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환 목사 설교] 경청을 잘해야 믿음이 생긴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본문: 사도행전 7:1-3, 51-53

▲광교지구촌교회 김인환 담임목사. ⓒ광교지구촌교회
▲광교지구촌교회 김인환 담임목사. ⓒ광교지구촌교회

여러분은 경청을 잘 하시는 편이십니까? 현대 기독교 이미지 평가 보고서인 <나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서 데이비드 키네먼과 게이브 라이언은 외부에서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 얘기를 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거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외부인의 평가를 들으면서 저는 제일 먼저 제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과연 경청을 잘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 이야기만 하는 사람인가?” 대답은 바로 나왔습니다. 목사로 살아가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있다면, 항상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교만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르쳐야 한다는 잘못된 태도를 견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끄럽게도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경청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누군가를 만날 때 경청하시는 편이십니까, 아니면 말을 주도 하시는 편이십니까? 오늘 메시지는 누구보다도 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메시지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에서 행한 스데반의 위대한 법정 진술이자 설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은 갖고 있었지만 참된 믿음은 갖진 못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향하여 스데반이 법정 진술이라는 기회를 통하여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데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도, 아예 경청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스데반이 전한 복음을 듣고도 구원받기는 커녕 오히려 돌로 스데반을 쳐 죽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 57-58절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안타깝지 않습니까? 성경에 메시지의 전문이 기록될 만큼 탁월했던 스데반의 설교, 그 탁월한 설교를 듣고도 그들은 믿음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왜요? 그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경청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영생을 누리는 복된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경청을 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참된 믿음을 갖고자 한다면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마다, 아니 큐티하며 말씀을 대면할 때마다 무엇보다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참된 믿음을 갖고, 날마다 변화되는 놀라운 인생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경청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잘못된 자기정당화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어도 말을 듣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잘못된 자기정당화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이지요. 바로 공회에 모여 있었던 종교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본문 1절 보세요.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언뜻 보면 대제사장 가야바가 스데반으로 하여금 변호할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가야바는 지금 스데반 사실이라고 대답하면 신성모독죄를 적용하여 사형에 처할 심산이었고, 사실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위증죄를 적용시켜 벌을 내릴 심산이었던 것입니다. 이미 가야바의 마음에 ‘자신들은 문제가 없고 스데반에게 문제가 있다’는 전제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 빼앗길까봐 거짓 증인을 세워 스데반을 공회 앞에 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데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아무 죄가 없는 스데반을 판단하면서 묻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냐?”

인간이 타락한 이후 누구나 갖게 되는 가장 보편적인 태도는 바로 ‘자기정당화’입니다. ‘나는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전제를 갖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자기정당화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인 취급 받는 것을 심히 불쾌해 합니다. 하지만 로마서 3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들도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쉽게 간과한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때문에 늘 감격하던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자신들의 행위가 ‘옳다’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사소한 지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요? “왜 듣는 것이 쉽지 않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행동과 판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제 자신이 그렇습니다. 경청을 잘하지 못할 때 제 모습을 돌아보면 이런 생각으로 꽉 차있습니다. ‘난 문제가 없어! 문제는 상대방이 갖고 있을 뿐이야!’

<불편한 진실, 내 안의 바리새인>의 저자 톰 하베스톨 목사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미션스쿨의 교사로 일할 때였습니다. 학생들에게 들려줄 설교를 준비하려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마태복음을 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내용도 아닌 바리새인들에 대한 내용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이었거든요. 그리고는 그는 그날 밤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가리켜 어리석은 자, 살인자, 위선자. 뱀,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다. 그러니 내가 바리새인을 닮았다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바리새인과 내가 종교적 배경이 비슷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생각한 것보다 더 나와 닮았을 것 같아 흠칫 겁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사도행전 강해를 하면서 점점 제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강해를 할 때 저는 마가의 다락방에 있는 성도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사도들처럼, 바나바처럼, 아니 스데반처럼 본이 되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볼수록 저는 바리새인처럼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만을 내려놓고 더 들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문제가 무엇인지, 아니 내 태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 지 먼저 보아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자기정당화에 빠져 바리새인처럼 행동한 적이 많았습니다. 아마 이 중에는 저의 교만함으로 인해 한 해 동안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인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서 우리가 어떻게 경청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잘못된 확신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정당화에서 빠져 나와야 누군가의 말이 들립니다. 말씀이 들리고 성경이 들리고 상대방의 마음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기 정당화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잘못된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J&P지식발전소 대표인 조신영 씨가 쓴 <경청>이라는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거기서 주인공은 ‘이토벤’이라 불리는 이과장입니다. 그런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유달리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해서도, 베토벤의 모습과 비슷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런 별명을 갖게 된 것은 귀머거리 베토벤처럼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에게 평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양대리라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리한 판단력과 뛰어난 실행력을 갖추신 이 과장님,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면 남이 뭐라 하든 초지일관 앞으로만 나아가시는 과장님, 그런데 한 번쯤은 후배들의 의견도 들어주세요. 선배님은 항상 확신에 차 있으니 누구의 조언도 필요 없겠지만 말이죠.”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 경청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리한 판단력과 뛰어난 실행력, 거기에 확신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의견이 제대로 들려질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와 허물로 망가진 우리가 늘 옳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패하고 실수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탁월함과 확신이 매우 중요한 순간에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변론을 듣기 위해 공회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바로 그 잘못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신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신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교 안에서 나름대로 지위와 능력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잘못된 확신이 스데반이 전한 복음을 경청하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본문 2-3절 보세요.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자, 스데반이 자기정당화에 빠진 그들에게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요?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자신들은 흠이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시는 것처럼 오직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만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단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들이 얼마나 참된 믿음에서 떠나 있었는지를 논리적으로 전한 것입니다.

이것은 스데반의 독창적인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 8절 보시죠.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무슨 말입니까? 천국 영생을 얻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스데반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인용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자신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고 있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스데반이 “들으라 부형들이여”라고 소리치며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요? 잘못된 확신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참된 믿음을 갖고 영생을 누리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행복을 누리길 원한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확신이 성경적인 것인지 다시 한 번 돌아 봐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잘못에 빠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경청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뛰어난 영성 철학자인 제임스 앨런은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As a Man Thinketh)>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생각과 행동은 결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없다. 또한 나쁜 생각과 행동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또 잠언 23장 7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잘못된 확신은 잘못된 생각이 정리된 믿음 체계에서 나옵니다. 이단에 빠지신 분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들의 확신은 누구보다도 대단합니다. 그들은 늘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런 그들의 확신과 자기 정당화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잘못된 교리, 다시 말해 잘못된 생각이 정리된 체계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잘못된 교리를 가지면 잘못된 확신과 자기 정당화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당시 스데반을 재판한 종교 지도자들과 공회에 몰려든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왜 잘못된 확신과 자기 정당화에 빠졌습니까? 왜 스데반이 전한 복음을 듣지 않고 귀를 막아 버렸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자신들은 이방인들과는 달리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잘못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이 잘못된 확신과 자부심과 자기정당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그들은, 할례 받은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자신들만큼 깨끗한 사람들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예수께서도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신 바 있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39-40절 보시죠.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지, 육신의 혈통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무슨 말이에요? 아브라함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해했습니다. 믿음이 아닌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이라는 혈통이 구원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생각을 체계화시켜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교리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다시 복음 앞에 섰지만 그 복음을 듣지 못했고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그를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죽은 것일까요? 스데반이요? 아니요. 성경은 ‘그가 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스데반은 죽었지만 부활의 날 다시 깨어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하지만 스데반의 말에 귀를 닫아버리고 그를 죽인 그들은 살았지만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제가 교육목사로 일할 때 만난 한 어린 소녀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교회 로비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그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왜 입술은 하나만 만드셨는데 귀를 두 개를 만드신 지 아세요?”

뜬금없는 질문에 멍하고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이, 목사님도 모르시나봐요. 난 목자님께 배웠어요. 하나님이 입술은 하나만 만드셨는데 귀는 두 개를 만드신 것은 더 많이 듣고 살라는 뜻이래요.” 오늘 유난히도 그 아이의 음성이 제 귀에 생생하게 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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