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신태진 기자  tjshin@chtoday.co.kr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서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들은 매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 땅 자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예수님 없이는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고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니 어두컴컴한 죽음의 골짜기를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등진 사람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고 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본론>
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우리 모두는 세상에 살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체험을 반드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희망이 없는 좌절의 골짜기를 지나게 하므로 그 체험을 통해서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는가를 깨닫게 해주시고 소망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만들어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빛을 보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은 별들이 태양을 보고 밤에 얼마나 하늘에 은구슬 같은 별들이 반짝거리는지 아느냐? 태양이 별들을 보고 밤이 뭐냐? 밤을 몰라? 우리는 밤에 별들이 하늘에 가득한 것을 보고 있는데 우리 따라와! 해가 밤을 보기 위해서 별들을 따라 나서니까 가는 곳마다 환한 낮만 있지 밤이 없습니다. 별들을 보고 해가 말했습니다. “밤이 어디 있냐?” 그러니까 별들이 “이상하다. 너만 안 따라오면 밤이 있는데 너만 따라오면 밤이 없잖아.” 그와 같이 햇빛을 알려면 밤이 있어야 빛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고 예수님이 우리 구주 되심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 인생의 밤을 지나가봐야 아는 것입니다. 밤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온갖 거짓된 빛을 만들어서 그 빛 아래서 기뻐하지만 인조광택은 얼마 안 있으면 다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마틴 루터는 “시련이 없고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 다 편안할 때는 새벽기도도 안 해도 괜찮다. 수요일날은 빼먹어도 괜찮다. 주일날도 어지간하면 안 가도 괜찮다. 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고난이 있으면 새벽에 교회 나가지 말라고 해도 나갑니다. 괴로우니까. 산기도를 가고 기도원도 가고 주님께 부르짖는 것은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련과 고난이 없으면 참소망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 빛과 소망되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고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듯이 환난과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당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얼마나 귀중하고 필요한 분이시라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우리가 빛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왜, 빛은 하나님 밖에 없느냐. 빛이라는 말은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빛은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소망은 하나님밖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절망이 꽉 들어찬 곳에 절망을 완전히 정복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져서 갚아버렸으니 죄가 가져오는 절망을 패하고 말았지요. 허물진 인생에 허물을 다 패하여 주셔서 더러운 인격을 정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병들어서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질병을 대신 짊어지시고 매를 맞아 온 전신이 다 찢어져서 청산해 주셨으니 병이 절망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주도 주님께서 저주를 받아 나무에 매달려서 고통을 당하시고 저주를 청산했으므로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밖에는 우리에게 남은 것이 없습니다. 죽음과 음부도 예수님이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서 멸하고 부활하셨으므로 사망과 음부도 이제는 절망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모든 절망을 정복해 버리시고 우리에게 어디를 가든지 예수 이름 안에서 소망을 얻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찾으면 소망이 어디든지 있어요. 죄인은 의인이 될 소망이 있고 허물진 사람은 거룩하게 될 소망이 있고 병든 사람은 고침 받을 소망이 있고 좌절과 절망에 처하고 가난한 사람은 소망과 축복을 받을 꿈이 있고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영원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소망이 빛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어두운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밝은 빛을 얻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로 5절, 9절로 12절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 빛이 누구냐, 예수님인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가면 어느 곳에나 빛이 있어서 어둠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죄악의 어둠이 사라지고 허물의 어둠이 사라지고 질병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저주의 어둠이 사라지고 죽음의 어둠이 사라져서 어둠을 찾아가도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가면 어둠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어두움을 박멸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5절에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오늘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시면 여러분 우리가 마음에 빛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희망이 있습니다. 빛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46절에 보면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

어둠을 제하는 것이 빛이므로 예수님은 어두움을 제하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가슴속에 들어오신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속에 어두움을 제하고 희망의 빛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어둠이 없습니다. 주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오른편에는 기쁨이 넘치는 것처럼 예수님 안에는 어둠이 사라지고 어느 곳에 가나 빛이 충만한 것입니다. 빛은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소망이 없는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하나님이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은 소망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왜 고난을 인생에게 허락하시느냐.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허락하시는데 고난의 골짜기를 지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강하게 믿을 수 있도록 성장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팔에 힘이 없는 사람은 아령을 한 팔로 자꾸 들어 보십시오. 이게 근육이 생깁니다. 높은 산고개를 걸어다니면 다리에 근육이 생깁니다. 편안하게 내버려두면 좋지 싶어도 편안하면 근육이 사라져 버리고 몸에 저항력을 잃어서 병이 쉽게 들고 쉽게 죽습니다. 그러므로 운동을 하라는 것은 근육이 생기기 때문인 것입니다. 의사선생님이 저를 보고 하는 말이 목사님, 나이가 이제 80대에 이르렀으니까 어찌하든지 근육을 키우십시오. 편안하면 좋은데 왜 근육을 키워야 됩니까? 편안하기 원해서 앉아있으면 근육이 사라집니다. 근육이 사라지면 저항력이 없어져서 쉽게 병들고 쉽게 죽습니다. 오래 살려면 근육을 키우십시오. 우리 병원에서 의사들이 아무리 좋은 약을 주고 수술을 한다고 해도 근육을 키우는 운동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걸으십시오. 아침에도 걷고 저녁에도 걷고 늘 걸으십시오. 그러면 근육이 생깁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 우리 육체의 근육을 만들려면 걸어야 되고 운동을 해야 되는 것처럼 영혼의 근육을 만들려면 시험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해야 돼요.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왜 예수 잘 믿으려고 하는데 고난을 당하게 하느냐고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신앙의 근육이 생기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면 믿음이 강해져요. 기도가 강해지고 믿음이 강해지고 능력있게 세상을 이겨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17세기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의 유익으로 계산하라.”시험이 오거든 아~ 이것 내 유익이다. 플러스로 계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나아가면 고난이 변하여 복이 되는 것입니다.

2.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 우리가 늘 알아야 될 것은 두려움을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는 마귀가 두려움을 냇물같이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우리 주위에 냇물같이 흐르고 강물같이 흐르는데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365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고의적으로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싸우면 더 두려워지고 두려움이 더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이 나를 점령하시고 예수님이 나를 통하여 두려움을 정복해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날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려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당신이 생명처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황공하기 짝이 없지요? 하나님이 나를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하신다. 무슨 하나님이 나 같은 못난 놈을 생명같이 사랑하시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지요. 독생자는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생명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 생명처럼 귀중한 아들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우리를 둘러 진치고 우리가 두려움에 쌓여있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이 여러분을 생명처럼 사랑하셔서 품에 품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사망이 아무리 다가와도 예수님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이 죽음을 안고 십자가에서 죽어서 멸해버리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겨서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여러분을 생명처럼 귀하게 생각하시고 품고 계시고 이 예수님이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시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이길 수 있지요. 그러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가서 시련이 다가오거든 다른 것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를 쳐다보고 눈을 감고 마음속에 예수님을 바라보시고 예수님이 여러분을 둘러 진치고 있고 품어 주심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여러분이 사랑한다고 입으로 말씀하십시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예수님은 나를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하신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나와 같이 계신다. 그렇게 자꾸 말씀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의 능력 속에 들어가 있음으로 사망이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에 보면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예수님이 나의 빛이라는 것은 나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내 소망이 되고 내 구원이 되어 있으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항상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시므로 나를 당신의 생명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생명처럼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굉장히 귀중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늘과 땅에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 그 주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고 여러분은 그 주님을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누가 여러분을 건드린다 말입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분은 더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날보고 귀중하게 안 여길지 모릅니다. 여러분 자신도 나는 벌레 같은 인생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주님은 아니야, 아니야~ 너는 내 생명같이 귀하다 너를 위해서 내가 몸 찢고 피 흘려 죽었지 않느냐. 내 생명같이 귀하고 그 때문에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가지고 너를 끌어안고 같이 있으니 그것을 좀 알아라. 깨달아라. 바라보라. 그것을 믿어라. 그것을 말하라. 그러므로 예수님이라고 말하면 여러분 마음속에 다른 것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누가 무어라고 말해도 사랑받고 있고 모든 권세와 능력을 다 가진 그분이 있으니 예수님과 함께 나아가면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믿음을 주고 두려움을 내어 쫓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면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안 믿어지는 사람 있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생명처럼 사랑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믿을 수가 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못 믿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왜 못 믿어요? 우리가 믿으면 하나님이 믿음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사랑 안에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좇아버리는 것입니다.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 두려움이 있으면 형벌이 있다는 것은 고통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형벌은 때리는 것 아닙니까? 채찍으로 때리고 고통당하는 것이 형벌인데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습니다. 마귀가 마음속에 두려움을 넣어주고 난 다음에 그 두려움에 따른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평범하게 보이나 가장 위험한 병균은 두려움인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들어오면 그것을 보통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귀가 여러분을 공격할 준비를 한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서 주님 앞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죄악을 버리고 언제나 십자가 밑 그리스도의 빛으로 나아오지만 마귀를 좋아하는 자는 어둠을 찾습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이 세상의 유일한 빛입니다. 예수님을 찾으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빛은 여러분에게 의로움을 주시고 거룩함을 주시고 심신에 건강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영원한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빛을 따르면 어둠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태양을 따라다니는 사람이 어둠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해를 따라다니는 사람 여러분 밤이 없습니다. 해를 등지는 사람에게 어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양인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어둠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있기 때문에 어두움은 다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습니다. 원수 마귀의 손에 잡혀서 시련을 당하고 어두움에 몸부림쳤었는데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빛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처럼 이 세상에서 행할 뿐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속에 살아야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모셨기 때문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믿음이 꽉 들어차고 빛이 비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주부들은 가족이 병들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건강하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학생들은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원하는 대학에 못 가면 어떡하나 두려워하고 직장인은 해고당하면 어쩌나, 직장을 잃어버리거나 은퇴 후엔 어떻게 해야 되나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암으로 치료받는 사람은 암이 재발할까 싶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밤을 두려워했습니다. 프랑스의 앙리 3세는 눈앞에 고양이가 어른거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고양이를 두려워했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장미꽃을 절대로 가지고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장미꽃을 두려워했습니다. 꽃 두려워하는 여자가 다 있어요.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을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누가 안 두려워하느냐. 두려움이 곁에 못 오는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예수님으로 충만하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태양 앞에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처럼 예수님 앞에 두려움은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3.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해를 가져오는데 두려움이 사라지니까 해를 받지 않지요. 마음에 두려움을 갖고 있으면 마귀가 두려움을 통해서 해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두려움이 어떻게 우리를 파멸시킨다는 극적인 장면을 기록한 구약이 있습니다. 욥기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을 깊이 의지한 사람인데 한 가지 잘못된 것이 있었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마음에 마귀가 갖다 주는 두려움에 귀를 기울여서 두려움이 꽉 들어찼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그는 재산 다 잃어버렸습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서 재산 다 잃었는데 양 7천 마리가 벼락을 맞아서 다 죽어버렸습니다. 약대 3천 마리를 강도들에게 뺏겨 버렸습니다. 소 5백겨리를 다 도적맞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7명이고 딸이 3명인데 맏아들 집에서 잔치 베풀다가 집이 무너져서 다 압사 당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갑자기 몸에 동양성 문둥병이 생겨서 옷을 입지 못하고 몸에서 진물이 흐르고 잿더미 위에서 몸을 긁었습니다. 부인이 그 장면을 보고 그래도 하나님을 믿느냐 이 정신 빠진 영감아, 죽어라 죽어! 하고서 떠나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세 사람이 멀리에서 와서 위로하러 왔다가 비난만 하고 공격만 하고 갔습니다. 이 사람보다 더 비참한 상황을 겪은 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왜 자기가 그렇게 되었느냐.

욥기 3장 25절에 한번 따라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여러분 마귀는 언제든지 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마귀가 우리를 파멸하기 위해서는 꼭 두려움을 먼저 넣어주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암에 걸리겠지. 암에 걸리겠지. 그러면 벌써 반은 걸려있습니다. 마귀가 그 두려움을 통해서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나는 실패한다. 실패한다. 두려워하면 벌써 실패한 것입니다. 내 나이 일찍이 죽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60대 죽었고, 우리 할머니가 50대에 죽었고 우리 아버지가 40대 죽었는데 나는 일찍이 죽을 것이다. 꼭 그대로 일찍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 두려움이 여러분에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여러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말씀에 뭐라고 말합니까?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마음을 어떻게 지킵니까? 십자가를 통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마음에 모시고 있으면 보혈은 죄도 쫓아버리지요. 병도 쫓아버리고, 저주도 쫓아버리고, 사망도 쫓아버리는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에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지켜야 돼요. 두려움에서 십자가 보혈로 대결을 하고 있으면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꿈을 놓으면 안 됩니다. 꿈이 없으면 망합니다. 꿈이 바로 두려움이 들어와서 꿈을 빼앗아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나의 생활에 꿈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으로 나아지는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마음에 믿음의 빗장을 꽉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믿음의 빗장이냐.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고 이 하나님이 나를 자기의 목숨처럼 사랑하고 계신다. 그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의 빗장을 열고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입술로 시인하는 시인을 통해서 두려움이 못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축복받았다. 나는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나는 승리한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오려고 할 때 두려움이 생각을 통해서 들어오고 꿈을 통해서 들어오고 믿음을 통해서 들어오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인 이 네 가지 요소를 여러분 마음속에 꽉 붙잡지 아니하면 언제나 두려움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밝고 맑고 환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마음을 딱 묶어 놓아요. 그리고 꿈이 없으면 망하니까 꿈을 자꾸 제합니다. 마귀는 자꾸 와서 꿈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낙심을 하게 하고 꿈을 잃게 만들어서 개인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사업도 망하고 생활에 고난이 다가오도록 도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믿음이 없다. 너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꼭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우리는 우리 믿음으로 살지 우리 힘으로 살지 않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목숨처럼 사랑해 주신다. 야~ 잘못 오해하면 큰일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신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다 못 믿어도 하나님은 믿을 수 있어요.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안 버린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써 언제나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못한다. 안 된다. 죽는다는 소리 절대하지 마십시오. 그때가 오면 죽을지라도 죽기 전까지라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으면 두려움이 들어오지 못하고 두려움이 들어오지 못하면 해를 받지 않습니다. 욥은 그동안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동방에서 욥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잘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마귀를 바라보게 되고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서 그 마음속에 두려움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생각에 두려움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가족에게 큰 재앙이 다가올 것이라고 자꾸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다 잃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병들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가정이 파탄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사람들마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나는 재앙 당할 것 같아. 불행이 올 것 같아.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막 일시에 다 잃어버립니다. 양이 7천 마리니까 얼마나 부자 아닙니까? 7천 마리가 벼락이 떨어져서 다 타죽었습니다. 약대 3천 마리를 다 뺏기고 소 5백 겨리를 다 도둑맞고 아들, 딸들이 큰 아들 집에서 잔치하다가 집이 무너져서 다 죽고 온몸이 병들고 부인조차 욕하고 떠나가 버리고 요사이 사람 같으면 자살했을 거예요. 그런데 자살은 안했습니다. 그가 노래처럼 한 것이 내가 두려워하던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탄식을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이러한 탄식을 하는 분이 없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음으로써 내 생명을 건져주신 예수님을 예배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성령이 와서 여러분과 같이 있고 성령은 마음에 평안과 믿음을 주시고 평안과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여서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파괴를 가져오지만 평안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기도할 때 기도를 간절히 하다가 마음이 편안해지잖아요. 그것은 하나님이 이제 책임진다는 증거를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와서 묻습니다. 기도할 때 얼마나 오래 해야 하나님이 응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마음이 평안해지면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마음이 불안해지면 보통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보통기도해서 마음이 불안해지면 아~ 보통기도는 안되는구나. 철야기도를 해야 되겠구나. 철야기도를 해도 편안하지 안거든 새벽기도를 해야 되고 새벽기도를 해도 불안하거든 오산리에 들어가십시오. 굴속에 들어가서 기도하면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계시므로 두려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성경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두려움에서 건지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많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통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보장해 주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로 3절도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야훼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하나님이 이처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두려움은 마귀의 사자이고 우리를 파멸케하는 선구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을 경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먼저 두려움을 막는 평안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마음속에 두려움을 보통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두려움은 아주 나쁜 마귀의 사자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의 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어둡고 캄캄한 고난의 밤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때일수록 원망이나 불평이나 탄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이나 불평이나 탄식하면 두려움에 보태어서 더 큰 불행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온몸에 피가 철철 흐르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웠는데 그들이 그 두려움을 이기고 불행을 이기는 하나님의 비결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통당할 때 기도하고 난 다음 찬송한 것입니다. 그들이 감방 안에서 기도하고 두 사람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쇠고랑을 철컥철컥 맞춰가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찬송을 들으시고 깊이 마음에 감동을 해서 하나님이 발로 보좌에서 찬송의 박자를 맞춘 것 같습니다. 온 감옥에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쇠고랑이 다 벗어졌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난의 밤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거든 기도하고 오히려 고난을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고난을 통해서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섭리할 때가 많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고난과 그 동등 이상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신기한 기적을 베푸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면 고난과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축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이 다가올 때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모든 묶인 것이 풀어지고 모든 믿음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감사하는 것 참 힘듭니다. 그러나 고난당할 때 하나님, 고난당함을 감사합니다. 제가 이것을 이길 줄 하나님이 아시고 고난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때쯤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감당할만하니까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더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믿어주시고 감당할 수 있도록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그저그저 감사합니다. 찬양을 부르고 할렐루야를 부르면 하나님께서 박자를 맞춰주시고 영적인 지진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묶인 것이 풀리고 자유와 해방이 다가오고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종교를 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귀에게 묶여있는 우리에게 해방을 주고 자유를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좋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마귀의 나라 지배권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의 묶임에서 해방을 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마귀의 나라에서 건져내서 하나님의 아들 사랑의 나라로 옮겨서 시민권을 바꿔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 사람은 마음속에 하늘나라 시민권, 하늘나라의 페스포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마귀의 나라에 있을 때 우리에게 억압된 것을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마귀의 억압에서 자유를 얻는데 심신의 억압, 질병의 억압, 고통의 억압, 불안의 억압, 공포의 억압, 좌절의 억압, 절망의 억압, 미움의 억압, 원한의 억압 온갖 병의 억압에서 자유를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여러분은 자유인이지 종의 멍에를 맨 종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위해서 십자가를 달게 받으시고 여러분의 종의 멍에를 벗겨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다시는 그 고통당하지 마라.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마라. 세상의 허물에 끌려 다니지 마라. 다시는 병의 노예 되지 마라. 심신에 병들어서 고통당하지마라. 다시는 저주받지 말라. 헐벗고 굶주리지 마라. 다시는 지옥에 내려가지 마라.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천당은 주님이 이미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당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도 함께 있게 하리라. 주님은 2천년 동안 여러분의 처소를 예비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걱정할 것 없어요.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이 땅에 두신 것은 이 땅에서 천당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가정과 생활에 천국이 이루어지기 원하셔서 주님은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이 땅에서 교회 왔다갔다하고 예수 믿는다고 말만하고 이 세상 다 버리고 천당 가기만 기다리자. 될 수 있으면 일도 하지 말고 힘쓰지도 말고 이럭저럭 있다가 죽어서 천당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은 걱정할 것 없어요. 다 해놓았어요. 천당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보증해 줄테니까.

나는 주의 종이니까 주님께 나가면 여러분에게 내가 보증 서 드리지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천당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여러분이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병도 이기고 저주도 이기고 가난도 이기고 절망도 이기고 여러분께서 주님 앞에서 천국을 소유하고 그것으로써 온 만인을 도와주고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여러분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천국을 누리고 있습니까? 아니요. 우리 집이 생지옥입니다. 그러면 절단이잖아요. 예, 마음 천국, 가정 천국, 생활 천국, 천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니까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함께 공포 속에서 걸어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니까 그곳으로 들어와서 빛을 비춰서 어둠을 없애버리고 천국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천국을 이루어서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무엇을 했던 천국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우리에게 선언했었습니다. 오늘 교회가 무엇하는 곳인지 들어보세요.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6~21) 예수님이 하신 일이 이 일인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복된 소식을 주고 그다음에는 포로 된 자에게는 자유를 주고 눈 먼 자는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에게는 해방시켜 주고 주님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니까 주님은 가시는 곳마다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 속에 들어와서 여러분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시고 해방시켜 주시고 가족을 가정을 해방, 여러분의 생활을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써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북한에 자유와 해방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북한에 역사하시면 제일 먼저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예수님이 계시면 자유와 해방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 아닙니까?

<결론>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빛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소망을 주며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산천초목은 다 빛을 받아서 사는 것입니다. 이 초목들은 그 잎의 엽록소를 통해 탄소동화작용을 일으켜서 그것으로 영양분을 만듭니다. 영양분을 만들어서 저장해 놓은 그것을 모아 놓으면 열매도 되고 과일의 살도 되는데 이것을 짐승이 먹고 사람이 먹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사는 것은 햇빛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햇빛이 엽록소와 탄소동화작용을 해서 영양분을 만들지 아니하면 먹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짐승이 풀어 뜯어 먹고 엽록소 속에서 햇빛이 만들어 놓은 양식을 먹고 사람들도 그 짐승을 잡아먹고 사는 것이니까 직접 간접으로 햇빛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빛을 먹고 살고 영적으로도 예수님이 빛이시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을 먹지 않고는 살지를 못해요. 오늘날 우리가 자연을 훼손시켜서 자연이 사막화 되면 양식이 없어져서 다 굶어죽지 않습니까? 우리 양식은 햇빛이 만들어 내놓은 양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햇빛을 먹고 살고 영적으로도 예수님의 말씀을 먹지 않고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생명인데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의 빛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하늘에 있는 저 햇빛을 보고 감사하고 우리 마음속에 와 계신 영혼의 해인 예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햇빛을 많이 이용하십시오. 세상의 햇빛을 받아서 육체가 살고 영적인 햇빛을 받아서 우리 영혼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2014년 7월 6일 성찬주일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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