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희망은 위로가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한국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 펴낸 ‘땅콩’ 김광남 선생

▲김광남 선생은 “기독교의 사랑이 ‘무조건적 사랑과 용서’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속성 중에는 공의도 있어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며 “그 부분을 도외시한다면 하나님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대웅 기자
▲김광남 선생은 “기독교의 사랑이 ‘무조건적 사랑과 용서’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속성 중에는 공의도 있어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며 “그 부분을 도외시한다면 하나님의 본질을 오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대웅 기자

기독 출판계에서 ‘예레미야’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김근주 교수(느헤미야)의 <특강 예레미야(IVP)>가 발간된 데 이어, 평신도 신학자인 김광남 선생의 <한국교회, 예레미야에게 길을 묻다(아바서원)>가 나온 것.

특히 이 책은 2014년 현재의 ‘땅콩’ 선생이 2천4백여년 전에 살았던 선지자 예레미야를 서울로 초청해 4일간 ‘대담’을 나누는 특이한 형태로 구성돼 있다. 4백년간 이 땅에서 살았던 외계인 ‘도민준’이 주인공인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능가하는 ‘타임슬립’인 셈. 이 같은 ‘대화체 예레미야 강해’는 예언서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평신도들을 고려한 시도임과 동시에,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소리’로 오늘의 한국교회를 진단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렇듯 참신한 시도가 가능했던 건 저자의 ‘출신 성분(?)’ 덕분이다. 저자는 오랜 기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인터뷰 경험을 쌓았고, 프리랜서로 독립한 후에는 번역 작업과 함께 신학 공부를 병행해 오고 있다.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려는 특이한 형식을 택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저자는 탁월한 성경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예레미야서를 해설하면서도, 한국교회의 현실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다음은 예레미야와 4일간의 대담을 진행했던 ‘땅콩’ 선생과의 이야기.

-책을 쓰시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꽤 오랜 기간 기독교 언론과 출판 분야에서 일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른바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구약의 예언서들을 공부하는 동안, 오늘의 한국교회 문제가 고대 이스라엘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의 문제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 예언서에서 한국교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 볼 요량으로 책을 쓰게 된 겁니다.”

-선생님의 책과 <특강 예레미야>까지 읽어보고 새해부터 예레미야서를 다시 읽고 있는데 여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서 뿐 아니라 모든 예언서들은 신탁, 환상, 역사, 애가, 찬송, 시 등이 혼합된 특이한 형태의 고대 문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가 40년 넘게 활동하면서 여러 상황 속에서 선포했던 예언들을 후대의 서기관들이 모아서 편집한 책이라, 그 과정에서 연대기적 순서가 많이 무시되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시대에 했던 예언이 그보다 앞선 여호야김 시대의 예언보다 앞서 있기도 해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기승전결 구조마저 무너져 있으니 현대인들이 읽기 쉽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책은 술술 잘 읽히던데요.

“저는 처음부터 평신도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예레미야서를 통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구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요시야-여호야김-시드기야-이집트 시절의 시대 구분은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전체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합했다고 할까요? 학문적 근거를 중시하는 학자들로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학자가 아니라 비교적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상상력을 동원했다는 말이 곧 공상을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책을 쓰는 과정에서 개연성을 확보하고자 나름 애를 썼습니다. 제가 책을 내고 나니 어떤 분이 페이스북에서 제게 ‘학자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니면서, 무슨 용기로 그런 책을 쓴 거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되물었습니다. 교회에서 예레미야서를 강해하시는 목사님들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설교를 하시느냐고요. 저는 책을 쓰기 위해 예언서와 관련된 서적 20권 이상을 정독했습니다. 우리말로 된 예레미야 주석은 거의 다 보았고, 세 번 이상 밑줄을 쳐 가며 읽은 책들도 있었어요. 대학원에서 예언서를 집중적으로 공부했을 뿐 아니라, 졸업논문 대신 책을 펴낼 요량으로 예언서와 관련해 2천매 넘는 원고를 쓰기도 했습니다.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이 정도의 책을 쓰는데 필요한 만큼의 공부는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체를 사용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잡지사에서 근무할 때 목회자들간의 대담을 정리해 기사화하는 작업을 꽤 많이 했었는데, 그 때 대담이 갖고 있는 매력을 느꼈습니다. 한 사람이 계속 이야기하는 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데, 대담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있어요. 일방적인 서술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형식상 이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종교 신간 코너에서 자신의 책을 들고 있는 김광남 선생. ⓒ이대웅 기자
▲광화문 교보문고 종교 신간 코너에서 자신의 책을 들고 있는 김광남 선생. ⓒ이대웅 기자

-그렇다면, 예언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예언서는 열 번 읽는다 해서 이해가 되는 게 아닐 겁니다. 지루해서 그렇게 읽지도 못해요. 가장 좋은 방법은 1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주석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읽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듯 그건 평신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제 책 같은 개론서를 읽는다면, 큰 틀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달콤한 ‘힐링’보다, 공평과 정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던데요.

“애초에 생각했던 책 제목은 <하나님의 힐링>이었어요. 편집 과정에서 제목이 바뀌기는 했지만, 책의 주제는 ‘하나님의 힐링’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온갖 힐링 메시지가 범람하고 있는데, 듣다 보면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아요. 실제로 오늘날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소소한 인간관계의 문제들이 아니라 구조적 사회악인 경우가 많습니다. 불의한 제도, 부당한 관행, 비인간적 경제 시스템, 부패한 정치, 패거리 문화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악은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먹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우리 사회 전반에서 공평과 정의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어요.

예레미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공평과 정의의 회복을 강조했는데, 그것들의 회복 없이는 이스라엘의 치유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구조 문제를 도외시한 채, 개인들에게만 바르게 살라, 착하게 살라, 참고 살라고 해서는 어떤 의미있는 변화도 불가능합니다. 그건 마치 초등학생에게 조폭 집단과 맞서 싸우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희망은 위로가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당시 달콤한 말로 백성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 주던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가 생각했던 하나님의 힐링은 유다가 심판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 이후의 회복이었습니다. 사실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라는 위로의 말은 당장 듣기엔 좋지만, 참된 힐링의 길을 제시할 순 없습니다. 달콤하지만 헛된 메시지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예레미야는 홀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인 바벨론의 통치를 받아들이라고 외쳤습니다. 어찌 보면 매국노(賣國奴) 같은 말이었지요. 하지만 예레미야가 보기에는 그것만이 유다가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말한 것을 ‘정치적 현실주의’라고 표현하셨던데, 예언과 정치적 현실주의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유다 말기의 바벨론은 오늘날의 미국 못지 않게 강력한 대제국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시드기야 왕 주변의 매파들은 계속해서 ‘이집트가 도와주기만 하면 우리가 바벨론을 이길 수 있다’고 했어요.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이었죠. 마치 지금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중국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말만큼이 너무니없는 소리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분명히 정치적 현실주의자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예언자를 몽환적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받아 적었던 이들로 여기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언자들에게는 현실에 대한 아주 예리한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에 비추어 다시 현실을 해석해냈던 겁니다. 칼 바르트도 목회자들에게 ‘한 손에 성경을, 다른 한 손에 신문을 들어야 한다’고 외쳤지요. 현실에 대한 인식 없이 성경만 붙들고 있으면 매일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와의 대담이 대형교회와 기도원 꼭대기, 남산 등에서 진행된 것에 대해 그는 &ldquo;사람 사는 꼴들을 내려다 보려고&rdquo;라며 &ldquo;겉과 속이 너무 다른데, 겉에 취해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다&rdquo;고 했다. ⓒ이대웅 기자
▲예레미야와의 대담이 대형교회와 기도원 꼭대기, 남산 등에서 진행된 것에 대해 그는 “사람 사는 꼴들을 내려다 보려고”라며 “겉과 속이 너무 다른데, 겉에 취해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대웅 기자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타락한 설교’를 꼽으셨는데요.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게 된 이유는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오직 예언자들의 말만 들었던 게 아닙니다.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으나, 아마도 그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한 번 들었다면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과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열 번 이상 들었을 겁니다. 만약 유다에서 이사야나 미가나 예레미야 같은 이들만 활동했다면, 백성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말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섰을 겁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에는 그들의 말을 무시해버리기에 충분할 만큼의 거짓 예언들이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처럼 타락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분명 한국교회 신자들은 바보 멍청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설교자들로부터 타락한 설교를 듣다 보니 이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저는 교회 타락의 일차적 원인은 ‘설교의 타락’에 있다고 봅니다. 흔히 사람들은 세속화나 기복신앙, 물량주의, 권위주의 등을 원인으로 거론하는데, 제가 보기 그것들은 다 현상에 불과합니다. 그런 현상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타락한 설교입니다.”

-끝으로, 왜 ‘땅콩’ 선생인가요.

“예레미야의 대담 파트너로 누굴 세울까 하는 고민을 한참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한 학자를 등장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다 못해 한국교회를 대표할 만한 목회자라도 내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대화의 내용이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흐를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조금 가볍게 가기로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충분히 무거우니, 대화 상대자는 가벼워도 좋겠다는 생각에 아주 만만한 인물인 ‘땅콩 선생’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겁니다.

저는 이 책을 쓰면서 몇 가지 목표한 게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신학이 갖고 있는 ‘엄숙성’을 걷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한 방송사가 마련한 <낸시랭의 신학펀치>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데, 저는 대찬성입니다. 오늘날 일반 신자들에게 신학은 의학이나 컴퓨터 공학만큼이나 전문적인 학문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신앙은 결코 신학과 유리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할 수만 있다면 ‘신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땅콩’은 제 어릴 적 별명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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