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살인사건, ‘악령’ 숭배 때문에 잔혹 범죄까지…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오컬트’ 문화 원인과 대안] “교회가 바른 영성 제시해야”

▲아직도 관련 흔적이 남아있는 신촌 한 공원의 사건 현장. 조금만 눈을 들면 저 멀리 교회와 미션스쿨 연세대, 이화여대 등이 보인다. ⓒ이대웅 기자

▲아직도 관련 흔적이 남아있는 신촌 한 공원의 사건 현장. 조금만 눈을 들면 저 멀리 교회와 미션스쿨 연세대, 이화여대 등이 보인다. ⓒ이대웅 기자

대낮 서울 한복판에서 잔인한 살인극이 벌어졌다. 신촌 창천동에서 10대들이 대학생을 상대를 흉기로 40차례나 찌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유는 ‘사령(死靈) 카페’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일명 ‘오컬트’(Occult·악마 등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 행태)라 불리는 이런 문화가 이번 살인사건의 핵심에 있다.

피의자들은 평소 사령 카페를 중심으로 깊은 유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죽은 자의 영혼과 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사이버 세상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공유했다. 피해자는 이런 것을 비판하다 변을 당했다. 기독교 신자이기도 했던 피해자는 헤어진 전 여자친구가 사령 카페에 빠진 것을 알고 그녀를 빼내려다 카페 회원들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사이버 중독이 불러온 참극이라고 입을 모은다. SNS(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인터넷에 젖은 청소년들이 온라인상의 갈등을 현실로 옮겨와 이런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 온갖 매체들에 정신을 빼앗긴 현실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영성 연구가인 배본철 교수(성결대)는 “인터넷이나 TV는 특히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는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요즘 이런 매체들에서 엑소시즘 등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며 “이런 것들이 분별력이 약한 청소년들에게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져 일종의 모방적 차원의 범죄가 저질러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배 교수는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물질사회의 반대급부로 나타나는 ‘정신적 공허함’에 있다고 분석했다. 물질 만능의 사회일수록 인간의 영혼은 피폐해지는데, 이런 영적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방법으로 초자연적 현상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현대인들이 초자연적 현상에 관심을 가지지만 영적인 부분에선 상당히 무지하다”며 “이런 부분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악한 영들의 세계다. 이것은 하나의 종교적 신념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데, 살인조차 이런 그릇된 신념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 죽은 자가 귀신이 된다는 매우 제례적인 관념이 많이 퍼져 있다”고 설명한 배 교수는 “어떤 간단한 방법만 알면 귀신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가지만, 그 위험성은 대단히 크다”면서 “교회가 이런 잘못된 귀신 관념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그는 “지난 19세기경 미국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사회 전반에 이런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며 “마찬가지로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한국교회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정신적 차원의 공급을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교회가 제대로 된 영성을 소개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한 부흥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서운 집단 결속력이 문제의 참극 불러왔을 수도

상담·중독 전문가인 김충렬 교수(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는 “사이비나 이단의 특성 중 하나는 결속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라며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인간은 어딘가에 헌신하게 돼 있는 존재인데, 좋은 곳에 헌신하지 못하면 나쁜 곳으로 빠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이 악령숭배와 관련돼 있다면, 이성을 뛰어넘어 인간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본능적 차원인 어딘가에 헌신하고 싶은 힘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런 집단에 빠져드는 것도 일종의 ‘신앙 중독’”이라며 “중독은 심리적 결핍이기 때문에, 그런 집단은 인간적인 끈끈함으로 결속력을 강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오컬트 추종자들에게는 심리적 에너지의 결핍이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애인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결핍보다는 성장 과정에서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 데서 오는 허전함이나 결핍이 존재했을 수 있다는 것.

김충렬 교수는 “결핍 상태에서 그런 집단에 들어갈 경우 굉장히 인정을 받고 결속력이 강해져 일시적으로 충족이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본인 스스로 나오고 싶지 않아지는 것”이라며 “마치 우울증 환자들이 시커먼 동굴 속에서 나와야 하는 걸 알지만 오래 있던 곳이라 익숙해져 자꾸 기어들어가는 모습과도 같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그러한 결핍의 충족은 일시적이고, 그 단체에서 요구하는 충성을 해야 하고 실적을 올려야 다시 인정받을 수 있는데, 오히려 데리고 나가려 하는 행위는 집단 내에서 용납할 수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김 교수는 “끈끈한 사이에서 많지도 않은 구성원을 빼내려 했으니, ‘원수’가 되고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러나 여자친구를 빼내려다 죽였다는 건 아주 단순한 분석이고 내막은 아마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봐야 한다”고도 했다. 오컬트 관련 문제가 아니라, 숨진 김씨와 전 여자친구 박모 씨, 가해자들 간의 삼각관계 가능성도 있고, 우발적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가정 파괴와 지나친 경쟁주의의 단면” 의견도

한편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지나친 경쟁주의와 가정의 파괴가 낳은 비극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교회다움 민걸 목사는 “1점이라도 더 따야 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절벽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며 “경쟁에서 낙오한 학생들이 그들의 존재 가치를 찾고 싶을 때 종종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영적 세계”라고 분석했다.

민 목사는 “이런 청소년들은 가진 것도 없고 약한 존재이기에 속임의 영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며 “후에는 그 영들의 종이 되어 무엇이든 저지르게 된다. 이번 살인 사건의 피의자들인 청소년들도 어찌보면 이 사회의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그럼에도 교회 내조차 사회의 경쟁 구도가 그대로 들어와 있는 게 현실”이라며 “교회가 보다 영혼을 보듬고 ‘잃은 양’을 찾는 심정으로 사회 속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사이비 종교적 성격이 짙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표창원 교수(경찰대)는 “자신들의 믿음에 대해 무조건적인 결속력을 보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강한 반감을 갖는 것이 사이비 종교와 놀랄만큼 유사하다”고 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의견을 내놓았다.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는 “스마트폰 메신저나 인터넷 카페 등에서 시작된 갈등을 마치 자신들에게 부여된 과업처럼 여기고 현실로 연결지은 사례”며 “온라인 인간관계에 빠져 현실 감각을 잃고 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사이버상 대화를 현실로 착각해 중독의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송원영 교수(건양대 심리상담치료학과)는 “온라인 활동에 열중하는 학생일수록 깊은 외로움과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범행이 16세에 나타났지만 문제 요인은 이미 초등학교 3-4학년부터 쌓여왔다고 봐야 하므로, 어린 나이에 친구 없이 인터넷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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