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3~8)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차원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기도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우리가 늘 육신으로 호흡을 해야 살고 있는 것처럼 기도도 늘 기도해야 영혼이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은 곧 메말라 버립니다. 기도는 항상 하는 감사와 찬양이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기쁩니다. 일반적인 감사와 찬양의 기도가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제사장이 하나님께 조석으로 제사 드렸듯이 우리는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쉬지 않고 드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삶의 중대한 일에 부딪쳐 하나님의 도우심이 현실적으로 필요할 때 기도를 잘할 줄 안다는 것은 절대로 필요합니다. 생사를 걸어놓은 기도를 해야 될 때 기도할 줄 알아야지 기도할 줄 모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기도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는지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는데 그 해답이 바로 사차원의 기도인 것입니다.
2010년에, 저는 텔레비전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 아나운서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믿음이 뭡니까? 시청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간단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그래요? 내가 하나 물을 테니까 대답을 해주십시오. 계란을 가지고 바위를 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니까 기자가 허허허 웃으면서 “말할 필요없이 계란이 깨지는거지요.” “틀렸습니다.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집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게 믿음입니다.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체험적으로 생각하면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면 계란이 깨질 것 같은데 우리 믿음이란 것은 계란을 가지고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어질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물을 볼 때,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차원이 사차원의 생각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약속한 말씀이면 무엇이든지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에 따라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차원의 기도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갖고 약속이 이루어진 모습을 상상하며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여의도로 교회를 옮겨오고 난 다음 얼마 안 되었습니다. 우리 애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집에서 우리 집사람이 급한 전화가 왔어요. 오후인데 빨리 오라고... 왜 그러냐니까 둘째가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아니 말갛게 학교 간 애가 왜 죽어 가느냐 하니까 좌우간 빨리 오라고.. 지금 빨리 안 오면 애 하나 잃어버리겠다고... 그래서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서 보니까 내 침대에 둘째가 드러누워서 혼수상태에 있어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느냐. 그 당시에는 애들이 밖에 나가면 뭘 먹을 것이 없어요. 먹을 것이라고는 학교 앞에서 번데기 장사가 뻔! 뻔하고 다닙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돈을 좀 주면 이런 종이컵에다가 번데기를 줘요. 애들이 그 번데기를 먹고 단백질을 얻는 것입니다. 그날 또 애들이 나가서 번데기를 먹었는데 그 번데기가 농약으로 강력하게 중독이 된 번데기를 먹었어요. 먹은 애들이 다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그때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크게 났습니다만 그 중에 몇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우리 애도 쓰러져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누가 자전거에 싣고 우리 집으로 데려다 주었어요.
그때는 교회가 너무나 어렵고 생활이 각박했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시킬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애가 죽어가니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빨리 병원에 연락해서 의사를 불러가지고서 집에서 치료하니까 의사가 벌써 늦었다고... 손쓰기 늦었다고... 독이 온몸에 퍼졌는데 어찌할 도리가 있느냐고... 링거주사 하나 놔주겠다고... 그러나 애는 호흡을 몰아쉬고 자꾸 나보고 아버지 살려주세요. 아버지 살려 주세요. 사람이 정말 죽겠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하니까 기도가 나오면 좋은데 기도가 안 나옵니다. 주여~ 천정도 안올라가서 기도가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 믿어져요.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는데 계란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아요.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독을 먹고 죽어가고 있는데 독을 먹고 죽어가는 사람 고친다는 말씀의 약속이 있어야 하는데 마가복음 16장 말씀이 기억이 납디다.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그 말씀을 펼쳐놓고 그 말씀을 믿어야 됩니다.
이제는... 사람의 말이면 엉터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면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 말씀에 의지해서 하나님 아버지, 말씀대로 우리 애를 살려 주십시오. 기도가 입 밖에 나와서 천정에는 안올라가요. 너무 답답해서... 막 몸부림이 나오는데 어떤 생각이 나냐면 내가 정말 예수 믿었느냐. 그것까지 의심이 돼요. 내가 믿는 사람인지 하나님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한번만 내 기도 들어 주십시오. 다음에는 안 기도 들어줘도 좋으니까 이 기도만 들어 주십시오. 온갖 하나님 설득을 다하려고 해도 안돼요.
그러자 나중에는 애가 아버지 하더니 이제는 그 말도 못하고 숨을 못쉬어요. 맥을 짚어보니까 맥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아~ 이제 죽는구나. 이제는 볼일 다봤다. 제가 윗통을 벗어놓고 넥타를 풀어놓고 이제 죽기 아니면 살기다. 하나님, 나는 40이 되도록 살았으니까 이제 그만 살아도 됩니다. 얘는 10대 소년으로써 이제 살기 시작했는데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내 생명하고 바꿔 주십시오. 그리고 엎드려서 기도를 하는데 그때는 절박하니까 마음이 집중이 돼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1시간을 온 몸에 땀이 범벅이 되도록 기도했는데 애는 숨도 그쳐버리고 싸늘하게 식어져 가는데 응답이 안옵니다. 그런데 내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못박힌 것을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바라보며 예수님의 부활한 생명을 우리 애에게 두시간째 기도하는데 그래도 마음에 응답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 나는 여기 기도하다가 죽을 터이니까 하나님 알아서 하십시오. 응답할 때까지 나는 이 자리에서 부르짖을 테니까... 세시간 째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마음이 세시간 만에 텅~하고 구멍이 뚫려지는 것 같더니만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믿음을 주시는데 마치 구름과 안개가 끼듯이 마음속에 성령이 내려와서 믿어져요.
이제는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질 믿음이 생기더라구요.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 믿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무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그러니까 안 일어나도 일어날 것을 내가 믿을 수 있어요. 그만큼 믿음이 꽉 들어찼어요. 화닥딱 일어나더니 그 다음 입을 열더니만 토하는데 아주 시커먼 독을 토해내요. 내가 너무 감사해서 끌어안았는데 아버지 나 살아 예수님께 감사해. 예수님이 어디 계시는데? 여기 계시잖아. 날 데리고 왔는데 여기 계시잖아. 예수님이 안보이지만 난 너무 감사해서. 예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걔가 네게 하는 말이 아버지,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 괴로워 견딜 수가 없을 때 내가 영혼이 몸에서 퉁 하고 떠나더라구.. 우주선을 타고 가는 것처럼 퉁하고 떠나더니 끝없는 공간을 지나서 엄청나게 아름다운 곳에 들어가는데 우리 교회 나오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 세상 뜬 사람들이 다 모여오더라구...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된 그분들이 예수님과 같이 젊은 모습으로 와서 우리 목사님 아들이 왔다면서 전부 와서 나를 끌어안고 아버님 잘 계시느냐? 잘왔다. 엄청나게 좋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천국에 온가 봅니다. 나도 빨리 데리고 들어가 주십시오 하니까 주님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못 들어간다고 그래요. 왜 그러느냐니까 네 아버지 안 놓아준다. 왜 우리 아버지가 안놓아 줍니까? 네 아버지가 기도로 너를 붙잡고 있는데 안 놓아 주는데 내가 너를 데리고 갈 수 없으니 도로 가자! 주님 안 갈랍니다. 가야 된다. 네 아버지가 오라고 한다. 가야된다. 그래서 왔다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이렇게 절박하면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 기도가 되는 거에요. 보통 때 기도는 주여,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찬송합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하면 돼요. 되는데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해야 될 문제에 부딪히면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 되는데 그때야말로 사차원의 기도, 믿음의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술에 발린 기도가 아닙니다. 진실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때야말로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도 좋고 스무 하루동안 계속해서 기도해도 좋고 금식하고 철야하고 모든 일을 다 동원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날짜가 문제가 아니라 믿음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사차원의 기도입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믿음으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그냥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창조적인 믿음이 들어와요. 내 믿음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오셔서 성령께 사로잡힌 믿음인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요. 저는 그때 체험한 그 체험이 마음속에 잊어지지 않습니다.
<본론>
1. 믿음의 기도
그러므로 첫째 믿음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되는데 믿음이란 바라는 것 즉 마음의 소원과 꿈을 실상을 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바라는 것이라는 것은 꿈과 믿음과 꿈과 바라는 목표 아닙니까? 내가 바라는 것을 내가 기도하고 믿을 때 그 믿음은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실상이란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확실한 증거를 갖고 기도하는 것인데 예로 땅을 샀을 때 땅 문서를 손에 쥐면 땅은 안 가봤어도 그 땅은 우리 땅, 내 땅인 것을 확증하지 않습니까? 그처럼 안보이고 안 들리고 안 잡아 봐도 마음속에 내 것이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는 것이 실상인 것입니다. 막연한 기도가 아니에요. 바라는 것, 믿음은 바라는 것의 내가 소원하는 것의 실상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실상이 이루어지면 믿음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애를 위해서 기도할 때 아직 안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살아났다는 확실한 증거가 마음속에 확증 되었을 때 눈에 안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손에 안 잡혀도 살아났다는 확실한 믿음이 마음속에 생겨난 것처럼 그 믿음과 증거가 일체가 되었을 때 믿음의 기도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 속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깨달아야 돼요. 나는 마가복음 16장이 없었으면 그런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자꾸 마귀가 의심을 가져오는데 그 의심을 어떻게 이깁니까?
그런데 성경 말씀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하나님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보통 때는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만 아주 급박한 일을 당할 때는 흔들리지 않는 약속이 있어야지 흔들리지 않는 약속이 없으면 다가오는 의심이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어느 정도 의심이 아니라 완전히 파멸적인 의심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 끝났다. 모든 것은 제로다. 이제는 손 털어라. 그런 마귀의 의심이 억척같이 밀어 재낄 때 그를 버티고 설 수 있는 것은 말씀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평소에 늘 성경을 공부해야 돼요. 그래서 성경말씀이 위기를 당했을 때 마음속에 떠올라야 돼요. 말씀을 부여잡고 나갈 수 있어야 돼요. 나는 그때 그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의심이 들어와도 그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알아야 돼요. 믿음의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모르고 막연히 기도하는 것은 형식과 의식적인 기도요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말씀을 알아야 되는데 우리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같은 것은 갈보리 십자가에 못박혀 예수님이 몸찢고 피흘리신 언약의 약속이 분명히 있잖아요.
이사야 53장에 “저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이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 말씀 가운데 우리는 죄사함에 대한 약속도 있고 거룩함에 대한 약속도 있고 병고침에 대한 약속도 있고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는 약속도 있고 부활, 영생, 천국에 대한 약속도 있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성경에 기록된 것을 확 잡아야 의심이 파도처럼 쳐올 때라도 방파제처럼 파도를 이기고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해해야 되고 그 다음에 약속이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은 시체를 바라보고 기도해서는 안돼요. 기도할 때 살아 일어난 모습을 바라봐야 되는 것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마음속에 분명히 바라보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에 바라는 것이 분명해야 돼요. 약속의 말씀을 따라서 바라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은 일방적인 약속이지만 바라는 것은 구체적인 목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는 믿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믿음을 줄 때까지 부르짖어서 믿는 것입니다. 믿고 난 다음에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 그 다음에는 입술로 명령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루어질찌어다. 살아나라. 병은 물러가라. 문제는 해결되라. 이것이 사차원의 기도인 것입니다. 제일 먼저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깨달아 알고 그 말씀에 입각해서 내 목적이 응답된 것을 마음속에 분명히 바라보고 그리고 바라보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겨요. 그러면 믿음을 붙잡고서 입술로 명령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믿음의 기도와 소망의 기도가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망의 기도를 믿음의 기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하나님 이것 언젠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언젠가 성취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막연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소망은 언제나 소망으로 남아있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소망의 기도는 받게 될꺼야. 받았으면 좋겠다하고 미래형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소망으로는 하나님의 응답과 기적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믿음에 대해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 것처럼 믿음의 기도는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응답 받았다.” “나았다.” “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완료형 혹은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병자위해 안수기도 하시고 난 다음에 “네가 나았느니라”, “깨끗함을 입었느니라” 과거형을 말했지 “장차 나을 것이다.” “장차 깨끗해질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어요. 이처럼 믿음의 기도는 받았다고 믿음으로 말할 때, 그 믿음을 통해 환경과 현실이 변화되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란 바라는 것, 즉 마음의 소원과 꿈을 실상으로 이미 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을 마음속에 확실히 갖고서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안들려도 내 마음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서 기도해야 그것이 믿음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망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일이 잘 될 줄로 믿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병이 장차 나을줄 믿습니다. 미래는 자고 나면 또 내일이고 자고 나면 또 내일인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것이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이루어졌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응답 받았다. 문제는 해결 되었다. 병은 이미 나았다. 기적은 일어났다. 그러한 과거형 믿음에 서서 기도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인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기도
우리가 사차원의 기도의 모범이 바로 아브라함의 생애 속에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와서 75세 때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로 4절에 보면 “이 후에 야훼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야훼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그래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내 몸에서 자식이 날 것이라고 한 다음 중지한 것이 아닙니다. 저녁에 밖으로 나오라. 천막 밖으로 나오니까 하늘을 쳐다보라. 별들을 헤아려라. 아브람이 별들을 헤아렸습니다. 다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별의 숫자가 가슴에 꽉 들어왔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중지하라. 네 자손이 저처럼 많을 것이다.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지금 자손이 없는데 별 보고서 별처럼 자손이 많다는 것입니다. 네 자손이 저처럼 많다. 바라봄의 법칙은 꼭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확실히 이루어진 것을 바라봐야 돼요.
창세기 15장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렇게 바라보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믿음이 생기지 꿈이 없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로 7절에 “아브람이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야훼니라”
꿈을 보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야훼가 자손을 줄 것을 아브람은 믿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지 않는 것은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분명히 마음속에 있어야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느냐. 이러이러한 것을 믿습니다. 바디메오가 장님이 되어서 예수님 지나가신 것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니까 데려오라. 그래서 가까이 오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뭘 해주기를 원하느냐?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분명히 자기 목표가 있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보는 것이 그의 목표가 분명하니까 주님께서 네 보는 대로 될지어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난 다음에 그 뜻을 따라 기도할 때 기도가 이루어진 모습을 마음속에 분명히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우리 기도에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나이가 75살이지만 별들을 바라보고 자손이 별들처럼 많은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과 믿음이 같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동안 85세가 될 때까지 실제로 아들이 태어나지 않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믿음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고 또 그대로 이루어진 모습을 별들을 통해서 늘 바라보았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10년만에 흔들려서 85세가 되었을 때 마음속에 하나님이 자손 줄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내 사래에게 불평을 말했습니다. 이 사래가 미안하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남편보고 내 종 하갈이 있으니까 내 종에게 들어가서 첩을 삼고 자식을 낳으라.
하도 남편이 윽박지르니까 별도리 없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 아브라함이 좋다고 하갈을 취해서 첩으로 삼았어요. 삼고 난 다음에 곧장 하갈이 잉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갈이 마음에 자기 주인이 별볼일없이 보이니까 건방지게 행동했다 말입니다. 그래서 사래가 아주 화가 나가지고서 남편에게 못견디게 굽니다. 당신이 받아야 될 모욕을 왜 내가 받아야 되나. 당신이 하갈을 취해서 자식을 잉태하게 만드니까 저가 나를 저렇게 무시하지 않느냐. 그래서 가정이 아주 풍비박산이 되고 굉장히 큰 고통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믿음이라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 고백을 해야 된다는 것을 하나 더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고 바라봄의 법칙으로 그렇게 많은 자손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바라보았지만 바라보고 믿었지만 그 믿음을 말씀으로 붙잡아 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여러분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우리 두뇌의 95%가 말에 의해서 움직인답니다. 우리 두뇌에 보는 신경도 있고 듣는 신경도 있고 생각하는 신경도 있고 온갖 신경이 다 있지만 말에 의해서 95%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알고 그 약속의 말씀을 따라 기도해서 응답 받은 바라봄의 법칙을 마음속에 가지고 믿었으면 그 믿음을 입술로 말을 해야 돼요. 말을 해야 믿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말을 해야 생각이 굳건해지고 말을 해야 꿈이 분명해지고 말을 해야 믿음이 뚜렷해지고 말을 해야 창조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을 여러분 부인해 버리면 만사가 휴지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난 다음 대개 사람들이 말로 부정을 해버리기 때문에 기도가 휴지가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말로써 없는 아들이 있는 것처럼 했으면 좋겠는데 늘 아들 밤이나 낮이나 오기를 기다리고 안오니까 나중에 아내를 보고 윽박질러서 당신이 자식을 못 나아서 나는 아들이 없지 않느냐. 상속자가 없지 않느냐. 할 수 없이 첩을 얻도록 허락할 때까지 압박을 가했다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입술로 시인하라. 이제 네 나이가 99세인데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고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고 해라. 그냥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네 아내 이름을 사래라고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여주라 하라. 많은 자식의 주인이라고 하라. 그날부터 자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남편을 아브라함 많은 민족의 조상이요, 사라, 많은 자식의 여주여 서로서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확고해졌어요.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서 바라보고 믿고 말로써 시인하니까 믿음이 확고하게 되어가지고서 100살에 아들을 낳으니 이삭이 그 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과정을 통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첫째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뜻을 알아야 되고 둘째로, 하나님 뜻을 통하여 내 꿈을 분명히 보아야 되고 셋째로, 꿈을 보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겨나는데 믿었으면 입술로 고백해야 된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해야 된다. 그러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보여 주시므로 그 후손들인 우리가 이를 깨닫게 해주시려고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3. 사차원의 기도
우리가 사차원의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각과 생각에 바라는 꿈과 꿈을 믿는 믿음과 입술의 고백 속에 실상과 증거 즉, 응답받은 실상의 확신을 가지고 시인하면 그대로 이뤄지도록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로 24절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여기 예수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말하고 이루어질 줄 마음에 의심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믿음을 가졌으면 그것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산이 옮겨서 바다로 갈 것을 마음속에 믿었으면 그것을 입술로 말을 하라. 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던져라고 말을 하라. 그러므로 믿음과 말은 언제나 같이 가야 돼요. 저는 항상 내 마음에 믿은 것을 입술로 시인하면 그 믿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감기라도 걸려서 몸살이 나오면 그냥 내 마음속에 주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고 믿습니다.
그렇게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약속의 말씀을 기억해요. 그러나 그것을 입술로 고백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한 두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한번만 하면 되지만 우리는 사람이니까 백번도 천번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그러면 믿은 것이 입술로 고백하면 치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자매님 한분의 간증을 내가 잊을 수가 없어요. 서대문에 있을 때입니다. 뇌종양이 생겨서 뇌종양 수술을 하기 위해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종양이 아주 깊은 곳에 있어서 수술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말을 의사 선생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저의 설교말씀을 기억했었어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을 했는데 마음에 믿고 기도를 해도 종양이 안 나아요.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자꾸 의심이 생겨요.
그래서 하루 저녁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다는 것을 손가락으로 헤아려 가면서 천 번을 외웠다는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자꾸 말을 하니까 하나님 약속이 더 확실해지고 나은 꿈이 분명해지고 믿음이 더 확실해지고 믿음으로 말씀하니까 기적이 일어나서 그 다음날 의사가 다시 재검을 하고 수술을 하려고 하니까 종양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입술로 말씀을 고백한다는 것은 굉장히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잡아 주리라. 저는 두려움이 오면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준다는 것을 그냥 마음에 믿고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믿었으면 입술로 고백을 해야 돼요. 이 말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계속하면 두려움이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져버리고 말고 믿음이 마음속에 굳세게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되 사차원의 믿음을 통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병 낫기 위해서 기도할 때 여러분 그냥 하나님 병 낫게 해 주십시오 하지 말고 치료의 약속이 기록된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기록되었으되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 하였느니라. 약속의 말씀이 성경에 있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고 상상 속에 나은 모습을 그 다음 바라봐야 되고 그리고 하나님 바라 본대로 낫게 해 주시옵소서. 내가 바라보고 기도하는데 바라 본대로 낫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믿음이 생겨나요. 믿음이 생겨나면 기적을 믿고 나았다고 선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술로... 마지막으로 하는 것은 선언인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가 나음을 입었느니라. 그래서 “하나님 이미 저는 마음으로 고침을 받았사오니 이제 그대로 몸에 이뤄지게 해주옵소서” 라고 부르짖고 기도하고 입술로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이렇게 믿음의 기도를 하는 것이 사차원의 기도인 것입니다. 느낌으로 하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를 다닐 때 굉장히 몸도 허약하고 가난해서 내가 과연 목사가 되겠는가. 목회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부흥사이신 R.리드 목사님이 한국에 와서 부흥회를 서울에서 열고 그 다음 대전에 가서 부흥회를 열었는데 저를 통역으로 따라 보냈어요. 그래서 대전 호텔에 가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R.리드 목사님하고 나하고 둘이가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R.리드 목사님이 안경을 이렇게 해서 나를 안경 너무로 이렇게 보더니만 자네 성경 말씀에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을 꿈을 꾼다는 말이 있지? 믿느냐? 그래서 믿습니다!
나는 이제 늙은이가 되어서 꿈을 자주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영감이 또 꿈같은 소리 또 하네. 부흥회 와서... 그래. 저 학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꿈에 자네를 보았네. 그래서 내가 뭘 보셨습니까? 나를 쓰윽 보더니 장차 자네가 교회를 세우는데 인산인해로 사람이 오는 것을 내가 보았다. 꿈에... 그리고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내가 리드 박사님 나는 몸이 약해요. 돈도 없어요. 빽도 없어요. 그런 일이 과연 일어날까요? 하니까 그러니까 꿈이지! 일어날 보장이 있으면 꿈꿀 필요없지 않느냐. 그러니까 꿈인데 꿈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야.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네가 해석할 필요없어.
진짜로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진다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이 꿈을 꾸면 계산하지 말아야 돼요. 계산은 하나님이 하시지 여러분이 계산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서 지금 내가 돌아보면 그 영감님 벌써 천당갔고 나도 50년이 넘는 목회생활을 끝마치고 지금 여러분 앞에 서서 졸업생으로써 설교를 하고 있는데요. 돌아보면 다 이루어졌어요. 그 꿈이 자꾸 내 마음속에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내가 세계 최대 교회의 목회를 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되었는지 상상할 수 없고 어떻게 해서 목회를 하면서 그 바쁜 세월에 지구를 120바퀴나 돌면서 온 세계 70여 개국에 400여 도시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했을까? 상상이 안가요. 꿈같은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을 가지고서 여러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여러분의 꿈을 꾸십시오. 마음속에 꿈은 꿈입니다. 어떻게 될지 여러분 힘으로 계산하지 마십시오. 계산은 하나님께 맡기고 꿈을 꾸십시오. 그러면 믿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으면 사람들이 다 웃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에 믿어지면 그 믿음을 가지고서 이야기를 하십시오. 말을 하십시오. 아무도 안들어주면 여러분 자신을 보고 이야기 하십시오. 이웃을 보고 이야기하십시오. 세월이 흘러가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믿고 말한 사실을 이루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꿈꾸고 믿고 말하라. 꿈꾸고 믿고 말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꿈도 안 꾸고 믿지도 아니하고 말도 안하고 사주팔자만 바라고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빈손 들었을지라도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그리고 믿고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니까 기도 안하면 믿음 안생겨요. 기도하면 성령이 믿음을 주시니까 믿고 그 다음 믿은 대로 말을 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2) 단순하고 끈질기게 기도하라
넓게 열라. 조그만큼 열지 말고 크게 입을 열어라.
엘리사 시대에 선지자가 죽었는데 빚을 많이 지고 죽었습니다. 그 과부가 엘리사 선생에게 와서 선생이여 우리 남편이 제자였는데 죽고 빚을 많이 남겨 놓아서 빚쟁이들이 자식을 종으로 팔아서 빚을 갚겠다고 하니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엘리사가 어떻게 도와주겠느냐? 너희 집에 뭐가 있느냐? 기름병에 기름 반쯤 있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 돌아가서 이웃의 그릇을 빌리되 많이 빌려라.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려라. 그리고 문을 닫고 난 다음에 기름병을 가지고서 그 그릇에 기름을 부어라.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이웃에 가서 그릇을 많이 빌려서 안청 마루 마당에 다 갖다 놓고 기름을 붓는데 한그릇에 가득차니까 또 다른 그릇 가져오고 기름이 계속해서 기름병에서 나옵니다. 나중에 그릇 가져오라. 어머니 기름 부을 그릇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름이 뚝 그쳤습니다. 그래서 그 선지자의 아내가 엘리사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니까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나머니는 생활비로 쓰라. 거기에 여러분 보십시오.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려라. 그 그릇이 바로 여러분 꿈인 것입니다.
꿈을 갖되 조금 갖지 말고 크고 작은 꿈을 많이 가져라. 기왕 가질 바에야 많이 가지지 왜 적게 가져요? 꿈은 꿈인데... 실제로 내가 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데 꿈은 꿈인데 적은 꿈도 꾸고 큰 꿈도 꾸고 꿈을 많이 가지라. 그러면 기도하는 것은 성령의 기름이 붓도록 기도하면 성령이 그 꿈에다가 기름을 부어서 다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가지고 난 다음 믿음이 생긴 그 과정이 기도인 것입니다. 내가 꿈을 갖고 기도를 간절히 하면 믿음이 생기고 그 다음 믿음이 생기면 입술로 고백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기도할 때 단순한 기도를 끈질기게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애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얘를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전지전능 무소하신 하나님, 어제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고 내일도 오실 하나님이여 어디에 계시옵나이까.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그렇게 하면 그 정신이 거기에 팔려 가지고서 기도가 중 안돼요. 그런 웅변 안해도 돼요. 주님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누가복음 18장 3절로 8절에 보면 한 도시에 과부가 있는데 그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재판관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기도하는데 그 이상 다른 말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재판장이여 공정한 재판장이여 도덕이 확실하고 학삭이 많은 재판관이여 그렇게 말 안했습니다. 가서 그냥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주소서. 갚아 주소서. 갚아 주소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하니까 나중에 재판관이 뭐라고 했습니까? 아이구 이 과부 때문에 내가 못살겠다. 너무 자꾸 달라 들어서 갚아 달라고 하니까 내 마음에 고민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과부 때문에가 아니라 나 때문에 갚아 주어야 되겠다. 그래서 그 원한을 갚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예수님이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밤낮 부르짖는 택한 자의 원한입니다. 밤낮 부르짖는다. 웅변으로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밤낮으로 부르짖는다. 이러므로 꿈과 믿음 사이에 밤낮으로 부르짖고 믿음과 입술의 고백 사이에도 밤낮 부르짖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을 꾸고서 부르짖고 믿음을 가지고서 부르짖고 입술로 고백하면서도 부르짖고 기도는 그 세가지 사건을 함께 섞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꿈을 꾸면서 늘 부르짖어 기도하고... 믿으면서 늘 부르짖어 기도하고 그리고 입술로 고백하면서도 부르짖어 기도하고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해 주셔서 응답이 오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윌리엄 케리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꿈과 소망이 없이 살아가던 그는, 예수님을 믿고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구두 수선만 하고 있으니까 희망이 없이 좌절하고 있었는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꿈과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그는 훌륭한 선교사가 되어야 되겠다. 그런 꿈이 생겼어요. 그래서 가게에서 자기 자리 앞에 세계 지도와 세 가지 표어를 적은 종이를 붙여놓고, 아침마다 그것을 바라보며 하루를 새롭게 시작한 것입니다.
그 종이에는 “큰 꿈을 가지라, 큰 기도를 하라, 큰 기대를 하라” 이렇게 구두 수선하는 앞 벽에 붙여 놓고는 구두 수선하면서 늘 그것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큰 꿈을 가지라. 큰 기도를 가지라. 큰 믿음을 가지라. 끊임없이 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될 꿈을 갖고 기도를 하고 기대를 한 결과에 그는 훗날에 인도로 가서 인도 역사상 큰 획을 긋는 위대한 선교사역을 일으킨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마음에 생각과 꿈을 품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사차원의 기도는 이처럼 응답 받은 실상과 확신의 증거를 가지고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 사차원의 기도인 것입니다.
<결론>
사차원의 기도는 다시 한번 따라 하십시오. 생각하고 그것이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며 그대로 성사될 것을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설교한 것을 오늘 다 잊어 버렸으면 세가지만 기억하십시오. 바라보고 믿고 말하라. 바라보고 믿고 말하라. 그 가운데 계속 기도가 섞여 들어가 있으면 하나님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 2012. 2. 5. 성찬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