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버들꽃 나루와 뱃사공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내가 사는 동네의 이름은 버들꽃 나루입니다. 강변에 갯버들이 많이 나 있어서 버들꽃 나루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이곳이 그 이름으로 불리어 졌는지는 나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곳이 나루터가 된 지는 아주 오래 되었다고 합니다. 한강 가에 있는 버들꽃 나루는 생김새가 배가 닿기에 알맞아서 세상에 그 이름을 드러내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루는 배들이 드나들고 잠시 동안 머무르며 사람들이나 물건을 내려놓기 편한 곳이어야 하는데 이 나루는 그에 꼭 맞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한강 가에는 주로 깎아지른 절벽이나 모래펄이 이어지는 습지가 많아서 어느 곳에도 배를 댈 수 없었으나, 버들꽃 나루는 양쪽 끝에 자연적으로 부두가 형성되어 있고, 남쪽의 선유봉을 중심으로 비스듬하게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어서 배를 대기가 아주 수월했다고 합니다.

또 강 건너 동쪽에는 큰 봉우리가 있는데 덜머리라고 불리었습니다. 머리를 높이 든 형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도 합니다.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연꽃 씨앗을 중국에서 가져다가 심어서 그 종자를 퍼뜨린 강희맹이란 어른은 이 덜머리의 형상을 보고나서 그 느낌을 적어 놓았는데 “산이 푸르고 물도 푸르며 바위 모양이 큰 자라 머리 같고 언덕에 발부리가 뾰족한 게 우리나라에서 제일간다.”라고 덜머리를 칭찬했다며 우리 할아버지께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렇듯 버들꽃 나루터는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청평 위쪽 산악 지대에서부터 굽이굽이 흘러 내려 온 한강물은 송파진에 이르러 물살이 거칠어지지만 용산, 마포를 지나면 그 속도가 느려지고 수심도 얕아 강물이 맑고 깨끗하여 뱃놀이와 고기잡이를 하기가 아주 알맞은 곳입니다. 나루터 옆에 있는 선유봉에서 한강을 바라보면 그 경치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빼어난 절경입니다.

그런데 이 나루터가 때때로 사람을 죽이는 처형장으로 사용된 끔찍한 일이 벌어진 일도 있었습니다. 나루터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므로, 죄인들의 잘못을 널리 알려 다시는 죄를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이곳에서 죄인들을 처형했다고 합니다. 또 강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물속에 산다는 용왕에게 때때로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도 이용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사람이 물속에 빠지거나 나룻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일어나면 용왕님이 화가 나서 파도를 크게 일으키기 때문이라면서 용왕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지금도 고기잡이를 나갈 때는 용신에게 고사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호랑이를 잡아서 제물로 바치면 용왕이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오래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를 잡아서 호랑이의 얼굴 부분을 떼어내 강에다 집어넣은 채 제사를 지냈는데 바로 우리 할머니가 그 제사 지내는 일을 맡아서 하셨다고 합니다. 그곳이 바로 버들꽃 나루라고 우리 할아버지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서 가뭄이 드는 것도 용왕이 노여워서 그런 것이라 여기고 나루터에서 기우제도 지냈다고 합니다.

나는 그 나루터가 보이는 선유봉에서 자라는 아카시아 꽃잎을 따서 입안에 한 움큼 넣고 우물우물 씹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 후에는 늘 강가에 나가서 놀기도 합니다. 언제나 나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고기들처럼 물속으로 마구 헤엄쳐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검푸른 강물은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강가에 서 있으면 강물은 물 주름을 이으며 강 저쪽으로 밀려가기도 했고, 바람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불면 그 강물이 내 앞으로 흘러 왔습니다. 강물은 바람에 따라 잔잔하게 주름을 잡기도 하고 어느 때는 큰 주름을 이루며 내게로 다가왔습니다.

“철썩 쏴 아 철썩 쏴 아”

모래 위에 서 있는 내 앞으로 와서는 발을 적시고 돌아갑니다. 점차 밀려오는 강물은 이내 내 친구가 되었는데 어느 때는 빈 플라스틱 병이나 고무공, 고기의 부레, 스티로폼, 한쪽 옷이 벗겨진 인형들을 내 앞으로 밀어다 주기도 했습니다.

장마 때가 되어서 성낸 이빨을 드러낸 것 같이 밀려오는 흙탕물의 강물도 있었지만 대개는 언제나 맑고 깨끗했습니다. 햇빛은 언제나 강물 위에서 놀았고 이따금 물고기 비늘에 비치는 햇빛은 내 눈을 부시게 만들었습니다. 아침 햇빛에 빛나는 금빛 비늘은 내 앞에서 강물 저쪽으로 숨어 버리기도 했고, 또 꼬리가 달린 도마뱀같이 달아나 버리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강물에 밀려 온 말풀은 내게 비릿한 냄새를 맡게 했고, 물새가 쪼아 먹다버린 물고기들은 강변 모래 위에 그대로 뒹굴기도 했습니다.

강 건너편에 있는 당인리 발전소에서는 언제나 하늘로 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쉬지 않고 연기를 뿜어내는 높은 굴뚝이 있는 발전소에 가보려고 별렀습니다. 강이 가로 놓여 있어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야만 그 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 날을 벼르고 벼르다가 어느 날 나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당인리 발전소를 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에 올라탔습니다. 왼쪽 다리를 절름거리는 뱃사공이었습니다.

“아저씨!! 나 좀 강을 건너다 주세요,”
“어딜 가게?”
“저기요. 하늘로 연기를 뿜어 대는 저 곳을 좀 가 보게요.”
“거긴 뭣하러?” <계속>

김학준 작가
월간 《창조문예》 동화 부문 등단, 《문학21》 소설 부문 등단, 장로회 신학대학원, 미국 훼이스 신학대학원 종교교육학 박사 과정, 계간 농민문학 편집국장, 한국문협·펜·소설가협회·한국 크리스천문학가협회 등 회원, 동화집 『행복파이』 외 작품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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