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
1. 할례의 성경적 기원
1) 할례의 용어
할례는 히브리말로 “브릿트 밀라”, 헬라어로는 “페리토메”peritome라고 한다. 영어의 circumcision은 'cut around'의 뜻을 가진 라틴어 “키르쿰키시오”(circumcisio)에서 온 말이다. 히브리어 “브릿트”는 계약(언약)이란 뜻이고 “밀라”는 할례를 뜻한다. 그러므로 “언약의 할례”하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2) 할례 의식
할례는 남자 성기 귀두 위에 덮여 있는 표피를 제거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에 대한 상징이었다(창 17:11).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노예를 포함한 그 가정에 속한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셨다. 이 명령을 받을 시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였고 그 아들 이스마엘은 13세때 였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남자들은 이 언약 의식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은밀한 표식을 몸에 가지게 되었다. 이 의식은 엄격히 지키도록 명령된 외적 의식이었다(창 17:12; 출 4:24; 수 5:2).
할례는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 실시하도록 규정되었다(창 17:12, 24-25; 레 12:3). 남자 아이를 낳은 여인은 7일 동안 부정하였으므로 하나님은 8일째 되는 날을 할례일로 정하셨다(레 12:2). 8은 성경에서 부활과 새 질서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이 날은 안식일일 경우에도 지켜야 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요 7:22-23; 빌 3:5). 심지어 대 속죄일(욤 키푸르, 유대력 제 칠월 십일)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이날 행해야 하는 의식이었다. 할례 예식에는 유대인 공동체 성인 10명(회당 설립에 필요한 최소 인원) 이상이 모여서 시행한다. 따라서 아이의 부모는 할례 일에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을 초청하게 된다.
할례는 가정이나 회당 또는 병원에서 행해지는 데, 전날 밤에 아버지는 밤새 성경을 읽으면서 아들을 사탄으로부터 지킨다. 할례 일에 하객들은 일찌감치 와서 축하 파티를 열며 덕담을 나누며 기다린다. 이를 “샬롬 자코르”라 한다. 시간이 되어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하객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서면 하객들은 모두 일어서서 “환영합니다.”하고 인사말을 한다. 하객은 할례가 끝날 때까지 모두 선채로 기다려야 한다.
할례는 과거에는 아버지가 직접 행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불가피한 경우에는 어머니도 참여하였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장남의 할례를 시행한 것이 그 보기이다(출 4:25-26). 이후 후기 유대 사회로 오면서 정통파 유대인인 “모헬”이라고 통칭되는 특별히 훈련을 받은 할례전문 종교의식 집행자에 의하여 이 의식이 집행되기 시작했다. 이때 어머니와 하객들은 다른 방에 서서 기다린다. 모헬은 할례 시술을 하면서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린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레위기 17:11)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할례가 실시되는 방에는 “엘리야의 의자”라 불리는 빈 의자를 하나 준비한다. 이것은 “언약천사”라고 불리며 아이들의 보호자로 알려진 선지자 엘리아가 와서 앉도록 하기 위한 자리이다. “모헬”은 할례를 실시하기 전에 “나의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천지만물의 주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립니다. 당신은 율법으로 우리를 신성하게 하셨고, 우리들에게 할례의 의식을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이제 행할 준비가 되었으니 행합니다”라고 먼저 기도를 한 후 할례 시술에 들어간다. 할례는 비교적 간단히 끝난다.
할례를 마치면 “모헬”은 포도주를 한잔 따르고 축원하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하객들에게 할례가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알리면, 하객들은 “이제 이 아이가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인도된 것처럼, 그 아이를 하나님께서 율법의 공부와 결혼과 좋은 행실의 사람이 되게 인도 하시기를 기도”한다. 할례를 마친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기고 이어 간단한 축하 잔치가 벌어진다. 잔치 음식에는 생선과 단 과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생선은 많은 자식의 출산을, 단 과자는 아이의 장래가 평탄할 것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 당시 아기는 할례 받는 날 그 이름이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눅 1:59, 요한; 눅 2:21, 예수).
3) 할례의 의미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맞은 언약은 세 가지로 나타나는 데 첫째 안식일 언약(출 31:16-17= 시간적 언약)이요 둘째 무지개 언약(창 9:12-15= 공간적, 자연적 언약), 셋째 할례 언약(창 17:10-14= 육체적, 영적 언약)이다.
성경은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이것(할례)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라'(11절)고 선언하였고, 13절에서 "모든 사람이 다 할례를 받아야 할지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하였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언약의 표시로 이스라엘 백성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었다. 할례는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라!"는 징표이며, 상징이었고, 또한 표시(mark)였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명서였다. 할례는 옛 사람이 죽고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예식이며 증거였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확실한 표시였다. 따라서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는 거룩한 성에 들어갈 수 없었다(사 52:1).
2. 성경 밖 할례 풍습
1) 성경 밖의 할례
할례는 성서 시대 이미 이스라엘뿐 아니라 고대 근동 셈족과 함족들에게 광범위하게 행하여지고 있었다. 애굽, 미디안, 암몬, 에돔, 모압과 페니키아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된 관습이었다(참조, 렘 9:26). 그래서 성경 밖 사람들은 할례의 기원을 바벨론 땅 칼데아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쪽의 바벨론과 앗수르와 서쪽의 블레셋은 일반적으로 할례를 행치 않던 민족이었다(삿 14:3; 15:18).
앞에서도 언급했듯 성경적으로 본다면(창 17장)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 표시로서 아브라함이 99세, 그 아들 이스마엘이 13세 때 일가(一家)의 남성이 할례를 했다고 되어 있으므로 유대인 외의 민족들에게도 할례 예식이 전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는 나그네나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한 할례의 은총이 주어졌음을 언급하고 있다(출 12:48; 민 9:14). 이것은 구속 은혜가 단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범우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할례는 그리스도를 향한 영적 예표(모형)였다.
세상 고고학에서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할례가 시행된다는 점과 대체로 금속제보다 돌로 만든 작은 칼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습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유럽어계 ·몽골어계 ·우랄어계의 민족 사이에는 잘 보이지 않는 특성이다.
오늘날 성경 밖 할례는 여성의 음핵 또는 소음순(小陰脣)의 절개도 포함한다. 현재도 아프리카와 일부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이와 같은 잔인한 의식은 여성 인권 차원에서 아주 큰 문제가 되어 있다. 무함마드는 강제적 여성 할례를 제정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그릇된 근본주의 이슬람교도들이나 정령 숭배 사상의 풍습을 가진 일부 야만적 족속들에게서 보이는 비윤리적 풍습이다.
할례가 전통적인 의식으로서 이른바 ‘통과의례(通過儀禮)’로 존재하는 곳에서는 주로 사춘기 전이나 사춘기에 시행하고 있으나, 아랍 민족처럼 결혼 직전에 실시하는 곳도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BC 4000년에 이미 존재했다고 하며, 남자는 보통 6∼12세에 할례를 받았다. 이슬람교도 ·유대인 ·에티오피아인이나 약간의 다른 민족은 출생 직후에 행하였다.
2) 성경 밖 할례의 목적과 의미
할례의 목적에 대해 성경에서 해답을 찾지 않는 경우 수많은 설이 등장한다. 신들에 대한 피의 제물이라는 공희설(供犧說)과 그 밖에 고통을 견디는 수단, 결혼 준비, 성기의 신성화, 성교의 위험에 대한 상징적 인지(認知), 위생상의 수단, 상징적인 거세(去勢), 혹은 생명을 준 신에게 남성을 보상하기 위해 바치는 희생이라고 하는 설 등이다. 미개사회에서 할례는 성년식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며,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성년식에서는 모든 부족이 할례를 하는 것은 아니며 문신(文身)이나 이빨을 빼는 것으로 대신하는 부족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의 어느 한 가지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3. 할례의 위생상 효과
1) 역사적 해석
할례의 위생상 효과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기원전 5세기 고대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os, BC 484?~BC 425?)였다.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했던 그는 애굽인들의 할례 행위에 대해 개인의 건강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 왕조의 고대 무덤에서는 그 할례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헤로도투스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 할례의 방법을 유대인과 시리아인에게 전수하였다고 보았다. 이삭의 형 이스마엘이 일찍이 할례를 받고 아버지 아브라함을 떠나 중동 광야를 다녔으므로 성경적으로도 그 말이 그리 잘못된 묘사로 보이지는 않는다.
2) 위생상 효과가 있는가(현대적 해석)
1935년 담(H. Dam)은 닭의 출혈을 방지하는 유효한 음식물 성분을 발견하고 비타민 K라 하였다(히브리어로 피가 'dam'<창 4:10>이라는 데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비타민 K는 기름에 용해되는 지용성 비타민의 하나로 빛과 알칼리에는 불안정하고 열에는 강하며 간에서 프로트롬빈의 생성을 도와, 혈액의 응고 작용을 촉진하여 출혈을 막아 준다. 비타민 K가 혈액응고에 필수적인 비타민으로 항출혈성 비타민(antihekdcnorrhagic vitamin)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비타민 K와 혈액응고의 관계를 규명한 덴마크 학자는 '응고'의 덴마크 철자인 'Koagulation'의 첫 자를 따서 비타민 K라고 명명하였다.
비타민 K는 박테리아에 의해 인체의 소화관 내에서 합성되어 간에 의한 프로트롬빈 합성에 관여한다. 비타민 K는 필요량이 적어 보통 정상성인은 결핍증이 거의 유발되지 않고 박테리아에 의해 인체의 소화관 내에서 자동 합성되므로 필요하지 않으나 신생아의 장출혈 등에는 현저한 효과가 있다. 갓난 아기는 세균에 오염될 기간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갑자기 상처가 심하면 비타민 K와 프로트롬빈 부족으로 고통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이 혈액응고(血液凝固, blood coagulation) 과정은 아주 복잡한 과정이다. 이 과정을 연구한 스칸질로(Nathan Scanzillo)는 프로트롬빈의 양이 생후 8일이 되면 최고조에 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논문을 썼다. 즉 이때가 가장 할례에 좋은 날인 것이다. 프로트롬빈 양은 생후 3일이 되면 30%, 8일째는 110%가 되었다가 그 후로는 100%를 유지하였다. 출혈을 피하기 가장 좋은 날이 8일 째였다.
유대 여자들은 자궁경부암이 다른 민족 여자들보다 8.4% 낮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치구균(恥垢菌, Mycobacterium smegmatis)은 외부 비뇨생식기의 요도관에 기생한다. 이것은 할례 받지 않은 남자들에게 증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 세균이 여자들에게 옮겨가면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 위생 상태가 좋아진 지금은 할례 받지 않아도 별 탈이 없으나 물이 부족한 과거 아브라함 시대나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는 문제가 되었을 수 있다.
4. 할례의 초대 교회 논쟁
1) 할례 논쟁의 발단
할례 문제는 교회사 최초의 중요한 문제였다. 사도행전을 보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개종자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이들의 할례 문제가 대두(행 10:15)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유대 그리스도인들처럼 이방의 그리스도인들도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 받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안디옥 교회에서 촉발된 그리스도인들끼리의 다툼과 변론은 교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교리적 논쟁이었다(행 15:1-2). 바울과 바나바는 이들과 심각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결국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몇몇 신자들을 예루살렘에 보내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결론을 유도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초대 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와 선교사들이었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 바울, 바나바 등이 모두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려고 적극 나서게 됨을 보게 된다.
2) 할례 문제에 대한 최초 그리스도교 총회의 결론(행 15장)과 사도 바울의 입장
총회를 통해 바울이 이 문제에 대해 증거하고 당시 지도자였던 베드로와 야고보가 이방인의 할례 문제를 정리하였다(행 15:1-29). 사도 바울이 볼 때 은혜 시대에 할례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롬 4:10,11).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후에 할례를 받았다(롬 4:11). 그래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지 않고도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모든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롬 4:11). 즉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할례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일 뿐 아니라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이전 가졌던 믿음을 쫓아 사는 사람들의 조상도 된다고 역설한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심으로 죄인들이 의롭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본질이 드러났다(갈 5:6). 따라서 초대 예루살렘 그리스도 총회나 사도 바울은 어떤 신자도 할례를 받도록 강요하지 않았다(행 15:3-21; 갈 2:3). 표면적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이제 할례는 오직 마음에 해야 한다(롬 2:28-29). 따라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람의 손으로 베푼 할례가 아니라 육적인 죄의 몸을 벗어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자들이라고 단언하였다(골 2:11). 이처럼 할례의 언약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신약에서 완성되어, 참 할례를 받은 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다(빌 3:3).
3)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할례한 이유는?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육체적 할례를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디모데를 할례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디모데 할례는 사도 바울의 신앙적 입장과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으나 아버지는 유대인이 아닌 헬라인이었다. 하지만 디모데는 유대인 가운데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디모데를 유대인과 같이 여겨 할례를 실시하였다(행 16:3). 할례를 받든 안 받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나 베드로와 달리 무할례자들에게 복음 전할 자로 부름 받은 바울은 혹시라도 믿음 약한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오해함으로 인해 생길지 모르는 복음의 괜한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복음을 향한 사도 바울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이방인이었던 디도에 대해서는 끝까지 할례를 거절하도록 함으로써 할례가 결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본보기로 삼은 것이 그것을 증거한다(갈 2:1-3).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당신들이 할례를 받는 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거라고 경고하였다(갈 5:2). 즉 유대인 디모데처럼 할례를 받든 이방인 디도처럼 할례를 안 받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갈 6:15). 사도 바울에게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5. 할례의 현대적 의미와 적용
1)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가 더욱 중요하다(롬 2:29)
바울이 볼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할례가 아닌 믿음이 언약의 근거였다(롬 4:9-12).예레미야도 할례 받은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렘 4:4). 그러므로 신자는 이제 육체적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아 정결해져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소명을 다해야 한다(롬 2:29). 세례는 할례를 대신하고 있으며(골 2:8-15) 바울과 히브리서 저자도 할례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의식적 징표가 하나님 언약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제는 할례보다 새 언약의 징표인 떡과 잔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고전 11:25).
2) 할례의 위생상 효과에 대해 너무 과장 되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할례의 본 목적은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님과 믿는 자녀의 언약의 관계이다. 다시 말하면 구속적 은총과 관련된다. 자연적 은총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것도 할례의 위생상 효과는 지극히 작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위생상 극히 중요했다면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들에게 계속적으로 할례를 요구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위생상 효과를 그리 강조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가나안 지역의 고대 풍토에서는 약간의 위생적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할례 받지 않아도 위생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수천 년 할례 없이 살아온 우리 민족이 할례에 익숙했던 중동과 아프리카 사람들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근본주의자들처럼 할례의 위생상 효과를 너무 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3) 할례보다 중요한 새 언약
지금은 할례의 시대가 아니다. 은혜의 시대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율법을 완성하셨다. 마치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처럼 그리스도가 새 언약의 주인이 되셨다. 할례 언약이 영적으로든 위생상으로든 신약 시대에도 중요하다면 그리스도께서 한번쯤은 말씀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 새 언약을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할례의 율법이 아닌 사랑의 율례인 성례를 제정하셨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의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며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미 계시 하였던 그 새 언약(렘 31:31)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고 할례의 참 뜻을 기려야 한다.
* 이 글은 조덕영 박사의 ‘창조신학연구소’ 홈페이지(www.kictnet.net)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조덕영 박사는
환경화학 공학과 조직신학을 전공한 공학도이자 신학자다. 한국창조과학회 대표간사 겸 창조지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여러 신학교에서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는 창조론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창조신학연구소’는 창조론과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로 구성돼 목회자 및 학자들에게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와 과학’ 등 20여 권의 역저서가 있으며, 다방면의 창조론 이슈들을 다루는 ‘창조론 오픈포럼’을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