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순교의 역사… 지금 이 정신 있는지 자문해야”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한복협 3월 월례회 ‘순교 신앙을 기리며’ 주제로 개최

▲한복협 3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가 서울 도렴동 종교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김진영 기자
▲한복협 3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가 서울 도렴동 종교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다. ⓒ김진영 기자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3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가 8일 서울 도렴동 종교교회(담임 최이우 목사)에서 ‘순교 신앙을 기리며’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발표는 이정익(신촌성결교회)·최이우(종교교회)·오정호(대전새로남교회)·김명혁(강변교회 원로) 목사 순서로 이어졌다.

먼저 ‘복음의 씨암탉, 문준경의 순교’를 제목으로 발표한 이정익 목사는 “공산당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성결교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문준경 전도사”라며 “그의 목회는 한 마디로 사랑의 목회였다. 그의 집에는 항상 귀신 들린 사람이 서너 명, 반신불수가 몇 명씩 있었다. 오갈 데 없는 버려진 여인들의 숙소였다”고 말했다.

이어 문 전도사의 일생을 돌아본 이 목사는 “한국전쟁 당시 공산당은 그들의 최후를 알았고, 반동분자들을 정리하고 도망하려고 계획했다. 1950년 10월 5일 새벽 공산당은 문준경 전도사를 포함한 양민들을 중동리 백사장으로 끌어냈다”며 “그리고 문 전도사를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고 몰아세우며 단도와 죽창으로 찌르고, 총으로 확인사살을 했다. 문 전도사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딸 백정희 전도사를 살려 달라고 부탁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순교했다”고 증언했다.

최이우 목사는 ‘양주삼 총리사의 생애와 순교신앙’을 제목으로 발표했다. 최 목사는 “양주삼 목사의 마지막 순교 장면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며 “그러나 공산군에게 납치되어 간 목사와 기독교인은 납북되어 투옥되거나 살해되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양 목사 역시 순교했음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주목할 점은 그가 피난을 갈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맡겨진 적십자 총재직과 수많은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점”이라며 “목숨이 위협받는 전쟁의 상황 속에서도 한결같이 맡겨진 직분과 수많은 생명들을 지키려 했던 그의 신앙과 삶은 그의 실종 이후의 죽음을 순교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해주었다”고 전했다.

‘초기 외국인 선교사 자녀들의 희생을 기리며’를 제목으로 발표한 오정호 목사는 아펜젤러와 존 헤론, 게일, 언더우드,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 등의 자녀들을 소개하며 “오늘날 대한민국이 복음의 은혜와 자유민주주의를 누리는 것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십자가를 지신 주님과 그 십자가를 사명으로 알고 묵묵히 헌신한 선교사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한국교회를 향한 사랑의 발자취를 가슴에 아로새기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신앙을 기리며’를 제목으로 발표한 김명혁 목사는 “지금으로부터 147년 전인 1866년 9월 5일 흑암과 사망의 땅이었던 조선에 와서 ‘예수 예수 예수’를 외치고 성경책을 던져주며 구원의 복음을 전한 사람이 있었다”며 “그 사람이 바로 평양 대동강변에 와서 성경책을 던져주며 구원의 복음을 전하다가 조선 관군의 칼에 찔려 순교한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목사였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토마스 선교사가 전해준 성경책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상당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를 찔렀던 이는 나중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장로가 되었다고 한다”며 “그가 던진 성경책으로 어느 여관집 주인이 방 안을 온통 도배를 했는데, 그 글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에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이 되었다”며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가 없었다면 1882년 조미통상조약도 없었을 것이고, 1884년 알렌 의사의 조선 입국도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의 인천 상륙도 없었을 것이다. 27세의 나이에 순교의 제물이 된 토마스 선교사에 의해 십자가와 구원의 복음이 조선 땅에 전해지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앞선 네 목회자의 발표 후 응답사를 전한 전병금 목사(강남교회)는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것도 바로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우리가 순교자의 순교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길은 첫째도 사랑이요, 둘째도 사랑이요, 셋째도 사랑이라는 것을 명심하자”고 말했다.

전 목사는 “오늘날 부끄럽게도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가 십자가의 자리에 가지 않고 주님이 거부하셨던 떡과 기적, 권력을 탐했기 때문”이라며 “한국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지금, 과연 우리는 순교자들처럼 복음으로 우리 민족을 사랑해 희생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자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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