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질그릇에 담긴 보배

신태진 기자  tjshin@chtoday.co.kr   |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 4:11~12)

<서론>
“질그릇에 담긴 보배”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가 품고 계신 보배인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제2위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 품에 계시다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사람으로 태어나 33년 동안 이 세상에 사시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었으나 죄는 짓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죄,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받아야 될 고통을 대신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청산했으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우리의 보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보배가 되어서 우리 속에 계시면서 언제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천국으로 데려가는 역사를 베풀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누가 있느냐. 우리 안에는 우리 마음이 있고 우리 마음은 생각을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느냐. 나를 위해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마음속에 하루에 5만 가지 내지 6만 가지 생각을 합니다. 오만 생각 다한다지 않습니까? 그 생각 속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능력이 없다. 실력이 없다. 돈이 없다. 그런 생각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하므로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계실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질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가 죄 대신 의, 허물 대신 거룩함, 질병 대신에 치료와 건강, 저주 대신에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 지옥 대신에 천국 이러한 영광으로 마음속에 채워 놓으면 우리 마음속은 항상 보배로써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보배가 하나님 성령에 의해서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질그릇에 담겨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배가 되시면 어떻게 되는지 성경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사방으로 욱여싸는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로 8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사방에서 압력을 당해도 질그릇인 우리가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보배이신 예수가 계시고 그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는가 그 바라봄의 법칙을 쫓아서 그 상대가 우리 생애 속에 이루어지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 속에 계신 보배이신 예수님을 힘차게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힘차게 바라볼 때 자기도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보지 않고 환경을 바라볼 때는 그는 물속에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생명력이 죄와 허물의 압력도, 병의 압력, 저주와 고통의 압력, 죽음의 압력 등을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힘차게 예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뱀이 와서 물어서 죽일 때 불뱀에 물려서 퉁퉁 부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범죄한 것 용서하고 살려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장대에 불뱀을 내달라고 했습니다.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 높이 달았을 때 그를 바라보는 자는 다 낫는다. 여러분, 바라보는 것이 아무 힘이 없는 것 같이 생각되지만 바라보면 그 상대 바라보는 상대가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요사이도 우리가 텔레비를 통해서 보면 여러 가지 세속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사진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그와 독이 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어도 구원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루종일 지나면서 예수님을 늘 마음속에 바라봐야 돼요. 그러면 사방으로 욱여싸도 싸이지 않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우리 신학교에 와서 채플에 설교를 해주기를 늘 바라고 그 목사님이 설교를 하면 굉장히 은혜가 되었습니다. 김상호 목사라고 충청도지구에서 주로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 했는데 이 목사님의 이야기는 굉장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6.25 때 얼마나 춥고 눈이 많이 오고 그랬는데 상간 벽지를 돌면서 전도를 하고 부흥회를 하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충청도 어느 산골짜기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손전등도 없고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데 길을 잃어서 방황하다가 보니까 지치고 피곤해서 이제는 바라볼 것이 죽음밖에 없었습니다. 영 지치고 절망적이 되어서 그는 눈 속에 쓰러지면서 마음속에 십자가를 바라보았었습니다. 주님, 내가 이 눈에 파묻혀서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면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야지 눈에 길을 잃고 죽으면 되겠습니까? 그 말을 약간 기억하고 그냥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눈 속에서 잤는데 아침까지 굉장히 훈훈하고 좋거든요. 그래서 눈을 뜨려고 하는데 누가 얼굴에 세수를 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보니까 큼직한 범이 밤새도록 안고 아침 기상 시간이 되니까 세수를 시켜주는 거예요. 그런데 그 김상호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보통 때 같으면 겁이 나야 되는데 하나도 겁이 안 났다고 합니다. 마음이 얼마나 훈훈한지. 그래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아버지! 밤에 자는 동안에 날 보호해 달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살아있는 범을 보내서 나를 이렇게 끌어안고 평안하게 잠을 자게 해주신 것 감사하고 호강을 보태어서 범이 세수까지 해주시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리고 범아 참 고맙다. 너에게 누룽지라도 하나 줬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일어나니까 범이 일어나더니만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발톱을 이렇게 적게 잡고 뒷걸음질치면서 서서히 물러갔어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는 그것이 진짜 범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천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천사가 자기를 범의 형상으로 만들어서 나타났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그에게 다가왔을지라도 예수님이 속에 계시니 범이 김상호 목사 좋아서 안았겠습니까? 김상호 목사님 속에 계신 예수님이 좋아서 안았겠지요. 여러분 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천사들뿐 아니라 온 하늘의 능력이 여러분을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로 9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정말 하나님이 날 사랑할까? 그런 질문 자꾸 합니다. 정말 나를 사랑하고 계실까? 정말 나는 사랑받는 사람일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증거를 내세우는 것은 죄인 되었을 때 그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게 한 것은 사랑의 표적이 아니고 뭐냐. 사랑도 안 하는데 여러분 대신해서 십자가 걸머지고 죽을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시편 118편 8절로 11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야훼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야훼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야훼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야훼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는데 하나님이 아람왕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올 기미를 보이면 엘리사에게 낱낱이 정보를 유출했습니다. 엘리사가 정보를 가지고서 이스라엘 왕에게 군대를 여기에 배치시키십시오. 진지를 여기에 만드십시오 해서 아무리 해도 아람이 이스라엘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람왕이 제직회를 열면서 하는 말이 우리 가운데 스파이가 있다. 그렇지 않고는 이스라엘 왕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 리가 있느냐. 우리 가운데 스파이를 색출하라. 그러니까 부하가 하는 말이 왕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하나님의 종이 있어서 왕이 침상에 들어가서 머릿속에 생각하는 것 다 알아내어서 이스라엘 왕에게 다 알려줍니다. 그러니 우리가 작전을 세울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엘리사를 잡으라. 사람을 보내어서 엘리사가 어디 있는지 살펴보니 도단이라는 성에서 엘리사가 밤을 새운다는 소리를 듣고 밤새도록 군대를 동원해서 군대가 총동원되어 도단성을 둘러쌓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엘리사의 종이 일찍 나와서 스트레칭을 했습니다. 아~ 어? 온 천지에 깃발천지입니다. 그 무슨 깃발인가 보니까 아람 군대의 깃발이 온 천지에 가득해요. 첩첩이 둘러싸였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죽었지요. 그래서 그는 벌벌 떨면서 ‘엘리사 선생님 우리는 죽었습니다. 온 천지에 아람군대의 깃발이 꽉 찼으니.’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알고 있다. 알고 계시면 뭐합니까? 둘러싸였는데. 여기 앉아라. 앉혀 놓고 하나님 아버지, 이 청년이 눈을 떠서 보게 해주시옵소서. 청년의 눈의 영안이 열리니까 저 아람 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하늘에서 불말과 불병거가 온 산천을 덮었습니다. 그 사이를 꽉 메워서 있으니까 엘리사가 그 종보고 하는 말이 저들보다 우리와 같이 하는 분이 더 많지 않느냐. 걱정하지 마라. 천천히 세수하고 나오니까 적군들이 다 따라옵니다. 그 적군의 한 병사가 와서 여기에 엘리사가 잔다고 하는데 엘리사가 자는 곳을 아느냐. 잘못 찾았습니다. 성도 잘못 찾았고 사람도 잘못 찾았습니다.

날 따라 오십시오. 그러니까 쭉 따라옵니다. 이스라엘의 수도로 이끌고 와서 ‘전부 여기 앉으십시오. 내가 엘리사를 찾게 해줄테니까.’ 그래서 사마리아에 이스라엘 수도인데 거기에 수십만 군대가 따라와서 앉아있는데 나타난 것은 이스라엘 군대가 그들을 애워싸고 이스라엘 왕이 나와서 엘리사보고 이 놈들을 다 칼로 칠까요? 어떻게 할까요? 보니까 적군의 서울에 들어와 있어요. 그러더니 엘리사가 하는 말이 우리가 칼과 창으로 이 사람들을 포로로 잡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밥 잘 먹이고 대접 잘해서 보내십시오. 그래서 전쟁이 아니라 파티가 이루어졌고 잘 먹고 잘 마셔 고맙습니다 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난 다음 다시는 쳐들어오지 않았었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적군이 우리를 둘러 진 치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보배가 너무나 크므로 예수님 지키기 위해서 천사들이 와서 우리를 둘러 진 치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끊임없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보호하는 천사만 같이 계신 것이 아니라 이번에 독감이 심하니까 주사도 맞아 놓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독감 주사 개발해서 맞도록 했으니까 독감 주사도 맞는 게 좋습니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그다음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내어 맡겨야 합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냐면 갑자기 기억이 나네요. 어떤 분이 내게 와서 목사님, 독감 주사를 맞아야 합니까? 안 맞어야합니까? 그냥 믿습니다로 지내면 안 됩니까? 맞아야 합니까? 목사님은 독감 주사를 맞았습니까? 안 맞았습니까? 나는 우리 교회 의사선생님이 맞으라고 해서 한번 맞은 것이 아니라 두 번이나 맞았다. 그럼 맞아도 괜찮군요? 그 생각이 납니다. 면역을 가져오는 피부 속에 있는 역사가 우리를 둘러 진 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병에 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하간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으니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신다는 것을 늘 머릿속에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 속에 와서 같이 죽었으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나도 죄에 대해서 세속에 대해서 마귀에 대해서 질병에 대해서 저주에 대해서 다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 부활할 때 그리스도 옷자락 잡고 같이 부활한 것을 상상하십시오.

여러분 신앙은 생각이 굉장히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생각을 예수님께 드려서 예수님이 내 마음의 생각을 꽉 부여잡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저의 설교를 듣고 있어도 마음속에 설교를 듣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생각하고 몸 찢고 피 흘리신 예수를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을 통하지 않으면 그냥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각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다가오고 꿈을 통해서 여러분을 안아주며 믿음을 통해서 여러분과 같이 있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역사하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내 입의 말로 내가 묶였으며 내 입의 말로 내가 사로잡힌 다고 여러분 입술로 말을 하면 그 말이 여러분 주변에 성령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반드시 여러분 생각이 있어야 여러분에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꿈이 있어야 성령이 역사하지 꿈도 없는 사람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믿어야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얼마나 간단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을 믿고 예수님이 날 사랑하는 것을 믿으면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여러분 통해서 역사하고 말을 해야 창조적인 말을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여러분 꼭 모든 속에 있는 육신의 감각이나 수단이 아닌 영적인 하나님의 수단을 통해야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왔는데 여러분 개인의 생활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부도가 나고 싸움이 걸리고 고통을 당하고 수렁에 빠지고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먼저 주님을 생각 속에 모셔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내 마음속에 들어오사 내 인생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생각을 주님께 바치면 여러분 생각을 통해서 주님이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하늘을 쳐다보고 여러분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보는 것처럼 사망에서 벗어나서 생명 속에 들어오고 건짐을 받아 주님이 여러분을 둘러 진 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생각,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꿈을 이루어주고 그다음에는 사랑을 베풀어 주고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말씀을 통해서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여하간 여러분은 하나님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이 둘러 진 쳐서 사방으로 우겨 싸이지 않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 저희 안에 계시므로 둘러싸이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지금 들어와 계시므로 우리는 둘러싸이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은 축복으로 우리를 둘러 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가 우리를 둘러 진 칠 뿐 아니라 원수가 우리 사이에 하나님의 사자가 둘러 진 친 것은 우리 속에 보배인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
그다음에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씀한 대로 답답한 일을 당합니다. 내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오랫동안 꿇어앉아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몸을 움직이면서 어떻게 저렇게 뜨겁게 열심히 기도하느냐고 가서 들어보니까 답답해 답답해 답답해. 보리 보리 보리 가을보리. 답답해 답답해 답답해. 보리 보리 보리 가을보리. 그래서 내가 자매님! 아이고 놀랬네! 무슨 기도가 답답해 답답해 답답해. 보리 보리 보리 가을보리. 그게 무슨 기도가 그런 것이 있습니까? 목사님 설교를 하는데 내가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뜻은 알 수가 없고 나의 어려움은 점점 더 다가오고 답답하기가 짝이 없는데 자꾸 갈보리를 믿으라고 하는데 봄보리는 있어도 가을보리는 없는데 자꾸 가을보리를 믿으라고 하니 내가 답답하지 않을 수 있나요?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 가르쳐 달라고 답답해 답답해 답답해. 보리 보리 보리 보리 가을보리. 하나님 봄보리는 있는데 가을보리는 없는데요.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을보리, 봄보리가 아니고 갈보리라는 산위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섰으므로 그것을 갈보리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것도 알아야 알지 공부를 안했으니 내가 알 수 있느냐.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봄보리, 가을보리를 분별을 못하면 안 되지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답답한 일을 많이 당합니다. 그런데 낙심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보배가 우리 속에 있으면 가을보리, 봄보리가 아니라 어떤 보리가 다가와도 우리를 둘러 진 쳐서 우리를 파멸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삶의 수고로운 짐과 문제 때문에 괴로움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서 이기시고 우리 안에 계심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고 구하면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 용기와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답답한 일을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힘차게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모든 능력과 권세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축복의 능력이 우리를 둘러 진 쳐서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이 모든 면에 마귀를 이기고 승리자로써 여러분 속에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나 승리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승리자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을 통하여 이기게 하시고 또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편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굉장한 은혜가 되는데요. 시편 27편 1절에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야훼는 나의 빛이요 구원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빛과 구원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채소 있지 않습니까? 김치 담궈 먹는 무나 모든 채소 그보다도 많은 바다 풀, 이것은 엽록소라는 요소를 통해서 햇빛을 받아야 산소동화작용을 통해서 양분을 만들어 냅니다. 이 엽록소가 햇빛을 받아가지고서 양분을 만들어내면 동물들이 그것을 먹고 살이 포동포동하면 여러분이 잡아서 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부 무엇을 먹고 사느냐. 빛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므로 빛을 받아서 양분이 생겨나고 그 양분이 풀을 통해서 동물들에게 먹여지고 동물들은 사람의 밥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빛은 우리의 육체적인 양식이 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빛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니 나는 생명수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생명의 빛이 되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먹으면 여러분의 인생이 빛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훼 하나님은 여러분의 빛이 되고 구원이 되고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하나님을 잡숫고 삶으로 말미암아 아무도 여러분을 감당할만한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능력으로 모든 원수를 물리쳐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1절로 2절에 보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바라보고 그렇게 인정을 해야지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피난처는 우리가 원수가 우리를 둘러쳐 오면 원수를 피하는 넓은 의미에서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새는 그보다 좁은 의미로써 적군들 안에 성을 치고서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적군이 몇 겹 둘러 진 치고 있어도 문제가 없는 것이 요새입니다. 그다음에 의뢰하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피난처가 되므로 오늘날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가와도 대개 이 나라에서 그것을 피할 수가 있고 홍수가 다가와도 홍수에 함몰되지 않게 지켜줄 수 있는 그러한 곳을 피난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새는 강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같은 이런 한정된 곳을 강하게 만들어서 군대가 지키고 있는 것은 요새입니다. 그다음 의뢰하는 하나님, 이것을 매일 아침 일어나셔서 외치십시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야훼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니 내게 두려움이 없도다. 내 입의 말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말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을 안 하면 속에 그냥 계시고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빛으로 잡수셨지 않습니까?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속에 들어와 있고 구원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데 이것을 입술로 말을 하면 강력한 능력으로 여러분에게 나와서 여러분 주위에서 둘러 진 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세상을 이긴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으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면 항상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무엘상 17장 45절로 47절에 보면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거기에 실제로 보면 칼 들고 이렇게 막 싸우는 일 없습니다. 말싸움으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30대의 위대한 블레셋 장군이라 엄청난 장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니까 사울왕과 그 군인들이 벌벌 떨고 어찌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초립동인 17살쯤 되는 다윗이 목자의 도구를 들고 와 대신 싸우는데 골리앗을 향해서 그는 말싸움으로 기를 뽑는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오는데 여기에 다윗은 목자의 도구밖에 없습니다. 물 멧돌이라는 물메끈에다가 돌 다섯 개 그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 얼마나 힘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밖으로 내놓는 것입니다.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보십시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가슴이 저리도록 말하지 않습니까? 여러분께서도 여러분의 원수와 싸울 때 말로써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집에서 싸울 것은 없지 않습니까? 환경과 싸울 때 연탄불이 꺼졌으면 연탄불이 왜 꺼졌느냐.

꺼지지 말고 항상 활활 잘 타라.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런 말조차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로 사망의 세력을 멸하고 부패를 멸하고 패배를 멸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물학자가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 그것 아닙니까? 물 두 컵을 책상에 얹어놓고 한 컵에는 참 예쁘다. 잘생겼다. 신선하고 좋다. 한 컵에는 못생겼다. 썩은 물 보기도 싫다. 그렇게 욕을 하고 나중에 물을 조사해 보니까 칭찬한 물은 굉장히 아름다운 육각형의 형태를 가진 물이고 육을 한 물은 팍팍 썩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이 여러분 주위 환경을 얼마나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밥그릇 두 그릇을 갖다 놓고 한쪽 밥그릇을 보고 야~ 밥이 참 잘되었다. 참 맛있겠다. 참 이쁘다. 너는 참 훌륭하다. 칭찬하고 한 밥그릇은 밥이 잘 익지도 않고 네가 무슨 밥이냐? 보기도 싫다. 온갖 욕을 다 했습니다. 그리고 한 일주일 지나고서 두 밥그릇을 내서 보니까 칭찬한 밥그릇은 누룩이 되었는데 아주 좋은 누룩이 되었는데 욕을 한 밥그릇은 팍팍 썩었어요. 그러면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무엇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까? 60%가 물입니다. 자꾸 욕을 하면 물이 썩지 않습니까? 밥도 썩는데. 그러므로 상대와 싸우려거든 주먹으로 때리고 그렇게 하지 말고 입술로 욕을 하면 썩어버려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있는 환경도 자꾸 축복을 해요.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하고 축복을 해서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들어 가야 되고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이 축복하는 것 참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축복을 안 해줄지 몰라도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는 인격자가 있어서 다른 사람이 축복을 해주면 좋겠지만 아무도 보고 축복을 안 해주는 사람 같으면 내가 나를 보고 축복해주는 거예요. 너 참 잘생겼다. 힘 있게 생겼다. 건강하게 생겼다. 복 받게 생겼다. 너 꼭 복을 받을 것이다. 저는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 난 다음에 물로써 얼굴을 닦고 난 다음에 그래도 잘 생겼다. 기분 좋지. 건강해야 된다. 하나님이 건강 주신다. 늘 웃어라 웃어. 그렇게 말을 하고 나오니까 그 말이 오늘 지금까지 따라다니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갠다고 했는데 여러분, 여러분의 입술로 하는 말씀이 여러분이 답답한 일을 당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주 속이 답답할 때 여러분이 답답한 일을 당하지 않는 축복을 자꾸 이야기 하면 축복이 들어와서 답답한 일을 다 멸해주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한다.

3.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는다
그 다음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한다. 핍박을 당하고 왕따를 당해 친구가 없고 사귀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최고의 친구 예수님이 계심에 적막하게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소외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더구나 요사이는 학교에 애들이 자기들 그룹에 들어오지 않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 소외당하고 구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데 상당히 핍박을 당하는 것은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지만 중동에 가면 예수 믿는 사람하고 이슬람교도들하고 싸워서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있는데 우리는 36년 동안 일본의 노예 하에 있었을 때 그때 우리 선조들은 핍박을 당했고 6.25 사변 때 예수 믿는다고 총살도 당하고 핍박을 당했는데 지금 우리는 제일 좋은 때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 고통당하면서 축복한 그 결과로 우리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때보다 얼마나 잘삽니까? 그러니 우리는 절대로 주님께서 버리지 않고 우리를 붙잡아 주셔서 아시아에서 세계에서 이름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줄줄 믿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 친히 이렇게 말씀했는데요. 참 아름다운 말씀인데요. 우리 함께 같이 읽으십시다.“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결코 버리지 않는다. 그냥 말한 것이 아닙니다. 결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에게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결코 떠나지 않는 분이 여러분 곁에 같이 계시므로 여러분은 결코 망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주가 여러분을 돕는 자로 있으니 두려워 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박해를 당해도 결코 주님은 여러분을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7절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장엄한 말씀인 것입니다.“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나와 봐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사람이 누구인지 나와 보라.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주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많이 사랑을 해주시는지 그 사랑을 가지고서 세상에서 다가오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을 비교해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그 세력들을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요 외롭지 않게 하나님의 친구로 여러분에게 같이 계시므로 일어서나 앉으나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써 복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한번 저 따라 말씀해 보세요.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복이 나를 따라온다. 축복받아서 기쁘다. 감사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도행전 7장 9절로 10절에 보면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요셉 보십시오. 요셉이 그 마음속에 꿈을 버리지 않고 꿈을 품고 있으니까 어느 곳에 가나 형통했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꿈을 갖고 있으면 꿈이 나를 형통케 한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열한 번째인 요셉만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꿈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요셉을 보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저 꿈꾸는 자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요셉이라고 말하지 않고 저 꿈꾸는 자식 보라. 여러분 주변에도 여러분 친구나 이웃이 꿈 이야기하는 꿈꾸는 사람이 산다고 그렇게 말하면 욕이 아니라 칭찬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이 우리의 길을 형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가지고 있으니까 종으로 팔려도 총리가 되고 감옥에 갇혀도 감옥의 총리가 되고 왕에게 불려가도 그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고 꿈은 그 길을 다 닦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하나님께서 아무리 사람이 박해를 당해도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돌봐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고 형제들이 저 꿈꾸는 자식이 오는 것을 보는도다. 우리가 저 놈을 죽여서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 꿈꾸는 놈을 죽여 버리면 꿈이 안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꿈꾸는 놈을 죽이려고 가보면 이미 꿈이 안 죽도록 길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있는 백성은 형통하게 되고 꿈이 있는 백성은 죽음의 길을 피하게 되고 잘살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꿈을 안 가져도 여러분 마음속에 전인구원의 꿈은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는 하나님이 계신다. 앉아도 전인구원 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것을 상상하고 서도 그렇게 상상하고 길을 걸어가더라도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상상하고 그 꿈을 꾸고 있으면 그 꿈이 여러분을 형통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도대체 여러분 마을을 빈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마음을 긍정적으로 만들뿐 아니라 그 긍정적인 마음의 한가운데 꿈을 언제나 꾸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언제나 머리가 되고 꼬리가 안 되고 위에 있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축복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에게 꿈을 주기 위해서 와 계시며 언제나 꿈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이 세상에 살면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한다. 거꾸러뜨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 아닙니까? 거꾸러뜨림을 당한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때려눕힌다는 것입니다. 아예 사업상으로도 때려눕히고 사람으로서 때려눕히고 일이 때려눕혀서 죽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려눕혀 파멸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속에 보배로운 예수님이 계시므로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으로 딱 버티고 있으므로 아무리 때려눕혀도 죽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2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부활했으니까 죄에서 부활하고 허물에서 부활하고 병에서 부활하고 저주에서 부활하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부활의 생명이 충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상상 속에 예수의 죽음을 우리가 끌어안고 걸머지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내가 예수의 죽음을 끌어안거나 짊어지면 예수 속에 부활의 생명이 넘쳐 나와서 우리 몸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치고 피곤할 때 드러누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날 위해서 죽은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이 예수님을 마음에 끌어안고 등에 업고 걸어가는 여러분 모습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몸속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죽을 몸에 나타남이라. 습관이 되면 늘 그렇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늘 피곤하고 지치면 예수님을 등에 걸머지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우리 할머니가 저 보고 야, 용기야 어부바~ 어부바~ 그렇게 한 것이 늘 생각이 나서 예수님, 어부바~ 내 등에 올라타십시오. 어부바~ 그러면서 내 상상 속에 그리스도가 내 어깨를 잡고 내 위에 업혀지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내 마음속에 넘쳐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더 신비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이론이 아니라 실제인 것입니다. 내가 예수 죽인 것을 걸머짐은 예수의 생명이 내게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우리가 죽을 힘을 다해서 일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생각하고 죽을 힘을 다하여 일하면 부활의 능력이 여러분 속에 가득하게 넘쳐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가 거꾸러져도 멸망하지 않게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요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서 우리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전지전능한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축복을 받고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생명을 얻고 마음으로 생명을 얻고 육체의 생활에 생명을 얻고 어떻게 되든지 여러분은 이웃이 여러분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는 축복의 근원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입니다. 여러분은. 복 자체가 여러분 속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속에 들어와서 버티고 있으므로 우겨 싸이지 않지요.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지요. 아무리 원수가 핍박해도 점점 축복이 되지요.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예수 생명이 와서 날 망하지 않게 하지요. 온전히 긍정적인 것만 나를 부여잡고 있지 부정적인 것은 없습니다. 싸이지 아니한다. 낙심하지 아니한다. 버림받지 아니한다. 멸망하지 아니한다. 나는 죄와 허물에서 용서받고 병에서 치료받고 건강하고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자요, 축복받은 사람이요, 나는 죽었다가 살아나서 영생을 얻은 자라. 여러분이 이것을 항상 마음속에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것은 마땅히 그렇게 될 것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옵니다. 마음에 바라보는 것이 밖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마음에 바라보게 될 때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으로 살고 육체로 살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품고 사는 것은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생각을 통해서 살고 꿈을 통해서 살고 믿음을 통해서 살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사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마음을 통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내 육체의 감각을 통해서 살고 탐욕을 통해서 살고 의심과 불안을 통해서 살고 욕을 하고 낙심하면서 살고 그러면 3차원의 세계에서 사는 것으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엉망진창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면서 늘 마음으로 살면 그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4차원의 영성을 나타내어서 사는 것입니다. 사차원의 영성은 성령인 것인데 성령은 여러분 생각을 통해 나타나시고 꿈을 통해서 나타나시고 믿음을 통해서 나타나시고 여러분의 생각을, 말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이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교회 오셔서 집에 돌아가셔서 생활하실 때 마음속에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사용하고 내일에 일어날 꿈을 마음속에 잔잔하게 꿈을 꾸면 내일 그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고 믿음을 가지고서 주님께 죽도록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능력이 계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을 믿으면 믿음대로 될 것이고 입술로 고백하면 입술의 고백이 여러분을 지키는 것입니다. 나는 독감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평안하다. 안 걸리고 말고 나는 굳세게 산다. 그 말이 여러분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와 같이 있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는 그런 말씀을 짧은 것을 많이 외워서 여러분 가슴속에 그것을 풀어 놓는 것 참 좋습니다. 야훼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나는 부족하지 않다. 먹고 입고 사는데 부족함이 없다. 야훼가 나의 목자시므로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므로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렇게 사는 것은 참으로 여러분 진리를 알고 사니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확실히 알고 십자가의 구원의 승리를 바라보고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믿고 승리를 외치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과 삶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과 테러와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곳,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땅에 우리 한국 사람인 이시온 선교사라는 분이 들어가서 그곳에서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테러가 일어나서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아침에 선교하러 나가면 저녁에 살아서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왔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책을 읽는데 감리교 선교사가 우리 한국에 제일 처음 들어와서 26살 먹은 젊은 선교사가 들어와서 잡혀서 죽었습니다. 순교를 당하면서 그가 일기책에 써넣기를 일 천개의 심장이 내게 있더라도 나는 그 심장을 하나하나 터뜨려서 한국을 위해서 죽겠다. 그렇게 썼습니다. 그 글을 읽고 그는 너무나 감동이 되어서 성령께서 너도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그와 같이 죽어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겠느냐? 그래서 그는 회개하고 눈물을 흘려 하나님께 기도하며 천개의 심장이라는 책을 지어서 출판이 되었고 그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적은 시가 한편이 있어서 내가 좋아서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그 시는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 땅을 보면 내일이 없어 보이지만, 눈을 들어 주님을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이 땅을 보면 눈물만 보이지만, 눈을 들어 주님을 보면 미소가 생깁니다. 이 땅을 보면 절망으로 가득하지만, 눈을 들어 주님을 보면 살아야 할 힘이 생깁니다.」그러므로 여러분은 두 쪽 방향을 보고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살든지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든지. 둘 중 한 가지를 보고 살면 둘 중 한 가지가 여러분 미래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너무 하루 종일 신문을 들여다보고 텔레비 들여 다 보고 일어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시련을 모두 다 바라보고 살면 그것이 여러분 속에 자리를 잡고 곧 역사해서 여러분의 내일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고 일어나서 신문 보는 시간에 성경 보십시오. 설교를 들으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용서받은 나, 치료받은 나, 건강한 나, 생명을 얻은 나, 내가 예수님 죽으심을 인하여 얻게 되었다는 것을 자꾸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러면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마음속에 가득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내일 여러분에게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 봐라. 내가 전에 꿈꾸었던 것이 이루어졌네? 내가 마음속에 생각했는데 이것이 이루어졌구나. 희한하다. 내 마음속에 그림을 그린 것은 다 이루어지구나. 그럼요. 여러분이 마음속에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얻은 믿음으로 그림을 그리며 바라보면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미국 선교사가 한국을 위해서 천개의 심장이 있으면 천개의 심장을 가지고 한국을 위해서 살다가 죽겠다고 했는데 그 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연세대학이 생기고 연세의료원도 생기고 수많은 교회들이 생겨났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을 힘차게 바라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믿음을 주고 축복을 주시거든 그것을 받아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나누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4년 2월 9일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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