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인내하는 자가 복되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5~39)

<서론>
“인내하는 자가 복되다”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사업이나 학문이나 그 무엇이든지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장애를 딛고 일어나야 하므로 인내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더구나 인격적 성장이나 신앙의 발전에는 낙심할 일이 하도 많기 때문에 그것을 이기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난관을 극복하고 나가는 데는 인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본론>
1. 하나님 앞에서의 인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인내하는 것을 우리 하나님께서 절대 일을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바빠서 서두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보십시오. 나이 75세에 아들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난 다음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데 얼마 걸렸습니까? 25년 걸렸습니다. 약속을 25년 동안 기다린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모세는 40세에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서 40년 동안 연단을 받았습니다. 80세에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보디발 집에서 종살이 10년, 감옥생활 3년, 13년을 기다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13절로 15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유명한 설교가인 필립 브룩스에게는 무엇이든지 참지 못하는 큰 약점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참지 못하는 약점 때문에 그는 무슨 문제든지 늘 고민하며 하나님께 매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좀 빨리빨리요. 빨리빨리.” 우리 한국사람 닮았는가 봅니다. 우리 한국사람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아닙니까? 결혼한 사람은 대개 남편은 어디가든지 빨리 준비하지만 부인은 늦게 합니다. 구두신고 현관에 서서 기다리는데 얼마나 조바심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빨리빨리 빨리빨리. 하루는 어떤 일을 참지 못하여 더욱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그를 보고 있던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브룩스 박사님, 오늘 따라 무엇을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늘 내게 있는 문제도 고민이지만, 더 큰 고민은 나는 이렇게 급한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안 급한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모시고 살려니까 너무 고민이 된다. 하나님은 너무 슬로우다.”

저도 그런 생각에 동의가 조금 갑니다. 우리에게 참지 못할 상황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급한데 하나님은 잠잠히 계시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1) 인내하는 자의 결말은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참는 결과에 복이 온다.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의 눈으로 참고 인내하는 우리를 보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내와 연단을 신앙 성장의 기초로 삼으시는 것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신앙의 성장을 인내로써 기초로 삼으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가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수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인내와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러분의 신앙의 기초를 닦으시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신앙이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를 가지도록 훈련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결국 천당에 들어가는 사람은 오래 참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그 이튿날 천당에 들어가면 좋겠는데 믿고 난 다음 오랜 세월 동안 뜨거워졌다가 식어졌다가 열심히 했다가 게을러졌다가 그런 가운데 인내를 가지고 나중에 천당까지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로 2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인내한다는 것 참으로 강한 힘이 있습니다.

인내의 힘은 인생의 산사태를 막아 주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인내의 결여는 사람을 어렵게 만듭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에도 실패하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으로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관계의 문제, 직장 동료와의 다툼, 배우자와의 불화, 아이들과의 갈등, 투자의 실패 등 거의 모든 종류의 화근이 인내의 부족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세계 전체에 퍼져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인내의 결여 때문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내심 없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는 쉽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끼를 갈아서 여러분 바늘을 만들자면 몇날 며칠이 걸릴지 모릅니다. 한평생을 갉아도 바늘이 안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인내가 있어야 일에 성공을 한다는 것입니다.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고 하는데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듯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 돌에 구멍이 뚫려지는 것입니다.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참을 인(忍)자가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말합니다.

플라토우스는 “인내는 어떠한 괴로움에도 듣는 명약이다.”라고 말했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까지 숨을 꾹 참고 있던 노란 야채꽃들도 한 차례 비가 오면 모두 다 한꺼번에 솟아 나와 숨을 뱉어내듯이 예수님을 의지하고 인내하면 언젠가는 부활의 찬란한 기쁨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현재 모든 것이 어둡고 캄캄하고 괴롭고 답답하고 슬프고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입니까? 우리는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좀 시원하게 대답해 주면 좋겠는데 대답을 안 해주세요. 제가 옛날보다도 더 요사이 나이를 먹으니까 이제 천당 갈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지 않습니까? 너무 늦기 전에 말씀 좀 해주십시오. 젊을 때 하나님께서 한번 응답해 주시는 것보다는 나이 먹은 우리에게는 응답을 더 많이 해주시는 게 좋습니다. 말씀을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그래도 좀처럼 말씀을 안 해주세요. 그것 왜냐면 우리가 인내를 가지고 참고 하나님을 계속해서 찾기를 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이웃과의 관계에서 인내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인내가 있어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각각 다른 성격과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품이 나와 똑같은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타인을 일방적으로 굴복시키려할 때 마찰이 생깁니다. 너 나처럼 되어라. 나처럼 빨리빨리. 그러나 나처럼 느릿느릿. 나처럼 관심을 좀 가져라. 너무 무관심하게 지내지 말라. 그렇게 하지만 서로 성품이 다른데 어떻게 한 것입니까?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조화를 해나갈 도리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인내로써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많이 틀립니다.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세대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면 자식들은 말하기를 아버지 세대는 이미 옛날 퀘퀘 묵은 세대고 우리 세대는 선진세대인데 아버지가 우리를 따라야지 우리가 아버지를 따릅니까? 그런 말을 종종 듣습니다. 세대가 달라지니까 서로 대화하는데 인내와 이해와 동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더구나 부부간의 관계에서 참으로 힘든 것이 부부관계인 것입니다. 저는 옛날에는 결혼주례를 많이 했지만 요사이는 결혼주례를 거의 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혼 주례한다고 서서 헛소리 많이 했습니다. 남편들이 아내 사랑하기를 내 몸처럼 하라. 아내들아 남편을 섬기기를 주님을 섬기듯이 하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속으로 되도 않은 소리한다.

정말로 부부관계는 신비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간단히 주례사를 잘하려면 남편들아 십자가 걸머지고 아내와 살아라. 아내들아 십자가 매달려서 남편에게 복종하라. 피를 흘리고 살을 찢고 눈물을 흘리는 그러한 인내가 없이는 가정생활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이 여기까지 올라오지만 그러다가는 결과가 좋지 않겠다. 그런 말을 못하지요. 형제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한 부모의 피를 나눈 형제도 그렇게 다를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이해관계가 부딪혀 오면 완전히 남보다 더 못하게 물고 찢고 싸우게 되는 비극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도 내게 어떤 이익과 손해가 있느냐 이해관계가 절실히 작용하고 있으며 원수와의 관계는 말할 필요 없이 서로 죽이고 죽이는 관계 속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융(C. G. Jung)은 그의 책 “사랑에 대하여”에서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사실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십자가를 지는 체험입니다. 나는 당신이 자신을 압박하는 필연적인 운명에 대항해서 싸우기보다는 인내를 배우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당신은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결혼은 필연적인 운명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싸우면 둘이가 다 상처투성이가 되기 때문에 참는 것이 좋다. 결혼은 사랑과 행복의 시작이지만 무겁고 고통스런 십자가를 지는 훈련이기도 한 것입니다. 결혼을 로맨틱한 이상적인 꿈 같이 생각하면 큰 계산을 잘못한 것입니다. 결혼 물론 좋지요. 남보다도 서로 친밀하고 가깝고 대화의 상대가 되고 좋지만 그러나 십자가를 걸머지는 고통과 인내가 있어야 올바르게 유지되는 것입니다. 서로 내려놓고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내 주장을 하고 내 뜻대로 이끌어 나가려고 하면 부딪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의 핵심은 인내 곧 참는 것입니다. 참아내야 진정 하나가 될 수 있지 참지 않고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로 14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다 허물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하고 동정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도리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이해하고 동정하지 못하고 비평하고 평론하면 반드시 그 화살이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내 칼에 피를 묻히면 또 다른 사람 칼이 내 피를 묻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래 참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으로 끌어안는 것이 제일 좋은 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간단히 참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 자기 자신과 인내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에게 대해서도 오래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노력과 투쟁이 필요한데 여러분 스스로가 아무리 결심해도 하루 아침에 자기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밥을 빨리 먹는 사람보고 천천히 먹으라고 해도 자기가 천천히 먹어야지 천천히 먹어야지 하면서도 더 빨리 먹게 되는 것입니다. 잠을 늦게 자는 사람은 빨리 자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뒤적거리면서 늘 텔리비 채널을 이리 돌렸다가 저리 돌렸다가 밤 12시가 되어서 자는데 일찍 드러누워 있어야 잠이 오느냐. 안 옵니다. 훈련하는데 굉장히 오랜 세월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그 반대로 8시만 되면 잠을 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있던지 없던지 졸거든요. 그리고 새벽 2시면 말똥말똥하게 깨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기도하고 성경읽고 그 다음에 아침 5시가 되기를 기다려서 밥 먹고 출근하는데 그러니까 누가 내 곁에 견뎌낼 수가 없어요. 내가 부스럭 거리니까 다 잠에서 깨어나지요. 나에게 뭐라고 하는데 좀 늦게 자라. 일찍 일어나지 말라고 해도 그 훈련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그 훈련시키는 사람 있으면 내가 절을 한번 하겠어요.

빌립보서 3장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푯대를 정해놓고 힘차게 뛰어야 자기 스스로를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우리가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고 힘써서 우리 스스로를 연단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부당하게 다가오는 고난에 대처하는데 인내가 필요하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온전한 대접을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제일 가까운 부모 형제끼리도 부모가 형제에게 공평하게 대접 못해준다고 늘 불평을 말하지요. 왜 아버지, 어머니는 장남만 장녀만 사랑하고 우리는 덜 사랑하느냐. 부모는 그것을 생각 안하는데 자식들은 그 생각을 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부당하게 다가오는 고난에 대하여 불평과 원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한번 우리 아버님이 나를 부르시더니만 너 이제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니까 아프리카로 가라. 왜 아프리카로 가야 합니까? 형제 중에 한 사람이 너무 잘되니까 다른 사람이 전부다 그늘에서 시들어지고 만다. 네가 하나 너무 잘되면 옆에 있는 형제들이 다 시들어진다. 그러므로 멀리멀리 떠나서 새로운 세계에 둥지를 쳐라. 아프리카로 가라. 그래서 내가 뭐라고 대답했느냐면 내 마음대로 못갑니다. 내 마누라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제간에도 형이 있기 때문에 동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에게 부탁을 한 것 같아요. 아버지가 내게 말해도 그게 통과가 안되고 천당 가신지 오래 되었는데 지금도 내 마음속에 나에게 불리한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 벌초만 가면 묘지 앞에 서면 이 생각이 먼저 납니다. 아프리카로 가거라. 아직까지도 안가고 여기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절로 20절에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부당하게 죄짓고 얻어맞는 것 당연하지요. 그러나 죄도 안 지었는데 오해를 받아서 욕을 얻어먹거나 매를 맞으면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참으면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7절로 9절에 “야훼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야훼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오래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공평하게 대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루소는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고 말했듯이 인내의 과정은 고통이 따르고, 그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 인내고 인내하면 결국에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온갖 수모를 참고 수많은 시련을 견디어 내는 것은 마치 진주조개가 진주를 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조개의 아름다운 영롱한 진주가 채취될 수 있는 것은 조개에다가 모래알을 집어넣어요. 아주 조개혀를 갉아 먹도록 모래를 집어넣으면 조개가 너무 아프기 때문에 그 모래알을 부드럽게 감싸기 위해서 진액을 내어서 자꾸 둥굴둥굴 감쌉니다. 그것이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모래알을 넣어서 혀를 갉아먹게 만들어서 진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상처받은 고통을 견디어 내는 동안 우리는 진주와 같은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받는 것은 고통이 다가와서 참다가 보니까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좋고 다 칭찬만하고 아름다운 환경에 있으면 내 스스로를 돌이켜 볼 필요도 없고 내가 스스로를 방어할 필요도 없고 회개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가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하고 괴로우면 울기도 하고 탄식도 하고 회개도 하고 돌아보기도 하고 변명도 하기도 하면서 서서히 자기가 변화가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상처받은 고통을 견뎌내는 동안 우리는 진주와 같은 아름다움이 만들어지고 영롱한 진주도 처음에는 하나의 상처였으나, 오래도록 상처를 보듬고 인내할 때 아름다운 보석이 되는 것처럼 아름다운 인격은 많은 시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내는 단순히 꾹 눌러 버리거나 속으로 삭여 혼자 끙끙 앓는다고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인내에도 소망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참으면 좋은 일이 온다는 것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아도 별 볼 일 없다면 인내를 못합니다. 사람은 소망이 있어야 견뎌낼 수 있고 꿈을 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망을 잃어버리면 죽음인 것입니다. 인내는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데서 탄력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앞길이 막막하여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의 인내를 바라 볼 때에 모든 것을 이겨내고 승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공과 꿈을 이루는데 수많은 실패와 낙심을 견디어내는 인내가 필요하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광야에서 얼마나 방황하고 고난을 겪었습니까? 조그만 일 하나 성공하는데 수없이 실패를 하고 실패를 하고 그것을 견뎌낸 사람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열심으로 경쟁해서 늘 2등 3등을 하다가 결국 1등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내는 마음을 다잡으면 큰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일도 지속적으로 전념하면 놀라운 효과가 나타납니다. 영어를 공부하기 원하는 학생이 제게 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줄줄 잘합니까? 그때 좋은 학교에 다녔습니까? 학교 다니지 못했다. 좋은 선생을 만났습니까? 좋은 선생을 못 만났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영어를 그렇게 줄줄 합니까? 매일같이 영어책을 들고서 외워야 된다. 하루 이틀 외우는 것이 아니라 5년이고 10년이고 외워야 한다. 닥치는 대로 손에 들고 외워야 된다. 그러면 외운 것이 나중에 익숙해져서 술술 나오게 된다. 저는 사실 정상적으로 공부를 못했습니다만 영어를 많이 외웠습니다. 영어책만 주면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는 것입니다. 무조건하고... 의미를 모르면 자꾸 외우면 똑딱하는 소리가 목에서 납니다. 자동적으로 의미가 깨달아져요. 외우고 나니까 나중에 그것이 습관화 되어가지고서 말을 잘할 수 있도록 된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이 있어서 잘 가르쳐 주었으면 안 외웠을지도 모릅니다. 어렵게 공부했기 때문에 외우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러므로 성공을 이끄는 길은 한 가지 길을 오래오래 외우면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지아르디니는 바이올린을 배우는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젊은이가 물어보니까 24시간씩 20년 동안 해야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루에 24시간 20년 동안 하라고 하니까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런 각오를 해야 바이올리니스트가 된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하면 곰도 춤을 추게 됩니다. 곰이 한두 번에 춤을 춥니까? 곰같이 느릿느릇한 것이 춤을 추는 것은 계속 사육사가 가르치고 가르치고 가르치고 가르치고 나중에는 곰이 춤을 추게 되는 것입니다. 인내의 힘을 기르려면 성급하게 포기하려는 순간을 이겨내야 되는 것입니다. 인내의 힘은 포기하지 않고 성취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생산적이고 능동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인내인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마음속에 어둠이나 고통의 순간과 싸워나가는 적극적인 자세가 인내인 것입니다. 이런 인내는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사자굴 속에서 혹독한 시련을 당한 다니엘도 군중들의 돌을 맞은 예레미야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예수님도 인내의 힘으로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참았기 때문에 이룬 것입니다. 성급했으면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견디고 참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반드시 첩경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오늘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는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 앞에서 오래 참고 아내도 남편 앞에서 오래 참고 서로 대꾸하지 말고 서로 오래오래 이해하고 동정하고 오래 참고 사랑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누가 이 말을 듣고 지는 그렇게 하는지 보자. 내가 못하기 때문에 나보고 설교하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 천사가 되어서 설교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저는 설교할 때 여러분에게 설교하기 보다도 제일 먼저 날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듣고 내가 교훈을 배우고 그 다음에 나와 한 동포된 여러분 그것을 나누어서 우리 서로 잘되자고 하는 것이 이 설교인 것입니다. 누구를 교훈하고 가르치는 우등생이 되어서 이끌어가려는 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내의 씨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내를 통해서 천국의 열매를 맺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로 36절로 39절까지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믿음이란 것은 바로 인내인 것입니다. 오래 참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참지 못하면 믿음은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

4. 신앙 성장과 인내

우리가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있어야 신앙이 성장하는데 농사꾼의 인내와 같은 것입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 인내로 결실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빨리 열매를 맺으려고 자꾸 밭을 파헤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어릴 때 고구마를 심었는데 부모님께 부탁을 해서 고구마 줄기를 몇 개씩 얻었어요. 우리 형제들이 다 얻었는데 다른 형제들은 고구마가 열매를 맺을 때까지 잘 견뎠는데 나는 말라 죽었습니다. 왜냐면 학교 갔다 와서는 반드시 캐보니까. 줄기를 캐보고 난 다음에 얼마나 열매가 자랐는가 보고 도로 심고 또 캐보고 그러니까 나중에 열매가 맺는 것이 아니라 바짝 말라 죽어버린 것입니다. 오래 꾹 참고 심어놓고 있으면 흙이 습기와 양분을 공급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농사꾼의 인내가 우리 신앙의 인내와 같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7절로 8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말씀을 깨닫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데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 당장 깨달아지나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면 말씀은 마음속에 물이 베어 들어오듯이 깨달아짐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찰칵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서히 서서히 마음에 베어 들어와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령님 오늘은 이 일을 하고자 하는데 해야 될까요? 안해야 될까요? 당장해라! 아니라는 말 안합니다. 오래 기다리고 있으면 한참만에 마음에 우연히 마음이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기 싫다. 하고 싶다. 해야 된다. 안해야 된다. 그렇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내를 하고 참으면 흑백이 가려지고 선악이 가려지는 것입니다. 급하게 서둘면 아무것도 안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지금도 와 계시는데 성령은 우리가 오래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고 견디면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데 성급하게 빨리빨리 가르켜 주십시오 하면은 성령께서 역사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2절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나님의 계명과 믿음을 지키고 오래 참을 때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울 때 더구나 인내가 필요하지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싸울 때는 인내로써 대적해야지 순식간에 물러갔다고 나는 해방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에는 인내로써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가 끊임없이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술 먹는 사람이 술잔 한번 탁 깼다고 술 안 먹나요? 또 술이 생각나고 대적하고 또 술이 생각나면 대적하고 계속해서 대적해서 물리쳐야지 단 한번 고함친다고 물리친다고 썩 물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의 싸움도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또 하나님께 부르짖고 회개하고 부르짖고 그래서 마음이 정결하게 되고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1절로 12절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데 큰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참고 싸워야지 급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10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끊임없이 대적해야 돼요. 여러분 주무시기 전에 마귀를 대적합니까? 주무시기 전에 내 몸에 붙어 있는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내 마음을 억압하는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반드시 주무시기 전에 마귀를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물러나갑니다. 그리고 아침에 깨어 일어나서도 오늘 내가 살아가는데 나를 훼방하는 원수귀신아 물러가라! 우리가 대적하고 물리치면 마귀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물리치지 아니하면 마귀가 붙어 다니는 것입니다. 억압하고 고통을 주고 혼돈을 주고 우울하게 만들고 낙심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마귀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는 대적을 하고 싸우고 그렇게 해서 신앙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원수가 없으면 모르겠는데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매일 마다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매시 마다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물리쳐야 우리 마음에 낙심하지 않고 좌절되지 않고 우울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물리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면 우울하게 되고 좌절되고 나중에는 희망 잃고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마음을 기쁘고 상쾌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와 하나님과 다른 것은 마귀는 그림자 비치게 하고 하나님은 햇빛 비취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고 마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상쾌해지고 기뻐지고 즐거워지고 소망차게 되고 세상에 억압되고 좌절하면 어두워지고 절망하고 탄식하고 살 기쁨이 사라지는 것이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우리가 인내가 하나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환난을 보내는 것도 참는 것 훈련하기 위해서 보낸다는 것입니다. 참아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고 기다리는 기도도 당장 응답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습니까? 기도하고 난 다음 당장 응답되는 것이 별로 있습니까? 아니지요?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입니다. 인내를 기도에 플러스해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희망을 주고 우리가 부르짖으면 기도 응답을 주고 찾으면 찾게 해준다고 했는데 이 말씀대로 당장 한마디 주여! 오시옵소서. 오냐 여기 있다. 그렇게 말합니까? 안합니다. 적어도 30분, 1시간 이상 엎드려서 기도하고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 기도에 할 말이 없을 때가 많지 않습니까? 말을 지어서 하려고 애를 쓰지 마십시오. 말을 할 때가 없을 때는 하나님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를 도와주시고 나에게 찾아와 주시옵소서.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만 자꾸 하십시오.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도 감사를 많이 하면 주의 영광이 다가오고 좋을 때도 다른 말 할 것 없이 감사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사람이 말을 만들어서 하려고 하면은 말 만든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로써 기도할 때는 감사하는 것이 좋고 복잡하게 말을 해야 되겠으면 편지를 쓰십시오. 하나님 앞에 편지를 쓰는 것이 참 좋습니다. 편지를 쓸 때는 말 안하거든요. 사랑하는 하나님,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좋은 시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하루에 편지를 2통 내지 3통을 반드시 씁니다. 종이 앞뒤로 빽빽하게 씁니다. 편지를 쓸 때는 쓸데없는 말을 안 하고 마음을 정리정돈해서 그날 하나님께 부탁한 말, 회개할 말을 편지에 쓰고 답답한 말도 다 편지에 쓰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말도 편지에 쓰고 그 편지를 다 쓰고 난 다음 내가 읽으면 그것 진짜 멋진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 내가 읽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 보면 안되기 때문에 찢어 버립니다. 쓰레기통에 넣어 버립니다. 아주 복잡한 기도를 하려고 할 때는 편지를 쓰고 보통 기도는 간단히 한 다음 감사를 하십시오. 그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자꾸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30장 18절에 “야훼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야훼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도 우리를 기다리시니까 우리도 하나님을 기다리면 복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천 2백 번이나 꽃을 왕복하여 얻은 것입니다. 한 숟가락 꿀 이렇게 먹잖아요. 4천 2백번 꽃에서 꿀집, 꽃에서 꿀집으로 꿀벌이 왔다갔다해서 꿀을 만드는 것입니다. 작곡가 하이든은 8백 개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지창조”라는 오라토리오는 8백 번이나 작품을 써본 후 그의 나이 66세가 되서야 완성한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도 8년 동안 2천 번이나 스케치해본 결과로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는 이처럼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해야 됩니다. 때로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해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참고 해나가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복음을 전할 대상을 정하고 또는 성취하고자 하는 일을 정하고 이루어지길 바라며 꾸준히 할 때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 놀라운 하나님의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꾸준히 해야 돼요. 저는 금년도에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 대로 전 세계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로 목적을 정하고 마음에 꿈을 가지고 꾸준히 매일같이 영어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영어신문을 가지고서 전편 페이지를 영어신문을 읽습니다. 읽어서 단어를 다시 기억하게 하고 집에 돌아가면 제가 옛날에 해외 다니면서 부흥회를 열었던 영어설교를 듣습니다. 들으면 내가 볼 때도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어요. 그러면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서 꾸준히 준비하는데 한두 번해서 안돼요. 일 년 내내 꾸준히 하면은 내 마음속에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좌우에 배후에 노력하고 애쓰지 않고 열매 맺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설교 한편 짓는데 몇 시간 만에 뚝딱 지어서 성도 앞에 나서면 좋지요. 그러나 절대로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설교 한편 적어도 한 달은 고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관계된 책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설교를 종이에 적고 또 찢어버리고 또 새로 적고 그렇게 해서 설교 한편이 이루어지면 성도들 앞에서 말씀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쉽게 된 것은 가치가 없습니다. 오래 시간이 걸리고 애써서 한 것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그러므로 쉽게 낙심하지 말고 어떠한 목표를 정했으면 끊임없이 계속하십시오.

<결론>

무엇이든지 일을 성사시키는 데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나라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여 너무 성급하게 날뛰니깐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뒀습니다. 네가 너무 날뛰니까 할 수가 없다. 감옥 속에서 좀 기도를 하고 부르짖으라고.. 그곳에서 하나님 앞서 뛰지 말고 기도하고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다가오면 하나님 앞에 오래 인내하고 부르짖고 기도하고 참으면 하나님이 일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두 가지 관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누가 무어라고 말해도 하나님만큼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은 안계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려 죽도록 사랑하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밖에 없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사랑한다고 어떻게 보증하느냐.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지 않고 올 자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서 여러분 온 것입니다.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하나님은 여러분이 좋아서 예정해서 택해서 불러서 세워서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하나 확실히 알아야 되고 둘째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능력이 계십니다. 전지전능하십니다.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자를 있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고자 하면은 못할 것 없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실력이 있으니까 그 하나님과 같이 살면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안심하고 살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인 것은 나를 끝까지 사랑하고 나를 위해서 어떠한 기적이라도 행할 수 있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엎드려 기도하고 간구하고 믿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 한번 힘껏 믿어 보십시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내가 주님을 힘껏 믿어보십시오. 그래서 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겨 놓고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실 것을 알고 감사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의 멍에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밑에 들어오너라. 그리고 나를 믿고 따르라. 내가 너희 짐을 져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 중심으로 살면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이 있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분이 무슨 할 일이 있는 것입니까? 주님은 여러분 위해서 일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죽을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죄 때문에 죽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순전히 여러분의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해 주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주님은 오늘 여러분 앞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두 손 내밀면서 내가 책임져 주마. 너의 짐을 내게 맡겨라. 네 일을 내게 맡겨라. 그리고 내게 부르짖어 기도하고 믿어라. 내가 돌보아주마. 내가 성취해주마. 그래서 주님이 여러분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주님이 여러분을 기다린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시련은 우리에게 오래 참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인내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내하고 기다리고 참으면 주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않으며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주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주님, 주님은 여러분 때문에 와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는데 여러분 예수님이 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능력이 심히 큰 것이 주께 있고 우리에게는 있지 않는데 주님 할 일이 없어요. 여러분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것은 주님이 여러분 위해서 있기 때문이요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여러분 위해서 일해 주시기 때문이요, 핍박을 받아도 버림 바 되지 않는 것은 주님이 친구가 되 주신 것이요, 거꾸러뜨려도 망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받쳐 주시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주님이 할 일이 없어요.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난 다음에 제 칠일 안식일날 쉬는 날 아담과 하와에게 살기 시작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위해서 할 일을 다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도 주님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다 청산했습니다. 할 일이 없어요. 이제는 주님 할 일은 여러분 위해서 할 일 밖에 없습니다.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주님이 오늘날 이 땅에 와서 성령으로 역사하는 것은 나 때문에 와 계신 것입니다. 조용기 때문에, 여러분 때문에 주님께서 와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하려고 와 계시고 여러분을 붙들어 주려고 와 계시고 여러분을 도와주려고 와 계시고 여러분을 고치기 위해서 와 계시고 여러분을 위로하기 위해서 와 계시고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이 주님이 원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혼자 인생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내를 가지고 주님 앞에 기다리십시오. 주님을 바라고 견디면 주님은 여러분과 똑같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 2013. 1. 20.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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