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2년 5월 6일
본문: 사무엘상 3:1~4:1(상반)
설교: 석기현 목사
제목: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인기 있는 연예프로인 '무한도전'에서 언젠가 '무한도전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제목의 방송이 있었습니다.
무한도전 멤버 7명의 '수학능력(修學能力)' 즉 대학교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테스트해 보는 것이었는데, 여러 가지 분야의 퀴즈 문제들을 가지고 우선 대학생 대표 7명과 겨루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라고 자타공인하고 있는 '무도 멤버'의 지적 수준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대결이었고 그 결과는 당연히 참패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그 다음에는 고등학생 대표, 그리고 중학생 대표들과의 대진으로 이어졌는데 역시 무한도전 팀은 그들의 상대도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도 지금 한창 '열공'하고 있는 그 중고등학생들과 맞붙으면 똑같은 창피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고 초등학교 5학년, 그리고 2학년들에게까지 계속 연패를 당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프로를 재미있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設定)'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하여튼 그 결과 '무한도전 수학능력시험'은 이제 유치원생들과의 대결로까지 내려가게 되었는데, 물론 상식적으로는 무한도전 팀이 이것만큼은 결코 지려 해야 질 수 없는 대결 같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유치원생들이 무슨 '특화 교육' 즉 영어면 영어, 한자면 한자 등 각자의 '전공 분야'에 대하여 유치원 때부터 특별한 교육을 받은 어린이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결과 역시 무한도전 팀의 어처구니없는 충격적인 참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대신 보는 사람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방송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어린이들이란 무슨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어른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외국어를 원어민처럼 발음할 수 있는 것은 이미 혀가 굳어 버린 어른은 결코 따라갈 수 없으며,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 역시 부모보다 월등히 우수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어른보다 정말 잘하는 것, 제일 잘하는 것은 바로 영적 생활에서 나타나는데, 그것이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저 유명한 사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이 어린이들이 영적으로 우리 어른들에 비해서 조금도 못지않고 오히려 더 잘하는 아주 중요한 것 두 가지가 무엇인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새겨 보고자 합니다.
1. 어린이는 하나님 말씀을 순수하게 듣는 일을 어른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부터 10절의 말씀에 기록하기를 "1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이 사무엘이 여호와를 섬길 때"란 것이 과연 사무엘이 얼마나 어릴 때인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어린 사무엘의 그림은 갓 걸음마를 시작할 만한 아주 어린 아이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성전의 공적 직무를 수행할 만한 성년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통상 12세 이상은 되었어야 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사무엘이 막 젖을 떼었을 때에 한나가 그를 성전에 데려가서 하나님께 바쳤고 2장 11절에 보면 바로 그때부터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고 오늘 본문 1절과 똑같은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사무엘은 예외적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성전의 일을 수종들었던 것이 틀림없고, 따라서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꼭 열두 살 이후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반면에 사무엘의 보호자요 스승이요 선배 목회자와 같았던 엘리 제사장에게는 그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제사장으로 섬기던 시대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이상"이라는 것은 꿈이나 환상 등을 통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가리킵니다.
아모스 8장 11절과 12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그것을 들으려고 달려 왕래하여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기갈"이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가 희귀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저주 상태에 있음을 가리킵니다.
엘리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했어야 할 것인데 그에게는 그 중요한 계시가 전혀 내려오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희귀한 여호와의 말씀, 그 보이지 않던 이상이 뜻밖에도 아이 사무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시점은 "하나님의 등불" 즉 성소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때라고 했으므로 이른 새벽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은 "자기 처소" 즉 성막 주변에 설치된 제사장의 처소에서 자고 있었고, 반면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고 했는데 이 말은 사무엘이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지성소 안에서 잤다는 뜻이 아니라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곧 달려갈 수 있도록 성막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잤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여튼 그 어느 밤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순진한 어린 사무엘은 그 소리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소리인 줄 알고 즉시 그에게 달려갔습니다.
나중에 7절에서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고 밝히고 있듯이, 사무엘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는 있었지만 아직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을 만큼 자라지는 못했을 정도로 어린 나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에게 달려간 사무엘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무슨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라는 자세로 그 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이미 영력이 둔화된 상태였는지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소리인 줄을 두 번째까지도 깨닫지 못하다가 세 번째 가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똑같은 일이 한 번 더 일어나면 이번에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요령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 번째로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셨을 때, 어린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에게 배운 그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적극적인 수용과 순종의 자세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지금 참으로 놀랍고도 기가 막히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사회, 하나님의 성민으로 자처하던 그 백성들 전체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니, 제사장마저도 하나님의 계시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어둡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던", 아직 신앙고백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어렸던 아이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와 주셨고 불러 주셨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에 있어서는, 그 어린 사무엘이 모든 이스라엘의 어른 신자들보다도, 신앙심도 없고 불충했던 제사장들보다도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들을 귀가 없는 것'과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인간이 저주 상태에 있는 죄인임을 극명하게 반영해 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다 이와 같이 완전히 타락한 상태에 있는 까닭에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그렇게도 싫어하며 자기를 전도하려는 말 듣기를 그렇게도 귀찮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께서 택하신 사람에게는 성령의 감화감동을 통하여 그 말씀이 들리게 하시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게 만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처럼 말씀을 듣게 되는 은혜를 누릴 줄 아는 면에 있어서는 어린이라고 해서 어른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어른보다도 어린이들이 훨씬 더 잘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미 온갖 죄들을 다 지어보고 그 인생이 닳을 대로 닳은 어른들은 전도를 받아도 자기 머릿속에서 먼저 계산부터 해 보기 마련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란 것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듯이, 어른들은 복음을 듣고도 그것이 자기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인지, 자기 경험과 논리에 맞는지부터 먼저 따지고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그런 영적 선입견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기억하고 그대로 순수하게 믿는 것입니다.
경향교회가 매주일 영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주일학교를 비롯하여, 주중에도 어린이 선교원을 운영하고 주말에는 어린이 새소식반을 백 수십 곳에서 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른들의 귀는 복음에 대하여 꽉 막혀 있고 어른들의 마음 문은 전도에 대하여 단단히 잠겨 있지만 이 어린이들의 귀와 마음은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천당과 지옥이 있다.'라고 가르쳐 주면 곧이곧대로 믿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어른들은 '정말일까?'하고 일단 의심부터 할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구원을 받는다.'라고 가르쳐 주면 아무 가감 없이 그대로 받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영생구원 같은 것보다 일단 지금 당장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면 더 좋을 텐데.'하고 계산부터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와 능력에 있어서는 어린이가 어른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월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택자를 부르실 때 절대로 어른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도 부르고 계시며 오히려 어린이들을 어른들보다 더 많이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린이야말로 실상 어른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일 줄 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각자의 가정에서와 또한 교회를 통하여 이 어린이들을 더욱 '성경 말씀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는 부모와 교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어린이는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도 어른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11절 이하 18절까지의 말씀에 "1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15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16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가로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7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18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라고 기록했습니다.
당신의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이고 선 어린 사무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라고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모스 3장 7절에서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장차 행하실 일을 당신의 택하신 선지자를 통하여 반드시 먼저 예고해 주신 후에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린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의 어른들과 제사장까지 제치고서 바로 그런 특권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란 바로 엘리 제사장의 가문에 내리실 심판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경고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 회개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 엘리 제사장 자신이 "아는 죄악"에 대한 벌과 그 아들들이 "자청한 저주"가 임하게 된 것이며, 그것은 이제는 결코 돌이킬 길 없이 확정된 사실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루게 될" 순서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회개만 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경고하시며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거부하면 그때는 정말 완전 끝장입니다.
예수님을 믿도록 권유하는 성령을 끝내 거부하고 자기 죄를 용서해 줄 십자가를 끝까지 모독하면, 그 죄는 그 어떤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게" 될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은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두 귀가 울린다' 함은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고 충격을 받게 될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사무엘 같은 어린아이가 전달해도 그 강도가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고스란히 그대로 전달되어서 그것을 전해 듣는 어른들로 하여금 충격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에 사무엘은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즉 엘리 제사장이 그 말을 전해 듣게 되면 얼마나 괴로울까 하고 자기가 먼저 걱정하고 고민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 제사장은 어젯밤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과연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불러 놓고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말씀을 하나도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자기에게 말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노라"고 어린 사무엘에게 거의 위협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제사장이면서도 자기는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이제 와서야 스스로 불안과 초조함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자기가 들었던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사무엘은 어린이들만의 특유한 기억력을 발휘하여 단어 하나, 말씨 하나도 바꾸지 아니하고 그대로 엘리 제사장에게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은 바로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엘리 제사장 가문이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는 무서운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그대로 엘리 제사장에게 전달했던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 말을 듣고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고 한 것은, 회개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체념한 마음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린이의 입술은 그 귀를 통해 들은 대로 정확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잘 전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어린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도에 있어서도 더 없이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학교와 선교원과 새소식반을 통하여 어린이들에게 예수 복음을 전하고 교회에 나오도록 가르치면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 있어서도 어른들보다 훨씬 더 잘합니다.
어른 교인들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전도할 때에는 사실 그런 말하기를 쑥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그런 말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어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어른 교인들은 천주교가 이단이라는 사실이나 우리 교회 주변에 어떤 교회가 이단인지를 알고는 있어도 상대방의 체면을 생각해 주느라고 차마 말을 꺼내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다른 친구들은 물론이고 어른들 앞에서도 조금도 거리낌 없이 배운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만 해도 '경향 어린이 선교원'이나 '경향 어린이 새소식반'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자기 부모를 전도해서 온 가족이 함께 등록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 어린 아들이나 딸이 "아빠 엄마도 저랑 같이 경향교회에 나가요."라고 하는 말은 아이가 그냥 철없이 하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그 아이가 혼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그 어린 자녀의 마음속에 먼저 들려주신 소리입니다.
그 어린이의 말은 바로 주님께서 그 부모의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까닭에 그 자녀들의 밝은 귀와 정확한 입술을 통하여 전달해 주시는 실로 소중하고도 특별한 '생명의 초청'인 것입니다.
우리 경향교회의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아빠 엄마,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대요."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이상한 세뇌교육'을 받은 어린이의 소리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구역장이나 심방장들이 전도할 때도 잘 하지 않을 말, 어쩌면 우리 교회의 교역자들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의 면전에서는 좀 거북해 할지도 모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어린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실로 깨끗한 마음과 순전한 양심을 간직하고 있는 까닭에 하나님께서 경고해 주시는 '두려운 경고'까지도 조금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전파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어린이의 전도가 어른에게 마치 '두 귀가 울리는 듯한' 충격을 주고 그 얼굴이 새빨개지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바로 하나님께서 장차 반드시 행하실 당신의 최후 심판을 그 어린이의 100퍼센트 순수한 양심을 통해서 '일점일획'까지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순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이야말로 어른들의 귀에 막혀 있는 복음의 돌파구요 아파트의 철문에 막혀 있는 전도의 활로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우리 원로목사님의 저 유명한 말씀, "닫힌 아파트 문을 열어 주는 열쇠는 바로 그 집의 아이에게 있다."라는 기가 막히게 멋있는 전략을 따라서 지금까지 무수한 전도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어린이들이야말로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욱 분명하고도 담대하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경향교회의 주일학교와 선교원과 새소식반을 통하여 이 소중한 '전도의 열쇠'들을 더 많이 발견하고 활용하여 '너와 네 집이 함께 구원을 얻으리라'는 구령의 역사들을 더 많이 이루어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택시를 타면 앞 유리창 쪽에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와 함께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의 그림이 있는 작은 액자 따위가 흔히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 사무엘의 그림은 하루 종일 택시를 운전할 때 아무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운전기사나 그 가족들이 기원하는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린 사무엘'하면 다들 기도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사무엘이 어린 시절에 정말 남달리 탁월하게 보여 준 것, 어린이였으면서도 어른보다 오히려 훨씬 잘 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바로 3장 19절부터 4장 1절 상반절에 기록하기를 "19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21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1a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은 사무엘은 결국 구약에서도 손꼽히는 위대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무엘을 통해 선포해 주신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시며' 온 이스라엘 백성 역시 그를 '여호와께서 세우신 위대하고도 참된 선지자'로 인정하는 인물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어른이 된 후에 "실로"의 성소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자기를 나타내시는 말씀'을 계속 듣고 "온 이스라엘에 전파"하는 사역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게 되었지만, 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일'은 그가 이미 어릴 때부터 시작했으며 익숙했던 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귀가 열려 예수님의 이름을 들을 때에 그 어린 영혼이 감동되고 믿게 되고 구원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벌어집니다.
그 어린이들의 입이 열려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게 될 때 그 순전한 심령을 통한 정확한 전도로 인하여 온 가족이 함께 구원받게 되는 실로 위대한 사건들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로 '경향교회의 미래는 바로 주일학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며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이 어두운 말세에도 경향의 주일학교와 각 가정을 통하여 이처럼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자기를 어린이에게 나타내시는' 역사가 계속 이어짐으로써 온 가족이 함께 예수님을 믿는 구령의 축복과 우리 경향교회를 통한 복음전파가 더욱 왕성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