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탐심과 욕심의 비극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그런데 뱀은 야훼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1~6)

<서론>
“탐심과 욕심의 비극”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개인과 사회 및 국가와 국제관계의 분쟁의 뿌리는 언제나 탐심과 욕심이 그 배후에 있습니다. 야고보는 성경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므로 탐심과 욕심이 모든 사고,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것입니다.

탐심 때문에 항상 싸움이 많이 납니다. 더구나 교회도 그래요. 한 교회가 설립되어 있는데 옆에 다른 교회가 와서 개척을 하면 교인수 많은 교회의 교인을 좀 빼앗으려고 적은 교회가 온갖 애를 씁니다. 교인 두고서 서로 밀고 당기는 싸움을 하게 되는데 별로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탐심으로 인한 분쟁은 누구나 겪는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개인 생활에도 그런 체험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본론>
1. 아담과 타락, 탐심과 욕심

첫째로, 아담과 하와의 탐심과 욕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가 타락한 최악의 비극을 가져온 것입니다. 인류 최대의 비극은 아담의 타락과 그 결과가 가져온 고난과 사망인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로 17절에 “야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이 살 수 있는 에덴을 만드셨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동산을 만들어서 아담과 하와를 살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음을 받아서 하나님의 지시를 통하여 온 만물을 다스리는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꼭 아담과 하와에게 부탁하기를 하나님처럼 똑같이 되겠다고 하는 생각은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로 우주의 절대주인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와도 권력을 나누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잘못한 것은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친구를 사귀었는가를 보면 5년 내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을 예언할 수 있다고 저명한 심리학자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요사이 무슨 책을 읽어요? 어떠한 친구하고 사귀어요? 모르는 사이에 읽고 사귀는 그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 생각이 그 친구와 같아지고 그 친구를 통해서 내일에 대한 꿈을 꾸게 되고 믿게 되고 말하게 되고 그대로 이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정말로 여러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우연히 친구들과 말하는 것이 영향력이 없는 것 같아도 세월이 지나면 그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법칙인 것입니다. 생각하는 대로 되어요. 꿈꾸는 대로 되고 믿는 대로 되고 말하는 대로 되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평범함 생활 속에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친구를 사귀어서 생각이 어떻게 되며 어떤 꿈을 꾸며 말하며 살아가는가는 여러분 미래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잘못된 친구와 교제를 했습니다. 하나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으면 하나님과의 대화를 했으면 좋았을 것인데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하는 자는 자기와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맺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꼭 필요해서 만드셨습니다. 상대가 있어야 사랑을 하지요. 혼자서 허공 중에 사랑할 수는 없잖아요. 여러분 남편이 있든지 아내가 있든지 자식이 있든지 친구가 있든지 그런 사람이 있어야 사랑을 할 수가 있지요. 아무도 없는데 혼자서 사랑한다고 허허 웃고 사랑합니다 라고 하면 그것은 정신병원에 갖다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뱀과 대화했습니다.

이 뱀이라는 것은 상징적으로 말한 것이지 마귀가 뱀의 형상을 입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에게 말하기를 정말 하나님께서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유도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와가 아니야. 모든 실과를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정확하게 말씀을 하지 않고 자기가 해설을 붙여서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탁 무릎을 치면서 이 뱀이 말하기를 아니야. 네가 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하게 된다. 하나님이 네가 하나님처럼 될까 두려워해서 선악과를 못 먹게 만들었다. 그렇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하와가 그 말을 듣고 난 다음 가만히 선악과를 바라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러운 선악과였습니다. 별도리 없이 바라봄의 법칙은 바라보고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니까 손을 내밀어 따서 먹었습니다.

그것 먹고 난 다음에 자기만 먹었으면 좋은데 남편보고 여보 이리 오세요.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나 혼자만 죽으면 억울하니까. 나누어 먹자고... 그것을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이 바보 같은 아담이 받아서 먹었어요. 같이 죽어야지 어떻게 나 혼자 살겠느냐. 그래서 두 사람이 마귀의 말에 넘어가서 하나님께 범죄한 것입니다. 여러분 왜 선악과가 나쁘냐. 선악과라는 것은 쉬운 말로 말하면 좋다 나쁘다를 분별하는 권리인 것입니다. 좋다 나쁘다를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면 자기중심이 선 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 애들을 키워 놓으면 애가 자라면서 점점 자기 주권을 주장하게 되는데 그 주권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선악을 분별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것은 좋다. 좋은 줄 알고 나쁘다 하면 나쁜 줄 알고 그 좋고 나쁨을 부모의 결정에 따라 하면 부모의 주권이 섭니다. 그러나 애들이 자라면 부모가 이것 좋다. 아니요. 안좋아요. 이것은 나쁘다. 내 보기에는 좋아요.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하겠어요. 그러면 부모 앞에 자기 주권을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권자가 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싸움이 일어나게 되지요. 논쟁이 일어나게 되지요.

우주 가운데 하나님 홀로 이것이 좋다 하면 이것이 좋은 줄 알고 네 아멘! 이것이 나쁘다. 아 그래요? 그래야 될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게 좋다고 하는데 우리가 나쁩니다. 이게 나쁘다. 아니요 좋아요.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는 서로 마주 대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악과라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등되게 만들려는 마귀의 궤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담과 하와가 잘못된 친구 교제로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것이 인류의 큰 저주와 슬픔인 것입니다. 사탄과의 대화의 유혹은 창세기 3장 1절로 5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뱀은 야훼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이 경쟁자를 못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욕심과 탐심이 그들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바라봄의 법칙으로 그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탐심과 욕심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발동을 했어요. 그래가지고서 창세기 3장 6절에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바라봄의 법칙은 무섭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으면 나중에 그 바라보는 목표물이 여러분의 생애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큰 힘이 있습니다. 이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인데 바라보니까 선악과에게 끌려가서 그것을 먹게 되고 범죄하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와 삶의 환경에서 주인이 되어 하나님과 분리 독립되어 생각과 판단을 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에 하나님이 둘 생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심판했습니다.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그들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고 육신이 늙어서 병들고 죽고 버림을 당하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고통은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유전을 받아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원래 죽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영원히 살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잖아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것이 유전으로 전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도 죽고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사는 동안에도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고통이 다가오고 많은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도 함께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훗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 범죄를 다 대속하게 하고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도록 해주기를 원하시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장 큰 축복은 아담의 저주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해방되어 여러분에게 새로운 꿈과 믿음과 새로운 언어를 주셔서 새 삶을 살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 놀라운 것은 하나의 종교가 아니고 의식이 아니고 형식이 아니고 이 속에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성령이 운동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변화가 다가와요. 예수 믿으면 반드시 말씀을 따라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생각이 변화되고 꿈이 변화되고 믿음이 변화되고 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활이 변화되고 환경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좋아집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 보다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좋아질 미래를 바라보고 기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아무것도 일어나지도 않고 변화가 일어나지 아니하면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종교처럼 그저 마음의 위로나 받기 위해서 나간다면 세상 취미를 따라 나가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을 받아들여서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집니다. 그 달라짐과 동시에 여러분의 환경이 달라지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았는데 부족한 것이 다 채워지고 삶속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넘치도록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전신을 맡기고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좋다 하찮다를 자기가 맘대로 결정하는 주인이 되지 마십시오. 내가 내 주인이 되면 내 짐을 내가 다 짊어져야 되고 내 문제를 내가 다 해결해야 되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를 내가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면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돼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맡기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주인이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 내가 뭘 할까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 뭐라고 하시는지 압니까? 너 할 일이 없다. 왜 내가 할 일이 없습니까? 네가 다 내게 맡겼지 않느냐. 그러면 나는요? 그냥 날 믿고 놀아라.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마음의 평안을 갖고 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짐을 짊어져 주시고 일을 맡아 주시고 여러분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신앙이란 내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고생을 하고 그러면서 기도하고 사는 것이 신앙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나오면 주인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내 주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된 것입니다.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가 됩니다. 내 아버지, 내 주인에게 다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과 짐을 맡기고 여러분 자신도 내어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리정돈 해주세요.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여러분의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하게 만든 것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돼요.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일이든지 주님께 맡겨 놓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아침에도 기도할 때 내 마음속에 뭘 생각했느냐면 빨래통, 큰 빨래통에 나와가지고서 내 모든 더러워진 내복과 옷을 전부 빨래통에 던져 놓고 난 다음에 가만 보니까 나도 빨래만큼 더러운 놈이야. 나도 들어가자고... 나도 빨래통에 들어가서 하나님이여, 나의 모든 더러운 의복도 나도 다 빨래통에 들어왔으니까 이제는 주님께서 빨래 해 주십시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는 나와 있어라. 너의 더러운 의복은 내가 빨래 해 줄 것이니... 너는 나와 있어라.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나의 더러운 것을 씻어서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끗한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예배를 드리고 나갈 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해서 우리에게 넘겨준 유전의 죄, 질병, 저주, 가난, 죽음을 다 예수님의 빨래통에 던져 넣고 나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새로운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2. 바벨탑의 비극, 탐심과 욕심
우리가 성경에 보면 바벨탑의 비극이 나옵니다.

노아 홍수 때 온 세상이 심판을 받아 다 물에 빠져 죽고 노아와 그 여덟 식구만이 방주를 통해서 살아났지 않습니까? 그들이 노아 홍수 이후에 여러 가지 일을 많이 겪는데 노아의 아들들이 샘, 야벳, 함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여러분 노아가 홍수가 지고 세상이 달라졌는데 그때까지는 술이 안되었어요. 포도를 따서 술을 해도 즙이지 발효가 안되었습니다. 홍수 이후에 비로소 발효가 되었어요. 그것도 모르고 노아가 포도농사를 지어가지고 포도즙을 짜서 혼자서 맛있다고 잔뜩 먹었습니다. 그러니 완전히 취했다 말입니다. 그런데 주벽이 있어서 그냥 취했으면 누워자면 좋겠는데 옷을 발가벗고 누워 잡니다. 자기 방에서 발가벗고 누웠어요.

그래서 그 중간 아들인 함이 들어와서 보니까 아버지가 발가벗고 드러누웠다 말입니다. 그냥 밖에 나가서 고함을 치고 얼레꼴레 우리 아빠 발가벗고 누워잔다. 구경하러 오너라. 아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발가벗었다. 구경하러 오너라. 고함을 쳤습니다. 요사이는 그런 것 구경하라는 것 구경거리도 안되지만 옛날에는 구경거리가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구경하러 오고 굉장히 노아가 수치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샘 맏아들과 야벳 막내아들은 아버지가 발가벗은 것을 안봐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아버지 옷을 가지고서 이렇게 뒤로 옷을 들고서 뒷걸음질 쳐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뒷걸음질 쳐서 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발가벗은 것을 면하게 해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아가 잠에서 깨어나서 이 사실을 듣고 난 다음에 굉장히 노했습니다. 그래서 함이 저주를 받아서 함의 후손들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노예생활을 하고 어려운 고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샘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서 아시아인들이 대개 다 샘의 족속이 되었습니다. 종교가 다 거기서 나오고 다 잘살게 되고 야벳은 축복을 받아서 물질문명이 창대하게 된 구라파 사람들이 주로 야벳의 자손들이 된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부모의 말은 하나님 대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부모가 저주를 하면 자식들이 저주를 받습니다. 부모가 축복을 하면 자식들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이러한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 홍수 때 홍수가 나면 대개 어떻게 하느냐면 땅이 비옥해집니다. 시날광야에 홍수가 나서 다 덮었다가 물이 가라앉고 난 다음에는 땅이 굉장히 비옥해져서 농사가 굉장히 잘 되었어요. 얼마 안 있어 노아의 후손들이 큰 부자들이 되고 물질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모여서 우리 하나님 다시 홍수를 보내더라도 물에 빠져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탑을 만들자. 하늘 꼭대기에 닿게 하자. 그리고 우리 이름을 하나님과 똑같이 드러내고 우리가 인본주의적인 삶을 살자. 또다시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6장 5절로 8절에 보면 “야훼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야훼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와 그 여덟 식구는 배를 준비해서 생명을 구했지만 그 당시에 이외 사람들은 모두다 반역을 한 결과로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성읍을 다시 건설하자고 하는 것은 물에서 빠져 죽고 남은 노아의 여덟식구들이 후손을 퍼뜨려서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었을 때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종이 되지 않고 자기들 중심으로 살겠다고 결심을 하고 반역한 것입니다.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고 뭉쳐서 하나로 살자. 하나님과 동등되게 높이 탑을 쌓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조그만 하면 인본주의가 되어서 하나님과 동등되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성격인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주인이 되어 반역으로 뭉치자고 마음으로 결심하고 그리고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야훼는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였으므로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그들이 바벨탑을 지어 올라갔는데 굉장히 높은 탑을 지어 올라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니 족속도 하나요 말도 하나로 서로 대화가 잘되니까 탑이 자꾸 올라간다 말입니다. 반역이 점점 깊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려와서 직접보시고 사람들에게 언어를 혼잡시켰습니다. 언어를 써서 돌 올려라 하면 나무를 올리고 나무를 올리라 하면 흙을 올리고 대화가 안되니까 탑을 쌓다 말고 내려와서 서로 언쟁이 벌어지고 내가 잘했다. 네가 못했다 서로 논쟁 끝에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을 때 말을 혼잡하게 해버리면 말이 통과 안되면 대화가 안되면 서로 같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이 세상에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하고 같이 살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벨탑 짓기를 그만두고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시대에도 사람들이 뭉쳐서 하나님과 동등되고 하나님과 주권 다툼을 할 사람과 민족은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은 신본주의를 따르는 사람을 원하지 인본주의를 따르는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종이 된 사람은 용납하되 하나님의 적이 된 사람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유일하게 나의 주인이 되고 내 스스로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고 하나님과 대결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원치 않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엿새 만에 천지를 지으시고 이레 마지막을 휴식하는 날로 안식일로 정해서 인생들에게 그날부터 살게 시작한 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의 일을 다 맡아서 하시고 여러분에게는 안식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식들은 휴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시면 우리가 믿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끝까지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여러분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끝까지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30살에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때 마귀가 와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아담을 타락시킨 마귀, 바벨탑을 짓던 노아의 후손들을 타락시킨 마귀,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타락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의 무기, 탐심과 욕심

마태복음 4장 1절로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시험을 받게 되었는데 마귀가 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당신이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말하겠지만 우리는 마귀가 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돌이 변하여서 떡을 만들어 먹으라. 이렇게 유도신문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 아니니까 돌을 떡으로 못 만들지. 하나님 아들이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 그러면 우리가 인정하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유혹에 남어갔습니까? 아닙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어도 예수님은 말씀을 따르지 육신의 정욕을 먼저 따르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귀에게는 하나님 말씀으로 대결하면 마귀는 어찌하지 못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러니까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이 뾰충탑에서 뛰어 내리라. 여기에 예배 드리러 수많은 사람이 오는데 네가 성큼 발이 땅에 닿으면서 상처를 입지 않고 일어서면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너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것이 아니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못 뛰어내리지? 그렇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거라. 그렇게 유혹을 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한번 뛰어 내리라. 예수님께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나님을 시험해서 내가 하나님 아들이 아닌지를 확증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일하지 말라. 예수님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또 예수님을 데리고 천하만국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휘황찬란한 세상의 권력과 물질과 쾌락을 보여 주면서 나에게 절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줄테니.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임금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내게 절하면 이것 모두 다 줄테니 나에게 절하라.

오늘날도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세상 부귀, 영화, 공명을 줄터이니 마귀를 따르라고 유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마귀에게 절하지 않고 그런 것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귀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히틀러도 마귀에게 절하고 흉악한 전쟁을 일으켰지요. 무솔리니도 그런 전쟁을 일으켰지요. 일본의 도조도 그런 전쟁을 일으켰지요. 스탈린도 그런 전쟁을 일으켰지요. 자기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 마귀가 명하는 것을 따랐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었습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이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하였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모든 유혹에 원수 마귀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라고 바벨탑을 만든 노아의 후손들에게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면 돌덩이를 떡으로 만들어 먹어라. 하나님이거든 이 높은 탑에서 뛰어내려 보거라. 네가 하나님이면 천하만국을 네게 줄테니 내게 절하라. 언제나 하나님과 동등되라고 자꾸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라. 선악을 하나님 앞에서 너희가 결정하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의 주인이 아니라 네가 또 다른 새로운 주인이 되라. 그렇게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반역하여 자기와 손잡으라는 탐욕을 미끼로 사용했는데 우리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 인생을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극히 적은 욕심과 탐심이 큰 불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을 제켜 버리면 여러분 마귀의 유혹이 여러분에게서 끊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북한의 김정은이가 협박 공갈을 하는 것은 욕심과 탐심이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협박과 공갈하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 버리고 우리 대한민국하고 서로 좋은 관계 맺어서 왔다갔다 하고 물자도 구제도 좀 받고 원조도 좀 받고 우리 잘 살아 보자. 그렇게 하면 얼마나 잘 살겠습니까? 그러지 않고서 미사일을 쏘겠다. 원자탄을 쏘겠다. 불바다를 만들겠다. 짓이겨 주겠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사이가 좋아질 수 있겠습니까? 탐욕과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하고 아무 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축복을 하기 전에 반드시 탐욕과 욕심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탐욕과 욕심 없이 순수한 마음과 사랑과 믿음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는 아끼지 않고 축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4.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탐심과 욕심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 탐심과 욕심인 것입니다.

탐심과 욕심 중에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탐심과 욕심이 제일 나쁩니다. 사람은 사람이지 사람이 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것입니까? 로마서 12장 3절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나에게 나누어 주신 하나님이 팔자소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내 분에 맞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취하려고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겨나요. 나는 하나님 앞에 주여, 내가 분에 맞는 일을 꼭 알고 분에 맞는 일을 따라 인생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그런 기도를 늘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자꾸 나를 꾀서 120살 까지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탐욕과 욕심일 수가 있습니다. 저는 한평생을 주님의 도움으로 허약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내가 구하는 것은 100살까지만 살게 해 주십시오. 지금 77살이니까 23년만 더 살게 해주시면 앞으로 한 15년 동안 여러분 앞에 서서 설교하고 온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으니 좋겠습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여러분들도 모든 일에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이 탐심과 욕심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말하고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탐욕을 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수 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는 탐욕을 내어서 더 오래 이 세상에 살면서 십자가를 걸머지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탐욕을 저버리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우리 위해서 죽어주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정말 겸손하신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과 동등될 마음을 안 가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죽어서 사람들을 구원하라. 이것이 내가 결정하는 좋은 일이다. 그 예수님은 아니요. 나는 그렇게 원치 않습니다. 나는 더 오래 살아야 되겠습니다. 더 세상 일을 보고 성공을 하고 사람들을 인도하고 난 다음 그때가 오면 내가 죽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등되게 선악을 가지고서 대결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나님 뜻을 따라 그는 십자가에 매달려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살려면 하나님과 동등되려고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동등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기를 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주님께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독립된 주인 노릇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된다면 아파트 하나 사는 것도 내 힘으로 사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27편 1절로 2절에 보면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하나님이 집을 지어줘야 그 집이 온전히 존속하고 하나님이 성을 지켜줘야 파수꾼이 깨어있을 동안에 적들이 못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 힘으로만 아무리 애를 써도 헛된 일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의지하면 하나님이 은총과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 1958년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우리 한국의 소득이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600불이었습니다. 한 사람당 일 년 벌이가 600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예수 믿는 교인들의 수는 얼마였냐면 50만 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 목사들이 모여가지고서 우리 한국에 교인수가 백만이 되고 우리 한국의 국민소득이 6백 불에서 천불만 되더라도 우리가 자랑스럽게 살 수 있으니 그렇게 하자는 각오를 하고 함께 모여 기도회를 열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58년도인데 지금 100년이 지나기 전에 한국의 기독교인이 백만 명이 된 것이 아니라 천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축복해 주시니까 국민소득이 2만 불을 넘게 된 것입니다. 눈부신 성장을 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 우리를 건져 주시고 우리를 높여 주시고 응답해 주시고 영화롭게 해주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백성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천만 명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니까 그 사람들이 혼자 삽니까? 가족들과 같이 살고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섞여 사니까 안 믿는 사람들조차 덤으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집에 있으면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복이 같이 임하고 복 있는 사람이 떡반죽 그릇을 만지면 같이 먹는 사람들이 다 복을 받고 복이 있는 사람이 짐승을 기르면 짐승의 새끼까지 다 복을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살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을 잘 믿고 잘 모시고 잘 섬기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세계에서 제일 으뜸가는 나라가 될 것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나를 통하여 살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당 내 천당.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을 가지고 여러분과 와서 같이 계시니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우리가 주님께 죽으면 죽으리다 라고 내어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너무나 미진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익이 되면 믿고 내게 손해 오면 예수님을 안 믿겠다. 이런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뜻을 다 압니까?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나의 생각은 너의 생각보다 높고 나의 길은 너의 길보다 높다고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자기 길대로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일단 예수님을 믿으면 죽으면 죽으리라고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하십시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리고 주님께 내어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부흥회를 할 때 사람들이 많이 모여오고 미국에 제가 눌러 앉을 수는 없고 그때 여호수아 목사님하고 사모님하고 같이 캘리포니아서 LA 해변가에 있는 섬에 하루 종일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미국에 와서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돌아오니 이들을 돌봐줄 주의 종들을 보내야 되겠는데 한국에서 주의 종들을 파송할 만큼 한국의 경제력이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기도하니까 내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이 일어나요. 미국에 신학교를 세워라. 예? 신학교를 세우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돈이 없는데요?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돈으로 신학교 세우느냐? 그러면 돈도 없이 어떻게 신학교를 세웁니까? 나를 의지하고 신학교를 세우는 것이냐. 돈을 의지하고 신학교를 세우는 것이냐? 아이구 물론 하나님을 의지하지요. 그러니까 네 기도가 잘못 되었다. 돈이 없어서 못 하겠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어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기도를 고쳐라. 그래서 오전 중에 하던 기도를 점심을 안 먹으니까 점심시간에 하나님, 오전 중에 기도한 것 다 취소합니다. 이제 돈을 의지하고 학교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학교를 세울 터이니 하나님이 도와주십시오.

그 기도를 하고 시내로 나오면서 걱정이 태산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안 되면 하나님 어디 계시느냐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런데 조그마한 집회에 제가 나가서 하나님께서 여기에 신학교를 세워 주겠다고 하는데 실상 나는 돈도 없고 학교 세울 능력이 없는데 어찌할까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가지고 학교를 세우라고 하는데 어찌할까요?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 집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사람이 포켓트에 손을 넣고 나와서 어깨를 흔들흔들 하면서 까불까불하고 하는 사람이 나와가지고서 목사님, 그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누구를 사용하든지 사용해서 학교 지을만한 돈이 있든지 집이 있든지 그게 나오면 되었지 내가 그 이상 바랄 것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목사님 기도가 응답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응답 받았습니까? 날 따라 오십시오. 목사님이 응답받은 것 보여 줄 테니까. 그래서 데려가더니 큼직한 집 한 채를 보여 주세요. 여러분 방이 다섯 개나 있어요. 그 집을 보고 여기면 신학교 시작할 수 있겠지요? 여기 남의 집을 마음대로 내가 들어와서 할 수가 있겠느냐고 하니까 오늘부터 이 집을 점령하십시오. 당신 날 놀리는 거야? 날 도둑놈으로 삼는 거야? 어떻게 남의 땅을 집을 점령합니까? 남의 것이 아니라 내 집입니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집인데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다른 집이 또 있습니다. 이 집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오늘 목사님 말 듣고 나니까 팔 것이 아니라 목사님이 하는 사업에 내놓아야 되겠으니 이 집을 오늘부터 쓰십시오. 그래서 거기에서 출발한 것이 베데스다대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더 크게 되고 더 넓게 되고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게 되어서 지금은 미 연방정부에서 인가를 받은 박사학위까지 주는 좋은 대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고 나는 종이 되니까 주인이 알아서 해주지 않습니까? 종은 주인에게 맡겨 놓으면 주인이 알아서 다 해주는데 내가 주인이면 내가 다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여러분이 주인 같으면 하나님이 말합니다. 너 할 일은 없다. 나를 믿고 따라만 오너라. 내게 일을 맡겼으니 일은 내 것 아니냐.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야훼, 그 이름을 야훼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리라.

여러분이 할 일은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너희 할 일은 나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 맡겼으면 여러분 믿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주님의 멍에는 십자가인데 십자가 밑에 들어가면 그리고 십자가 밑에 들어가서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섬기고 모시면 일을 다 맡기고 그리고 난 다음에 우리는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맡아 주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욕과 욕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모든 것을 다 끌어안고 내가 내 주인 노릇하겠다고 하지 말고 탐심과 욕심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면 편안하고 일도 성취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십자가 없는 신앙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의식적인 종교를 가지고서 자기가 율법을 다 행하고 의식을 다 행하니 나는 너보다 낫다. 나는 너보다 더 의롭고 거룩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그렇게 교만한 태도를 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 바리새교인이 성전에 기도하라 갔는데 세리가 따라 들어가는데 바리새교인은 교법사와 함께 저 앞자리에 앉아서 꼿꼿하게 앉아서 하나님,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습니다. 저 뒤에 기도하는 세리와 같이 남의 돈 떼먹지도 아니고 세속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세리는 뒤에 와서 가슴을 치고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나의 돈도 떼먹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방탕도 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리고 기도했는데 두 사람이 다 기도를 마치고 성전을 떠났는데 주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어느 사람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의롭다고 나가느냐? 제자들이 하는 말이 물론, 앞에 나가서 일주일에 이틀 금식하고 십일조도 바치고 의롭게 산 사람 그 사람이 의롭다함을 입지 않겠습니까 하니까 그것은 인간 생각이고 의롭다하고 나에게 칭찬받고 나간 것은 저 세리, 가슴을 치고 제가 죄인입니다. 나는 어찌할 수 없이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자기를 낮추고 회개한 저 사람이 의롭다함을 입고 나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잘났다고 자랑하는 사람 딱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사람을 좋아하지 내가 잘났다고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본 듯이 날 좀 보소. 그렇게 머리를 휘두르고 자기 자랑하는 사람 원치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생활 속에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지해서 구원을 받는 것을 시인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로써 구원 못 받습니다. 여러분, 행위를 조사해 보면 죄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서 죄인입니다. 인간은 모든 일에 탐욕과 부패가 있습니다. 인간은 행위로써 구원 못 받습니다. 종교의식으로써 구원 못 받습니다. 캐면 캘수록 죄밖에 안 나옵니다. 벗기면 벗길수록 마늘이나 파처럼 까면 깔수록 속에 죄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의 보혈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 찢고 피 흘려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 예수님, 전적으로 그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사 구원하셨으므로 그 사랑을 의지하고 믿는 것입니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 번 넘어져도 또 일어나서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영원한 제물이 되셨으므로 여러분 영원히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 도움을 입고서 죄 없이 살기를 간구하면서도 늘 회개하고 용서를 받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율법적인 행위로써 여러분 중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천당 갈 사람 아무도 없어요.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이유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 추악, 저주와 절망을 대신 청산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섬기면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보증이 되기 때문에 꼭 예수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여러분 행위에서 구원받은 것 없습니다. 행위에서 좋은 것 아무것도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은혜는 공짜인 것입니다. 선물도 공짜인 것입니다. 은혜의 선물을 받아서 구원 받았으므로 여러분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천당은 내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인 것입니다. 기도응답은 내 것인 것입니다. 그냥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절대로 여러분 인간 자랑하지 마십시오. 인간자랑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라인홀드 니버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네 가지로 인류의 교만을 분류했는데 권력적인 교만이 있고, 지적인 교만이 있고, 도덕적인 교만이 있고, 영적인 교만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위험한 교만이 바로 영적인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교만에 빠진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아니라 내가 잘나서 구원받는다. 십자가 없이 율법이나 의식적인 행위를 잘해서 자기가 구원을 받는다고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절대로 미워하는 것입니다.

/ 2013. 4. 14.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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