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정문’에 못 박았을까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사료는 존재하지 않아… “역사적 상상력에 불과” 주장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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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
유재덕 | 브니엘 | 392쪽 | 15,800원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쯤 되면 ‘한국교회를 위한 95개조 제언’, ‘교회 개혁을 위한 95개조 반박문’ 따위의 글이 발표되거나 신학교 게시판에 내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종교개혁의 기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곽교회 정문에 ‘면죄부’를 비난하는 ‘95개조 반박문’을 써붙이면서 종교개혁이 촉발된 것에서 유래된 ‘연례행사’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수정주의 해석’이 제기됐고, ‘사건’의 실체가 의심받기 시작했다. 일부 학자들은 “루터가 교회 정문에 논제를 못박았다고 소개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면서, “작가들이 나름대로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 극적으로 묘사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

이를 증명할 당대 기록은 요하네스 슈나이더(Johannes Schneider)의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가 남긴 글에는 라틴어 ‘메 테스테(me teste)’, 즉 ‘내가 증언할 수 있는대로’라는 표현이 있어 직접 목격한 정보가 담긴 값진 사료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한스 폴츠(Hans Foltz)라는 루터학자가 1961년 슈나이더의 육필 원고를 확인한 후, “원본에는 그런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문을 학계에 발표했다. 알고 보니, 해당 라틴어는 ‘메 테스테’가 아니라 ‘모데스테(modeste)’, 곧 ‘조심스러운 형태로’였다는 것이다.

‘모데스테’로 다시 슈나이더의 글을 읽어 보면 이러하다. “1517년 루터는 엘베 강변 비텐베르크에서 대학의 오랜 관습에 따라 모종의 명제를 논쟁용으로 제출했으나, 너무나 조심스러운 형태라서(modeste) 누군가를 비방·중상할 의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루터의 행동을 직접 목격한 글도 아니었고, 이외에도 슈나이더의 글 어디에서도 루터가 직접 망치를 갖고 교회 정문에 논제를 못 박았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루터는 급진적 종교개혁을 꿈꾸지 않았고, 루터 자신도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못 박았다고 직접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못을 박고 안 박고가 무엇이 중요하랴. 루터가 면죄부에 불만을 가졌고, 이에 의해 종교개혁이 촉발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브니엘)>는 이렇듯 역사를 ‘관심과 즐거움을 좇는 독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과거 일들을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보거나(1부 ‘오늘날과 비슷한 기독교 역사’) 기독교의 크고 작은 역사적 오류들을 검토하고(2부 ‘위험한 기독교 역사’), 우리가 가진 역사적 상식을 뒤집어 보거나(3부 ‘거꾸로 보는 기독교 역사’) 평소에 알고 싶었던 문제들(4부 ‘궁금한 기독교 역사’)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저자인 유재덕 교수(서울신대)는 “기독교의 지나간 역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예사롭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게 되고, 앞으로의 일들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해진다”며 “그런 지혜로운 역사적 안목을 갖추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이 앞서 살다간 이들 덕분이었음을 깨닫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제는 ‘재미에 지식을 더하는 흥미로운 기독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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