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피임·출산, ‘3개의 보호막’이 모두 해체됐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기독교 학자들, 사후피임약 남용 심각성 우려

▲사후피임약. 현재 응급시에만 사용하게 돼 있으나, 최근 경실련 등이 일반의약품 전환을 요구하면서 효능과 관련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사후피임약. 현재 응급시에만 사용하게 돼 있으나, 최근 경실련 등이 일반의약품 전환을 요구하면서 효능과 관련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사후피임약,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에서 22일 오후 7시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소망관에서 낙태반대운동연합(낙반연)과 함께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는 이승구 교수(협회 사무총장) 사회로 강석범 박사(국립암센터)가 ‘응급피임약과 기독교 생명윤리’를, 김현철 회장(낙반연)이 ‘응급피임약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각각의 논평을 이상원 교수(총신대)가 맡았다.

발제자들은 한결같이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에 반대했다. 응급피임약 노레보정은 지난 2002년 1월 전문의약품으로 국내에 시판되기 시작했으며, 지난해 대한약사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일반의약품 전환을 요구하면서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박재형 협회 상임공동대표는 “인간생명의 시작이 수정란임을 인정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할 때 가장 문제되는 것이 바로 낙태”라며 “최근 등장한 사후피임약이 과연 시판될 정도로 안전한지, 자유롭게 젊은이들이 복용해도 되는지, 태아의 생명권에 관련이 없는지 등을 따져보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사후피임약 허용된다고 낙태 감소하지 않아”

강석범 박사는 “복지부를 포함한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찬성하는 이들의 주된 논거는 일반의약품 전환에 따라 접근성이 증대돼 낙태율이 감소하리라는 논리”라며 “이러한 생각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하나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의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았다”고 밝혔다. 낙태 감소를 진정 바란다면 청소년과 여성들에게 피임방법의 올바른 이해를 돕는 교육 프로그램에 전력을 다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강 박사는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하는 이유로 “생명으로 존중되고 보호돼야 할 배아가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라며 “이는 무고한 생명의 살해이므로 기독교인들은 응급피임약을 포함한 임신 초기 생명에 대한 모든 위협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남용과 구토·생리불순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거나 무책임하고 문란한 성문화가 확산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설득력도 결여돼 있다고 했다.

강석범 박사는 이러한 논증을 바탕으로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논란을 기회삼아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이 왜 응급피임약을 반대하는지 일깨우고 △이 땅에서 낙태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실천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정부나 사회가 우리에게 악을 선택하도록 요구할 때 거부하는 일 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응급약이 하루 1700팩(연간 59억원)이나 판매되나”

태아의 생명보호 입장에서 응급피임약에 반대한 강 박사에 이어 김현철 회장은 응급피임약 거부가 실제로 여성이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라는 여성권익적 입장에서 발표했다. 김 회장은 “생명창조의 과정에는 남녀 둘다 참여하지만, 생명을 품고 낳는 일은 생리적으로 여성의 몫”이라며 “응급피임약을 복용하는 것도 여성이므로, 성이 개방된 현대사회가 어쩌면 여성의 희생을 더 강요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여성이 자존감을 유지하고 부부의 사랑과 성생활의 기쁨을 누리며, 생명을 귀히 여기기 위해서는 보호막들이 있는데, 그 첫째는 혼전절제”라며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이 지침은 기독교인만 지키고 있다”고 했다. 혼전절제의 가치를 무시하면 두번째 보호막인 ‘책임 있는 피임’을 해야 하고, 이마저 거부한다면 그 결과 임신했을 때 책임지고 출산하는 것이 세번째 보호막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사회는 어느덧 여성을 위한 이 보호막 3개가 모두 해체된 상태라 할 정도로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가 정립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임은 사전에 하는 것이지 사후에 하는 것이 아닌데도 ‘응급피임약’이라는 용어 대신 ‘사후피임약’이라는 단어가 사용돼, 성관계 다음 사후피임약 한 알을 편리한 피임방법으로 착각하고 있다”며 “응급피임약의 주요 기능은 수정된 배아의 엄마 자궁내막 착상을 막는 것으로 초기 낙태약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들은 성욕보다는 남성과의 관계 유지 때문에 허용하지 않느냐”며 “그러나 결과는 대부분 여성에게 아픔을 가져다주는 것이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또 피임 실패율이 25-30%에 달해, 효과를 과신하다 오히려 원치 않는 임신에 이르고 낙태까지 하게 된다며 “응급피임약이 판매되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응급약답게 전문의 진단과 처방, 상담을 거쳐 구입하는 제어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응급피임약은 강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만 사용해야 할 말 그대로 응급약”이라며 “어떻게 응급약이 연간 59억원어치, 62만팩(하루 1700팩)이나 판매될 수 있는가” 라고 반문했다.

김현철 회장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생명의 잉태자인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잃고 피해를 입으며 고통당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으신다”며 우리가 할 일로 ①기독교인에게 분명한 생명원칙을 제시해 응급피임약 사용을 막고 ②모든 교회가 성교육 모범단체가 되도록 훈련하고 지도하며 ③응급피임약이 여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알리고 ④성생활에 대한 책임의 주체를 남자에 초점을 맞추고 피임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상원 교수는 논평을 통해 “두 교수님의 견해처럼 이 문제와 관련해 사전 피임교육이 중요하고, 미혼모 낙태만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주부 낙태를 영구적으로 해결하고 남성의 주도적 책임 감당을 위해 정관수술을 널리 권장해야 한다고 판단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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