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후엔 천국과 지옥 뿐… 적당히 선교해선 안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대표회장 강승삼 목사)가 주최한 ‘한국교회의 해외선교 100주년 기념 감사예배’가 24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남대문교회(담임 손윤탁 목사)에서 열렸다.
1912년 창립된 한국장로교 총회는 “타민족에게 선교사를 파송해 달라”는 함해노회의 청원에 따라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했고, 이듬해인 1913년 9월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선교사 세 가정을 한국 최초의 해외 선교사로 파송했었다.
기념예배 순서는 사회 강승삼 목사, 인사 손윤탁 목사, 기도 김영휘 목사, 문창선 선교사, 하광민 목사, 최철희 선교사, 설교 이동휘 목사, 간증 박창한 목사, 축도 최찬영 목사, 광고 한정국 목사(KWMA 사무총장) 순으로 진행됐다.
이동휘 원로목사(전주안디옥교회)는 ‘섬기는 아버지의 교회(눅 15:20~24)’라는 주제의 설교에서 “성경에는 집나간 아들 ‘탕자’를 먼 데서부터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렇게 아버지는 기다리는 존재다. 하나님은 인간 한 명도 멸망받지 아니하고 다 구원받기를 바라신다. 우리들이 세계선교를 향한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전주안디옥교회를 1983년도에 개척하면서 바로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했었다. 가난했던 시절 교회 성장에는 답이 없었지만 교회 재정의 70% 이상을 선교에 썼다. 선교를 하는데 경제를 핑계할 수 없는 것이다. 하루 4만여명이 굶어죽고 있는데 성전 건축할 시간과 재정이 어디 있는가. 아버지는 아들 탕자에게 바로 달려갔다. 죽은 후에는 천국과 지옥 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적당히 선교하면 안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동휘 목사는 “형은 집에 돌아온 동생을 외면했었다. 오늘날에는 교회에 와도 ‘진정한 형’이 없다. 이는 죄인들을 외면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말씀이었다.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형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VIP는 새신자인데 왜 이렇게 중직 되기를 힘쓰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이 둥근 지구를 붙들고 엉엉 우는 모습이 보인다. 제발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에 정욕을 쓰지 말고 헛된 짓을 안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첫 해외 선교사인 故 박태로 선교사의 후손은 5대가 목사직을 맡고 있다. 박태로 선교사의 3대 후손이며 첫 인도네시아 선교사인 박창한 목사가 나와 해외선교의 간증을 전했다.
박 목사는 1972년 인도네시아에 파송되어 3년간 선교를 했고, 이후 모스크바에서 5년, 니카라과에서 3년, 총 11년을 해외선교에 헌신했다. 당시 한국장로교회는 해외선교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으며 재정 지원도 원활하지 못했었다. 박 선교사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전도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극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학교 안에서는 전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는 유치원을 설립해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부인은 야간 학교를 열고 성경으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선교는 성공적이었다. 1년도 안 되어 지역의 거의 모든 회교도 자녀들이 그가 세운 유치원에 몰려왔다.
모스크바 선교 당시에는 한 노인이 찾아와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박 선교사가 신부에게 기도 부탁을 하지 않고 자신에게 부탁을 하는 이유를 물었는데, 그 노인은 “신부에게 기도 부탁을 하려면 한 달 생활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답했다. 열심 있는 기도도 아니고 단지 성수 몇 번 뿌려주는 것인데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러시아 교회 입구에는 전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들어갈 때도 초를 하나 사서 들어가야 한다. 돈 벌이를 위한 교회로 전락한 것이었다.
또 그는 니카라과에는 3년간 선교를 했었는데, 현지 목사들은 신학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저 몇 명이 모여 그중에 리더를 택한 것이었다. 박 목사는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24일 감사예배에 이어 25일에는 기념세미나가 열린다. 강사로는 조용중 선교사, 문상철 교수, 김영동 교수가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