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서론>
오늘은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분, 절대로 있어야 될 것도 있고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은 그런 것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공기가 없으면 못살잖아요. 절대로 공기는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 따뜻한 옷을 입고 나가는 것은 절대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없어도 건강한 사람은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따뜻한 옷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젊고 활기찬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쌀밥이나 옥수수나 감자 등 여러 가지 먹이가 있을 때 반드시 쌀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또 그뿐입니다. 그러나 음식은 절대로 있어야지 음식을 먹지 않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절대로 지켜야 할 일이 있고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무난한 상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스티브 코비는「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책에서 결혼한 딸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딸이 출산을 하고 난 다음에 아버지께 와서 불평을 말합니다. “아버지, 자식 낳는 것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자식이 내 시간을 다 빼앗아 버려서 내 개인의 시간은 없어요. 그러니 내 인생이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버지 나는 너무나 탄식스럽습니다.” 그래서 그가 딸에게 한 말이 “야, 네가 딸 하나 키운 딸이 자식 하나 키운다고 너희는 할 수 없다는 불평을 하지 말라.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뭐냐. 지금 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애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다른 것에 비교를 하면 안 된다. 애를 낳아서 훌륭한 자식으로 기르는 것이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므로 인생에 있어서 시간이 많다 적다를 따지지 말고 방향이 어디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된다. 너 인생의 방향은 자식을 돌보는 것이 네 인생의 방향이다. 시간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절대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절대로 지켜야 할 일이 있고,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무관한 상대적인 것이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서 분별을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선악과와 생명과
첫째로, 우리가 창세기에 보면 선악과와 생명과에 관한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절대로 해야 될 일을 말씀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9절에 “야훼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절대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으면 죽는다. 그런데 마귀는 와서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절대라는 말을 뽑아버린 것입니다. 먹어도 안죽는다. 먹으면 오히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먹으라.
창세기 3장 5절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난 다음에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시험했느냐. 사람들을 하나님은 꼭 시험해 보십니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안하느냐를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를 기계로 만들어서 조종해 놓고 난 다음 그대로 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절대로 사랑하는가 타협하여 상대적으로 사랑하는가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 그렇게 말했으면 하나님을 절대로 사랑하는 것 같으면 하나님 말씀에 절대로 순종할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선악과를 따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창세기 3장 6절에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짓고 하나님이 사랑하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한까지 주셨는데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 명령을 절대적으로 준수하지 아니하고 마귀의 꾀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 장면에 처했을 때 하나님 마음에 괴씸한 생각이 생기고 모욕적인 심정이 들어왔습니다. 내가 별로 중요하지 않구나. 내가 중요하다면 내 말을 저렇게 무시할 수가 있느냐. 하나님은 모욕감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아담에게 절대적이 아니라는 증거로 절대적이 아닌 사랑, 조건부 사랑을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하나님이 알게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이 아닌 선택의 대상이 되는 상대적이라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안되잖아요.
나는 한 가족이 분쟁이 생겨서 내게 심판을 해달라고 왔는데 그 부인이 나보고 하는 말이 “이 양반이 하도 불평이 많아서 도저히 살수가 없다. 그러므로 목사님이 좀 교훈을 해달라.” 그래서 내가 그분 보고 “왜 그렇게 부인을 못살게 굴고 괴롭히느냐?” 하니까 “목사님, 이 양반이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내가 남편 아닙니까? 그런데 직장을 가지고 있으니까 출근해서 바로 집에 와서 남편 밥이라도 지어주고 보살펴 주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나에게 전화해서 오늘 나 못들어가니까 밥 사먹어라. 나는 사내에 팔로우쉽이 있다. 사내 다른 친구들과 놀러 나가서 저녁 먹는다고 나를 무시해 버리니 내가 무시하고 멸시했다는 감정이 보통 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가 불평 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존심이 상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내가 남편인데 남편 대접을 못받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사는데 남편 대접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나는 내 대접을 또 해야지 친구들하고 사겨야 되지.” 그 남편 하는 말이 “친구를 한두번 사귀는게 아니라 일주일에 몇 번이고 같이 친구하고 사귀고 나는 뒤에 내팽겨쳐 놓았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남편이 자존심이 상하게 되었어요. 내가 “자매님, 남편 자존심을 상하게 할 정도로 당신 자유를 얻으면 안됩니다. 당신이 결혼을 했으나 묶이지는 않고 자유를 준것만해도 감사하게 여기고 남편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제가 부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유유히 하고 하나님을 무시해 버리면 하나님 모습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선언으로 하나님을 분노케 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모욕감을 느끼시고 자존심이 상하시고 분노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람들
둘째,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사랑한 사람 중에 특이하게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가부간에 조건을 붙이지 않았어요.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나이가 75살에 고향산천 떠나서 갈 바를 모르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 네 부모 전토 친척 형제 자매를 다 떠나가지고서 아내 손잡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갈 바를 모르고 떠난 것에서 하나님이 굉장히 기뻐하신 것입니다. 75세에 고향산천을 떠난다는 것 힘듭니다. 나이가 75세 되면은 고향산천으로 돌아오는 나이인데 고향산천을 떠난다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무조건 순종해서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웃었습니다. 아주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 사람은 죽을동 살동 모르고 나의 말에 순종한다.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들 앞에서나 마귀들 앞에서 한번 자랑을 하고 싶어서 아브라함을 시험했습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을 10대가 되었을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때 그를 제물로 드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 하실 때 하늘의 천사들이 다 들었어요. 마귀들도 다 들었습니다. 모두다 고개를 갸우뚱 했는데 하나님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들어가서 번제로 드려라. 번제로 드리라는 것은 여러분, 손으로 잡아서 각을 다 떠가지고서 장작 얹어가지고서 불로 태우는 것이 번제인 것입니다. 짐승도 그렇게 하기 힘든데 자기 친자식을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하나님이 그 말씀 하셨을 때 한마디라도 아브라함이 대꾸를 했으면 하나님이 실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에게 주시고 왜 빼앗아갑니까? 이렇게 할 바에야 안준 것이 좋았지 않습니까? 그런말 할만한데 절대로 그런 질문 안했습니다. 두말하지 않고 말에 안장 채우고 장작 쪼개서 싣고 자식하고 함께 하나님께 제물 드리러 가자. 사흘길을 걸어가서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장작 펼쳐 놓고 이삭을 잡아 제물로 드리려고 달라들었습니다. 그 아들을 묶고 칼로써 그 아들의 목을 따려고 달라 들었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들에게 손대지 마라. 그때까지 하늘의 천사들은 모두다 귀를 기울이고 아브라함이 무슨 말하는지 듣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절대적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불순종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 무조건하고 절대순종인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은 무한한 영광을 느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이제야 나를 참으로 사랑하는 줄 알겠다. 독자라도 아끼지 않고 내게 내놓는 것 보니 네가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 이런 시험에 합격하기란 참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 하나님은 아낌없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을 선물로 주신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내놓으라고 할 때 두말하지 않고 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 비교해서 우리의 생애를 돌아보면 우리는 이런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이 얼마나 부족할 때가 많았습니까? 주일날 바쁜 일이 생기면 하나님 미안합니다. 오늘은 교회 못나가겠습니다. 내일 좀하고 나중에 시간 있으면 나가겠습니다. 그럴 때가 많잖아요.
십일조도 아이구 이번 달에는 돈이 굉장히 필요한데 내 돈 먼저 쓰고 난 다음 나중에 여유 있으면 매꿔 놓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십일조 도둑질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잖아요. 우리는 타협하고 하나님을 절대주의로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잘못된 죄악의 씨앗이 심어져서 하나님을 절대로 사랑하고 절대로 존중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사랑하고 상대적으로 존경합니다. 시간이 있으면 여유가 있으면 사랑하고 그렇지 못하면 못합니다. 그런 조건부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또 하나님이 참으로 좋아한 분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은 사람이 있는데 누구시지요? 알죠? 다윗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다윗을 하나님이 내 마음에 딱 맞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다윗이 마음이 맞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믿되 목숨을 내놓고 믿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골리앗과 대적해서 싸울 때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사울왕으로부터 이스라엘 군인들까지 골리앗이 한번 고함을 치면 모두 다 혼비백산해서 숨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 앞에 너는 창과 칼과 단창으로 나오거니와 나는 너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야훼 이름으로 나온다. 다윗은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장군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믿고 목숨을 내놓고 골리앗에 대적한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믿는 믿음, 그 믿음을 하나님은 굉장히 사랑하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부심을 느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 조건부로 믿을 때가 많잖아요. 하나님이 응답해 주면 믿겠고 안 믿으면 내 수단과 방법으로 일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다수 우리들인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믿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 안그러거든. 저도 천당가기 전에 그런 믿음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무슨 일을 해도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이 언제나 끼어있어서 하나님 내 하는 일에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말을 하지 하나님 약속의 말씀에 내 생명을 전부 던져서 오늘 죽어도 좋으니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렇게 좀처럼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저는 늘 다음에는 그렇게 믿으리라 하면서 또 일이 생기면 요번에는 주님 날 도와주소서. 다음에는 내가 또 그렇게 할테니까... 또 다음으로... 그러면서 칠십 평생이 되도록 살아왔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과 여러분 앞에 제가 신앙의 고백을 하는 것은 내 신앙이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목숨을 다해서 죽더라도 믿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인데 말은 그렇게 하고 이론은 알면서 실제로 못 그런 것이 너무나 통탄스럽습니다. 여러분께서 죽더라도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절대적인 믿음 이것이 다윗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 것입니다. 골리앗 앞에서 그는 담대한 믿음 선언을 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그의 신앙고백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윗은 하나님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존경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해서 얼마나 따라다니고 다윗은 쫓기는 산새와 같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지 않았습니까? 몇 번이고 사울이 다윗의 손에 죽을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안 죽였어요. 하나님이 다윗을 시험해 보셨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하나님이 기름 부어서 왕으로 삼았습니다. 왕도 하나님이 기름 부어야 되고 제사장도 하나님이 기름 부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의 종도 하나님이 기름 부어서 주의 종으로 삼는 것입니다. 아무나 하나님 부르다가 주의 종을 삼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셔서 성령으로 기름 부어서 주의 종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름 부었기 때문에 하나님 손으로 처리해야지 하나님 기름 부은 자를 내 손으로 처리 안하겠다고 자기를 죽이려고 그렇게 따라다니는 사울을 몇 번이나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안 죽였습니다. 원수인 사울왕을 하나님이 기름부으심 때문에 두 번이나 죽이지 않았는데요.
한번은 엔게디 광야에 굴에서 부하들하고 숨어있는데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무슨 기회냐면 사울이 그 굴에 변보러 들어왔습니다. 다윗은 저 굴 구석에 숨어있는데 거기에 와서 창, 칼 다 내놓고 바지가랑이 다 내놓고 쪼그려 앉아서 엉엉 하고 힘을 쓰고 있습니다. 단칼에 목을 날릴 수 있습니다.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맡겼다. 당신 손에 붙였다. 이 기회다. 그냥 똥과 함께 날려 버려라! 그때 다윗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야훼의 기름 부음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야훼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야훼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라.
사무엘상 26장 11절로 12절에 “내가 손을 들어 야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야훼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
이것은 두 번째입니다. 두 번째 들을 지나는데 들에 사울이 자기 군대들을 둘러싼 그 가운데서 다 잠을 자고 있어요. 깊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 거기에 가서 단칼에 목을 치든지 창으로 찔러 버릴 수 있어서 군인들이 다윗에게 또 기회가 왔습니다. 단칼에 그냥 목을 베십시오.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내가 절대 손댈 수 없다.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는 하나님이 처리하신다. 내가 처리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권위를 절대 존중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심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나는 도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울의 물병하고 창만 들고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산에 올라가서 왕이여 내가 왕을 죽이려 했으면 죽였겠는데 안죽였는데 왜 나를 잡으려고 따라 다닙니까? 하고 그렇게 고함친 적이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의 손에 몇 번이나 죽임을 당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울은 다윗이 하나님을 존경하므로 하나님이 기름 부어서 왕을 삼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해서 죽이지 않겠다고 안 죽인 것입니다. 물론 나도 오늘날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내가 잘나서 종이 된 것 아닙니다. 죄가 많고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왠일인지 왠말인지 하나님이 구속해서 지명하여 불러서 기름 부어서 주의 종으로 삼았기 때문에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지원병이 아닙니다. 지원한다고 하나님 절대 주의 종으로 삼지 않습니다. 주의 시키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나 우리 이영훈 목사나 우리 교회 주의 종들은 하나님이 불러서 주의 종이 된 것이지 자원해서 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원병은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고 징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종을 쉽게 욕하고 모욕하는 것은 내가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시편 105편 15절에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기름은 하나님이 부었고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냈으므로 그를 헤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블레셋과 전쟁에 하나님이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적군의 손을 통해서 사울을 죽이고 다윗을 왕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제가 꼭 부탁할 것은 반드시 저희들에게 그렇게 대접을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일생의 신앙생활 동안에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쉽게 발로 밟거나 침을 뱉지 마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를 존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에게 손대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헤치는 여러분이 안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날보고 우리 당회장인 이영훈 목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보고 그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 쇄기를 박으려고 하는 사람 많습니다. 나는 절대로 이영훈 목사를 존경합니다. 하나님이 이 교회에 세우신 것이요. 내가 천거는 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이 목사에게 손을 대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하나님이 잘못해서 선택을 잘못했다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설 수 있겠습니까? 이영훈 목사는 하나님이 우리 교회 당회장으로 세웠고 하나님이 기름 부었으므로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절대로 존경하고 순종하는 여러분 되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받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또 사랑하는 것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다윗이 처음 사용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믿고 순종한다고 말했지 사랑한다는 말 안했어요. 그리고 다른 선지자들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 안했는데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떠한 목사님이 남자들을 모아놓고 아버지 학교에서 집에 들어가거든 부인에게 당신 사랑한다는 말 하라. 남자들이 하는 말이 아내도 다 아는데요? 그러지 말고 다 알아도 좋으니까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를 참 원하니까 내가 당신 사랑한다. 그렇게 말 좀 하시오. 그렇게 보냈는데 그 남편들 보고서 그렇게 했느냐고 부인에게 물으니까 부인들이 하는 말이 와가지고서 씨익 웃으면서 알지? 그거 알지? 뭘 알아요? 그러니까 그것 있지 않느냐. 그것 알지? 오늘 우리 목사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안 해도 알지 않느냐?
사랑한다는 말을 왜 그렇게 겸연쩍게 못합니까? 그것이 우리 한국 가정에서 가장 모자라는 것이 남편이 부인을 쉽게 사랑한다는 말 안합니다. 구라파나 서양에 가면 남편들이 부인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뺨에 뽀뽀해주는 일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한국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아이구 못난이가 그렇게 하지 점잖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하는데 좀 못난이가 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 오늘 내 설교를 들은 우리 부형님 여러분 집에 가거든 꼭 부인보고 연말도 되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한번 품어주시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고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 좋아하는 것 왜 못해요? 나도 할테니까 여러분도 해보십시오.
다윗은 개인적인 결점이 많았으나 하나님을 절대로 사랑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 안했는데 시편에 다윗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이 많이 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윗은 고난을 경험한 뒤에는 탄식시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응답되었을 때는 감사시를 하나님의 위엄과 사랑과 은혜를 체험했을 때는 찬양시를 지었는데 다윗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시편 18편 1절에서 다윗은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고 다윗은 최초로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안했습니다. 경외하고 존경한다고는 했지 사랑한다는 말 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말에 감동하시고 그를 사랑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사람인 것입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전쟁을 나갈 때에도, 자신을 죽이려던 사울 왕에 대해서도, 밧세바를 범한 후 회개 할 때에도 다윗은 항상 먼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곤란할 때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회개하고 자백하고 믿고 의지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모든 일을 할 때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시편 5편 2절로 3절에 늘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야훼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고 올바로 섬기며 사랑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의 믿음과 존경과 사랑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해야 돼요. 하나님을 너나 나나 대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믿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고 공경할 수도 있고 안공경할 수도 있고 믿을 수도 있고 안믿을 수도 있다는 선택적인 대상으로 삼아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으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사랑도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적인 사랑도 절대로 사랑해 주기를 원하지 사랑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으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 아닙니까? 친구도 절대로 난 저사람 믿을 수 있다 그럴 때 좋지 믿을 수도 있고 안믿을 수도 있다. 배반할 수도 있고 신뢰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믿음.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계에 부닥친 후에야 비로소 인간적인 계산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절감하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계산은 하나님이 하신다” 내가 계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빌립은 계산을 했어요. 5천명 먹일 때 예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할 때 그 먹이기 위해서는 돈이 얼마나 필요하고 음식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계산을 한 것입니다. 계산은 예수님이 하실 일이지 빌립이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먹이라고 하면 먹이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주님께서 먹이라는 말을 듣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계산 안했습니다.
계산하는 사람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명 부녀자 기만명을 먹이려고 나왔으면 정신빠진 놈이지. 그런데 계산을 안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먹이려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 계산은 하나님이 하세요. 여러분이 계산 다하면 하나님은 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라고 하면은 책임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홍해수 앞에 섰을 때 3백만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홍해를 건너야 되는데 배도 없고 다리도 없습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벡성이 도로 돌아가서 항복하자. 도로 종으로 돌아가는게 좋겠다고 할 때 모세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너희 오늘 가만히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을 보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어떻게요? 우리는 군대도 없고 병거도 없고 마차도 없는데 계산은 모세는 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라. 절대로 믿어라. 계산은 하나님이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산하셨지요. 하나님이 홍해수를 갈라놓고 난 다음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수를 통해서 건너가게 하시고 뒤에 따라오는 애굽 군대를 다 물로써 덮어서 죽였으니 하나님 계산 바로 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에 있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나님이 계산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까? 하나님이 계산하는 것입니다. 무조건하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네 일을 주께 맡겨라. 그리하면 주께서 돌보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무조건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믿는 우리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짐을 야훼께 오늘 한번 맡겨 볼까요? 아이구 그랬다가 하나님 안돌봐주면 어떻게 합니까? 안돌봐주면 그뿐이지 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에야 한번 믿어보고 죽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성경에는 네 짐을 야훼께 맡겨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겠다고 하셨으니 어떻게 하든지 계산은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무조건하고 맡겨보는 거예요.
뒷일은 주님이 처리할 줄 믿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너무 머리가 좋은 사람이 신앙을 못 가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계산이 빠르기 때문에.. 좀 둔한 사람이 무조건 하고 믿고 나가는 데는 편하고 좋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순종과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를 사랑하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셋째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믿음과 순종과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으시는 것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믿음도 믿고 안 믿을 수 있다. 순종도 하고 안할 수 있다. 사랑도 하고 안할 수 있다고 선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7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라. 여유 없습니다. 목숨을 다하라. 두 목숨이 없습니다. 힘을 다하라. 다른 힘이 없습니다. 뜻을 다하라. 그것을 다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무슨 여유가 없습니다. 이런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미가서 6장 8절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남자가 어떤 한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 여자에 대해서 너 나 사랑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 그렇게 할 남자가 있으면 그 남자는 낙제생입니다. 여자를 사랑하면 나 절대로 사랑해라. 나중에는 남자가 배반할 값에 말은 절대로 너 나 사랑하라. 다른 사람 사랑하지 마라.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그게 사랑이지 나 사랑하고 또 다른 사람 사랑해도 좋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날 가지고 놀아라. 그렇게 말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적인 사랑도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는데 하나님이 여러분과 나를 사랑할 때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보십시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절대적으로 나를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나만 너에게 신이지 다른 신이 아니다. 절대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 이외에 너는 돈도 우상이 되지 못하고 지위나 명예나 권세도 우상이 되지 못하고 출세도 우상이 되지 못한다. 나를 절대적으로 섬겨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절대적인 사랑을 요구합니다.
나의 이름 외에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절대로 존경하고 보호하고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이니 날 꼭 만나러 와야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날 등한히 하지 말라. 내 제일주의로 살아라. 무엇이 바빠도 안식일은 교회 와서 날 만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 나를 만나라.
출애굽기 20장 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굉장히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돼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적으로 축복해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4. 우리가 극히 신중해야 할 일
넷째로, 우리가 극히 신중해야 될 일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무엇도 사랑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신중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나게 질투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냥 우리가 배반해도 허허 웃고 사람 잘못봤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은 질투심을 가지고 날 사랑하지 않으려든 죽어라 죽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34장 14절에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야훼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이스라엘이 다른 신 섬기다가 다 멸망 받았지 않습니까? 오늘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천번이고 만번이고 참으시는 것은 정말 여러분을 귀하여 여겨서 기회를 또 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것이지 하나님은 불붙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것만큼 질투심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 마음에 질투심을 일으키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4장 19절로 20절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야훼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야훼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그만큼 질투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절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이 소유했으면 하나님은 너는 절대로 내 것이지 다른 사람하고 나누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에 금이 가면 하나님은 모욕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다른 사람하고 나누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남편치고 자기 아내를 다른 남자하고 나눌 수 있기를 원하는 사람 누가 있어요? 사람이 자기 부인도 남하고 안나누겠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예수님의 보혈을 주고 값주고 산 여러분을 마귀하고 나누겠습니까? 안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같은 소유권을 가진 하나님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언제 너가 나를 택했냐.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며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너희들을 내가 택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묻지 마십시오.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무능합니다. 나는 못났습니다. 나는 헌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다 알고 계세요. 알고도 여러분 택하신 것입니다. 왜 택했느냐. 내가 좋아서 택했는데 네가 무슨 잔소리냐?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이 좋아서 택한 것입니다. 어떠한 마귀가 와도 어떤 누가 와도 너 같은 사람 자격이 없다. 말 못하게 하십시오. 왜냐, 여러분이 잘나서 하나님이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원해서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 왜 나를 사랑합니까? 내가 원해서 사랑하는데 네가 왜 잔소리가 많느냐?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에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못났다. 하나님 내 기도를 들어 주시겠냐? 하나님 너 왜 자꾸 그런 소리 하느냐? 내가 좋아서 택했는데 네가 왜 잔소리 하느냐? 못나도 내가 좋아한다. 자격이 없어도 내가 좋아한다. 빼빼도 내가 좋아한다. 뚱보도 내가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데 누가 잔소리냐. 내가 좋아하면 되었지 않느냐. 그렇죠?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시니 그로써 만족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고 감사하고 주 앞에 가까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말하기를 너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모두다 하나님께서 원하여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택한 사람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인 것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금신상을 만들어 세워 놓고 난 다음에 거기에 절하지 아니하면 불타는 불못에 던지겠다고 할 때 모두다 금신상에 절했으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뻣뻣이 서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써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인데 바벨론의 지사들이었습니다.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네가 정말 내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므로 나를 배반했느냐 만일 이번에도 절하지 아니하면 풀무불을 칠배나 뜨겁게 해서 너희를 던져 넣겠다. 온 바벨론 사람들이 다 주목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주목해서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당신이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는 구출함을 받을 것이요 구원 안해주신다해도 우리는 우상에 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불속에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꼭 해주셔야 믿겠습니다 하는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시지 아니하실지라도 우상에 절하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 믿겠습니다. 온 하늘이 진동하고 하나님이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풀무불을 칠배나 뜨겁게 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불에 던졌을 때 뒤에 네 번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함께 손잡고 강강술래 춤을 추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보고 놀랬습니다. 우리가 세사람 던졌는데 네 사람이 춤추고 있는데 이 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 같다고 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사랑한 사람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3장 17절로 18절에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이 말이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안주실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조건부없이 무조건하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날 위해서 몸찢고 피흘려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 놓았기 때문에 더 증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으셨으므로 더 이상 사랑을 증명하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 것을 알므로 이제 나는 무조건하고 하나님을 따르고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겠다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항상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그렇잖아요. 남편이 나를 기뻐하면 기분 좋지요. 아내가 나를 기뻐하면 내가 기분이 좋지요. 부모가 자식을 기뻐하면 자식들이 좋지요. 자식이 부모를 기뻐하면 좋지요. 자기를 인해서 사람들이 기뻐하면 좋아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나님이 무한이 영광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시편 69편 30절로 32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야훼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하나님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로 6절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네 길을 야훼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셔서 우리 소원을 이루어주시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파스칼은 17세기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수학자요 과학자요 철학자입니다. 그는 17세에 새로운 수학의 논리를 펼치고, 몇 년 후 전자계산기를 발명하며 유명한 인사로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성공에 취해서 교만과 물질적인 향락에 빠졌다가 나이 31살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인생에 큰 전환점이 왔습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능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하나님을 만나자 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철학자의 하나님도, 지식인의 하나님도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만났다. 나는 하나님 외의 모든 것들을 뒷전으로 버리고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기쁨과 평화를 느꼈다. 내 인생의 감독 되신 그리스도께 완전히 항복한 나의 기쁨은 영원합니다. 내가 당신의 말씀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아멘!”하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모든 학문을 접고 기독교역사상 최고의 명상집인 「팡세」를 썼습니다. 여기서 그는 인생의 처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또한 하나님께서 끝나고 우리에게 끝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지위나 명예나 권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혼합해서 사랑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랑할 것과 사랑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분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아야 할 것을 사랑하고 있기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는 마음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7절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둘째는,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세에 사람의 마음의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과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돈을 벌지 말라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벌되 돈을 사랑하지 말라. 돈을 사랑하면 천당에 못간다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잘못 사용하면 천당에 못가는 것입니다. 억만지 많이 벌어서 하나님 사업에 많이 쓰면 얼마나 좋습니까? 많이 벌어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도와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돈을 잘못 쓰면 지옥가지만 잘 쓰면 천당의 높은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돈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27절에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극히 신중해야 할 일은 하나님 이외 또 다른 것을 겸하여 사랑했다가 하나님께 꾸중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그러나 더 긴밀하게 하나님은 우리를 아내로 취급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로 하나님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아내로 부르실 때가 많습니다. 아가서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아내로 취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충절한 아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결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수록 질투심이 강합니다. 그리고 절대소유를 주장합니다. 독재성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여러분에게 질투심이 전혀 없다면 남편 사랑이 식은 줄 아십시오. 남편이 다른 남자친구들하고 놀러가도 좋아~ 여행가도 좋아~ 크리스마스파티에 나 안 데려가도 좋아~ 그러면 사랑이 영 식어도 보통 식은 것이 아니구나. 그렇게 알아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면 질투심이 있어요. 귀찮지요. 사랑하면 누구와 어디갔느냐. 무엇했느냐. 뭘 먹었느냐. 왜 자꾸 그것을 캐물어? 사랑하기 때문에 캐묻는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의 행위를 캐묻고 아내도 남편의 행위를 캐물을 때가 좋을 때인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심을 가지고서 캐물어지는 것입니다. 병적인 질투심은 안되지만 사랑하는 질투심은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할수록 소유권을 주장하고 독재성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굉장히 독재성을 강하게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느정도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만한 독재성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해 주시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좋은 일인 것입니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존재로 생각해 주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절대로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너 없이는 내가 못살겠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사랑한다고 입술로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 아시죠?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알아도 네 입으로 사랑한다고 말해다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집에 가서 남편이 아내보고 알지~ 알지~ 그런 것 보다도 내가 당신 사랑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좋잖아요. 하나님 내 맘 알지요? 알기는 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말해다오. 하나님 사랑합니다. 그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12월 18일 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