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문화아카데미 주최 여해포럼서 논의
오는 12월 대선을 두 달여 앞두고 ‘2012년 한국정치 그리고 교회’를 주제로 대화문화아카데미 주최 여해포럼이 11일 오후 서울 냉천동 감리교신학대학교 100주년기념관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포럼에는 김명혁 목사(한복협 회장),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 김홍우 박사(서울대 명예교수),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등 교계 인사와 학자 30여명이 참석해 교회와 기독교인의 바람직한 정치참여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기현(새누리당)·정세균(민주당) 등 양당을 대표하는 기독 정치인들도 참석해 의견을 개진했다.
“정치가 ‘종교 평화’ 명목 모든 종교 상대화해선 안돼”
“헌법정신만 잘 지켜도 종교간 갈등 충분히 해결 가능”
포럼에서는 먼저 박명수 교수(서울신대)가 ‘다종교사회와 한국 기독교 정치’를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는 존 로크로부터 비롯된 서양의 다종교사회 등장과 정교분리,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정교분리를 각각 살펴본 다음 한국 정치와 교회의 역할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정교분리가 확립됐을 때 그 본래적 의미는 국가가 특정종교에 특정혜택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까지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선교전략적 의미가 강했다”며 “해방 이후에도 정권마다 자신들을 비판하는 기독교인들을 향해 ‘위에 있는 권세에 순종하라’는 정교분리를 이야기하는 등 한국 정치사에서 정교분리는 항상 기존 권력에 의해 주장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한국 기독교는 실제로는 3·1운동과 민주화운동, 친북좌파 척결운동 등 끊임없이 정치에 관여해 왔고, 불교(고려)나 유교(조선) 등 이웃종교들에 비해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됐으며, 다양한 방면에서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는 “해방 이후 기독교는 당시 정부가 할 수 없던 교육·복지·안보 등을 맡으면서 일종의 유사정부 역할을 감당했다”며 “한국 기독교는 대한민국 어떤 종교도 못하는 일들을 했지만, 최근에는 종교갈등이 중요 이슈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박명수 교수는 이러한 오늘날 다종교사회에서 종교간 갈등 해결과 평화를 위한 정치의 역할을 제안했다. 먼저 정치가들은 특정종교에 의존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모습에서 탈피하고, 모든 종교들에게 공평한 법과 제도를 정비해 특정종교에 편향된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 박 교수는 “종교간 갈등을 없애는 가장 중요한 길은 정부의 종교중립 의무 준수”라며 “이를 성실히 한다면 종교간 갈등은 사적 갈등으로 축소되고, 이는 실정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정치가 종교평화라는 이름으로 모든 종교를 상대화시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종교다원주의를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은 세속 정부의 영역을 넘어서며, 종교의 자유는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한 절대 보장할 뿐 아니라 통일과 외교 정책에서도 중요한 가치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공성을 내세워 종립학교나 기독교 사회복지단체들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도 안 된다”며 “정부가 특정종교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문화와 종교의 적절한 구분을 통해 정교분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도 했다.
박 교수는 “종교의 자유 보장, 국교 불인정, 정교분리 등을 통해 우리 헌법은 다종교사회에서 종교간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서로 평화롭게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며 “정치가들이 이런 헌법정신을 기억하면서 종교간 갈등을 피하고 평화를 이룩하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회는 마땅히 정치에 참여해 예언자적 역할 수행을”
“종교 이익 쟁취하려 정치 참여한다면 이익집단 전락”
이후 이원규 교수(감신대)가 ‘한국교회의 정치참여 현실과 과제’를 주제로 발제했다. 이 교수는 “종교는 불가피하게 다양한 형태로 정치에 참여하게 되고, 이는 둘 사이 관계에서 협조나 긴장을 일으키거나 정치에 대한 종교적 입장 차이가 종교집단 사이에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며 종교와 정치제도의 관계, 정치참여 문제에 대한 사회학적 이론을 소개하면서 한국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해 논평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힘이나 영향력 면에서 정치와 종교가 법적·제도적으로 분리돼 있고, 국가는 특정종교 선호 없이 모든 종교의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 사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종교는 정치에 대해 나름대로 입장을 가져 왔고, 같은 종교 내에서도 이는 다른 정치적 태도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정치문제에 있어 불교는 기독교보다 보수적인 경향이 있지만, 기독교 안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전통이 구분돼 왔다”며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대부분 유권자들은 종교를 보고 대통령을 뽑지 않았고, 정치적 성향을 보고 투표했다”고 전했다.
또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 집단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해 왔다고 밝혔다. 보수 집단은 주로 체제에 동조하는 편이었으며, 최근에는 기독교 정당을 만드는 등 종교의 정치화를 시도하는 모습도 드러났다. 반면 진보 집단은 비민주적 정치 상황을 비판하고 이에 도전했으며, 적극 정치에 참여하는 쪽이었다. 그는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책임이 있고, 세상을 바꿔놓을 빛과 소금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마땅히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며 “그러나 이러한 참여 목적은 정치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되고, 올바른 정치가 이뤄지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며 때로는 이를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규 교수는 “한국교회의 정치참여는 도덕성과 공동체성 확립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일일 수 있다”면서도 “기독교가 정당을 만들어 정치를 바꾸자는 것은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그 판에 들어가면 똑같이 부도덕성에 물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정치참여는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신도를 갖고 있다면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기 마련이고, 한국에서도 정치에 미치는 종교의 영향력이 커 하나의 권력집단처럼 이해되고 있다. 그는 “불행하게도 한국 종교들은 정치참여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재정적 지원 보장이나 유리한 법·제도 제정에 대한 압력을 넣는 것인데, 이는 종교를 하나의 이익집단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라고 했다.
이에 맞서 종교는 예언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평등화를 비롯해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문화적 성숙에 기여해야 하며 평화적 민족통일의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원규 교수는 “정치가 만능은 아니지만, 갈등과 대립으로 쪼개진 민심을 추슬러 통합과 조화의 상생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다”며 “한국교회는 우리 정치가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강하게 촉구할 뿐 아니라 교회도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 역할 수행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