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의 ‘우울증’ [3] 유발원인들
제3장 우울증 유발원인
우울증은 어떻게 해서 유발되는 것인가? '심리적 감기'라 할 정도의 우울증이 쉽게 유발되는 것도 궁금하거니와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궁금할 것이다. 물론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쉽게 발생되는 증상은 그 증상만큼이나 다양한 원인이 작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울증 유발 원인에는 일정한 조건과 과정과 경로가 있을 것이다. 다만 쉽게 유발된다 해도 원인이 그렇게 간단하진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전과 환경, 심리 및 신체적 문제 외에도 다른 여러 요건들이 작용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견해도 학파마다 차이가 있다. 특히 우울증 유발원인은 예방과 치료에도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 신체적 원인
우울증의 신체적 원인은 생물학이 중요시되며, 주로 정신의학자에 의해 발전됐다. 신체적 원인은 유전적 요인, 뇌의 신경화학적 이상, 뇌구조의 기능적 손상, 내분비계통의 이상, 생체 리듬의 이상 등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한다. 여기에는 우울증의 유전성과 유전적 소인도 흥미로운 관심사다. 이를 위해 가계 연구, 쌍생아 연구, 입양 연구 등이 진행됐고, 유전적 소인이 있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뿐만 아니라 뇌세포간의 신경정보전달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여러 연구도 진행됐다. 특히 모노아민 계열 신경전달물질의 과잉 분비, 즉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이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이론이 제기됐는데, 이 결과는 약물치료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 이외에도 신경생리학은 시상하부 등 뇌의 특정 부위에 손상이 있을 때와 내분비 계통의 질병이 종종 우울증상을 수반한다는 임상적 관찰에 근거해, 코티졸 같은 특정한 호르몬의 변화도 우울증이 유발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하자.
1) 유전적 요인
주로 가계 연구와 쌍생아 연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우울증 환자의 가계 연구는 우울증과 조증이 교대로 나타나는 양극성 우울증(Bi-Pola), 우울증이나 조증 중 하나만 나타나는 단극성 우울증(Uni-Pola)에서 다른 결과를 보이는데, 양극성 우울증이 더 유전적 소인이 큰 것으로 나타난다.
단극성 우울증도 직계 가족에서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은 일반인보다 1.5-3배 정도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러나 가족은 유전적 요인도 공유하고 유사한 심리사회적 환경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가계 연구결과를 유전적 결과로만 해석할 수 없다. 이런 문제점의 개선이 바로 일란성, 이란성 쌍생아에서 우울증 일치율을 비교하는 쌍생아 연구다. 대부분 쌍생아는 이란성보다 우울증 일치율이 높았다.
이와 관련, 여러 연구결과를 종합한 어떤 연구에 의하면 단극성 우울증의 경우 일란성 쌍생아의 일치율이 40%인 반면 이란성 쌍생아는 11%에 불과했다. 쌍생아 연구에서도 양극성 우울증이 단극성보다 유전적 소인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일란성에서 양극성 우울증 발생 일치율이 평균 69.3%인 반면, 이란성에서는 20%였다.
입양아 연구도 빠지지 않는다. 이는 일란성과 이란성을 비교할 수 있는 점에서인데, 입양아 연구는 우울증의 유전적 소인을 알아볼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이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입양아가 단극성 우울증을 나타낼 때 친부모와 양부모의 우울증 유병율을 조사했지만 차이가 없었다는 보고도 있다. 게다가 양극성 우울증을 보인 입양아의 경우 친부모의 우울증 유병율이 28%인데 비해 양부모는 12%를 나타내 유전적 영향을 뒷받침하는 결과도 나왔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울증의 유전적 요인 연구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단극성 우울증의 유전적 소인은 그 증거가 명확하지 않지만, 양극성 우울증은 소인 증거도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이런 유전성은 부모가 심한 우울증을 앓는 경우 자녀가 유전적인 소인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지만 동일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라도 전혀 우울증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유전성 요인이 그만큼 적어진다. 실제로 유전적 영향이 비교적 뚜렷한 양극성 우울증의 경우도 유전적 소인 자체가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처하는 환경 스트레스와 상호작용한 결과로 우울증이 유발되는 측면이 있다.
2) 뇌의 신경학적 요인
우울증은 뇌의 신경학적 요인으로도 유발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 우울증 유발에서 뇌의 신경학적 요인은 생체원인과 관련된다. 이때 신경학적 요인에서는 우울증 원인을 외부 자극에 의한 것으로 보지 않고 내부 변화, 즉 내인적 원인(endogenous cause)으로 본다. 우울증이 뇌의 신경화학적 기능 이상으로 생겨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뇌의 신경학적 연구에서는 뇌세포간 신경정보 전달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 이상을 밝히려는 노력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이는 뇌기능과 화학적 신경전달의 문제를 중요시하는 생체적인 원리에서 이해된다. 이런 신경전달은 신경전달물질이 신경자극제로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는 우리 인체에서 신경전달물질이 일종의 신경자극제로 뇌 기능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신경전달에 의해 좌우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실제 우리 인체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은 입으로 섭취되는 각종 음식물이나 복용하는 약물이 모두 화학성분으로 변해 신경전달물질이 되거나 뇌에서 생성되는 특징이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신경전달물질은 배출이나 특수한 화학 매체의 배출을 자극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카테콜라민 가설(catecholamine hypothesis)은 우울증을 뇌신경화학적인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대표적 이론이다. 카테콜라민은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 에피네프린, 도파민을 포함하는 호르몬이다. 이 가설에서는 개인에게 카테콜라민이 결핍되면 우울증이 생기고, 반대로 과다하면 조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뇌의 신경연접부와 관련해 노르에피네프린이나 세로토닌에 의해 지배된다는 원리에 기초한다. 이는 오늘날 항우울제의 약물치료를 가능하게 만드는 이론이다. 이로 인해 치료에서도 어떤 약물은 노르에피네프린에 반응하는가 하면, 어떤 약물은 세로토닌에 의해 더 반응한다.
특히 카테콜라민 중에서 에피네프린이나 도파민보다는 노르에피네프린이 기분장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기분장애는 뇌의 신경화학적 활동 변화에 의해 생기며, 우울증은 특정 신경전달물질, 즉 카테콜라민이 문제를 일으켜 생겨난다. 그러나 이 가설은 사람을 피험자로 직접 실험을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가설은 상당히 인정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다음 3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이 가설은 여러 동물 연구에서 간접적으로 뒷받침 된다. 실험적으로 쥐의 노르에피네프린 수준을 낮췄을 때 쥐는 우울증 환자처럼 위축되고 무반응적 행동을 나타냈다.
다음 약물치료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사실들이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고혈압 환자의 혈압강화제로 사용되는 리설핀(reserpine)을 복용한 환자 중 때때로 우울증상을 호소하는 것이 보고됐다. 이 연구에서 리설핀이 뇌에 카테콜라민 계열의 신경전달물질의 공급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우울증 약물이 개발되면서 카테콜라민 가설이 본격 지지됐다. 이로 인해 삼환계 항우울제와 모노아민 옥시다제 억제제(MAO) 현상을 완화시키는 중요 치료약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약물들이 우울증상을 감소시키는 이유는 뇌에 노르에피네프린이나 세로토닌의 활동수준을 증가시키기 때문으로, 카테콜라민 가설을 강력 지지하는 결과로 여겨졌다.
그러나 후속 연구에서 뇌의 노르에피네프린 증가가 곧바로 우울증상을 완화시키지는 않는다는 결과도 나타났다. 지금까지 결과를 볼 때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우울증과 관련됨은 확실하지만, 이 물질들이 우울증을 유발하는지 정확한 기제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연구들은 신경전달물질과 관련, 다음 우울증 유발가능성을 시사한다. 신경전달물질 과소량 생성, 신경전달물질로 인한 수용기 이상, 신경전달물질 전달체계 이상, 모노아민 옥시다제(monoamine oxidase)에 의한 신경연접부 신경전달물질 과잉방출 등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전달물질은 모두 신경생리학적 요인과 관련됨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우울증에 대한 많은 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우울증 유발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가지 신경생리적 요인이 주장되고 있다. 그 중 우울증이 시상하부(hypothalamus) 기능 장애 때문에 생긴다는 주장이 흥미롭다. 이러한 주장의 증거로 시상하부가 기분을 조절하는 기능을 지닐 뿐 아니라 우울증에 보이는 식욕이나 성적 기능 장애에도 영향을 주는 점이 강조됐다. 이와 관련해 우울증 환자들은 뇌하수체 호르몬이나 부신선 또는 갑상선 등의 기능장애를 보이는데, 이런 호르몬이 모든 시상하부의 영향을 받는 점이 지적됐다.
뇌하수체 성장 호르몬 분비는 일반적으로 저혈당, 스트레스, 에스트로겐 등에 의해 촉진되는데, 우울증에서 이러한 성장 호르몬 분비가 저하 현상을 보인다는 점에서다. 특히 단극성 우울증에서는 인슐린으로 저혈당을 유발시켜도 성장호르몬 분비의 촉진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양극성 우울증에서는 정상 반응이나 증가된 반응이 나타났다. 이 현상에 성장 호르몬 분비는 현저히 감소된 단극성 우울증으로 진단된 산욕기의 부인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3) 내분비계의 이상
우울증은 내분비 장애와 관련된다. 우울증 유발과 관련해 내분비계 이상을 주장하는 입장은 내분비계통, 즉 갑상선, 부갑상선, 흉선, 뇌하수체, 췌장, 부신, 난소, 생식선 등의 질병이 종종 우울증상을 동반한다는 임상적 관찰에 근거한다. 내분비계는 대개 인체의 긴급 반응력을 위해 혈관 속에 방출되는 호르몬을 생성하는데, 내분비계 호르몬 생성이 정상적이지 못할 때 우울증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이때 스트레스 대응을 위해 분비되는 코티졸(cortisol)은 우울증과 관련해 주목받는 내분비 호르몬이다. 실제 우울증 환자들은 혈장 코티졸 수준이 높은 편이다. 코티졸 상승은 스트레스에 대한 정상적 반응이지만, 우울증에서는 다른 스트레스성 증상은 수반되지 않으면서 코티졸 수준만 높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최근 스트레스 후 일어나는 우울증으로 아드레날린 소진에 관심을 갖는데, 이런 경우 아드레날린은 스트레스성보다는 어떤 일을 집중적으로 처리할 때 소진되는 현상이라 봐야 한다. 인체 내분비계에 해당하는 부신선에서는 어떤 일을 처리할 때나 급박한 위기상황을 극복해야 할 때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점에서다.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아드레날린이 급격하게 필요하게 됨에 따라, 아드레날린 증가를 두고 의학적으로 ‘아드레날린 후기 우울증(postadrenaline depressio)’이라 부른다. 이는 급격한 에너지 소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아드레날린 우울증 현상으로는 침체된 기분, 급격한 에너지 소진, 그리고 수면부족 현상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내분비계 이상에서는 덱사메싸손(dexamethasone)이 주목된다. 덱사메싸손은 코티졸과 비슷한 약물로 정상인에게 24시간 동안 코티졸 분비를 억제하지만 우울증 환자의 30-70%는 덱사메싸손 억제검사(dexamethasone suppression test)에서 코티졸 억제를 보이지 않았다. 이 결과는 코티졸의 과잉분비라는 기능 이상이 우울증과 관련됨을 뒷받침해, 덱사메싸손 억제검사는 우울증 진단 검사로 사용된다. 그러나 코티졸 억제에 실패하는 현상은 알콜, 약물사용, 체중감소, 노령 등 여러 요인에 의해서도 나타날 수 있으므로 우울증에 대한 진단 기준으로는 불충분하다.
우울증 유발과 관련한 내분비계 이상에는 갑상선 호르몬이나 갑상선 자극 호르몬, 그리고 성호르몬인 프로락틴(prolactin) 저하도 주목된다.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이 호르몬 분비는 현저히 낮거나 불규칙함이 관찰된 점에서다. 이 현상은 때로 생체리듬에도 관련된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리듬은 일상적 생활과제 진행에 맞춰지는데, 만일 개인이 여러 대인관계 손상, 업무 과중, 생활패턴 변화 등 생활 사건으로 정규 사회리듬이 깨지면 생물학적 리듬이 불안정해지고, 그 결과 취약한 사람들에게 우울증이 유발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우울증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생체리듬에 이상이 있다는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여기는 특히 수면각성 주기 및 체온변화 주기를 조절하는 생물학적 시계기제(biological clock system)에 이상이 있다는 주장과, 24시간 주기의 경우 우울증 환자는 수면각성 주기와 체온조절 주기가 4-6시간 빠르다는 연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연구들은 대체로 우울증 환자들이 수면을 취하지 못함을 시사한다.
우울한 사람들은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자주 잠에서 깨고 아침에 일찍 깨어나는 등 수면장애를 보이는데, 눈동자를 빨리 움직이는 수면 상태의 렘(REM)수면이 정상인과 다른 패턴을 보인다. 정상인은 처음 렘수면에 들어가기까지 약 90분이 걸리는데, 환자들은 이 기간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특히 내인성 우울증에서는 전체 수면시간이 짧아지고 서파 수면(slow wave sleep), 그 중에서도 제4단계 수면시간이 감소돼 시간 사이 간격이 짧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는 우울증 환자가 숙면을 취하지 못함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내분비계 이상에는 대사장애(disorder of metabolism)와 전해질 균형도 주목된다. 대사 장애들 중 일부 증상이 우울증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신체는 음식물을 흡수하여 생명과정을 위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그 과정에서 흡수된 물질을 에너지로 사용하도록 더욱 미세한 물질로 변형시켜 체내에 저장하고 사용하거나 나머지는 체외로 배출시킨다. 이런 대사장애 문제에서 특히 당분 대사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이때 저혈당증이라는 병적인 저혈당 수치는 우울증에 밀접하게 관련되는 불안정감, 부정적 느낌, 정서적 불안감, 염려, 어지러움 등을 유발시킨다. 심해지면 당사자는 종종 불안증 발작도 일으킨다.
그런가 하면 대사 문제는 전해질의 균형과도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세포 내 나트륨(sodium, Na)이 증가하고 칼륨(potassium, K)이 감소하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우울증은 나트륨의 세포막 운반이 지연됨으로써 신경 전도가 저하돼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세포 외 나트륨이 증가하고 세포 내 칼륨이 증가하면 신경세포의 흥분도는 높아지지만, 세포 내 나트륨이 증가하고 세포 외 칼륨이 증가하면 신경세포의 흥분도는 나아진다.
내분비계 이상에서는 여성의 생식기관, 계절, 그리고 약물복용도 우울증을 유발시킨다고 본다. 여성의 생식기관은 기분 진폭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점에서 생리 시작, 생리 전 증후군, 피임약 복용, 임신, 산후 증상, 갱년기 등이 모두 우울증의 유발과 관련있다는 시각이다. 이는 모두 여성의 생식조직과 관련,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estrogen)수치 변화를 의미한다. 여성 호르몬은 여성에게 자긍심, 생산성, 대인관계 등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여성의 기분 변화에는 특정 계절에 주기적으로 우울증을 유발하는 계절성 우울증도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가을과 겨울에 우울증을 보이고, 봄과 여름에는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계절성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1년 주기의 생체리듬에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외에도 여기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고혈압, 당뇨, 암 등의 약물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경우, 특히 피임약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경우 우울증이 유발되는 것으로 본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약을 끊을 수 없지만, 부차적으로 우울증 유발 원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을 우울증 유발과 관련해 너그럽게 이해해야 할 이유다.
2. 심리 및 성격적 원인
우울증의 원인에는 다른 요인들도 상정된다. 그 중에서도 심리적인 상태와 성격 문제는 높은 주목을 받는다. 이런 문제는 여러 연구에서도 입증됐고, 일반적으로도 널리 인정된 편이다. 개인이 갖는 심리적 상태와 성격의 문제가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이라고 할 때, 그 일차적인 점을 분명히 해야 할 점도 있다. 우울증이 우울적인 심리 상태를 갖고 그런 성격으로 나타나는지, 아니면 그런 심리와 성격이 우울증을 유발한 결과인지 구분해야 한다.
1) 심리 상태
우울증이 심리 상태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면, 심리적으로 외로운 사람의 경우 우울증이 유발되기 쉽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외로움, 즉 고독(loneliness)은 맥이 빠지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외로움이나 고독에 빠지면 힘이 나지 않는다. 아동이 성장기에 외로움을 경험하는 경우 우울증이 유발되기 쉬운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삶의 경험이 심리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하며, 특히 아동이 초기 삶에서 슬픔이나 상실, 불안 등을 경험하며 생활하는 경우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런 시각에서 3-4세 미만 유아가 어머니의 상실을 경험하면 그 확률은 높아진다.
이와 관련해 자살기도자에게 어머니 상실이 원인이 되는 점은 단적인 예다. 연구에 의하면 자살기도자 200명 중 어머니 상실은 가정 파탄 출신이 58%, 정신분열증이 34-40%, 우울증이 17-34%에 해당했다. 이는 생의 초기에 슬픔을 경험하면 우울증 경향이 높아짐을 의미하는데, 급격한 사건으로 인한 삶의 변화, 부모가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가정형편으로 이혼 또는 양육포기 등으로 인해 슬픔을 경험하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실제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아동기는 정신분열증이나 심한 신경증 환자의 아동기만큼이나 정신적 상처인 외상(外傷)이 경험된다. 여기는 심리 적응이 어려운 아동기에 부모 상실이나 큰 슬픔을 경험하면 우울해지기 쉬운 것이기에 초기 아동기의 불안 경험이 나중에 우울증의 소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극한 슬픔이 지속적이어서 급기야 우울증이 유발됐다고 볼 수 있다. 슬픔이 지속되면 정신이 부정적으로 변해, 당사자도 모르게 부정적인 감정을 학습하고 깊은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그러면 아동기 때 슬픔 중에 생활하는 아동은 사고과정이 지체되고 무정적인 사고방식을 학습할 것이다. 이런 아동은 행복하기를 바라나 희망이 없이 살아야 하는 이중적 딜레마에 시달린다.
심리적 원인에서 우울증은 인간관계에서도 발생한다. 개인은 사람의 관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거나 결혼생활에서 일치감이 없을 때 외로움을 느낀다. 이런 외로움은 정도에 차이를 보이지만 개인으로 하여금 일단 우울하게 만든다. 이런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은 결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결혼해도 전혀 우울증이 유발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혼은 외로움을 해결하는 중요한 방법이지만, 결혼하고 오히려 우울증이 유발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부부사이에 정서적 일치나 마음의 연합이 없어 정신적 에너지가 교류되지 않는 ‘정서적 이혼상태’나 다름 없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심리적 외로움을 사회현상이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그 중 하나는 여성의 역할변화로 인해 독신 여성이 증가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여성이 능력과 직업을 갖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게 현실이 됐다. 정신의학적 측면에서는 독신 경향성을 높인 점에서 부분적이지만 우울증 유발에 일조하고 있다고 본다. 실제 우울증을 경험하는 여성 중 결혼하기 원했지만 여건이 여의치 못했던 여성들이 있다. 이혼해서 혼자 살든 원래 결혼하지 않았든 독신은 외로움의 정서가 지배적이다. 이는 그대로 우울증의 유발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노년기에 혼자 지내는 경우 노인성 우울증을 경험하기 쉽다. 어떤 형태든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경험하게 만들어 우울증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2) 내향적 성격
우울증 유발은 성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내향적 성격(introverted personality)은 외향성보다 우울증이 유발되기 쉽다. 실제로 내향성은 외향성에 비해 더 많은 심리적인 문제나 장애를 유발한다. 내향성은 사람보다 일에 관심을 더 보이는 특성이 있어 사회적 관계형성 능력이 결여되기 쉽고, 정서적으로도 빈곤한 상태를 경험한다. 그들은 사회참여에 관심이 없고 친구도 별로 없이 언제나 혼자 지내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실제 내향성이 심한 사람들은 칭찬이나 비판을 받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일에 집중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느낌이 어떤지에도 관심이 없으므로 외부와 담을 쌓고 혼자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취미에 몰두한다. 게다가 나쁘든 좋든 감정을 표시할 줄 모르고 유머도 모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대개 냉정하고 언제나 거리감이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대인관계도 소극적이거나 거의 없으며, 남성의 경우 이성교제를 할 능력도 없어 결혼하는 데도 어려움을 경험한다.
만약 여성이 극심한 내향적 성격이라면 피동적으로 결혼할 수 있다. 이들은 백일몽을 많이 갖고 있으나 실현할 능력은 없고, 직업을 성공적으로 갖기도 어려우며 특히 대인관계를 중요시하는 직업은 불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대인접촉이 전혀 없고 혼자 하는 직업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성격은 정서적 교류를 그다지 원하지 않는 점에서 잘 이겨내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이들의 문제는 의사표출에도 상당한 관련을 가지는데, 사고 흐름이나 감정 순환에 이상 현상을 일어나게 만들기도 한다.
3) 강박, 의존, 경조의 성격
성격은 우울증 유발과 밀접한 관련을 나타낸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의 병전 성격 조사에 따르면 강박성(compulsive personality), 의존성(dependent personality), 그리고 경조성(hypomanic personality) 순서로 나타난다. 이를 그 순서에 따라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강박적 성격이다. 강박성은 우울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강박성은 인정(人情)이 희박하고 질서, 규칙, 조직, 효율성, 정확성, 완벽함, 세밀함에 집착하는 특성이다. 그래서 이들은 전체적인 양상을 볼 능력이 결여돼 결단력이 부족하고 감정이 요구되지 않는 딱딱한 일에 몰두한다.
그런 이유로 강박성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정을 표시하는데 인색하고, 매사가 합리적이고 형식적이며 메마른 편이다. 이들은 너무 정확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태 전반을 보지 못하고 적은 부분만 검토한다. 책을 읽어도 단어 하나하나에 정신을 쓰는 시간이 많고, 전체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둘 여유도 없다. 이들의 행동기준은 매우 도덕적이기 때문에 타인이나 사회의 가치관이 되며, 그 가치기준에 이르지 못하면 자책감을 가진다. 자책감은 적개심에서 비롯되거나 가치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우울의 핵이 된다. 이 자책감은 그들이 지향하는 완벽성에 있고, 이 완벽성은 다시 자책감을 만들어내 우울증에 빠진다.
둘째, 의존성이다. 의존성은 독립성이 결여된 이상 성격이다. 이들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타인의 도움과 보살핌을 의지해 살아가려 하고, 자기확신과 자신감이 전혀 없으며 잠시도 혼자 있지 못한다. 사소한 일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타인의 의견을 쫓아 어떤 일을 결정하는 데도 일일이 누군가에게 해결책을 얻어내 행동한다. 예를 들어 의존성이 강한 사람이 약혼했다면 약혼자에게 어디서 자기와 살 것인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일일이 질문하면서 행동할 것이다.
이들은 자기주장이 전혀 없고 상대방 주장에 따르기만 하는데, 이것은 도와주는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의존성이 있는 아내라면 남편이 자기를 버릴까 두려워 폭행도 참아낼 것이다. 이들은 특히 자기 확신이 결여돼 있고,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하며, 자기 자신을 ‘바보’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은 혼자 있거나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가장 견디기 어려워한다. 이런 경우 절망감에 사로잡히지만, 때로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의존성이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를 공존시키는 이유다.
셋째, 경조성의 성격이다. 경조증은 앞의 두 성격과는 매우 다르다. 경조성은 우울상태와는 정반대로 들뜨고 유쾌하고 자신만만한 기분을 주축으로 한다. 이들은 정력적이고 활동적이며 사교성이 많아 지치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갑자기 절망감에 떨어진다. 이들의 증상은 들뜨고 의기양양한 기분, 사고의 비약, 그리고 정신운동 항진이 기본이다. 이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완벽한 건강상태에 있다고 확신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조증이 심해져 사업 실패, 낭비, 경제파탄 등으로 신체질환이 생겨 활동을 못하면 양극성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이들의 신체질환은 심하게 동분서주하면서도 피로를 느끼지 않고 신체가 건강하다고 확신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들은 수면장애를 경험하므로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하면서도 여러 계획과 활동을 시도한다. 이들의 질병은 식욕부진이 없지만 식사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식사를 등한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급격한 성격 변화를 보이며 극과 극을 달리는 사람으로서 우울증에 빠진다.
3. 사회적 스트레스의 상황
생활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질환이 증가한다. 스트레스와 내과적 질환인 정신질환, 특히 우울증과 연관성에 대한 연구들은 많이 진행되고 있다. 스트레스는 우울증과 가장 관련이 깊다.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받은 후 6개월 이내에 우울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6배나 높았다.
스트레스 중에서도 부부간 불화는 우울증의 가장 흔한 원인이었다. 이 연구에서는 또 지난 6개월 동안 주변 사람과의 사별을 경험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우울증 발생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확실히 우울증은 스트레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특히 결혼과 부모 역할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적인 결혼생활 속에서도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는 문제가 있으면 우울증상을 일으키기 쉬우며, 이혼이나 별거와 같은 파탄이 올 수 있다. 실제 파탄은 감정적인 상태, 특히 우울증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사회적 지지와 결혼생활 파탄은 중요하게 관련된다.
1) 사회적 지지
사회적 지지는 애착이론을 근거로 한다. 애착관계의 필수적 부분은 보살핌을 유발하는 행동의 개념이라는 점에서다. '보살핌을 유발하는 행동'이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도록 하는 행동'이다. 편안함이란 밀접한 신체적 접촉을 포함하여 상대방에 대한 애정, 염려 등의 표현이 포함될 수 있다. 보살핌을 유발하는 행동은 나이에 관계없이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아동기와 청소년기 동안에는 행동이 변화되고 확장되면서 새로운 관계들이 형성된다. 이러한 관계는 대부분 한 두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많은 다른 사람과는 비교적 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어른들도 유아나 아동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 많은 고통을 느낀다. 이런 고통을 느끼면 자신을 편안하게 해줄 것이라 기대하는 다른 사람을 찾아 친밀감을 가지려 한다. 이렇게 애착을 추구하는 행동은 재생산적이고 진화적인 이익을 가져다 준다. 다르게 말하면 남녀관계의 애착 형성이 이러한 기전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어떤 사회에서든 구성원들의 강한 애착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보살핌을 유발하는 행동은 정상적 모습과 병적 모습으로 구분된다. 병적 보살핌을 유발하는 행동은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부족한 보살핌을 받았을 때 일어나며, 이러한 행동 중에는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도 포함된다. 사람들 대부분은 사회적 관계 속에 필요한 최소의 요구수준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 정신질환이 발병한다. 이때 사람들은 밀접한 인간관계를 통해 친밀감, 걱정을 함께 나누는 사회적 관계,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기회,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 신뢰감 등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인간은 성인기에 환경 속에서 충분한 사회적 애착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 신경증적 증상이 발현된다. 우울증 등 신경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처럼 많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있지만 신경질환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불행감은 더욱 높았다.
신경증적 우울증 환자들은 좋은 친구도 적으며 집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극히 드물다. 이들은 애착관계를 형성할 대상이 적으며, 형성하더라도 그 대상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불충분하다. 이는 사회적 결합력 부족이 신경증 발현의 위험요인이며, 적절한 사회관계는 신경증을 예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사회적 결합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과연 그것이 얼마나 유용한가보다는 자신이 그 사회적 결합력을 얼마나 적절하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사회적 관계는 실제로 결핍돼 있는 상황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렇게 느낄 뿐인지에 대한 검증은 매우 주관적이다.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보살핌,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신경증적 증상이 나타나고, 그러한 증상들은 결국 보살핌을 유발하는 일련의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점에서다.
2) 결혼생활 파탄
결혼은 인간적 애착을 필요로 하는 성인들의 사회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결혼은 자녀를 양육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서 필요한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는 사회적·법적 계약이며, 상호관계의 안정감과 안전감 속에서 서로에 대한 보살핌, 관심과 애정 등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점에서다. 그래서 이혼, 별거, 불화 같은 결혼생활 파탄은 성인기 애착 단절의 심각한 원인이며, 우울증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실제로 결혼문제, 특히 부부간 다툼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으러 호소하는 이유 중 최근 6개월 사이의 스트레스에 해당한다.
나아가 급성기 우울증 환자들은 정상 대조군에 비해 적절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부부 사이임을 찾아냈다. 이런 환자들의 부부관계에서 공통적인 특징은 소외감, 의사소통 문제, 잦은 마찰, 그리고 성적 문제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우울증에서 회복된 후에도 오래 지속된다. 이런 점에서 부부간 문제는 여성 우울증 발생에서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급성기 우울증 증상으로 정신·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여성 우울증 환자 가운데 대다수는 부부 문제가 없는 우울증 환자들에 비해 정신치료의 경과도 좋지 않았다. 즉 증상과 사회적 기능의 회복이 늦고 자주 재발했다. 이러한 사실은 결국 부부문제 해결과 우울 증상 개선이 정비례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우울증 여성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종결 후 1년과 4년째에 추적 조사를 해본 결과 부부간 갈등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 그러나 치료 초기부터 종결까지 부부 문제에 지속적인 환자는 4년 후에도 여전히 부부생활의 적응에 있어 문제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치료기간 동안 부부관계 개선이 있더라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갈등이 지속되는데, 대부분 갈등이 있음에도 이혼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비교적 원만하고 갈등이 없는 부부관계의 환자들은 우울증과 상관없이 치료기간 안정된 부부관계를 유지했고 특별한 갈등은 발생되지 않았다.
부부간 갈등이 지속되거나 반복적이면서 배우자에게 부적절한 애착을 보이는 환자는 대개 성격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자들은 대부분 첫 배우자와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도 부부간 갈등이 재연됐다. 이 환자들은 자기 파괴적 애착관계를 추구하며, 배우자의 부정적 면을 문제가 될 때까지 외면하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거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적절한 사회기술 부족으로 갈등이 반복됐다.
4. 생활 사건적 원인
생활 사건들로도 우울증이 유발된다. 이 경우 생활 사건들은 개인에게 심리적 좌절과 스트레스를 주는 부정적 측면으로 작용한 때문이다. 물론 부정적 생활 사건이 모두 우울증에 걸리는 직접 요인은 아니지만, 부정적 사건이 그만큼 유발 가능성을 높인다.
그렇다면 부정적 생활 사건이 어떤 사람에게 우울증을 유발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생활 사건은 어떤 심리적 과정을 통해 우울증을 유발하는가? 우울증에 대한 심리학적 이론들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지만, 이론마다 설명방식이 다른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 여기는 먼저 우울증을 촉발시키는 생활 사건을 살펴보고, 우울증에 대한 다양한 심리학적 이론들을 살펴본다. 생활사건(life events)이란 생활 속 변화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 즉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들을 뜻한다. 이러한 사건 중 우울증은 특히 상실과 실패를 의미하는 부정적 생활사건(negative life events)에 의해 촉발된다. 이런 부정적 환경요인에는 주요생활 사건, 미세한 생활 사건, 사회적 지지 결여가 있다.
1) 주요생활 사건
삶은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이러한 사건들에는 커다란 좌절감을 안겨주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럽게 실직을 당하거나,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사망하거나, 사랑하는 애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등의 사건은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우울증은 흔히 이러한 부정적 생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유발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주요생활 사건(major life events) 또는 주요 스트레스원(major stressor)은 개인에게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줄 수 있는 비교적 비중있는 생활 사건들이다. 이러한 주요생활 사건에는 사랑하는 가족의 사망이나 심각한 질병, 자신의 심각한 질병, 가정불화, 가족관계나 이성관계의 악화, 친구와의 심각한 갈등과 다툼, 실직이나 사업실패, 경제적 파탄과 어려움, 현저한 업무부진이나 학업부진 등의 다양한 사건이 포함된다. 물론 개인마다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사건의 내용과 강도는 다를 수 있으나, 이러한 주요생활 사건이 우울증을 유발시킬 뿐만 아니라 악화시키는 계기로 될 수 있다.
2) 미세한 생활사건
우울증은 작은 사건이 누적되어 유발되기도 한다. 작은 사건들이란 사소한 생활 사건들로 이른바 미세한 생활사건(minor life events) 또는 작은 스트레스 요인(minor stressor)이다. 물론 작은 사건들이 스트레스를 유발하거나 심리적 부담을 줄 정도여야 한다. 이처럼 우울증은 작은 부정적 사건들이 누적돼 생겨날 수도 있다. 우울해진 분명한 충격적 사건이 아니라도 일상생활에서 자주 경험하는 여러 사소한 사건들이 누적되면 우울증이 유발된다.
이런 미세한 생활 사건으로는 작은 불쾌감이나 좌절감을 유발하는 매우 다양한 사건들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친구나 가족과의 사소한 다툼이나 언쟁, 친구가 약속시간에 늦거나 안 나타남, 적은 액수의 돈을 잃어버림,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사소한 비난, 테니스나 탁구 게임에서 짐, 전철에서 낮선 사람으로부터 불쾌한 일을 당함, 판매원의 불친절한 행동 등 다양한 생활 사건들이다. 이러한 미세한 생활 사건들은 사소하고 미미한 것이어서 우울증을 촉발하는 계기로 자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빈번히 또는 지속적으로 발생되어 그 충격이 누적되는 경우에는 마치 '이슬비에 옷 젖듯' 개인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에서 우울증 유발이 가능해진다.
3) 사회적 지지 결여
사회적 지지 결여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는 개인의 정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 새로운 일이 없었는데 왠지 기분과 의욕이 침체되며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밀려든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의 삶은 대개 오랜 기간 가족과 떨어져 지냈거나 마음을 나눌 친한 친구 없이 피상적인 대인관계 속에서 생활해 온 경우이다. 이는 사회생활의 필요한 부분이 어딘가 결여된 결과임을 예측하게 만든다. 즉 새로운 부정적 생활 사건은 없었지만 개인의 정서적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조건이 장기간 결핍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오래 도록 유지된다면 우울증이 찾아들 수 있다.
이런 사회적 지지는 개인으로 하여금 삶을 지탱하도록 돕는 심리적 또는 물질적 지원을 의미한다. 즉 친밀감, 인정과 애정, 소속감, 돌봄과 보살핌, 정보제공, 물질적 도움과 지원 등을 통해 개인의 자존감과 안정감을 유지시켜 주는 사회적 지원을 말한다. 사회적 지지의 원천은 배우자, 친한 친구, 가족 동료, 교사 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로부터 주어지는 사회적 지지는 우울증을 유발하는 생활 사건을 차단시켜 줄 뿐만 아니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지지는 개인의 정서적 안정감에 유익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사회적 지지가 오랜 기간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있는 상태는 개인의 정서적 안정감과 자존감을 서서히 잠식하여 우울증을 촉발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지속적인 상태, 소속집단으로부터 소외된 상태, 친구의 부족, 도움을 요청하고 어려움을 상의할 사람의 부족, 경제적 궁핍,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람의 부족 등과 같은 상태도 우울증의 발생과 지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확실히 우울증을 촉발할 수 있는 3가지 유형의 생활 사건적 요인은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러한 부정적 생활 사건들을 경험한 모든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매우 충격적이고 고통스런 생활 사건을 경험하고도 꿋꿋하게 잘 견디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소해 보이는 사건에도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정적 생활 사건으로는 우울증의 발생과 심각도를 20%도 설명하지 못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울증이 환경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개인의 심리적 요인이 고려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래도 이런 사건들이 개인이 감당하기에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경우에는 충분히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는 틀리지 않다.
5. 결론: 건전하지 못한 신앙도 우울증 유발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울증 유발원인에 대해 기술했다. 우울증은 여러 원인에서 유발될 수 있지만 이를 신체적 원인, 심리 및 성격적 원인, 그리고 사회적 스트레스 상황, 그리고 생활 사건적으로 구분하여 살폈다.
신체적 원인에서는 유전적 요인, 뇌의 신경학적 요인, 뇌분비계 이상 등이 다뤄졌다. 신체적 요인에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체의 생리 조건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불균형적 상태를 보일 때 우울증이 유발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신체적 원인에서는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게 확인하거나 확연하게 드러나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 어려웠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서도 신체가 적적한 상태를 유지하게 될 때 건강함이 유지되고, 거기에 정신건강도 보장된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되는 점이었다.
심리 및 성격적 원인에서는 심리 상태, 내향성, 그리고 강박성, 의존성, 그리고 경조성 등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이었다. 이런 특성은 인체에 한정되는 것을 넘어 심리나 성격적인 특성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동일한 사건을 경험하고서도 그 대응에 따라 개인의 심리적 반응이 달라질 수 있음을 상정한다. 어떤 사건에 부정적으로 대응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우울증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울증 특성상 심리적 부정성이 가중되면 정신에서 에너지의 고갈을 유발해 우울증으로 이행될 수 있는 점에서 이해됐다.
사회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에서는 사회적 지지, 결혼생활의 파탄 등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생활에서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개인이 잘 감당하지 못할 때는 얼마든지 개인에게 커다란 부담이 돼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것이었다. 개인은 사회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여러 가지의 문제들에 노출돼 있다. 거기에는 사회적 지지가 약화된다든지, 결혼생활이 파탄을 초래하는 것 등이 개인으로 하여금 정신적인 힘을 약화시켜 우울증이 유발됐다. 이런 점은 우울증이 정신 에너지 고갈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것은 후술할 관련 부분에서 그에 따른 이유가 밝혀져야만 더 명확해지는 것이었다.
생활 사건을 유발하는 원인에서는 주요생활 사건, 미세한 생활의 사건, 사회적 지지의 결여 등이 다루어졌다. 생활 사건을 유발하는 사건들은 우리의 생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때로는 직접인 것이 되기도 하고, 간접적이 되기도 하는 등 우울증과 상당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이밖에 여기서 다룬 것 외에도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것은 더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다룬 것들은 모두 외부 영향에 치중됐을 뿐 아니라 거의 보편적인 점에 더 역점을 뒀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이 많이 고려되지 않은 점을 의도한다. 물론 개인적 측면이 더 많이 우울증 유발과 관련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 다루지 못한 것 중 생활 말고도 건전하지 못한 신앙적 측면도 얼마든지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