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진화론 관점] 진화론과 성경적 신앙은 공존 가능한가
아담의 진화
피터 엔즈 | CLC | 359쪽 | 20,000원
아담의 창조
J. P. 베르스티그 | P&R | 160쪽 | 10,000원
<아담의 진화>에서 피터 엔즈(Peter Enns)는 여전히 도발적이다. 전작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을 펴내며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정직당해 이스턴대학으로 옮긴 그는 이 글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쓰고 있다.
‘성경은 인류의 기원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Evolution of Adam: What the Bible Does and Doesn’t say about Human Origins?)’라는 원제의 이 책에서, 저자는 성경에 근거해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을 종합하려 한다. 그리고 ‘아담에 대한 이해’가 진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진화론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제’로 하고 있다.
저자는 ‘젊은 지구설’을 비판하면서, 진화론을 이에 대한 ‘판세를 뒤바꿀 결정적인 패(game changer)’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일반과학과 신앙이 적절히 조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진화론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창세기와 진화를 조화시키려는 시도는 이해할 만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성경 이야기의 일부를 불가피하게 재조정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는 언제나 창세기를 문자적·역사적으로 읽기보다 ‘상징적·비유적’ 또는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그가 말하는 성경 이해의 진화는 바로 성경비평학과 고고학, 그리고 과학이다. 특히 19세기에 활발했던 성경비평학은 창세기의 역사적 가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창세기를 포함한 구약성경 전체가 ‘포로기 이후의 문서’임을 주장하면서도, “창조 기사는 지금 우리 시대의 관심인 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에 자신이 누구인지 던진 질문에 답하는 ‘폭넓은 신학적 목적으로 기록된 모음집의 일부’라는 보다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독교인들은 과학적 영역과 창세기를 연관지어 읽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여기서 저자는 더 큰 문제를 제기하는데, 바울이 쓴 ‘아담’에 대한 서신이다. ‘첫 아담과 둘째 아담(예수님)’에 대한 유비는 아담과 예수님 둘 모두의 ‘역사성’을 전제로 하는데, 저자는 이것이 진화론 출현 이전의 의견이라고(그러므로 조정돼야 한다) 주장한다.
이처럼 저자는 ‘일반적 의미에서 과학과 종교가 화해할 수 있는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진화와 성경 중심으로 사는 기독교인의 신앙이 공존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존중하고 진화론을 인류 기원으로 설명하는 바른 모델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에게 아담에 대한 9가지 견해를 제시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아담의 진화>에 반박하는 <아담의 창조>는 일각에서 주장하듯 아담이 하나의 ‘교육적 모델’이 아니라, ‘역사적 아담’이 실재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길지 않은 이 글에서 저자는 엔즈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아담’에 대해 이야기하는 로마서 5장을 해석하면서,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해도 믿음은 변하지 않는다(퀴테르트)’는 주장에 반박한다.
베르스티그 박사는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교수 모델’로 이야기해야 한다면, 이는 죄에 대한 특별한 관점을 동반한다”며 “아담이 더 이상 세상에 죄를 가져온 한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면, 어떤 면에서 죄가 사람 자체에 속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수 모델이 역사적 인물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 창조와 죄가 ‘잇따라’ 일어난 것에서 ‘함께 나란히’ 있는 것으로 대체된다는 신학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아담이라는 인물이 하나의 관념이라면, 그리스도 역시 관념이라는 위협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