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허망이냐 희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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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이 있도다 해는뜨고 해는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돌고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던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것 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새 것이라 할것이 있으랴 우리가 오래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전 1:1~11)

<서론>
“허망이냐, 희망이냐”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사람은 희망을 잃고 허망의 수렁에 빠지면 절망하고 자살하든지 살았다하나 죽은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가슴에서 희망을 빼앗습니다. 그리고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희망을 먼저 빼앗아야 그 다음 파멸로 이끌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우리에게 희망과 생명을 주십니다. 허망이란 시들은 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쫓다가 다 놓쳐 버리고 허공을 바라보고 탄식을 하고 허망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활짝 피는 장미꽃같이 우리 마음을 밝히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본론>
1. 우리 앞에 열려 있는 두 개의 문
 우리가 태어나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우리 앞에 두 개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허망스러운 문이 열려있는가 하면 희망의 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허망의 문은 아담이 상속해준 슬픔의 문인 것입니다. 허망의 문은 어떤 것이냐, 죄와 허물의 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한 일을 행하며 허망한 문으로 들락거리는 것입니다. 질병과 고통의 문이 있습니다. 병들고 고통하고 괴로워하면서 들락날락하는 것입니다. 절망과 굶주림의 문이 있습니다. 절망과 굶주림의 우리 인생의 삶을 슬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음부와 멸망의 문이 있습니다. 죽고 멸망하는 문이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상속해준 삶의 문은 이와 같이 우리들에게 좌절과 절망을 갖다 주는 문인 것입니다. 전도서 1장 2절로 11절에 우리가 읽은 말씀대로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정말로 절망적인 말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망의 문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죽음이 입을 벌리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에 세월호의 침몰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절망을 느끼고 있습니다. 만일 이 배에 어른들이 탔으면 배가 침몰되었어도 이렇게 슬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쯤은 다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어른들, 자기들이 선택해서 만든 배에 올라타서 가다가 죽었으니 팔자가 고약하지 별도리 있겠느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청소년들이 이 비극을 겪었다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치명타인 것입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생활, 수단으로서의 배에 매일매일 운행하는 프로그램을 따라서 애들이 배를 탔는데 배가 파멸되었습니다. 어른들 때문인 것입니다. 어른들이 똑똑하고 올바르게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른들이 이것을 느끼고 마음을 침통하게 여기고 죄책감을 가지고 고통을 같이 나누고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만큼이라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회에 크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어른 된 도리를 다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믿고서 따라올 수 있는 어른들이 되어야지 따라갔다가는 비명횡사한다고 생각하면 어른들이 이 세상에서 어린 아이들을 인도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른, 어린이 할 것 없이 이 세상 인간이 사는 곳에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또 헛되다고 탄식한 전도서 기자의 말과 같이 모든 것이 헛된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조상으로 섬긴 우리가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문은 헛되고 헛된 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희망의 문을 들락거려서 소망을 얻기를 원하면 하나님이 열어놓으신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자유와 해방의 문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자유를 주고 해방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아담의 빚을 예수님이 다 갚으시고 예수님이 친히 우리에게 자유의 문이 되시고, 해방의 문이 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7절로 10절에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예수님은 어찌하든지 우리가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고 행복하고 기쁘게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오늘 질문한다고 합시다. 여러분 사는 목적이 뭡니까?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까? 돈은 많을수록 걱정도 많아지고 결국 돈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권력을 갖기 위해서... 권력도 얼마 안 있으면 지나가 버리고 말고 그 후에는 허무맹랑한 것입니다. 청춘을 즐기기 위해서... 얼마 안 있으면 청춘은 시들어져 버리는 채소와 같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태어나서 무엇을 위해서 삽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났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지 그 이외에 다른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다른 것을 쫓아갔다가는 허무맹랑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열린 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꼴을 얻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에게 내적으로 묶인 끈을 다 풀어 해방해 주시고, 외적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죄책의 절망,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 죽음과 두려움의 절망, 이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속에 우리를 묶어놓은 이런 무시무시한 마귀의 밧줄에서 해방을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적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병에서 자유를 주시고 마귀의 억압에서 자유를 주시고 가난과 고통에서 자유를 주시고 그래서 주님의 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종의 멍에를 매기를 주님은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종이 되어서 죄의 멍에를 걸머지고 허물에 끌려가고 병든 멍에를 걸머지고 가난과 저주의 멍에에 짓눌리고 죽음과 멸망의 공포 속에 몸부림치는 이것을 원치 않습니다. 주님이 이런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이겨서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었은즉 우리는 마음속에 항상 자유와 해방을 깊이 깨닫고 마귀를 대적해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은 자유를 주신 것이요, 해방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는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요한복음 8장 36절에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와서 오늘 자유를 주면 참으로 자유롭게 된다. 죄에서 용서를 주고 허물에서 놓여남을 주고 참으로 죄와 허물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주님이 자유를 주시면 치료받고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몸부림치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주시면 하는 것마다 번창하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우리는 죽어도 겁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로 19절에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주님께서는 종교를 주기 위해서 의식을 주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자유와 해방이 얼마나 좋은지 압니까? 우리 마음속에 해방을 얻으면 마음에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이 충만하고 삶이 즐거움이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경에서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지 북한을 생각해 보십시오. 북한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압박 가운데서 정부의 프로그램을 따라서 살지 자기 자유로 못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해방을 가지고 산다는 것만 생각해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라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삶은 여러분과 나를 위한 것이므로 여러분과 나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2.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님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골고다 산에서 죽은 것은 예수 죽음, 내 죽음입니다. 날 위해서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여러분과 날 위하여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죽음은 내 죽음이요, 예수 부활은 내 부활이다. 전적으로 날 위해 예수님 오셔서 날 위하여 고난당하고 죽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을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우리 신앙이란 뭐냐,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었지 않습니까? 그 죽은 것을 우리는 마음속에 생각하고 날 위하여 죽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꿈꿔보고 날 위해서 죽은 것을 믿고 그것을 입술로 말합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그래서 그리스도와 나는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내 죽음이고 예수의 삶도 나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이것을 생각하고 이것을 꿈꾸고 이것을 입술로 고백하면 여러분의 모든 옛사람의 생명은 예수님이 가져 가버리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여러분 속에 충만하여 새사람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얻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해야 되고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노력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값을 주고 산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 해놓은 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테 텔레스타이”. 내가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하나도 없이 다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다 짓고 마지막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와서 “하나님, 오늘 우리가 마지막 지음을 받았는데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할 일이 없다. 내가 다 이루었다. 너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즐기면 된다.”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구원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됩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된다고?” “예.” “내가 다 이루었다. 그러므로 너가 나를 믿는 것 이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다.” 오늘날 어떠한 사람 남녀, 노유, 빈부, 귀천할 것 없이 어떠한 사람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축복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멸망이 아무리 다가와도 우리가 손 쓸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저가 너를 새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라.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의 놀램과 낮의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내 곁에서 만인이 내 우편에서 엎드려지나 이 재앙이 내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주님이 다 이루어 놓았으니까. 이런 것이 아무리 와도 여러분과 나를 거꾸러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오늘 이 시간에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우리가 행동을 잘해서 구원받는 것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의 행위는 구원받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천당에 올라가면 상급을 주실지 몰라도 여러분이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교회 부지런히 왔다갔다 했기 때문에 나는 구원받는다. 천만에요. 금식기도를 했기 때문에 구원받는다. 천만입니다. 내가 금식하고 절제하고 훌륭하게 살았기 때문에 구원받는다. 아니올시다. 구원은 그런 조건이 전혀 붙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선물로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선물을 주세요. 선물 받는 것 참 즐거운 일 아닙니까? 하나님이 예수님 통해서 구원을 선물로 주셨으니 여러분은 안 믿을 때보다 훨씬 그 선물을 통해서 잘 살게 되고 행복하게 되고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죽음이 와도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으므로 희망을 저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와도 희망은 저버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온 것은 여러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죄에서 용서받을 희망을 주기 위해서 허물에서 놓여나게 만들 희망을 주기 위해서, 병든 자에게 치료의 희망을 주기 위해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에게 부자로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 삶을 산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 죽어서 지옥가지 않고 천당 간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 기독교는 온 전체가 희망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희망의 복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계시므로 영원한 희망이 있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예수님이 계시므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생각하고 희망을 꿈꾸고 희망을 믿고 희망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미래는 지금보다 나아지고 좋아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이 우리의 희망인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절망적인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그 고난 참으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 희망을 주신 것입니다.

3. 아직 희망이 있다
성경에 보면 열두 해를 혈루병 앓은 여인의 이야기가 있는 것입니다. 12년 동안 피를 흘리고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더구나 혈루병은 문둥병과 같이 부정한 병이기 때문에 사람과 같이 있지 못합니다. 집에서 쫓겨나서 혼자 격리된 생활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열두 해를 피를 흘리고 집안 살림을 다 적폐를 내고 이제는 절망밖에 없었습니다. 생각나는 것이 죽음밖에 생각나지 않고 보이는 것은 상여에 실려서 무덤으로 옮겨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밖에 없고 공포가 회오리 바람 치듯이 가슴을 밀고 불어나가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절망과 좌절밖에 없습니다. 왜, 나는 버림받았느냐. 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느냐. 나는 왜 이렇게 아프냐. 왜 나는 이렇게 죽어야 되느냐. 원망과 불평밖에 없었습니다. 이 열두 해 혈루병 앓은 여인은 절망에 부딪혀서 헤어나오지를 못합니다. 어떻게 살릴 수가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해줄 사람만 있으면 되는데 어떠한 사람이 이 열두 해를 혈루병 앓은 여인에게 예수에 대한 소식을 전해 준 것입니다. 기쁜 소식은 예수가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죄와 저주와 질병과 죽음을 청산해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 혈루병 앓은 여인이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그 마음속에 무엇이 생겼습니까?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기쁜 소식은 절망을 쫓아내고 희망을 가져옵니다.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는 벅찬 가슴에 희망으로 마음이 긍정적이 되었습니다. 나도 살 수 있다. 그리고 꿈을 가졌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기적을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니까 기적이 일어난다. 그 다음에 입의 말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산다. 그 옷자락에 손만 대도 살겠다.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긍정적인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전달해 주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희망은 영원한 희망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주신 이 희망을 우리가 받아들이면 우리의 생각이 희망을 꽉 차고 꿈이 희망으로 꽉 차고 희망에 넘치는 믿음이 생기고 희망찬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희망찬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희망을 전달해 주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절망에서 희망을 얻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명은 복음을 전도하는 것이 그 사명인데 여러분은 그 사명을 주님께로부터 받아서 살고 있습니다. 복된 소식과 함께 희망을 나누어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희망을 주면 희망은 생각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고 꿈을 긍정적으로 갖게 만들어 주시고 기적을 바라는 믿음을 주시고 생명의 고백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을 자세히 들어 보세요. 하나님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꼭 알아야 될 것입니다.“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한번 같이 읽으십시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면 예수님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재앙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재앙이 다가왔을 때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나는 별 수 없이 받아야지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재앙이 다가오면 이것은 마귀가 갖다 주는 것이므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대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평안이 오면 주님이 은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찬미하고 감사해야 되지만 재앙은 사탄이 갖다 주는 것이므로 물리쳐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미래에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내일에 오늘보다 더 나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모레는 금일보다 더 좋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늘 감사를 해야 될 것은 좋은 일은 좋아서 감사하고 안 좋은 것은 하나님이 좋게 만들어서 희망차게 만들어 주시므로 좋은 것입니다. 요셉이 한 말이 참 중요합니다. 요셉이 애굽에 내려가서 국무총리가 되어서 굶주리는 자기 아버지와 집안 형제들을 다 불러서 애굽으로 와서 고센 땅에서 잘 살게 만들어 주었는데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뜨자 형제들이 두려웠습니다. 우리가 요셉을 팔아 먹었으니 요셉이 이제 아버지가 없으니까 우리를 벌할지 모르겠다. 우리 가서 사죄하자! 그들이 요셉에게 와서 아버님이 세상을 뜨기 전에 우리에게 말하기를 이것을 요셉에게 전달하라. 너희가 요셉을 죽이기 위해서 애굽으로 팔았으나 요셉은 잘되어서 국무총리가 되었으니 형들에게 원수를 갚지 말고 형들을 용서해 주라고 아버지가 전하라고 합디다. 요셉이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신들은 나에게 악을 행하였었으나 하나님은 그 악을 변하여 선으로 바꾸어서 오늘날 국무총리가 되고 온 중동을 살리는 애비가 되게 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시옵소서. 악을 변하여 선하게 만드는 것 이것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경 가운데 어떠한 악을 마귀가 가져오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악이 적으면 선도 적고 큰 악이 오면 큰 선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 손에 들어오면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어느 곳에 보아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소망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소망을 따라 기쁨이 충만하고 마음이 평안해지고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것이고 절망은 마귀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을 때는 죄책의 절망, 허무와 무의미의 절망, 죽음과 공포의 절망으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절망을 짓이겨 버리고 만 것입니다. 주님께서 절망을 걸머지고 절망을 다 파괴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깨어진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절망이 없어져버리고 우리가 예수 죽음 내 죽음을 받아들이면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소망을 주신 것인데 이 소망은 아무 행한 일 없이 공짜로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우편 강도, 좌편 강도가 있었는데 두 강도는 어마어마한 죄를 지은 강도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고 큰 소요를 일으킨 강도인데 마땅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될 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죄인이 예수님을 보고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의 나라 임할 때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죄를 하도 크게 지었기 때문에 죄를 용서해 달라는 말도 못하고 구원해 달라는 체면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그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고백하고 자기를 도와달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의 나라 임할 때 나를 기억하시옵소서.” 주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좋은 일 해라! 이 시간에 회개를 해라! 개과천선하여 변화되어라!” 그런 말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그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고통당하고 있는 것은 그 고통당하는 강도의 모든 일생을 주님이 다 걸머지고 고생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보통 하나님이 아니라 넝마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리가 넝마 같은 옷을 입고 살았는데 그 옷을 주님 다 벗겨서 주님이 대신 입으셨습니다. 이 강도의 넝마와 같은 인생을 예수님이 다 받아서 십자가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너는 오늘날 천당에 갈 것이라” 아니오~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이 우리 넝마주의 같은 우리 넝마를 책임지고 청산하고 난 다음 우리를 붙잡고 함께 천당에 올라간 것입니다.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넝마주의로 만들었습니다. 영이 넝마가 되고 정신이 넝마가 되고 육체와 생활에 넝마가 되었으나 예수님이 넝마를 다 청산해 버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고 소망이 넘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종교가 아닙니다. 절대로 종교가 아닙니다. 불교나 유교나 천도교나 마호메트교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럼 뭡니까? 예수님은 희망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의 희망인 것입니다. 어떠한 처지에 왔든지 오늘 예수를 부르고 나가면 주님은 여러분에게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희망의 빛인 것입니다. 희망의 빛 아래는 허망한 그림자는 없습니다. 여기 오늘 우리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 성찬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에 희망이 있습니다. 앞을 봐도 희망이 있고 뒤를 봐도 희망이 있고 오른편을 봐도 희망이 있고 왼편을 봐도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희망을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 피가 여러분 모든 절망을 멸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희망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앞을 봐도 희망이 있습니다. 옆을 봐도 희망이 있습니다. 뒤를 돌아봐도 희망이 있습니다. 믿고 구하고 찾으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 일생을 살면서 재앙이 아니라 희망을 누리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희망을 생각하십시오. 희망을 꿈꾸십시오. 희망을 믿으십시오. 희망찬 것을 말하십시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여러분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희망을 말하십시오. 희망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희망찬 분들인 것입니다. 내가 가만히 보니까 내일은 오늘보다 나이질 희망이 얼굴에서 번쩍이는 것입니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나아지는 것입니다. 명년은 더 나아지고 죽음의 그날은 말할 수 없이 큰 희망을 얻게 되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희망 속에 여러분이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여러분 안에 있어 그리스도와 여러분은 다 같이 희망이 되어 꺼지지 않는 희망의 등불이 되어서 이 땅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2014년 5월 4일 어린이주일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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