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하나님의 안식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1)

할렐루야~ 여러분 저의 신앙고백을 한번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예수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저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평안하고 건강합니다. 모든 것이 형통합니다. 잘되어갑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인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안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안식이란 문자 그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벗어버리고 편히 쉬는 것을 안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안식이란 할 일이 아직 태산 같은데 제켜 놓고 잠시 시간을 내어서 휴식하는 것을 안식이라고 말합니다만 하나님의 안식은 그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다 완성해 놓으시고 다시 할래야 할 일이 없게 되었을 때 그것이 진실한 안식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안식은 바로 하나님의 완전한 안식에 참여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안식

일단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면 마음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다 사라지고 완전한 평화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을 살펴보면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고 하나님께서 첫째날에 빛이 있으라 그래서 빛을 지으셨어요. 성경은 간단하게 그렇게 기록해 놓았지만 실제로 깜깜한 우주에 빛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힘들게 빛을 지으셨습니다. 둘째날에는 궁창을 만드셨습니다. 하늘을 만드셨습니다. 셋째날에는 바다와 땅, 식물들을 만드시고 넷째날에는 해, 달, 별들을 지으시고 다섯째 날에는 새와 물고기를 지으시고 여섯째날에 땅의 동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실 때 짓고 난 다음에 반드시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일은 다 좋은 일만 하시지 나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하는 일은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는데 하나님은 나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하는 일은 나쁜 일만 하지 좋은 일이 전혀 없습니다.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하는 일만하지 선량한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야훼는 여러분의 생애 속에서도 들어와서 좋은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엿새동안에 천지를 지으시고 제칠일에 안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안식했느냐. 이제 지을 것이 없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로부터 천지만물을 다 지으시고 손 다 털으시고 할 일이 없으니까 제칠일에 안식하셨습니다 .

창세기 2장 1절로 3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여러분 축복하는 날도 있고 축복하지 않는 날도 있는데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는 하나님이 안식하고 복을 빌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안식일날 교회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보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칠일째 안식일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날인데 하나님이 복을 명하셨는데 복이 다른데 갑니까? 안가지요. 그러므로 축복받은 날을 하나님의 성전에서 보낸다는 것은 그 일주일 동안 하나님의 축복이 따를 것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은 입을 넓게 열고 축복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안식이 왜 우리에게 필요하냐면 스위스의 해글러 박사는 산소량에 대한 실험을 통해, 안식일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날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밤에 휴식을 취하면서 얻는 산소의 양은 낮에 일하면서 잃는 산소의 양보다 적습니다. 그런데 주일에 안식하며 얻는 산소의 양이, 평일에 우리가 잃은 것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 많은 양의 일을 해도 주일에 안식하면 충분히 보충이 되어요. 그래서 월요일날 일하러 나가도 피곤치 않고 지치지가 않아요. 우리의 몸은 재 충만 되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고 일도 효과가 안납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무신론 혁명 당시 주일 예배를 막기 위해 일주일을 10일 단위로 바꾼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모든 산업의 생산량이 40%나 감소했습니다. 안식일을 없애버리면 일이 더 잘될줄 알았는데 안식일을 없애버리니까 사람들이 휴식이 안되어서 일이 40%나 효과가 없어요. 러시아 혁명 때, 일주일을 8일로 하자 생산량이 30% 감소했습니다. 그래서 6일로 줄여보았지만 역시 생산량이 30%로 감소되어 결국 다시 7일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것을 사람이 바꿔 봤자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한 것은 그대로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주일이 7일인 것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는 창세기의 안식일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다 이루시고 쉬시는 하나님의 축복한 날인 것입니다. 그날을 인간의 힘으로 바꿔 놓으려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든 것을 완성해 놓고 더 이상 이 세상에는 골치아픈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땅에는 죄와 질병, 저주와 절망, 죽음, 미움, 분노, 질투, 시기 온갖 것이 다 있고 골치가 아픕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의 안식이 왜 깨어졌습니까? 그것은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안식일을 파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로 믿고 절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며 평안하게 살게 되는데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하여 하나님과 정면으로 대결하자 하나님이 그를 안식에서 쫓아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안식일을 철폐되고 만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집안일이 평안한데 자식이 부모를 불순종해서 나가서 온갖 일을 해서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 놓고 빚을 잔뜩 져놓으면 걱정 안할 것 걱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선악과라는 것은 뭐냐면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주권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하나님만이 절대주권자로써 하나님이 좋다면 좋은 것이고 하나님이 나쁘다면 나쁜 것인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꾀임을 받아서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들도 선악을 판단하는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다해도 싫습니다. 그렇게 하는 권한을 갖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쁘다고 해도 아 좋습니다. 그렇게 되면은 우주의 주인이 둘이 생기므로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절대로 죽는다고 했는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주권행사를 하다가 버림을 당하고 영적으로 죽고 쫓겨나고 만 것입니다. 아담은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났으므로 하나님이 지으신 안식이 파괴되고 만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8절에“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이제부터 절단강산이 생기지 않습니까?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가시넝쿨과 엉겅퀴가 가는 곳마다 납니다. 가정에도 사랑합니다 하고 얼마나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그만 오해와 미움의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에도 이상적인 사회가 없습니다. 정반합이 이루어지겠지만 정하면 반하는 세력이 있어서 언제나 알력이 있습니다. 국가간에도 투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안식이 없는 것은 북한공산주의자들이 언제 우리를 쳐내려올지 모르는 위험 속에 있기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타락한고로 쓸데없는 일들이 이와 같이 세상 속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실제는 이것 쓸데없는 일인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반역해서 만들어 놓은 일들인 것입니다. 불필요한 새로생긴 일들이 죄와 악, 부패, 부정, 병, 저주, 죽음, 지옥 이런 것으로 인간은 절망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에 들게 되고 만 것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인간의 불안을 세 가지로 설명했는데 첫째, 존재의 불안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거대한 세상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며 불안한 가운데 인생길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면 다 합니다. 왜냐하면 가족들 중에도 이 세상을 떠나고 친구들도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 떠날지 모르겠다. 그런 질문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뭐냐.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인가. 그런 질문이 안생길 도리가 없습니다. 여기에 젊으신 분은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얼마 안있으면 그런 질문을 하게 돼요. 저에게는 옛날에는 친구들에게 통지가 오면 자식 낳았다고 통지가 오고 결혼한다고 통지가 오는데 요사이는 통지가 왔다하면 부고가 날라오는 것입니다. 그 부고를 받으면 걔들하고 학교에서 뛰놀던 때가 그림같이 지나가고 너도 가고 나도 가야 되겠구나 하는 것을 생각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나이를 먹고 보니까 참 예수 믿은 것 잘했어요.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실존에 대해서 늘 질문하는 근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둘째로, 양심의 불안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완전 범죄를 해도 마음 속에 양심의 정죄감은 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죄지은 것을 모르고 있어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양식의 가책과 죄책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자유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서 하나님과 함께 행복했고, 불안과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불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자녀로 있었으니까. 양심의 불안도 없고 죽음에 대한 불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이 불안 가운데 있게 된 것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불신앙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린 결과로 스스로 자기가 만들어낸 불안과 불행인 것입니다. 아담은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안식을 깨뜨려버렸었습니다. 죄인 된 인간은 불안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서 2장 22절로 23절에“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 것이 전도자의 고백인데 어찌할 수없이 우리는 다 이 헛된 세상에 살게 된 것은 우리의 조상이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안식은 영원히 찾지 못하나요? 세상에 물건을 잃어버리면 찾아달라고 우리가 경찰에 신고도 하고 찾으려고 애를 쓸 수도 있는 것인데 못찾을 수도 있고 찾을 수도 있습니다만 잃어버린 안식은 영영 잃어버렸었습니까 우리? 그렇지가 않습니다.

2. 새로운 안식

잃어버린 안식을 회복하기 위해서 두 번째 인류조상인 아담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첫째 인류조상인 아담은 안식을 잃어버리고 우리를 형편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지만 두 번째 조상 둘째 아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여자의 몸을 통하여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과 같이 살면서 아담 이후로 만들어 놓은 쓸데없는 일들을 전부 청산하기 위해서 짐을 짊어진 것입니다. 기독교는 여러분 종교가 아닙니다. 의식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희생의 재물을 믿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생명을 얻는 것이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여러분과 나 우리 전체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대신 짊어진다는 것은 참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이 부자면 우리가 잘못 빚진 것을 대신 갚아줄 수 있지 않습니까? 대신 못갚아주는 이상은 우리는 처리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못하거든요. 우리가 세상에 저지른 모든 죄악은 우리 힘으로는 갚을 도리가 없어요. 죄를 지은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으로 사망의 노예가 된 우리가 어떻게 해방될 수 있습니까? 대리로 갚아줄 수가 있으면 해방될 수 있는 것인데 예수님은 바로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6백여년 전에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이사야 53장 1절로 8절에“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야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들은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너무나 예수님은 평범한 아기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이 말은 굉장히 힘이 있습니다. 제가 폐병으로 17살에 죽어갈 때 이 성경구절을 읽었습니다. 읽고 내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그는 실로 진짜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나의 병을 걸머지고 나의 슬픔을 예수님이 당했구나. 여러분 질고를 지면 기쁘지 않습니다. 폐병 걸렸다. 하하하하하... 암이 걸렸다. 얼씨구나 좋다 절씨구나 좋다~ 그것은 정신병자가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굉장히 슬픕니다. 병에 걸려서 죽음이 압박을 당할 때 마음에 즐거움이 사라지고 슬픕니다. 예수님이 그는 실로 진짜로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고 우리 마음의 슬픔까지도 주님이 다 끌어안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잘못 우리가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 죄악을 예수님께 너가 짊어져라. 담당하라.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너무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대답 안하셨습니다. 왜 네가 짊어져야 세상 사람들이 산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면 세상 사람 다 죽는다. 대신 죽으라.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도 십자가에서는 응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마땅히 허물받은 여러분과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예수님이 그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고 물과 피를 다 쏟고 난 다음 마지막 운명하기 전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죄악을 다 청산했다. 허물을 다 청산했다. 질병을 다 갚았다. 저주를 다 청산했다. 죽음도 다 청산해 버렸다. 그 말은 너희는 이제부터 자유를 얻으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놓여납니다. 허물에서 놓여납니다. 병에서 놓여납니다. 저주에서 놓여납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놓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종교적으로 믿으면 아무 효과가 없어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종교나 의식이나 형식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러 오신 것입니다. 죄인에게는 용서와 의로움을 허물많은 사람에게는 거룩함과 성령의 충만함을 병든 자에게는 치료와 건강을 저주받아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는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죽어 지옥에 내려가는 사람에게는 구원과 영생과 천국을 대신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고린도후서 4장에“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10절) 예수 죽음 내 죽음이 되면 예수 부활 내 부활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의 모든 죽음과 저주를 걸머지고 대신 죽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함께 죽은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생명이란 언제나 우리가 주님 앞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워지는 것을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날 바로 제7일 주일날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도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그러므로 매주 첫날은 오늘날의 주일을 말하는데 우리 크리스챤들은 안식일을 주님 부활의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에 하나님이 토요일날 천지를 다 완성했기 때문에 그날을 안식일로 지켰는데 그 안식이 다 깨어지고 엉망진창이 된 것을 우리의 둘째 조상 아담 인 예수님이 오셔서 그 모든 것을 갚으시고 주일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일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오늘날의 토요일이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다음부터 안식일은 주일날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날이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날이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여러분 나타날 때 언제나 주일날 나타나셨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오순절 성령이 주님 승천하신 50일째 되는 주일날에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 아담이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잃어버린 안식을 회복하시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날인 주일에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안식을 주신 것입니다. 새로운 안식이란 뭡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청산하고 우리가 자유와 해방을 얻는 기념일이 새로운 안식일인 것입니다.

3. 새 안식으로 초대

새로운 안식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됩니까? 여러분 이 교회에 나오면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짐을 짊어지시고 새로운 휴식을 주신 그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몸찢고 피흘린 대가로 우리에게 거듭나는 복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복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치료의 복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축복의 복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재림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믿으면 요한삼서 1장 2절에 있는 것같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가 교회 나와서 안식일날 주를 섬기면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서 고난당해서 네 영혼을 잘되게 하고 네 범사를 잘되게 하고 강건하게 만드는 것이 내 뜻이다. 삼중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전인구원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면 영혼이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되고 예수님 믿고 은혜를 받으면 범사에 저주에서 해방되어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고 그 다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질병에서 놓여남을 받고 건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새 안식으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이것은 그때에 사회습관을 모르면 이 성경을 잘 모릅니다. 유대나라에서는 짐을 지거나 밭을 걸거나 할 때 어미소, 어미 당나귀가 무거운 멍에를 목에 걸머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짐을 지고 끌고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끼망아지는 그냥 어머니 옆에 서서 함께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엄마의 멍에 밑에 새끼는 그냥 같이 목만 대고 있는데 짐은 엄마 목에 걸려서 엄마가 다 끌고가고 새끼는 공짜로 가면서 엄마를 보고 하나도 안 무거운데 왜 땀을 뻘뻘 흘리고 저렇게 힘줄을 세우고 애를 쓰냐. 하나도 안무거운데... 그러면 어미 소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야 이 자식아, 짐은 내 목에 걸렸다. 너는 공짜로 가면서 무슨 잔소리냐. 엄마소 없이도 내가 맘대로 끌수있겠다 싶어서 멍에 밖에 나가서 자기가 한번 끌어보려고 옴짝도 못합니다. 얼마나 무거운지.

예수님이 바로 제자들 데리고 밭에 가서 무거운 멍에를 걸머지고 어미소가 끄는데 그 옆에 송아지를 같이 세워서 이랑을 가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예수님이 보고 너 보이지? 저 어미소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그 멍에에 걸머지고 있다. 나도 너희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내 십자가의 멍에에 다 걸머졌다. 단순히 순종하고 믿고 내 밑에 들어오너라. 그러면 쉼을 얻는다. 바로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 11장 28절로 30절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의 멍에는 우리에게는 쉬울 수밖에요. 주님의 멍에는 우리에게 가벼울 수밖에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 짊어졌기 때문에... 여러분은 지금 혼자 앉아있지만 영적으로 예수님 십자가의 멍에 밑에 들어가 있으면 평안합니다. 죄, 예수님이 짊어졌어요. 허물, 예수님이 담당했어요. 병, 예수님이 걸머졌어요. 저주, 예수님이 담당했어요. 죽음, 예수님이 짊어졌어요. 믿고 순종하고 십자가 밑에 우리가 따라만 가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세상에 어디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까? 공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는 것은 절대 믿음, 절대 순종을 해야지 주님 십자가 밖으로 나가면 내 죄 내가 책임지고 내 허물 내가 걸머지고 내 병 내가 치료해야 되고 내 저주 내가 감당해야 되고 내 죽음도 내가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십자가 밑에 나가면 시편 23편 1절로 2절처럼“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다 담당하시고 이끄는 곳은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속의 완성을 잘 이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죄값을 지불하는 재물이 되었는데 그 내용을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했기 때문에 모르면 안돼요. 알아야 돼요. 그러므로 십자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주야로 깨닫고 주야로 이것을 묵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은 Now and here.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지나간 사건이 아닌 것입니다. 장차 미래에 다가올 사건이 아닌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은혜를 베풀고 구원을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부여 의지없어서 주님 앞에 나갑니다 하고 십자가 밑에 나오면 이 자리에서 구원 받습니다. 이 자리에서 은혜받고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의 삶속에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여러분 자신을 항상 상상해 보십시오. 마음의 화폭에 예수님이 십자가 걸머지고 여러분의 짐을 다 짊어지고 그 십자가 밑에 그 멍에 밑에 들어오라고 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나도 예수님 십자가 밑에 들어가서 함께 인생을 사는 내 모습을 꿈꿔 보십시오. 여러분께서 실감이 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기를 원하셔서 성령을 보내셔서 마음속에 이런 꿈과 환상을 분명히 가지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으로 끊임없이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짐은 주님께 맡겼다. 주님의 멍에 밑에 나는 들어가 산다. 주님이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졌으므로 나의 수고는 주님이 담당하셨다. 주님의 안식은 내 것이다. 이제 진실로 예수 믿고 십자가 밑에 들어가면 안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절대 믿음, 절대 순종을 통해서 안식을 얻습니다.

히브리서 3장 11절로 14절에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주님이 우리를 안식으로 들어오라고 청하고 계십니다. 그때 믿고 순종하여 들어가면 여러분은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고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와도 내가 그것을 체험 안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에게도 가정에게도 사업에도 나라도 국가도 여러 가지 문제 있을지라도 그 문제 가운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걸머지고 서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 십자가에 들어가면 그 문제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안합니다. 주님께 맡겼으니까요. 짐을 내가 안지고 주님께 맡겨서 주님이 짊어지니까 내가 평안할 수밖에 없어요.

나는 어떤 우리 성도 한분이 와서 남편하고 같이 와서 모든 돈은 남편이 다 감당을 하고 자기는 돈에 대한 것을 전혀 모른다고 그래서 참 팔자 좋다고.. 돈을 헤아리면 걱정이 되잖아요. 얼마있고 얼마 없는데 얼마 어떻게 써야 될지 걱정할 것인데 남편이 대신 얼마있는 것을 알고 어떻게 쓸 것을 알고 시키는 데로 척척 계산해서 주니 안식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가정에서 전부 책임지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남편이 책임지면 좋다고 생각하시고 또 남편 여러분 아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돌보아주면 고맙게 생각하십시오. 왜냐하면 걱정할 필요없으니까요.

세상살이에도 우리의 짐을 맡아주면 평안하고 좋은데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여러분을 사랑하사 십자가를 걸머지신 예수님께서 전부 내가 맡았다. 내가 이미 다 맡았으니까 내가 맡은 것을 내게 맡겨다오. 내 십자가 밑에 들어와서 평안을 얻으라. 놀라지 말고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그렇게 말씀하는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안식을 안얻으면 누가 안식을 얻겠습니까? 너무나 많은 예수 교인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십자가에 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의 안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만들어 놓은 안식에 우리는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 안깨달아지거든 성령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청하십시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해서 와 계시므로 성령이여 예수님의 안식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안식 속에 들어가게 해주시옵소서. 성령께서 부탁하면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주님은 우리의 짐만 짊어질 뿐 아니라 여러분의 매일매일 생활을 미리 아시고 다 필요한 것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할 필요가 없이 주님께 맡기고 있으면 필요할 때 필요한 그대로 꼭 나타나는 것입니다. 희안하게요. 내가 걱정안해도 주님이 미리 다 예비 하시고 준비해 놓은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지금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결론>

에덴에서 유혹하던 마귀는 지금도 여러분을 유혹해서 거짓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너희 짐을 짊어지지 않았다. 불순종해라. 교만해라. 오만해라. 탐심과 욕심을 가져라. 불신앙과 의심을 갖다 주고 새로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자꾸 훼방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와서 훼방하고 억압해서 마음에 고통을 당하게 하고 마귀는 여러분을 우울하고 침울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인생에 고통과 괴로움과 절망에 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안됩니다. 전혀 매일 교만과 탐욕과 불순종과 불신앙을 회개하고 절대 순종, 절대 믿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받아들이시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받아들이십시오.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이미 안식을 예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안식을 얻으면 얼굴에 화색이 돌고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가장 위대한 변화는 마음에 평안인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평안이 없습니다. 지위와 명예와 권세가 있으면 그에 따르는 염려와 근심이 더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주님께 내어맡기면 어떠한 곳에도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 평안이 행복인 것입니다. 평안 안하면 행복하지 않아요. 평안만 있으면 사업을 해도 평안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를 해도 평안하고 일선에 가서 전쟁을 해도 평안하고 그리스도가 여러분과 함께 있어 평안을 주시고 여러분의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 살지 않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님께서 어느 곳에나 같이 계신 것입니다. 주를 의지하면 여러분 결코 실패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패배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 2011. 10. 16.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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