카알라일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민족을 하나님께서 큰 민족으로 세우신다. 민족만 아닙니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와 한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큰 민족으로 만들고 큰 개인으로 가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높이는 사람 어떻게 낮출 수 있으며 하나님 낮추는 사람 높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레마를 주시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믿으십시오.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의심을 하지만 안됩니다.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레마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이 감화 감동을 해주시면 믿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50여년 목회를 하면서 많은 하나님의 사업을 했는데 그 사업이 하나도 실패하지 않고 다 성공을 한 것은 하나님의 레마를 들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했으면 실패한 일이 많았겠지요. 그러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 속에 성경을 읽을 때 마음 속에 이것 하라. 분명히 말씀을 듣고 마음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현재 환경은 어렵고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마음에 믿음이 생기니까 믿음을 따라서 행합니다. 언제나 기적이 따라왔습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저는 이 강단에 설 때마다 과거가 기억이 나고 감개무량합니다. 우리가 서대문에서 여기 나오기 전에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교회가 어려울 뿐 아니라 교인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헌금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도저히 우리 힘으로 교회를 옮겨갈 수가 없어요. 교인은 만명이 넘었는데 어디로 갑니까? 그때 여의도는 김현욱 시장이 개발하는 모래 벌판이었습니다. 여의도로 나간다면 다 돈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우리 당회를 열어서 장로님들과 의논하니까 아현동 판자촌을 사가지고서 그리로 나가자고 합니다. 그때 판자촌으로 나갔으면 오늘날 박살났어요. 아무리 그 말을 듣고 기도해도 마음에 감동이 안옵니다.
그런데 나혼자 여기 여러번 나왔습니다. 여기에 교량도 없고 교통도 없는데 찬바람 부는 겨울에 이 모래사장에 여러번 왔습니다. 와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곳도 어느 곳보다 나쁜 처소인데 이곳에 올 수 있을까요? 아무도 여의도에 안나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와서 기도하면 성령께서 나오라. 나오라.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나중에는 센터가 된다. 나오라. 나오라. 그래서 여의도에 나와서 교회를 지으니까 사람들이 다 망하려고 미쳤다고 그랬습니다. 여기에 이 들판에 교통도 없고 교량도 없고 모든 것이 없는데 교회를 세워서 어떻게 교회가 되겠느냐. 이제는 완전히 망했다.
그랬는데 지금 망했습니까? 안망했지요. 하나님 레마를 듣고 나왔기 때문에 안망한 것입니다. 남이 시장간다고 거름지고 시장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남이 시장가면 자기도 팔만한 것이 있으면 지고 가야지요. 우리가 이렇게 했다고 그냥 나도 해보겠다고 용기를 내서 따라해서는 안됩니다. 레마를 받아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고 해야지 믿음이 없이 남이 하는 것을 보고 흉내내어서 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을 늘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즉 레마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래서 레마를 받고 믿으면 그 다음에는 담대하게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 돌기도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여리고를 점령하는데 한꺼번에 쳐들어가서 주시면 되겠는데 뭘 성 주위를 하루에 한바퀴씩 돌고 이레째는 일곱바퀴를 돌고 고함을 치면 성이 무너지겠다. 그런 말을 합니까? 분명히 물으셨습니다. 하나님 여리고를 무너뜨리려면 오늘 무너뜨리지 뭘 엿새동안 성을 하루에 한번씩 빙글빙글 돌고 일곱째는 일곱바퀴를 돌고 고함을 치라고 합니까? 그런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돼요. 그것은 자기 신발을 신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기 신발을 벗고 하나님께 내어맡기면 하나님이 예비한 신발, 하나님이 작전 계획을 세웠으면 하나님이 시키는 데로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 14절로 16절에 보면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야훼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아마 백성들이 하루종일 도는데 한바퀴 돌고 보니 성이 금도 안가고 두바퀴 돌아보니 성이 금도 안가고 세바퀴 돌아보니 성이 금도 안가고 성위에 있는 적군들은 껄껄 웃고 손가락질하고 돌아봐라. 밤새도록 돌아도 다리만 아프지 끄덕없다. 그렇게 말하고 조롱을 하는데 의심이 않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해서 일곱바퀴를 돌고 고함을 치라고 할 때 고함을 치니까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앉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금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갠다고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믿고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믿습니다 하고 앉아있어도 안돼요. 믿고서 순종을 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승리의 외침을 외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서 믿고 순종하고 마지막에는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찬양이 여러분 얼마나 힘이 있는지 여리고성에 둘러싼 이스라엘 백성이 마지막에 외치니까 성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도 어떤 일을 위해서 순종하고 믿고 기도하고 난 다음에 찬양을 많이 해야 돼요.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가 내게 이야기한 것이 있습니다. 암이 다가와서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 자기는 무엇을 하느냐. 찬양을 한다. 승리의 찬송, 은혜의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면 그렇게 고통스럽던 암의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말이 찬양이 없었으면 자기는 벌써 죽었을 것인데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찬양을 부르면 고통이 사라진다.
그 말을 듣고 저도 상당히 많이 깨닫고 난 다음 그분의 말을 통해서 감동을 받아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꾸 찬양을 부릅니다. 그러면 마음에 위로가 되고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적군의 성벽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공중에 권세잡은 자가 우리를 훼방하나 찬양을 하면은 쫓겨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을 하기 싫을 때라도 찬양을 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찬양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음성인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 20절에 보면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했다.
예배도 여러분 각자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둘러쌓여서 오지 않습니까? 사방으로 우껴싸이고 답답한 일을 당해서 오는데 말씀과 찬양으로 이 성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가대가 찬양을 할 때 박수를 치지요? 노래 잘한다고 박수치는 것도 좋지만 박수치는 이유가 내가 그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에 나를 둘러싼 마귀의 진이 무너진 것을 감사해서 박수를 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성가대가 왜 필요하냐. 찬양을 통해서 원수의 진이 무너지기 때문에 성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부르는 것도 좋지만 성가대원들이 찬양 부를 때 우리가 그 찬양을 마음 속에 받아들여서 음미하고 있을 때 굉장한 성령의 능력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승리는 우리의 승리의 외침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에서 큰 승리를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기뻐 춤추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에 들어가기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이야기 한 것이 있었습니다. 여리고성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다 하나님께 바쳤다. 아무도 개인 소유하지 말라. 누구든지 여리고성에 있는 물건을 개인 소유하면 이것은 도둑질한 것이다. 그렇게 명령을 내렸는데 여리고성에 들어갈 때 성을 치기 전에 아간이라는 이스라엘 사람이 탐이 나서 멋있는 외투, 털외투가 있고 금이나 은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취해서 자기 장막에 숨겼습니다.
2. 아이성의 대패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이제 여호수아는 여리고성 다음에 아이성으로 진격해 나가는 것입니다. 아이성은 여리고성보다 조그마한 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 7장 2절로 3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한번 일에 성공했다고 다른 일도 다 성공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한번 일에 성공해서 자만해서 그만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도 기다리지 아니하고 믿음과 순종도 가지지 아니하고 자만해서 걸어가면 망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하나님과 동행해야지 내 인간의 자만심이 들어오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멸망의 앞잡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 거만한 마음이 패망과 멸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탐욕과 욕심이 가는 길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난 이유는 이 두가지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교만과 오만, 그 다음에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가 욕심이 나고 탐심이 나서 따먹은 이 죄로 말미암아 쫓겨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마지막 우리에게 남긴 유언중에 하나가 너희가 뱀을 집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뱀이란 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늘 뱀을 집으라는 것은 교만과 오만을 집어내고 욕심과 탐심을 집어내어야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만 자만심이 생겼습니다. 아~ 여리고성같이 큰 성도 우리가 쳐서 무너뜨렸는데 아이성 같이 조그마한 성 전군이 동원할 필요도 없고 2, 3천명 가면 이기겠다 하니 그렇게 해봐야겠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 안했어요. 여리고에서 이겼다고 해서 자만심을 가지고 기도를 안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도 기도를 하지 않고 인간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의지하고 나가면 망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지혜와 지식의 근본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기도해서 하나님이 마음에 준 레마를 받아서 나가야지 레마없이 믿을 수도 없고 믿음없이 순종할 수도 없고 순종 안하는데 하나님이 역사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실수한 것은 그만 자만심이 생겨서 레마를 구하지 아니하고 여리고성 승리의 신발을 도로 신었습니다. 자만심의 신발을 신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발을 신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예비하시고 새로운 방법, 새로운 지혜와 총명을 예비한 것을 기다리고 하나님이 주신 신발을 신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제 나는 섰다. 나는 이만하면 되었다. 당당하다. 반드시 넘어집니다. 교만과 탐심이 들어오면 한길로 가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탐심 및 우상숭배는 우리를 완전히 하나님께로부터 격리시켜 놓은 것이 된 것입니다. 유다 족속의 아간이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과 이백 세겔과 무게 오십 세겔되는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서 숨겼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우리가 취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다 물건을 바쳤기 때문에 하나님 바친 것을 너희가 취하면 도둑질하게 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되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간이란 사람이 욕심이 생겨서 물건을 훔쳤습니다.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을 보고 눈이 확 뒤집어졌습니다. 그때 아마 시날산 외투 같으면 아주 털외투로 엄청나게 좋을 것입니다. 요사이 몇백만원 하는 외투일 것입니다. 다 탐이 날 것이에요. 그것을 탐을 내서 숨겼습니다. 금덩이와 은덩어리를 숨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한 것은 그러한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 귀한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길 것은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바울선생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뭐라고 말합니까? 야~ 은행 통장 가지고 오너라. 한번 봐야 되겠다. 증권 가지고 오너라. 내가 죽기 전에 한번 눈으로 봐야 되겠다. 다이아 반지 가지고 오너라. 금반지 가지고 오너라. 내 죽을 때 한번 봐야 되겠다. 그렇게 하는 돈 사람 보았습니까? 죽을 때 마지막 보고 싶어하는 것이 누구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 친구, 친척 사랑하는 사람을 오라고 해서 보고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가는 것이지 죽어가는 사람이 다이아반지 가지고 오너라. 금반지 가지고 오너라. 증권 가지고 오너라. 은행 계좌 가지고 오너라. 그것을 내가 보겠다. 그런 미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모든 것이 다 죽을 때는 사라지지요.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때도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심판 받을 때 너 세상 어느 대학 나왔느냐? 너 졸업장 가지고 왔느냐? 세상에서 얼마나 돈 많이 벌었느냐? 그것 안묻습니다. 세상에 일류대학 나온 것 하나님은 관심 없습니다. 세상에서 어떠한 상장 받은 것 하나님 안묻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을 집을 짓고 얼마나 큰 사업을 했는지 안 물어요. 하나님 뭘 묻겠습니까? 세상에 사는 동안에 나를 얼마나 사랑했느냐. 네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나님이 묻는 질문은 그것인 것입니다. 사랑이 바로 여러분 삶의 전체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게 되는 것인데 탐심을 가지면 하나님 사랑을 도둑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간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도록 만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아간이 한사람 잘못하므로 말미암아 온 가정이 다 큰 화를 당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만 아간이 심판받을 때 아간만 심판하는 것 아닙니다. 그 아내와 자식들과 집에 있는 짐승들까지 다 아골골짜기에 데리고 가서 돌로 처죽인 것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야구 좋아하지요? 저는 야구를 몰랐는데 텔레비를 통해서 야구를 보니까 참 재밌더라구요.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야구 경기 해설을 들으니까 도저히 내가 모르는 말을 해설가가 말을 해요. 선수들이 구장에 계속 공을 치지 못하고 헛방망이질을 하니까 해설자가가 “자기 타격을 해야 됩니다. 자기 타격을 해야 됩니다.” 이래요. 자기타격이 뭐냐. 이 해설가는 야구중계를 하는 동안에 자기 타격이라는 말을 자꾸 사용해요. 여러분,“자기 타격”이 뭡니까? 나도 좀 알려 주세요. 자기 타격을 해라. 자기 타격을 해라.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자기 타격이란 것은 자기가 평소에 늘 하던 대로 하라. 욕심을 내서 하면 볼이 안맞는다. 내가 멀리 보내야지. 그러면 멀리도 못보내고 맞지도 않는다. 잘쳐야지. 잘 안쳐진다. 내가 평소에 하던 대로 내가 보통 훈련한대로 자기 스스로 배운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자들이 경기에 임하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히트를 날리려고 홈런을 날리려고 긴장을 하고 자기 타격을 뛰어 넘어서 욕심을 내다가 헛방망이질을 자꾸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의 욕심 즉, 탐심이 생기면 운동 경기에서도 자기의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 믿음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탐심이 들어오면 하나님 말씀 대신 우리 욕심을 쫓아갑니다. 말씀이 아무리 가르쳐도 말씀을 제켜 놓고 욕심을 쫓아갑니다. 그리고 결국 욕심은 우상숭배가 되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최근에 우리 교회 성도중 일부분이 저나 저의 가족을 가지고서 왈가왈부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습니다. 대답을 안했지만 오늘은 대답을 한번 해볼까 합니다.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은 하나님이 제게 레마를 주셨던 것입니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가난하고 헐벗고 불쌍한 사람을 돌보아주라. 그래서 하나님께 레마를 받아서 사랑과행복나누기 운동을 시작했고 그리고 보건사회부에 등록을 한 법인체인 것입니다. 우리교회것이 아닙니다. 우리 정부것입니다. 제가 사랑과행복나누기 운동을 만들어서 그것을 시행하려고 할 때 우리 당회에서 은퇴하니까 은퇴한 후 사업으로 이것을 계속하라고 우리 교회에서 500억을 파운데이션 돈으로 주었어요. 기초돈으로 주셨어요.
그 돈 내 돈 아닙니다. 우리 교회 돈도 아닙니다. 교회에서 일단 내놓으면 재단 돈입니다. 재단은 정부의 것입니다. 정부가 늘 와서 감시를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 돈에 손댔다가는 철창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당장 기소되고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랑과행복나누기 운동은 보건사회부에 소속한 재단은 10년 동안 감시를 받습니다. 잘못했으면 10년 후에라도 발견되면 기소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과행복나누기 운동을 가지고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도우려고 하는데 그것을 가지고서 자꾸 조용기와 그 가족들이 돈을 빼먹는다고 하니까 가만히 생각하니까 기가 막혀요. 그것을 문서로 해서 돌리고 인터넷에 올리고 거짓말을 자꾸 하면 참말이 되어요. 그래서 가만히 참고 있다가 더 이상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왜냐하면 교회 일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서명을 해서 나를 골탕을 먹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절대로 내가 아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제가 증명해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교회를 세울 때 천막치고 가마니깔고 피와 눈물과 땀으로 교회를 시작해서 50년을 이 교회에 헌신했습니다. 내가 이제 와서 교회 돈 빼먹으려고 한다면 미친놈이 아닌 다음에는 그런 일을 안할 것입니다. 저는 한푼이라도 생기면 지금도 교회 헌금으로 다 내놓습니다. 저는 교회를 사랑하고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원로가 되었다고 나의 발목을 붙잡고 나에게 흉악한 그물을 덮어 씌우는 사람이 있으면 앉아서 나는 한번 둘이가 대면해 보고 싶습니다. 누가 교회를 위해서 더 많이 헌금을 냈는지 헌금 계산을 한번 해보자. 헌금을 얼마나 내었는지. 내었으면 그것을 가지고서 교회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내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증거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얼마나 답답해야 평신도인 성도 여러분에게 내 개인적인 사정을 이야기하겠습니까? 절대로 이야기 안하려고 내가 작정을 했는데 서명까지 돌린다고 하기 때문에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이 세운 교회로 절대로 마귀가 움직이지 못합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께 부탁하는 것은 하나님이 저 뒤를 이어서 이영훈 목사를 당회장으로 세웠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이영훈 목사와 같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영훈 목사를 밀어주고 도와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와 이영훈 목사 사이에 쇄기를 박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쇄기 안들어갑니다.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하나님이 세운 교회로 앞으로 나가서 온 세계를 향해서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그릇이라는 것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바보 같아도 실제 바보는 아닙니다. 우리 집사람이나 우리 애들이 성자는 아니고 훌륭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도둑놈은 아닙니다. 도둑놈이 되도록 내가 내버려 놓지는 않습니다. 왜 제가 이 말을 하냐면 제가 아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아간이면 이 교회를 망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제가 아간이 아니라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50년 이 교회를 키워왔고 이제 새로 당회장으로 세운 이영훈 목사님을 절대로 뒤를 밀어 받들어서 우리 한국과 세계에 우뚝 선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교만과 탐욕이 들어오면 하나님이 떠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과 탐욕을 경계하여 항상 두려워하고 뱀을 집어내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이 와서 교만과 탐욕으로 물건을 훔친 것을 모르고서 백성 중 3천명 쯤 아이성으로 올려보냈는데 그들이 아이성 백성들 앞에서 도망을 치고 36명이나 엎드려져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온 이스라엘 백성이 물을 쏜 듯이 처참한 절망에 처했습니다. 너무 얕잡아 보다가 크게 당했거든요. 우리가 언제나 큰 낭패와 실망을 당하면 교만을 회개하고 탐욕을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만과 탐욕의 짐을 짊어지고 있으면 절대로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짐을 잔뜩 짊어지고 세상을 사랑하면서 마귀들의 군사들과 싸울 수 없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세상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 앞에 나가서 승리하려면 교만 버리고 세상 욕심을 반드시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버렸으면 오늘도 또 살펴봐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고 새방언을 말하고 그 다음 뱀을 집어야 되는 것입니다. 교만의 뱀, 오만의 뱀, 탐욕의 뱀, 욕심의 뱀을 집어내고 회개하고 쫓아내 버려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못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교육이 없고 가문이 나쁘고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야훼께로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여러분 이 세상의 태산같은 도움이 없을지라도 온 천지를 지은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고 우리의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진짜로 하나님 말씀을 받고 믿고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생활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여호수아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전쟁에 패하고 백성들은 낙심천만하여 물을 쓰고 앉아 있는 것 같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어떻게 합니까? 회복하는 길은 회개의 길밖에 없습니다.
3. 회복
여호수아 7장 6절로 9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야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했습니다. 우리가 큰 시련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회개인 것입니다. 우리가 천사가 아닌 다음에는 다 죄를 짓고 실패를 해요.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제일 빠른 길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그 장로들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탐욕을 청산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 24절로 26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야훼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야훼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이 아간 한 사람이 잘못하므로 아들들도 딸들도 그 소들도 나귀들도 양들도 다 돌무더기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잘못하면 그 가족과 그 주위와 그 나라와 그 민족이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란 혼자 사는 사람이 없어요. 다 두 사람 이상 함께 살지요. 사람이 이 땅에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인 것입니다. 나 혼자 잘 입고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 함께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 한국의 정치인들이 인기몰이로 공짜 이야기만 합니다. 학자금도 공짜, 병원비도 다 공짜, 음식 먹는 것도 애들 밥 먹이는 것도 다 공짜! 모든 것을 다 공짜로 준다. 공짜 안좋아하는 사람 누가 있어요? 그러니 다 박수를 치고 표를 찍는다 말이에요. 그러나 공짜 좋아하는 국민들치고 안망한 국민이 없어요. 구라파도 공짜 좋아하다가 망했고 일본도 일본 수상이 두 번이나 회개했지 않습니까? 공짜를 주겠다고 한 다음 일본 국가의 재산이 탕진되고 국고가 비게 된 것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공짜는 누구에게 주어야 하느냐. 참으로 고아와 과부와 헐벗고 굶주리고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은 도와 주어야 돼요. 그 외 사지가 멀쩡한 사람을 왜 공짜를 줘요? 성경에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에덴동산에서 주님이 머리 이마에 땀을 흘려서 먹으라고 했는데... 주라 그리하면 돌려줄 것이요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했으니 일해서 우리가 벌어서 나누어 주어야 축복을 받지요. 빈손 들고 날 좀 도와주소. 날 좀 도와주소 하고 돌아다니면 결국 자기도 망하고 결국 도움주는 사람들도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치인들이 다니면서 공짜 해주겠다고 하는 사람 그 말 믿지 마세요. 그 공짜를 주자면 그 나중에 필요한 돈을 누가 냅니까? 우리 세금으로 내야 돼요. 우리 세금 폭탄 안맞고서 어떻게 공짜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 우리가 세금을 크게 안내고도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먹일 수 있어요. 어떻게 하느냐. 재벌들에게 많은 불쌍하고 어렵고 고난당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정부가 그만큼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 하면은 재벌들이 다 할 것 아닙니까? 우리 보통 사람들이 걱정 안해도 될 것인데... 이러므로 우리가 무엇이든지 공짜를 바라다가는 탐욕을 키우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짜를 준다니까 일을 안하고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게을러지고 탐욕을 기르게 되면 자기도 망하고 이웃도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혼자 사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다 함께 사는 것입니다. 교회도 우리가 공동체로써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고 찬송드리고 함께 믿는 것입니다. 나 혼자 집에서 믿는다고 앉아있으면 얼마있지 않다가 신앙 다 팔어먹고 말아요. 교회와서 함께 찬송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설교들을 때 믿음이 살아나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성에서 망한 것은 아간 자기 혼자 외투와 은금을 숨겼다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환난을 당하고 그 많은 사람이 전쟁에 죽었거든요. 여호수아가 백성들과 함께 회개하고 난 다음에 다시 말씀을 믿고 믿음과 순종으로 나갈 때 주님께서 여호수아 8장 1절에 보면 새로 말씀한 것입니다.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여호수아 8장 26절로 27절에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아이성은 멸망해서 점령했을 때 그 재산은 이스라엘 백성이 나누어 가지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요즘 도시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체험하지 못한 일을 많이 체험합니다. 시골 집에 불이 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러면 시골에서 제일 먼저 재산 목록 제1호가 뭡니까? 소입니다. 외양간에 불이 튀어서 외양간에 불이 붙으면 소를 끌어내려고 아무리 잡아 당겨도 소가 안나옵니다. 장사의 힘으로도 소를 끌어낼 수가 없어요. 불이 나면 외양간에 들어가서 소를 못 끌어내요.
나는 어떻게 끌어내는지 압니다. 시골서 자란 덕분으로... 제일 먼저 소를 끌어내고 위해서는 외양간에 들어가서 소 여물통을 뒤엎어버려야 돼요. 소밥통을 들어 엎어버려야 돼요. 밥통이 바로 있는 이상은 소는 내집이라고 안나오는 것입니다. 밥통을 들어 엎어 버리면 소가 순순히 따라 나옵니다. 그러니까 완력으로 안되는 것 지혜로 할 수 있는데 하나님도 우리가 순종을 안하면 우리를 순종시키는 법이 있어요. 우리 밥통을 들어 엎어버리는 것입니다. 별도리없이 회개하고 자복하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육하실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육하시는데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고 내뜻대로 하겠다고 자꾸 뒷걸음질 치면 우리의 여물통을 뒤엎어 버리고 우리 마음의 교만과 욕심을 버리고 회개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요사이 현대어로 말하면 여물통을 엎는다는 것은 직장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직장을 잃어버리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별도리 없이 배고픈데 기도 안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 순종하겠습니다. 십일조 내겠습니다. 주일 예배 성수주일 하겠습니다. 안할 도리가 없어요. 자연의 법칙인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의 신발을 신고 주님 앞에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는“하나님 앞에 절대로 설 수 없는 사람”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유대인의 성경에는요. “거짓말 하는 사람, 중상 모략 하는 사람, 이간질 하는 사람, 불순종하는 사람,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축복도 누리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R. A. 토레이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복은 하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다.” 즉 욕심껏 내 뜻에 따라 내 중심적인 삶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께서 주의 종을 부르실 때 신발을 벗으라는 것은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인간의 행동의 자유를 하나님께 내놓아라.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모세도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이 모세야 네 신발을 벗으라. 여호수아도 신발을 벗으라. 성경에는 평안의 예비한 신발을 신으라. 하나님이 예비한 신발을 신어야지 내가 하나님 없이 인간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으로 내 마음대로 하겠다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성서 신학자인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이란 주인에게 세가지를 지켜야 한다. 절대 복종할 것과 절대 겸손할 것과 절대 충성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려면 절대 복종하고 절대 겸손하고 절대 충성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말씀, 믿음, 순종의 삶이요, 교만과 오만과 탐욕과 욕심을 버리고 나가면 여리고에서도 이기고 아이에서도 이기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항상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사십시다. 성령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리고 그 다음 말씀을 받았으면 믿으십시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려도 믿고 그 다음 순종해 나가십시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순종해 나갑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송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 앞에 있는 여리고도 무너지고 아이도 무너지게 만들어 주시고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 2011. 7. 31.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