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예수님의 안식 속에 살아야 한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1)

<서론>
오늘 저는 “예수님의 안식 속에 살아야 한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요사이는 전 세계적으로 일주일에 닷새 일하고 이틀 쉬는 것이 관행이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미국에서는 나흘만 일하고 사흘은 쉬자 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랄 때는 한 주일에 한 번도 쉰 적이 없이 늘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굉장히 살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제 칠일에는 모든 일을 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론>
1. 인간과 하나님의 안식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의 안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레 째 쉬셨는데 제가 처음 교회 목회를 할 때 너무 열정적이 되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니까 나를 따라 다니던 장로님들이 피곤해져 가지고서 하루는 제게 오더니만 “목사님이 하나님보다 위대하십니까?” 그래요. “내가 왜 하나님보다 위대 합니까?” 하니까 “하나님도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레 째는 쉬셨는데 왜 안쉽니까? 그러니 우리도 못쉬지 않습니까? 하루 쉬십시오.” 그 말이 마음속에 늘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시면서도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레 째는 쉬셨습니다.

창세기 1장 2절로 3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첫째날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둘째날 궁창을 지으시고 셋째날에 바다와 땅과 식물을 지으시고 넷째날에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다섯째날에 하늘의 나는 새와 물고기 여섯째 날에 땅의 짐승 가축 종류대로 지으시고 난 다음에 맨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되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은 중간에 만든 것이 아니요 일의 시초에 만든 것도 아니요 맨 마지막에 만드셨습니다. 할 일 다 하시고 난 다음에 하늘을 보아도 있을 것이 다 있고 땅을 보아도 모자란 것이 없을 때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제 칠일 안식일날은 인간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난 첫째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어 놓으시고 난 다음 모든 일을 쉬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마지막 날에 지음을 받아서 첫날 태어난 날이 제칠일 하나님의 안식일인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절로 3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아담이 하나님께 나와서 이렇게 물었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아버지, 오늘이 우리 생일날이 아닙니까? 이 생일날 우리 뭐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보고 빙그레 웃으시면서 “야 이 사람아, 만물을 다 지어 놓았다. 하늘 봐라 없는 것 없지? 땅을 보아라. 모자란 것 없지? 그리고 너와 네 아내를 지어 놓았고 이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주었고 주었는데 이날은 내가 모든 일을 완성하고 쉬는 날이므로 너 인생은 휴식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인생이다. 일함으로 시작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인생이 이 땅에 지어진 목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땅에 지음을 받은 것은 일하기 위해서 지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쉬기 위해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일은 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 쉬는 것이 제일 출발이기 때문에 쉬는 것이 우리 인생의 출발인 것입니다. 쉬고 난 다음 일을 하지 일하고 난 다음 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은 나의 안식일이니 내 안식에서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안식일이 하나님께는 굉장히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으로 안식일을 쉬고 그 날에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신명기 5장 12절로 15절에 보면 “네 하나님 야훼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야훼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야훼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야훼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굉장히 하나님은 안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만 안식을 할 것이 아니라 집에서 부리는 남종이나 여종도 그날은 일 쉬게 하라. 소와 나귀나 짐승들조차도 그 날에는 부려먹지 말라. 전적으로 쉬어라. 그러므로 안식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장난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에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하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 관계 네가지 계명중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을 꼭 넣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떠나지 아니하고 육신의 질병과 고통이 늘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이 명령한 안식일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다 예비해 놓으시고 쉴 때는 쉬라는 것입니다.

2. 쓸데없는 일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
저는 책을 읽다가 이런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이 있기 전에 빛을 준비하셨다.” 빛이 없으면 못보지 않습니까? 빛을 다 준비해 놓고 난 다음에 눈을 지으시고 “하나님은 코가 있기 전에 공기를 준비하셨다. 귀가 있기 전에 생명의 말씀을 준비하셨다. 입이 있기 전에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셨다. 발이 있기 전에 딛고 설 땅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준비하시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홀로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이제 우리를 위해 영원한 천국 안식까지 예비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다 지어놓으신 세상에서 삶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감사하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람 것이 아닙니다. 일을 행하시는 것은 야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가로채서 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특권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빼앗아서 자기가 하려고 하므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다 지어놓으신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감사하고 누리며 살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예비해 놓은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다. 저는 늘 이 이야기를 합니다만 하나님만 생각하면 우리 위해서 예비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1964년도에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세계오순절대회가 있어서 처음으로 브라질까지 가서 비행기를 타고 그곳 대회에 참석하고 미국을 통해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한국 촌놈이라 누가 같이 여행 안한 것은 돈이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비용이 없어요. 한국에서 혼자 브라질에 갔다가 혼자 비행장에 나와서 비행기를 타려고 들어가 줄을 서 있는데 브라질 경찰관이 나와서 포르투칼어로 뭐라고 샬라샬라샬라해요. 나는 영어도 조금밖에 못하는데 포르투칼어는 내가 알 턱이 있어요? 가만 보고 있으니까 패스포트 내놓으라고 해요. 패스포트를 주니까 포켓에 착 집어넣더니 가버려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패스포트를 넣어 놓고 가져가 버립니다.

그래서 내가 따라가면서 패스포트, 패스포트, 패스포트. 이 사람이 다른데 안가고 화장실에 가요. 화장실에 가서 돈 좀 내놓으라 그 말을 내가 촌놈이 알 턱이 있어요? 화장실에서 볼일보고 있는데 나는 서서 패스포트, 패스포트 그러니까 나오더니만 날 보고 아주 이맛살을 찌푸리더니만 그냥 나가 버립니다. 그러니 패스포트 없으니까 못 들어가게 되지요.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제 국제 촌놈이 되었구나. 거지가 되어도 올바르게 되어야 될 것인데 말도 모르는 거지가 되어서 이 브라질에서 어떻게 살아갈꼬.. 대합실에 와서 앉아서 웁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내가 여기서 고아가 되었는데 아무도 도와줄자 없으니 어떻게 할까요? 도와주시옵소서.

울고 있으니까 어떤 중년의 신사가 이쁘장한 대학교 다니는 딸을 데리고 내 앞을 지나오면서 나를 가만히 보더니만 내가 울다가 고개를 드니까 고개를 돌리고 걸어가요. 동양사람이 와서 울고 있으니까 구경거리가 되어서 구경하는가보다. 그 다음 하나님 울면서... 또 도로 돌아와서 또 나를 가만히 보더라구요. 또 내가 그러니까 이러고 걸어가요. 사람을 구경거리고 삼는가 보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내게 오더니만 말 좀 물어 보십시다. 물어 보십시오. 당신 혹시 한국에서 온 조용기가 아닙니까? 그래요. 내가 너무나 너무나 고마워서 천사를 만난 것 같아서 일어나서 내가 바로 조용기요. 내가 바로 조용기요. 나를 어떻게 알아봅니까?

내 신학교 동기 동창이 루피 리처드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한국으로 선교사로 왔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로 와서 나에게 미국으로 편지하기를 우리 교회 개척교회 조용기라는 청년이 나온다고 당신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내 주었소. 그러면서 이 사람을 보내어서 신학교에 공부를 시켜서 주의 종으로 삼으려고 하오니 기도를 많이 해달라는 글을 읽었는데 그것이 10년 전의 일입니다. 내가 오늘 지나면서 보니까 꼭 그 사람 같아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 좀 살려 주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이 브라질 경찰이 와서 패스포드를 빼앗아 갔는데 패스포트 없이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갑니까?

그러니까 쯧쯧쯧 이놈이 또 그런 짓을 했구나. 브라질에서는 경찰관들이 어리숙한 사람을 보면 바로 패스포트 빼앗아갑니다. 당신 한국서 와서 어리숙하게 보이니까 돈 받아 먹으려고 빼앗아 갔는데 돈을 안주니까 가지고 가버린 것입니다. 저희 딸하고 같이 우리 따라 오십시오. 그래서 그 사람 따라서 시내 경찰서에 들어가서 다 찾으니까 외사과에 가니까 그 사람이 앉아 있어요. 이 사람 내 친구인데 패스포트를 달라고 하니까 쓰레기통에 저기 뒤져 보라고 쓰레기통에 내 패스포트를 던져 놓았어요. 그래서 그 패스포트를 찾아서 주는데 비행기가 일주일 동안 없어요. 그래서 그분들을 차를 얻어타고 상파올로까지 가서 대접을 많이 잘 받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일만 생기면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그때 일을 기억하라. 국제 고아가 되고 거지가 될 너를 내가 준비해 놓았지 않았느냐. 10년 전에 너를 위해서 준비해 놓았다. 그것을 네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는데 나는 준비하지 않았느냐.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억나게 해서 그것이 내 마음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 생기면 예비하신 하나님이다.

어제도 그것을 생각했어요. 모래 폭풍우가 불어와서 천지가 아득할 때 예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모랫바람을 아무리 불게 해도 날 여기까지 보내실 때는 집회하라고 보냈지 놀러 보내시지는 않았으니까 모랫바람 구경할 바에야 비디오 사서 보면 봤지 여기까지 날라올 필요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예비해 놓았다. 확신이 생겨서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요동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모랫바람을 그치고 좋은 날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고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 아시느니라.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다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정말일까? 그러나 정말입니다. 제가 아랍인들에게 설교할 때 그런 내용을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젊은 목사 같으면 성경에 기록한 배운 신학을 설교하겠지만 나는 50년의 목회를 마치고 나이가 76살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산전수전 다 겪어서 경험한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해 드립니다. 내가 한 말은 경험한 말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성령 받습니다. 병 낫습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천당은 아직까지 안갔지만 갈 것이니까 천당갑니다. 그러므로 내 말 믿으시오. 그렇게 말하면서도 경험을 했다는 것이 마음에 얼마나 뿌듯하고 확신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염려하지 마세요. 주님이 다 내 길 예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므로 거역하지 않고 따라가면 주님이 다 예비해 놓았는데 아담과 하와의 큰 잘못은 하나님 일을 빼앗아서 자기들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좋다 나쁘다를 내가 결정해서 내가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다 맡겨 놓으면 내가 너를 위해서 일을 다 해놓았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 대신에 자기일 자기가 하고 살겠다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저항을 했습니다. 하나님만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고 일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내가 하겠다고 그렇게 나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일을 절대로 맡기지 않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꾀임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 선악과 선택에 대한 주권에 대항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범죄하고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만들 필요가 없는 일을 만들어 놓았어요. 죄악의 문제, 그 문제를 왜 만들어 놓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으면 괜찮았을 것인데 불순종하고 반역해서 죄라는 문제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일거리를 만들어 놓았어요.

허물의 문제를 만들어 놓고 그 결과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하니까 병들지 않습니까?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병들지 않습니까? 병의 문제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 다음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겠다니 먹고 사는 문제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서 장례 지내서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문제도 만들어 놓았고 거기에 파생되는 교만, 욕심, 탐심,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두려움, 모든 인생사 문제를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 원래 하나님 만든 것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반역하고 불순종하므로 이 일을 만들어 놓아서 이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괴롭게 살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영성 신학의 마르바 던은「안식」이란 그의 책에서 진정한 안식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즉, “안식이란 일하는 것을 그칠 뿐만 아니라 마음의 걱정과 근심을 그치는 것이 안식이다.” 일만 않하고도 마음에 걱정 근심을 하고 있으면 안식이 아닙니다. 우리 육신으로 하는 일만 그칠뿐 아니라 마음의 염려, 근심도 다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은 단지 일하던 것을 중단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염려하는 것까지도 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쉬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내가 모든 것을 돌보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인본주의인 것입니다. 인간은 인본주의로 살면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와 허물, 병과 저주와 죽음의 문제를 짊어지고 힘에 겨워 허덕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교만과 욕심과 탐심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일을 빼앗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대신하려고 하는 교만과 오만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헐벗고 굶주리면 하나님이 일을 안하시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와 그 의만 먼저 구하면 이 모든 일은 내가 할 것이니 네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을 우리가 빼앗아서는 안돼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도 하나님이 대신 짊어져 주실 일을 우리가 짊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쓸데없는 일을 걸머지고 행하려고 하다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으로 괴로움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누구신가?

3. 구주 되신 예수님의 안식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를 뒤이어서 새로운 인류 조상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실패한 인류 조상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빼앗아 자기가 하려고 하다가 못하고 죄와 저주, 질병과 죽음과 절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인류 조상이지만 예수님은 새로운 마지막 아담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없는 하나님이 죄있는 인간의 형체로 오셔서 이 땅에서 33년동안 살면서 인간의 모든 쓸데없는 일을 다 끌어안고 혼자서 다시 처리해 주신 분인 것입니다. 새로 인간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옛날에 제육일째 천지와 만물을 지은 것처럼 예수님은 이 땅에 살면서 모든 인간의 일을 처리하는 십자가에서 청산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올라가셔서 여러분과 내가 할 일을 다 끌어모아서 책임지고 청산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히브리서 9장 28절에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무덤에 들어간 것은 우리 짐을 대신 짊어지고 죄값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는 보증은 못됩니다. 주님이 죽으셨으면 다 청산하고 살아나야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보증으로 증명되는 것은 무덤에 들어간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주님이 완전한 안식을 이루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절로 3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죄, 허물, 질병, 저주, 절망, 죽음, 염려, 근심, 모든 것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청산하고 죽어서 다 갚아버리고 부활하여 일어나셨으므로 이것을 알고 믿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알고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이루어 놓은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안식 속에 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안식에서 벗어났지만 이제 또다시 예수님이 이루어 놓은 것을 우리가 믿고 순종하면 공짜로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것을 누릴 수 있는데 그것을 공짜로 누리지 못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하려고 하니까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것도 보십시오. 이 세상에 종교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종교가 많은데 그 종교를 통해서 사람들은 선한 행위를 하므로 구원을 받으려고 노력을 하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구원 못받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없으니 다 죄짓지요. 불의하고 추악하니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은 것이라. 내가 다 이루었다. 일생의 죄를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 갚으려고 애를 쓸 필요없이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의롭다함으로 천당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천당갈 길을 안믿으니까 수고만 잔뜩하고 노력만 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거든요.

그러면 이 세상에 먹고사는 것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도 그와 똑같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 이루어 놓았어요. 아담의 저주를 대신 십자가에 걸머지고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놓았어요. 믿고 순종하고 따라가면 주님께서 승리해 주셔서 먹고 입고 살 길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살 수가 있어요. 평안하게... 그런데 그것은 구원은 믿는데 물질적으로 축복해 주는 것은 믿지 않고서 내가 책임지고 이마에 땀을 흘려 수고하기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만 믿음으로 받고 물질적인 것과 치료와 건강도 믿음으로써 주님이 이루어 놓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가 책임지고 고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지고 고생할 필요 없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하루 데리시고 바깥에 나갔어요. 유대나라에서는 밭갈 때 어미소 옆에 새끼소를 같은 멍에에 넣어서 밭을 갑니다. 멍에는 어미 소의 목에 걸려있고 새끼소는 그 밑에 들어가서 그저 농부가 일어서 쯧쯧쯧... 어미소가 그러면 끕니다. 잔뜩 목의 혈관에 힘을 세우고 뻣뻣하게 서서 힘차게 끌고가는데 새끼소는 그 옆에 붙어 있으니까 아무 힘도 들지 않습니다. 어미소 가는데 따라만 가요. 밭가는 것을 주인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새끼소가 엄마를 보고서 저 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온 몸에 힘줄을 세우고 야단법석을... 나는 괜찮은데... 멍에가 어머니에게 걸려있고 자기는 멍에가 안걸려 있으니까 안무거울 수밖에...

새끼소는 즐겁게 따라가서 뒤로 가라고 하면 또 앞으로 가라고 하면 가고... 엄마가 땀을 흘리면 괜히 허풍 떠는구나. 왜 땀을 흘리냐.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 데리시고 그것을 보시고 난 다음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십자가의 멍에를 걸머지기 위해서 왔는데 너희가 내 멍에 밑에 들어오면 쉼을 얻는다. 너희 죄는 내가 멍에로 걸머지고 너희 불의도 내가 명에로 걸머지고 너희 병도 내가 멍에를 걸머지고 저주도 내가 멍에를 걸머지고 너의 죽음도 내 멍에,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 원한 모든 멍에를 내가 걸머졌으니 내 밑에 믿고 따라만 오너라. 너희에게는 휴식이 있다.

사람들 보기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도 아무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짐을 걸머지고 방황하지 않습니다. 다 주님께 맡겨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걸머져서 나를 대신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기 때문에 나는 그냥 평안하게 따라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바로 이것이 새로운 안식에 들어가서 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30절 다같이 읽어 보십시다. 하나, 둘, 셋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예수님에는 쉽고 가볍지 않습니다. 목숨을 내어 바친 피땀을 흘려 맡긴 무거운 멍에지만 여러분에게는 쉽고 가벼운 멍에입니다. 다 짊어진 멍에 밑에 들어가서 따라만 가면 됩니다. 왜 이렇게 무거워해요? 내 멍에는 쉽고 내 멍에는 가볍다. 따라 말씀하세요. 내 멍에는 쉽고 내 멍에는 가볍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라. 온유하다는 것은 순종을 잘하는 것을 온유하다고 합니다. 교만하지 말고 순종을 잘하면 내 멍에 밑에 따라만 가면 쉼을 얻는다. 평안을 얻는다. 이 요란스럽고 복잡한 세상 가운데 예수님이 이루어 놓은 안식 속에 믿음과 순종으로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오중복음 삼중축복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죄사함 받고 용서와 의롭다함을 다 이루어 놓았고 거룩함과 성령충만도 이루어 놓았고 치료와 건강도 이루어 놓았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도 이루어 놓았고 천국과 재림도 다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속에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역사가 다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오직 믿고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 이루어 놓은 것을 믿고 순종만 하고 따라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은혜롭게 산다는 것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면은 나도 괴롭거니와 보는 사람도 괴로운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었는데 한가지 짐만 안집니다. 죄짐만 안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죄짐을 다 짊어지고 갔다고 하니까 그것만 믿고서 믿음으로 구원받지 그 이외에는 다 내가 짊어지거든요. 먹고 사는 것도 다 내가 걸머지고 병도 다 걸머지고 염려, 근심, 불안, 초저, 절망도 다 내가 걸머지고 그러므로 고생고생하면서 삽니다.

그것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으니 다 이루어 놓은 안식에 들어가서 살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고생이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안식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박차고 떠나가서 고생한 것처럼 하지 말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은 새 안식을 믿음과 순종으로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0절로 11절에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도 나의 일을 쉬느니라. 쉬어야 돼요. 먹고 사는 염려, 근심을 쉬어야 돼요. 질병과 고통에서 쉬어야 돼요. 안식하고 쉬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내가 그 안식에 못들어가면 예수님이 헛고생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예비해 놓은 안식의 밥상에 들어가서 먹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 교회에 참석한 것도 힘쓰기 위해서 참석하신 것입니다. 저 말을 듣고 안식에 들어가도록 마음에 결심을 하고 믿고 순종을 하십시오.

좀 넘어졌다가도 일어나면서 넘어졌다가도 일어나면서 점점 경험을 하면 아~ 진짜로 주님이 우리 위해서 안식을 다 허락하시는구나. 점점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신앙생활은 배우면 배울수록 평안해지고 믿으면 믿을수록 평안해지고 살아갈수록 생명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진리를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무슨 진리냐. 주님께서 새로운 안식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다.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린 안식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안식을 이루어 주셨다. 다 이루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은 자기를 위해서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 이뤄 놓은 것입니다. 나의 죄, 나의 불의, 나의 추악, 나의 저주, 나의 절망, 나의 질병, 나의 죽음, 나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고생을 하고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여러분 이루어 놓은 것을 누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일은 주님이 해놓으셨고 여러분은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놓아도 누리는 사람이 없으면 일하는 것이 보람이 없지 않습니까? 부모님이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많이 모아 놓았으면 자식들에게 부모가 아버지, 어머니가 이렇게 애써서 재산을 모아 놓았으니 너희는 주님 앞에서 하나님 잘 섬기고 잘 누려라. 그렇게 부탁할 것 아닌 것입니까?

그래서 잘 누리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잘못 누리면 부모의 고생한 것이 수고한 것이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 놓았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굉장히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는 자녀들인 것입니다. 우리 위해서 다 이루어 놓은 것을 모르면 안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뭘해야 되느냐. 알았으면 그 다음에는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알고 안믿으면 소용이 없어요. 주님이 이렇게 이루어 놓았구나. 그러면 내가 이대로 살아야 되겠구나.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오늘 제가 이 진리를 말하고 난 다음 여러분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조목사가 믿어서 되는 것 내가 믿어서 안될게 무엇이냐 나도 믿어보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38) 나도 믿음으로 살겠다고 마음에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실천해야 돼요. 믿음이란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믿는다 믿는다 하면서 실천을 안하면 그것은 가짜인 것입니다. 실천하려면 겁이 나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서 애굽에서 나오기는 나왔는데 뒤에서 애굽의 대군대가 다시 잡으러 오니까 하나님을 따라 홍해수를 지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실천하려고 하지 않고 도로 돌아가자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실천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느냐 모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험이 용감하게...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이 하라고 했으니 눈 딱 감고 해보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교회에 들어와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굉장히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위기 속에 들어오면 그렇게 자라는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물고기가 있어요. 코이라고... 일본 잉어인데 조그마한 잉어를 물 항아리에 넣어서 키우지 않습니까? 그 코이라는 생선이 조그마한 항아리에 들어가면 2센티에서 5센티미터 밖에 안큽니다. 그런데 이것을 연못에 갖다 놓으면 30센티에서 40센티로 커지는 것입니다. 분위기가 크니까 큰 맘 먹고 큰다 말입니다. 분위기가 작으니까 자기도 오그라져 가지고 2센티에서 5센티가 되는 그 고기가 큰 연못에 들어가서는 20센티, 30센티로 커지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말로 말하면 무엇이냐. 왕대밭에 왕대난다. 믿음이 실천되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면 야~ 목사님도 장로님도 권사님도 집사님도 성도들도 믿으니까 그렇게 되는데 나라고 안될게 뭐냐. 나도 2센티에서 5센티가 되지 말고 20센티에서 30센티가 되어보자. 군죽이 되지 말고 왕대가 되어 보자. 그렇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교회 나와서 믿음의 역사가 실천되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은 굉장한 도움이 되어서 여러분에게 모험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모험을 하십시오. 그래서 믿음으로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천하지 아니하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늘 긍정적으로 시인하는 것 너무나 중요합니다. 내 입의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힌다고 입으로 늘 진리를 말을 하면 진리가 마음이 확고해지고 늘 입으로 여러분이 소원하는 바를 분명히 말하면 꿈이 분명해지고 입으로 시인하면 믿음이 튼튼해지고 입으로 시인하면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입술의 고백이 있어야 역사하는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데 성령이 수면에 운행했는데 일이 생겨났나요? 아니요. 여전히 공허하며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고 성령님은 그냥 운행했습니다. 언제까지 말씀이 있을 때까지.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이 있으니까 성령이 운행해서 빛을 만들어 냈어요. 궁창이 생겨나라 하니 궁창이 만들어졌어요. 하나님 성령께서는 여러분과 같이 계세요. 주님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놓지 않고 다시 오리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성령은 창조적인 영으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러나 입술의 고백이 없으면 가만히 있어요. 아무일도 안해요. 성령은 창조적인 영이신 것입니다. 성령은 좋은 영을 만들어 내는 영인 것입니다. 어둠을 빛으로, 무질서를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가난을 부요로, 질병을 건강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운행을 하지만 역사 안해요. 입술의 명령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대신에 여러분이 말을 해야 돼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그렇게 말하면 성령이 막 치료를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입으로 시인하면 성령이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말을 해야 성령이 역사하지 입을 딱 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도 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 믿어도 입을 딱 다물고 있으면 성령이 운행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초신자라도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가면서 휘파람 불고 말을 하면 성령이 초신자라도 말을 하네? 그러면서 말을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은 내 입술의 고백을 받아서 일을 하신다. 입술로써 부정적인 말을 하면 성령은 부정적인 영이 아니시기 때문에 아무 응답도 없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성경말씀을 말할 때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여러분 시편 23편을 수십번 외우는 것 왜 외우느냐. 말씀을 외우면 그를 따라 성령이 역사하시거든요. 저는 시편 23편을 하루에도 수십번 외웁니다. 굉장히 마음이 은혜로워지는 것은 성령이 운행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성령이 아~ 부족함이 없게 해야 되겠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성령이 내 말의 입술의 고백을 들으면 그대로 역사하거든.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성령이 아~ 주님이 십자가와 막대기로 안위해야 되겠다. 지켜주시니 해를 받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가 있는데 내가 이것을 고백하면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이 진수성찬을 차려서 먹게 해주시고 원수 보고 용용 죽겠지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리고 원수가 있는 앞에서 머리에 기름을 발라 일을 성공하고 축복을 받아서 잔이 넘치게 행복하게 만들어 주신다. 입술의 고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말씀을 입술로 하루에 몇 번이라도 고백하면 성령이 계속해서 운행하시기 때문에 여러분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말을 안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을 보고 시편 기자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시 91:2~3) 말을 하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말을 안하고 가만히 하나님 쳐다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나는 나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할 일 없네? 가만히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성령이 상관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입술로 고백해야 돼요.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주는 나의 피난처요. 성령이 피난처를 만드신 것입니다.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그러니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말씀대로 여러분이 매일매일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구만리장천 멀리 계시고 2천년 전에 4천년 전의 말씀이 아니라 오늘 현재 이 자리에 나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반드시 입술로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운행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시인을 하면 하나님 성령이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감사와 찬송을 하고 살아야 해요.

히브리서 13장 15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우리가 이런 은혜를 받았으니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결론>
첫 아담이 하나님의 안식을 거부함으로 인류를 엄청난 고난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오늘 예수 안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합니까? 엄청난 고생을 하는 것 조상 잘못 만나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만들어 놓은 안식을 거부하고 이 일과 고통으로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어요. 새로운 조상, 마지막 조상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새로운 안식을 이루어 놓으셨으니 옛 조상 원망하지 말고 새조상 믿고 새로 태어나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새로운 안식을 주셨습니다. 이를 거부하면 멸망 받지요. 갈 길이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구원 못 받으니까. 내 힘으로 구원 못받을 뿐 아니라 구원받고 난 다음에 이룬 안식으로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받고 살 수 있으니까요.

정말 예수님 안에서 얼씨구나 절씨구나 춤추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살아야 될 것은 주님이 다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쓸데없는 여러분 걱정, 근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께서 요사이 이마에 땀을 흘리고 고생을 하는 것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가지는 것도 쓸데없는 불안 초조인 것입니다. 병들어 고생하는 것조차도 쓸데없는 것입니다. 왜, 주님이 다 이루어 놓으신 것 우리가 안믿기 때문에 못 누리는 것입니다. 다 주님이 예비해 놓은 것 다 가지고 가라해도. 아니요, 안가져갑니다. 내가 스스로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넘어지고 자빠지고 고생하는 것입니다.

디엘 무디 목사님이 늘 하던 이야기가 기억이 납니다. 자기 딸을 데리고 얼음판을 걸어가는데 아버지가 손을 딱 잡고 있으니까 디엘 무디 목사님은 키가 크고 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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