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목사 설교] 무리와 제자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가복음 8장 34절의 말씀가지고 “무리와 제자”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무리와 제자”, “무리와 제자”. 여러분, 한번 뿐인 인생길에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처럼 큰 행복이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웬 일인지 웬 은혜인지 내가 어느 날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분명한 인생의 목적이 생긴 것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존재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이 사는 사람들은 삶이 불행합니다. 기쁨이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늘 불안합니다. 무엇을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않고 더 가지기 원하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그 높은 자리가 자기 삶 속에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믿은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고 이제 남은 여생 하나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주님 앞에 제자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 분부하신 명령을 절대 지상명령이라고 하는데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보면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할렐루야. 따라하세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오늘날 ‘교회에 교인도 많고 신자도 많은데 제자가 적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다 예수 믿는 사람 같은데 세상에 나가보면 예수 믿는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무리는 많은데 사람은 많은데 예수님 닮은 제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닮은꼴로 살아가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 문제가 해결되고 사랑이 넘쳐나고 기쁨이 넘쳐나야 되는데 예수님 믿는 사람이 가도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우리가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제자의 길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또 따르는 많은 무리들에게 이와 같은 삶을 살라고 주신 말씀이 마가복음 8장 34절입니다. 이 말씀가지고 세 가지 질문을 오늘 던지려고 합니다.

 

1. 무리인가? 제자인가?
첫째로, 우리가 과연 무리인가? 제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따라하세요.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보니까 예수를 따라가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많은 무리가 있었고 그 중에 소수의 제자가 있었어요. 그래서 무리와 제자를 불렀다고 말씀합니다. 이 무리는 누구냐?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 병 고침 받은 사람, 또 그것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 또 예수님 말씀을 듣고 은혜 받고 그 말씀듣기를 사모했던 사람, 또 어떤 사람은 오병이어 기적 같은 기적 때 기적을 직접 체험한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주된 사역중의 하나가 말씀을 가르치는 것,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과 함께 병 고치는 사역이기 때문에 병 고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어요.

마태복음 4장 23절과 2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5절에,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특별히 예수님의 행적을 담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에 다 나타나있는 기적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주님께서 기적을 부르셔서 장정만 오천 명, 남자로만 오천 명, 여자와 아이를 합치면 약 삼만 명이 넘는 사람을 다 배불리 먹인 기적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을 체험하고 난 다음에 “예수님만 따르고 나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긴다고” 사람들이 따라 다녔어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 무리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자신들의 어떠한 유익을 위해서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서 주님을 따라 다닌 사람들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피해서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정치적인 지도자. 당시 로마 제국의 압제 하에 있었는데 우리를 해방시켜줄 지도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민족에 해방이 온다고 막 따라 다녔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붙잡혀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다 흩어져 버렸어요.

뿐만 아니라 저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님을 환영했던 저들이 닷새가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 하고 외친 그와 같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무리들은 자신들의 유익이 되면 따르지만 유익이 안 되면 가차 없이 돌아서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그 삶 속에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을 때는 좋고, 축복을 받을 때는 좋은데, 환란과 핍박과 어려움이 다가오면, 주님 곁을 떠나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려움 당할 때 문제를 당할 때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오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인데 조금 어려움이 다가온다고 주님을 떠난다고 하는 것은 아직 초보적인 신앙입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다가와도 문제가 다가와도 고통이 다가와도 간절히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면 주님이 일생동안 큰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한번 따라하세요 “예수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만족하고 세상 것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세상 것을 자꾸 움켜쥐면 탐욕이 생겨요. 그런데 이분들의 특징은 또 모으고 또 모으고 또 모으고 쓰지도 못하고 모으고 모으다가 결국 다 못 쓰다가 돌아가셔버리고 말아요. 그러면 가족들끼리 재산가지고 싸운다고요. 여러분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 때는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하고 병들고 나눠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수요일 날 국회에서 국회 기도회 생겨난 지 48주년 되는 기념예배를 가서 말씀을 전했는데요. 거기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제가 부탁을 드렸어요. 우리가 언제 갑자기 통일 될지 모르는데 통일 좀 준비해라. 우리 믿는 사람들이 믿는 국회의원들이 먼저 통일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지 하나님이 갑자기 우리나라를 북한을 열어서 통일 시켜주시면 준비가 안 될 때 우리가 굉장히 당황해 할 것입니다. 왜냐? 과거 십년동안 굶주려 죽은 사람들만 삼백만이랍니다. 북한이 말할 수 없는 기근 속에서 저들이 절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확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해야 해요. 벌써부터 우리가 통일 기금을 마련해야 되고, 교회마다 북한을 위한 선교기금을 마련해야 되고, 그래서 문이 열리는 날 북한으로 들어가서 교회도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많은 선한 일을 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서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가면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우리가 앞으로 다가올 일을 준비하는 그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카일 아이들만(Kyle Idleman) 목사님께서 「팬인가, 제자인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팬은 ‘와서 환호하다가 사라져버리는 사람’이며, 제자는 ‘와서 죽고 섬기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면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세상과 예수님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매번 저울질하는 반쪽짜리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팬이 많아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신앙의 연수가 아니라 헌신의 깊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그분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따라오라고 하실 때는 당장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참된 제자입니다.”

할렐루야. 인기들의 팬이 있어요. 팬클럽이 있어요. 근데 그 팬클럽의 모임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기가 떨어지면 다시 흩어져 버리고 다른 사람한테 가는 것입니다. 또 따라갔다가 이 사람의 인기가 떨어지면 또 갑니다. 그것이 팬입니다. 그것이 무리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 안돼요. 좋아도 또 어려운 일이 있어도 슬퍼도 기뻐도 주님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자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 제자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 행하는 자들이 제자고, 참 제자는 예수님의 닮은꼴이 되어서 그들의 말에서 행동에서 삶의 모습에서 예수님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참 제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쪽에 지금 서 계십니까? 무리 쪽에 서계십니까? 제자 쪽에 서계십니까? 제자의 길을 가십시오. “주님 작은 예수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닮은꼴이 되길 원합니다. 나로 인해서 이 세상이 아름다워지길 원합니다.” 진짜로 우리가 예수님의 닮은 모습을 살면 나로 인해서 우리 가정이 행복하게 되고 나로 인해서 내가 있는 직장이 행복하게 되고 나로 인해서 우리 사업장이, 학교가, 사회가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진짜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베풀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움켜쥐고 살아봐야 행복하지 않아요. 베풀고 살 때 행복한 것입니다. 나누고 살 때 행복한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원숭이 잡는 것 아시잖아요. 바가지에다가 구멍을 뚫고 그 안에 쌀을 집어넣어 놓으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쥐고 빼니까 안 나와요. 놓으면 나오는데. 땡기다가 결국에는 잡히는 거예요. 그 쌀 움큼 쥐느라고 자기가 잡혀가는 것도 모르고, 이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만족을 확 붙잡고 이것을 놔야 되는데 안 놓고 밀고 당기다가 결국 그 쾌락으로 인해서 망하는 것입니다. 놓으면 더 주시는데. 할렐루야. 예수 믿고 나서 참된 자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렐루야.

미숙아로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있는 가운데 산소압력조절에 실패해서 시신경을 상실 하고 맹인이 된 이기현이라고 하는 분이 있어요. 지금은 한국에 ‘스티브 원더’라고 불리는 CCM 작곡가고, 또 가수로, 감독으로 쓰임 받고 있는데요. ‘너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라고 하는 ‘야곱의 축복’을 편곡해서 널리 알린 분. 약 500곡 넘는 CCM 가스펠 곡을 작곡하고 편곡한 분인데 한 번도 음악을 배운 적 없어요. 또 한 번도 악보를 본 적이 없어요. 앞을 못 보니까. 앞을 못 보니까 못 보죠. 음악을 배운 적도 없고 악보를 본적도 없는데, 8살 때 불교집안이었던 이분이 어머니가 기도 받으면 눈뜬다고 기도원에 데리고 가갔고 그 기도원에 가서 있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겁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삶의 주인이 되셨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그런데 기도원에서 키보드 소리를 듣고 나서 자기도 한번 쳐보고 싶다고 석 달 만에 키보드를 마스터 하고 그때부터 반주를 하는데 얼마나 반주를 잘하는지 한 번도 정식으로 레슨을 받은 적이 없는데 워낙 천재적으로 재능을 갖고 태어나서 못하는 연주가 없고 악기를 뭐든지 잘 다루고요. 그래가지고 본인이 복음성가 작곡가도 되고 또 편곡도 하고 이를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 영광을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제가 제일 좋아하는 찬송이 ''Amazing Grace'',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놀라와'' 그 찬송을 제일 감사한다고 했고요. 그분이 CBS ‘새롭게 하소서’에 나와서 간증도 했는데 이런 고백을 했어요.

“내 눈보다 귀한 나의 예수님. 내가 눈을 잃었지만은 내가 맹인이 돼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만 증거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비록 두 눈은 멀었지만 그는 제자의 길을 가고 있어요. 예수님만 바라고 예수님만 찬양하고 예수님만 영광 돌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찬송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은혜를 받게 되고 주님께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절망적인 자기 모습에서 벗어나서 참 행복한 주님의 제자가 되었어요. 여러분, 한 번뿐인 인생에 그저 목적도 없이 방향도 없이 막! 사람들과 함께 가는 무리에 섞여있지 말고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제자의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2. 무엇을 따르고 있는가?
둘째로, 우리는 무엇을 따르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누굴 따라가요? 예수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요, 대단히 죄송하게도, 돈을 따라가요. 돈. “뭐니 뭐니 해도 money가 최고여” 돈 따라가는 거예요. 세상 권세를 따라갑니다. 이 세상 권세가 매력은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완전히 모든 걸 다 잃어버리는 그 길이예요. 왜? 그 권세를 누리는 사람 보면 그 권세가 끝나고 난 다음, 감옥에 간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우리나라에 정치할 때 조심해야 되겠더라고요. 나중에 보면 다 감옥 가있어요. 정말 권세가 좋아서 권세를 따라갔는데 그런 파멸의 길로 가게 될 줄 몰랐을 것입니다. 세상 인기 따라가지 마세요. 인기가 올랐다 내려갔다 하니까 가수들이 자꾸 인기에 신경 쓰다가 마리화나도 하고 주사도 맞고 그러다가 망가지는 것입니다. 인기가 밥을 먹여주는 게 아닌데 그 인기에 매달려가지고. 사람들이 뭔가 따라가는 것이 있어요. 그런데 이 세상 것을 따라가면 허무해진다 그 말이에요. 돈이 생기면 생길수록 더 맘에 근심이 쌓이고요, 인기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마음이 불안해지고요,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이 자기에게 상처를 주고 배신하니까 더 깊은 절망에 빠져요.

사마리아 여인을 보세요. 다섯 번 결혼했는데 실패하고 여섯 번째 사람과 아예 결혼도 하지 않고 살잖아요. 남자가 만족을 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만족은 우리의 그리스도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따라갑니까? 예수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4대째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서 목사가 된 것에 대해서 참 감사합니다. 왜, 그래도 예수님을 가장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귀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왜,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실 때 베드로와 안드레가,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세리는 그 세관원이었는데 부름을 받고 세관원직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따를 때, 때로 희생이 따르고 고통이 따르지마는 그 길은 행복한 길입니다. 그 길은 참된 행복의 길입니다. 세상 것을 따라가며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때문에 우리가 좌절하게 돼요. 사람을 따라가면요, 사람이 우리를 상처를 주고 우리에게 절망을 줍니다. 제가 아주 잘 아는 집사님은 부산에서 부자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돈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은행에 현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분 중에 한 분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집사님이 저한테 한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절대 남한테 돈을 안 빌려줍니다.” 그래요,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 가장 가까웠던 친구, 그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서 모든 걸 같이 얘기하던 친구가 어느 날 돈을 빌려달라 그래서 돈을 빌려줬는데, 사업이 어려워서 돈을 빌려줬는데 그 다음 돈을 갚지 못하니까 친구가 결국 자기를 떠나버렸대요. 그래서 너무나 상처가 되었답니다.

돈을 잃어버린 게 문제가 아니라 친구를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가까운 친구도 잃고 돈도 잃었다는 겁니다. 그때 이후로 자기가 돈을 빌려주지를 않는답니다. 누가 어렵다 그러면 비서 시켜서 “저 사람 집 알아보라”고. 알아보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면은 쌀도 실어다 주고 필요한 그 생활비도 보내주고. 그냥 잊어버리는 거예요. 빌려주는 게 아니라 주고 마는 겁니다. 그런데 돈을 빌려주고 난 다음부터, 그 날부터 “내 돈, 내 돈, 내 돈” 돈이 머리에 떠나질 않으니까, 결국 돈 때문에 사람도 잃고 돈도 잃고 다 잃어버린다고요. 그때 그 집사님이 저한테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래전 얘기인데도요, 최 집사님이시라고. 그 당시 돈이 굉장히 많으셨어요. 그러면서 그래요, “저는요 어려운 사람 비서 시켜서 알아보고 도와주면 도와줬지. 절대 돈 빌려주지 않습니다.” “남이 돈 빌리러 올 때하고 빌려 갈 때하고 마음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그래서 내 손에서 돈이 떠나는 순간 잊어버려야 하기 때문에, 내가 주고 맙니다.”

그래서 제가 배웠어요. 어려운 사람은 줘야지 빌려주지 말아라. 목사인 저한테 돈 빌리러 오는 사람이 있어요. 도와달라고. 그럼 도와주고 말지 빌려주면 안돼요. 빌려주면. 잊어버려야 돼요. 잊어버려. “목사님, 제가 대학 등록금이 없습니다. 저 학교를 다니게 해주세요.” 그거 주고 잊어버리고 마는 거예요. 그렇다 그래서 여러분 다 달라고 그러면 저 돈이 그렇게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할렐루야. 모든 문제 해결이 여기 있어요. 여러분 이제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예수님 닮은꼴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지금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셋째로, 지금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에 이와 같이 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하세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의 길에 두 모습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고 두 번째가 십자가를 지는 것인데, 종교개혁자 존 칼빈(장 깔뱅, Jean Calvin)은 이 두 가지가 그리스도의 삶에 가장 핵심적인 모습이라고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설명했습니다.

(1)자기 부인-자기를 부인하고
먼저 자기를 부인하는 것,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하세요. ‘자기를 부인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냐.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이것이 자기부인이에요. 사람이요, 늘 제 잘난 맛에 살거든요. 그러니까 상처가 많아요. 나를 알아주면 기분이 좋아가지고 ‘난 잘났어.’ 그러는데 안 알아주면 “날 몰라주고 섭섭하게.” 이런다고요. 혼자서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해요.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데 그 감정이 왜 그렇게 죽 끓듯이 자꾸 바뀌게 되느냐. 자기가 삶의 중심이 되니까. 내가 살아있으니까. 나. 나. 나. 나. 나! 그러다보니까 나 때문에 내가 상처 받는 거예요. 상처를 주는 범인이 바로 나에요. 누가 나를 갖다 어떻게 했다 그게 아니에요. 내가 살아있으니까 상처를 받는 겁니다. 내가 죽어있으면 상처받을 게 없지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자유로워져요. 남이 뭐라고 욕을 해도, 남이 나를 물어뜯어도, 짓밟아도. 난 아무것도 아니니까. 난 아무것도 아닌데 뭐. 내 삶에 주님만이 모든 것 되시니까.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이 내 속에 또 하나의 나와 싸워야 돼요. 옛사람의 나. 나 중심의 나. 우리 새 사람은 예수님 중심, 옛사람의 나는 나 중심인데. 나라고 하는 것은 늘 상처투성이예요. 왜?, 그렇게 되어있어요. 존재가. 자기가 삶을 살아가다보면 늘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게 되어있습니다. 따라하세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것이 되십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세요. 빌립보서 3장 7절로 8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할렐루야. 본인이 자랑할 것이 많았는데요 다 내려놨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셨어요. 그리고 그 마음에 주님의 기쁨이, 행복이 다가온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그의 신앙의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나는 죽었습니다.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늘 속상해하고. 이런 나는 죽었어요. 나는 이제 새사람이 되었어요.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옛사람은 죽여 버리고 주님과 함께 내가 부활하는 것입니다.

(2) 십자가를 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따라하세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마태복음 10장 38절에,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섬길 때 고난도, 희생도, 잘 감당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을 말씀합니다. 여러분, 희생 없이 사랑이 주어지지 않아요. 희생, 사랑은 희생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잖아요. 대단히 저는 11시 예배에 오신 분들께 죄송한 게, 주차장 시설이 부족해 가지고 얼마나 와서 막 돌아야 되고. 오다보면 어떤 분이 여의도 교회에 새로 왔는데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다가 한참 내려가서 저 밑에 지하실로 가서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갔는데 본 성전 구경도 하지 못하고 갔다고 그러더라고요.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잖아요. 여러분이 주님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희생하고 물질을 희생하고 불편함을 희생하고 다 불편한 여러 가지를 다 내려놓고 좀 희생하더라도 와서 예배드리는 거 아닙니까?

또 성찬예배는 꼭 안 빠져야 되기 때문에 와서 예배당을 올라가다, 올라가다 보니까 돗자리 밖에 앉을 데가 없으니까 돗자리에 앉아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사랑하니까. 할렐루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사랑하니까 와서 예배드리는 겁니다. 예배드리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가 않는 것입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 드려도 아깝지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니까 물질 드려도, 시간 드려도, 내 정성을 드리고 우리 성가대는 재능을 드리고, 다 드리는 거예요. 남녀 선교회가 일찍부터 와가지고 새벽 벌써 4시부터 나와서 이 앞에 왔다갔다 움직이기 시작하고 와서 하루 종일 저녁때까지 그냥 파김치가 되도록 열심히 봉사하고 들어가는데, 그래도 예수님 사랑하니까. 할렐루야. 그러니까 여러분, 예배 때 좀 불편해도 좀 참으시고, 좀 힘들어도 참으시고 주님을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저의 『그리스도를 본 받아』라는 책이 있는데 십자가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 없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밖으로 도망쳐도 십자가가 있고, 안으로 숨어도 거기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위로 올라가도 십자가가 기다리고, 밑으로 파고들어도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참고 순종하며 십자가를 져라. 그리하면 마지막에는 그 십자가가 너를 져 줄 것이다.” 할렐루야. 십자가가 없이 면류관이 없지요. 희생이 없이 축복이 없습니다. 고난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이 예수님에게 임하였던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십자가에서 거꾸로 달려 죽었고 사도 바울은 참수형을 당해 죽었고 바돌로메는 온 몸에 가죽을 벗겨서 죽였데요. 그렇게 순교했고요. 도마는 인도에서 창에 찔려 죽었고요. 그렇게 순교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그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주님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기꺼이 감사함으로 따랐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목적이 없고 자기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히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명이 있습니다. 제자가 되어서 제자를 삼는 이 일을 감당해야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변화시키게 하여 주옵소서.” “나로 인해서 우리 가정이 변화되고 나로 인해서 우리 직장이 변화되고 학교가 변화되고 사업장이 변화되고 하나님 아버지 이 대한민국이 변화되게 하여주옵소서.” 여러분이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제자로 살면 이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남을 속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사기 쳐서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을 억울하게 고통 속에 몰아넣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제자로 살아간다면 이 땅에 강도도 사라지고 도둑도 사라지고 모든 범죄자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려면 우리가 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한 분의 간증으로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라고 제자훈련을 통해서 전 세계를 선교하는 선교단체가 있는데 그 선교대표가 홍콩을 방문해서 거기 있는 사역자를 만났을 때 일입니다. 이제 그 사역자 집을 방문했는데 중국인 부부인데, 60이 넘은 영감님 부부에요. 그런데 나이가 60인데도 한 80쯤 된 거같이 그렇게 남편 되신 분이 여의고 머리가 하얗게 되고 그랬는데. 그런데 이 두 분이 얼마나 다정스럽게 지내는지 예배를 드리는데도 두 분이 꼭 손을 잡고 예배드리고 차를 갖고 오는데도 두 분이 같이 차를 나르고 같이 대접하고 부엌에 가서 뭘 가지고 오려면 또 같이 가고 같이 오고. 야, 참 나이 많은 부부들이 저렇게 금실 좋은 부부가 있구나. 그런데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들어 보니까 사연이 있는 거예요. 사연이,

“저희들은 중국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30년 전에 저는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여기 집사람하고 결혼하기 하루 전에 공산당이 저를 체포해 갔습니다. 감옥에 가두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포기하고 모른다고 부인만하면 놔주겠다. 그래서 저는 절대 나는 예수님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있게 되었는데 딱 1년에 한 번만 면회를 시켜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약혼자도 참 믿음이 좋은 예수님의 제자였기 때문에 와서 울면서 손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절대 당신 믿음 포기하면 안돼요. 당신도 믿음 지켜요.” 그리고 1년 동안 또 떨어져 있는 거에요. 딱 일 년에 한번, 일 년이 되면 또 면회를 허락해 줍니다. 1년 된 때에 또 만나면 서로 붙잡고 울면서 절대 믿음 지키고 절대 예수님을 버리면 안 된다고, “당신 나, 여기서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새롭게 출발하라고.” “아니라고 난, 당신을 사랑한다”고, 또 헤어지고. 그 다음에 또 만나고. 1년에 한 번씩, 공산당이 1년에 딱 한 번만 만나고, 한 번만 예수를 모른다고 그러면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그러면 놔준다는데 포기하지 않으니까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났는데, 머리가 허옇게 되고. 얼마나 감옥 안에서 핍박을 받았는지, 막 두들겨 맞고. 밥에다가는 돌을 가져다 부셔갖고 돌가루를 넣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으니 이가 다 상하고. 삼십년을 믿음으로 지켰어요.

할렐루야. 이 교도소에서 저 영감탱이 소용없다 내보내라. 그래서 60이 넘어가지고 나와 가지고 30년을 기다린 그 약혼녀하고 만나서 결혼해가지고 홍콩으로 넘어와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그러니까 신혼이지요, 신혼. 60 넘은 남편하고 60 다 된 부인하고 신혼이에요, 30년을 기다렸어요. 대단하지요. 예수님 때문에 희생한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잘 믿고 섬기는 것이 때로는 어려워요. 우리같이 자유 대한민국에서 맘 놓고 예수님 믿고, 예수님 믿는다고 감옥에 집어넣는 사람도 없지만 지금도 저 북한에 올라가면 그렇고, 공산치하에 사는 나라에 가면 맘 놓고 예수를 못 믿어요. 그러나 여러분,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예수님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참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축복이고 그것이 여러분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가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2013. 3. 3. 성찬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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