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4~13)
<서론>
오늘 저는 “사랑과 징계, 진노와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는 지금 자녀들을 키우는 것보다는 훨씬 무섭게 부모님들이 꾸중도 하시고 징계도 하셨습니다. 학교에 가도 선생님이 아예 큰 대막대기를 들고 교실에 들어와서 숙제를 안해오든지 잘 공부를 안하면 그냥 말씀으로 훈육할 뿐 아니라 바지 걷어 올려! 하고는 멍이 들도록 얻어맞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꾸중과 함께 종아리를 때리던 회초리가 돌이켜 보면 오늘 우리를 만드는데 큰 도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징계를 내리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미웠지만 지금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잘못해도 잘했다고 그냥 머리 쓰다듬어 주고 고개 끄덕끄덕 하는 사람은 책임 회피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았기 때문에 자녀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사랑의 징계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자식이나 제자를 사랑하면 그들의 잘못을 징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 보고 그냥 지나가면 책임 회피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온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한번 손들어봐 주십시오. 과거도 온전하지 못하고 현재도 혼돈 속 가운데 살고 미래도 온전할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건져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려고 하시기 때문에 교육과 함께 반드시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변화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징계 안해요. 징계를 내리면 변화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본론>
1. 사랑의 징계
잠언 13장 24절에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20장 30절에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그러므로 때리는 것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외국인들 앞에 나가서 설교할 때마나 늘 기억나고 고맙게 생각하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그 선생님께 배웠는데 영어 선생님인데 이름을 콩코드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어는 우리 한국어와 달라서 과거, 현재, 미래 시상이 뚜렷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간다면 go인데 과거는 went고 과거분사는 gone입니다. 이것 분명히 안하면 말이 안돼요. 그런데 이 선생님이 언제나 영어를 가르치러 교실에 들어올 때는 몽둥이 하나를 들고 옵니다. 와서 영어를 가르칠 때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를 분명히 분리하지 못하고 영어를 말하면 혹독하게 꾸짖고 몽둥이로 때렸어요. 저도 여러차례 맞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모이면 그 선생을 보고 저것 안 죽냐. 저것 교통 사고로 죽든지 병들어 죽으면 우리가 춤을 추겠다. 그렇게 말을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지독하게 우리를 꾸짖고 때리는 그 세월이 지나고 오늘 제가 이 정도의 영어를 할 수 있고 부흥회를 인도할 수 있는 것은 그 선생 덕분이었습니다. 그 선생에게 배우고 난 다음에 기초가 잡혀서 제가 독학을 하고 고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때 잘못해도 그래. 그래 괜찮다. 적당히 해라. 세월이 흘러가면 그뿐이다. 그랬으면 지금쯤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굉장히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면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고 아들로 받아들이는 자를 성경에는 징계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고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징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로 6절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어떤 채찍을 때리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실 때 육체의 아픔을 통해서 징계할 때가 있습니다. 몸이 병들어서 고통을 당하는데 그 하나님의 징계가 떠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든 자들에게 성경은 야고보서에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리면 회개시키기 위해서 육체의 질병으로 징계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의 고통을 통해서 징계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화를 빼앗아가시고 불안과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 회개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욥기 33장 19절에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환경의 고난도 있는 것입니다. 하던 사업이 안 되고 가정에 시련이 다가오고 신분상 어려운 문제가 다가올 때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오지 않는가 생각해봐야 될 것입니다. 시편 39편 10절로 11절에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그렇게 화려하던 삶이 꽃이 시들 듯이 시들고 잿불 꺼지듯이 꺼져가는 징계를 맞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체의 아픔이나 마음의 고통이나 환경의 고난을 통해서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시키기 위해서 징계하는 것입니다. 그냥 아프라고 징계하지 않습니다. 그와 동시에 징계를 받을 때는 마음에 성령께서 강하게 꾸짖는 음성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올 때는 마음에 꾸짖는 꾸짖음이 없지만 하나님이 징계하실 때는 회개하라고 성령께서 마음에 꾸짖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냥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고통을 가져오지만 하나님은 징계하는 목적이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회개시킨다고 성령께서 말씀해 주시고 순종과 복종을 하도록 경고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만과 오만을 깨드리고 욕심과 탐심을 버리고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회개하러 나오도록 유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로 10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징계의 결과로 우리는 변화 받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로 13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징계를 받고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품어주시고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시므로 마음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징계 받을 때 우리가 자꾸 저항을 하고 변명을 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지 아니하면 점점 더 매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리실 때는 좋아서 때리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하고 변화받기 위해서 때리는 것이므로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의 성령이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변화가 안돼요. 사람은 각오하고 난 다음에 또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만 하면은 그 다음에는 성령이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가 노력한다고 열매 맺는 것 보았습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가지 혼자는 열매를 못 맺어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자연적으로 맺는 것입니다.
중국의 내지 선교에 성공한 허드슨 테일러라는 유명한 선교사가 있는데 그가 크게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내내 복음을 증거해도 한 사람도 구원도 받지 못하고 자기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을 떠나지 못하고 개인의 성결함도 이루지 못하고 믿음도 자라지 않고 복음전도도 않되고 낙심좌절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할 때 친구에게서 편지 한통이 왔습니다. 그 편지에 보니까 친구가 이 사람아, 기도하려고 애쓰지 말고 전도하려고 애쓰지 말고 거룩하게 되려고 애쓰지 말라. 네가 애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애써서 그것을 이루려고 하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냥 믿고 예수님께 맡겨라. 예수님께 붙어 있으라. 그러면 예수님이 일을 다 해주신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그 일을 지어 성취하는 하나님이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고 하셨으니 너는 기도하고 그냥 맡겨 버려라.
그리고 난 다음에 요한복음 15장을 적어 주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는 애쓰는 것을 그쳤습니다. 기도하려고 애쓰지도 아니하고 거룩하게 되려고 애쓰지도 아니하고 성경을 더 깨닫으려고 애쓰지도 않고 그저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매일매일 사니까 주의 능력이 임하여서 성경을 사랑하게 되고 주의 능력이 거룩한 능력을 주시고 주의 능력이 임하여서 복음 전도로 영혼을 구원하게 하시고 크게 선교사업에 성공했다는 간증을 적은 것을 읽었었습니다.
여러분, 징계는 여러분이 회개해서 주님께 의지하게 만들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회개하고 주님께 의지하면 그 다음 일은 주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고 기도를 열심히 하게 되고 교회 열심히 나오게 하는 것은 성령이 오셔서 마음속에 열매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회개요, 둘째도 회개요, 셋째도 회개요, 깨어져서 회개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고 주께 항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욥기 5장 17절로 18절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징계하여 하나님이 때리시는 것을 회개하고 나오면 싸매어 주시고 고쳐 주시기 때문에 복을 받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 세상은 자식을 너무 과잉보호하는 것입니다. 잘 먹여 주시고 잘 입혀 주고 잘 돌보아주고 그리고 징계는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열심히 공부시켜서 돈벌이 잘하라고 성공하라고 말하지 훌륭한 인격자가 되라는 말은 옛날처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교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기 위해서 순종하지 아니하면 때리는 것입니다. 회개해서 하나님 손길이 미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서 손을 들면 주님이 붙잡아 주세요. 주님이 붙잡아서 이끌어야지 우리 힘으로 안되잖아요.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여러분 회개시키기 위해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조각가가 돌맹이를 찍어서 조각을 만들 때 가만히 이 돌맹이를 보고 그 돌맹이 속에 감추인 형상을 마음속에 그리고 난 다음 그 형상대로 돌을 찍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러서 보시고 난 다음에 많이 부패하고 세속화 되었지만 옛날에 하나님이 지으신 형상과 모양이 있잖아요. 그 형상과 모양대로 복구시키기 위해서 이리 뜯어내고 저리 뜯어내고 이리 보태고 저리 보태는 역사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교육시키고 징계하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우리를 시험과 환난을 통할 뿐 아니라 징계를 통해 깨뜨려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천국의 소유물을 받기 위해서는 합당한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변화된 만큼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린 아이로 밖에 신앙이 안 자랐으면 영원히 천국으로 어린 아이로 있는 것입니다. 장년으로 자랐으면 영원히 장년으로 천국을 누리게 되고 완성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천당에 가서 완성한 인격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이 세상을 지나서 천당에 가면 그때부터 영원히 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변화를 가져오지만 영원은 변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이 땅에 있을 동안에 징계도 받고 교육도 받아서 변화되어야지 일단 이 땅을 떠나면 영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한 평생을 영원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부르시고 난 다음에 아무리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더라도 순종하지 아니하면 징계를 내립니다.
2. 징계하시는 하나님
이 신앙생활 중에 가장 모범으로 여기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쫓아 갈디아 우르에서 선택을 받았습니다. 75세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해서 너는 내 전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그리고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날 것은 떠나고 갈 것은 가라고 했는데 아브라함이 하나님 명령을 듣고 떠난 것은 잘했습니다. 그런데 내 친척 전토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아비집을 안 떠났어요. 조카를 데리고 친척들을 거느리고 종들을 거느리고 재산 다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다 보시고 어~ 순종은 하지만 엉터리 순종을 한다. 내가 떠나라고 했는데 떠날 것은 다 그대로 두고서 데리고 가지고 갔으니까 온전한 순종이 아니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징계를 내려서 깨닫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복을 받을 줄 잔뜩 기대하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갔는데 가나안에 가자마자 흉년이 다가와서 물이 다 마르고 짐승들이 먹을 풀이 없고 양식이 없으니 일가친척 따라온 사람 다 고향으로 돌아오고 종들도 도망치고 짐승은 다 죽고 엉망이었습니다. 그리고 데리고 온 조카는 삼촌 배고파 죽겠다고 자꾸 울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데 그때도 회개했으면 좋겠는데 뭐가 회개가 안 되었느냐. 다른 사람들은 다 스스로 도망을 쳤지만 아비집이 따라 있었던 것입니다. 조카를 떠나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카를 떠나 보낼 수가 없어요. 고향 땅에서 조카 하나 데리고 왔는데 자기는 자식이 없는데 조카를 보낼 수 없어서 조카가 배고프다고 우니까 조카를 데리고 세상으로 갔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갈 때 가만히 보니까 이제는 자기 아내를 빼앗기게 되었다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는 보통 이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깜짝 놀랄 여자였어요. 아브라함이 데리고 살면서도 그것을 인정했었습니다. 당신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면 틀림없이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당신 빼앗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나를 보고 여보라고 하지 말고 오빠라고 하라. 아브라함은 요사이 살았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요사이 나는 어떤 부부가 내게 와서 나보고 우리 오빠가요~ 하는데 진짜 오빠인줄 알았었어요. 그래서 남편은 없느냐고 하니까 이분이 남편이라고.. 자꾸 오빠라고 하니까 남편인지 오빠인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아내 사래를 보고서 이제부터 나보고 오빠라고 해서 내가 목숨을 건지게 해다오. 사정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데 오빠~ 이리와. 오빠~ 저리가! 그래서 사람들이 보니 기가 막힌 미인을 데리고 오빠가 내려왔다 말입니다. 그것을 임금님에게 구했어요. 바로왕이 아브라함과 그 동생 사래를 불러들이니까 임금님이 와서 너희가 어떻게 형제냐? 예, 우리 오빠입니다. 내 여동생입니다. 참 잘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아내 하나를 구하려고 했는데 이런 절세미인을 내가 만났으니 내 처남해라. 그리고 그날로 아내를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대가로 소나 말이나 짐승이나 금이나 은은 많이 받았지만 마누라 팔아서 부자가 되기는 되었지만 마누라 빼앗겼다 말입니다. 그 수욕을 당했는데 하나님이 징계를 내려서 그 바로의 왕궁을 내리 때리치고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므로 알고 보니까 아브라함의 아내인 것을 알고 화를 내어서 도로 돌려보내고 그곳에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는데 그래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조카를 그대로 거느리고 있습니다.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그러니 조카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목자가 서로 풀 때문에 싸워서 가족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물질이 있으면 형제간도 싸우고 가족 간에 싸우게 돼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최후로 내가 동이라 하면 내가 서라하고 네가 남이라 하면 내가 북으로 하니 우리 헤어지자. 조카와 헤어지고 난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보고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 축복을 본격적으로 붓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온전히 순종해야지 반쯤 순종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디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으로 온 것은 잘했지만 떠날 것을 전부 수레에 싣고 왔던 것입니다. 재산도 싣고 오고 일가친척과 가족을 데리고 왔기 때문에 온전한 순종할 때까지 징계가 내려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이 부르실 때 세상에서 우리도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세상에서 부르셔서 어디로 가라고 하느냐.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지시할 땅이 어디입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지시할 땅은 갈보리 십자가 밑이 우리가 지시할 땅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될 곳은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우리의 목장을 예비해 놓고 풀밭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 밑에 용서의 초장이 있고 우리에게 거룩하고 성령충만하게 하는 초장이 있고 치료의 초장이 있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은총을 받는 초창이 있고 갈보리 십자가 밑에 영생복락을 얻는 초장이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믿음으로 순종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자가 밑에 나올 때 세상을 버리고 나가야 되는데 술 먹는 습관 그대로 담배 피는 그대로 도박하는 습관 그대로 정욕을 따라 사는 습관 그대로 세속을 고스란히 가지고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와서 안 믿는 것은 아니라 믿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도 나오고 찬송도 부르고 남이 기도하면 따라서도 하고 그러면서도 세속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할까요? 때리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때리듯이 징계로 때리시는 것입니다. 때려서 아프면 왜 하나님이 나를 때리십니까? 그러면 성령께서 네가 회개하고 돌아오라. 그래서 변화를 받고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한다는 것을 꼭 알아야 되고 징계는 아프게 하기 위해서 징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편안한 징계는 없는 것입니다. 광야를 지내온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것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와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모세가 장가를 들었습니다. 전처를 버리고 장가를 들었는지 전처가 죽고 난 다음 새 장가 들었는지 그것은 성경에 잘 말하지 않았지만 장가를 들었지만 이스라엘 백성하고 장가를 든 것이 아니라 구스 사람하고 장가를 든 것입니다. 구스 사람하고 장가를 드니까 이스라엘의 습관에는 반드시 결혼할 때 이스라엘의 처녀를 또는 과부를 데리고 살라고 했는데 구스 여자를 데리고 결혼을 하니까 미리암인 누나가 비평을 말했던 것입니다. 너만 하나님의 종이냐. 우리도 하나님의 종이다. 오빠 아론과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도 선지자인데 너만 선지자고 네 마음대로 법을 어기고 구스 여자하고 결혼하면 되느냐. 비난을 했던 것입니다. 미리암은 모세에 대해서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모세를 나일강에 지켜서 건져서 살게 만들어주고 그 다음 그에게 어머니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누나인 미리암인 것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가 있어요. 동생이 이스라엘 여자를 구해서 결혼하지 아니하고 구스 여자를 구했으니 보기에 좋지 않다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더니만 갑자기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어찌 감히 하나님의 종, 모세를 비난하느냐. 모세는 자연인 모세가 아니라 나를 대변하는 나의 종이다. 모세에 대한 비난은 나를 비난하는 것인데 어찌 감히 나의 종을 비난하느냐. 그러면서 하나님이 떠났는데 즉시로 하나님이 떠나지 말자 보니까 미리암이 문둥병 환자가 되었습니다. 온 전신이 문둥병 환자가 되었어요.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자기 어머니같이 돌봐준 미리암이라도 주의 종에 대한 험담은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종은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의 대변자이기 때문에 주의 종을 치면 하나님을 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에 대한 비난과 공격은 친형제라도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을 끝까지 안 죽였습니다. 사울왕이 타락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해도 여러 차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안 죽인 이유는 하나님이 기름 부었기 때문에 타락을 해도 하나님이 손볼 것이지 내가 손댈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서 사용한 사람이기 때문에 전쟁에 죽든지 칼에 맞아 죽든지 병들어 죽든지 하나님이 징계할 것이니 내가 손댈 것이 없다고 그렇게 다윗을 죽이려고 따라다니는데도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민수기 12장 1절로 12절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야훼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야훼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야훼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야훼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야훼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야훼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야훼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
모세에게 회개하고 그들의 잘못을 돌이켰습니다. 그래도 진밖에 한 주일을 분리되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을 회개하고 자복하고 그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을 때 심판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가는데 물이 없으니까 백성들이 물 달라고 고함을 치고 고함을 치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우리를 광야로 데려와서 물 없이 방황하다가 죽게 하느냐고 고함을 치며 모세가 하나님 성전에 엎드려서 기도하니까 백성들 데리고 그 앞을 지나서 바위 앞에 서서 바위에게 물을 내라고 명령을 하라. 그러면 바위가 물을 낼 것이다. 모세가 일어나서 백성들 앞에 서서 바위를 향해서 물이 나오라고 명령을 해야 될 것인데 지팡이를 들고 두 번 때렸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정확하게 순종하지 않았지요. 왜냐하면 바위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한번 매달리지 두 번 매달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바위에 두 번 지팡이로 때렸으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물은 콸콸 나와서 백성들이 다 마시고 했지만 하나님 모세에게 말하기를 네가 나를 거룩하게 백성들에게 나타내지 못하고 내 명령을 거역했으므로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 모세가 그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징계를 받아서 가나안 땅에 못들어가고 느보산에서 세상을 뜨고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징계를 내리시는데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종자인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극히 사랑하는 종도 하나님의 명령의 순종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그러나 여러분 징계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인 것입니다.
징계보다 강력한 형벌이 심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과 신격에 도전하는 자를 용서치 않고 형벌하셨습니다. 징계는 개인적인 윤리나 도덕적인 잘못, 불신앙과 불순종에 내리는 꾸중인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할 때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엄청난 채찍으로 때리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19절에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야훼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야훼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저항할 때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인데 심판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에 대한 응징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가만히 내버려 놓지 않으십니다. 즉,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나 우상숭배하는 일이나 하나님의 명령을 잘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망령된 행실을 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 이런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7장 9절로 10절에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야훼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야훼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그러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진노케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심판하시는데 하나님의 지도력에 대해서 저항하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어기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 되는데요.
우리가 성경에 보면 민수기 16장 1절로 3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야훼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야훼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이스라엘 백성 중에 다단과 아비람이라는 사람이 지도가 되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적인 대표 250명을 동원해 가지고서 당을 짓고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네가 누구냐? 네가 우리 위에 서서 건들거리느냐. 네가 무슨 지도자냐? 우리도 너와 같은 실력이 있다.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들이 모세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모세를 주의 종으로 세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것입니다. 모세가 무너지면 이스라엘 백성을 누가 인도하는 것입니까? 혼돈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기를 250명 이스라엘의 대표들이 전부 향로를 들고서 향을 피우고 하나님 앞에 서게 하고 다단과 아비람을 나오게 하라니까 모세가 다단과 아비람을 보고 성막으로 오라고 하니까 내가 왜 가! 네가 뭐기에 나갖다가 명령을 하느냐. 우리는 안 간다.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250명은 이 향로를 불을 피우고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해 달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하기를 백성들이 다단과 아비람을 피하게 하라. 내가 저들을 그냥 둘 것이 아니라 당장 심판하겠다. 그리고 난 다음에 갑자기 땅이 갈라지면서 다단과 아비람이 땅속에 떨어져서 파묻혔습니다. 땅이 그대로 덮으니까 순식간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250명의 대표들이 향로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서서 향을 피우는데 하나님 전에서 불이 나와가지고 다 태워 죽었습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몸인 것입니다. 교회를 허는 일을 하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허는 일을 하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고 예수님은 몸을 찢고 피를 흘려 교회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도전하고 짓밟고 헐벗게 되면 하나님께서 대적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또한 진노의 하나님도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빠지고 잘못한 것은 징계를 내리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흩트리고 하나님의 종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면 그것은 징계를 내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조심해야 될 것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지만 하나님께서 끝까지 참지는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면 하나님은 보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고 대적하는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징계하시지만 진노는 원수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히 여기면 우리가 큰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알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참으시며 우리를 징계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도와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해오셨고 또 그렇게 해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을 지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훼파하고 주께서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나의 기름 부은 자에게 손대지 말며 내가 보낸 선지자를 헤치지 말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왜 하나님이 내 마음에 꼭 적합한 사람이라고 한 것, 하나님의 권위를 절대로 인정했습니다. 사울이 타락해서 완전히 버림받은 사람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에게 손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손댈 때까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에게 손대지 않겠다. 이것을 하나님은 크게 귀하게 여기고 아름답게 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 여러분은 절대로 하나님의 교회를 훼파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종들을 위해서는 기도해주지 하나님이 심판에 맡겨야지 내가 들어서 심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정의롭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때가 오면 반드시 주의 종도 하나님 뜻을 거스리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주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우리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 드리십시다.
/ 2012. 10. 14.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