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지원센터’ 개소… 사각지대에 놓인 생명 살린다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김해성 목사 “아이들 버려지지 않도록 엄마 뱃속에서부터 지원”

▲개소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테이트 커팅을 하고 있다. ⓒ지구촌사랑나눔 제공
▲개소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테이트 커팅을 하고 있다. ⓒ지구촌사랑나눔 제공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민하거나 아기를 키울 수 없게 된 이주여성들을 위한 ‘이주여성지원센터’가 14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개소됐다. 이곳은 이주민 구호단체 지구촌사랑나눔의 대표인 김해성(53) 목사가 만든 보금자리다. 외국인노동자들을 돕는 일을 도맡아 하는 그가, 큰 짐을 하나 더 짊어진 것이다.

‘이주여성지원센터’가 들어선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의 800㎡ 규모다. 산모와 영아가 생활할 단칸방 12개 등, 최대 200명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 목사는 “이주여성의 아이들도 모두 귀중한 생명”이라며 “그들이 함부로 버려지지 않도록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돕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개소식에서는 김은숙 이사장을 비롯한 신임 이사들(오영란, 한미미, 최영, 강정훈, 이자스민, 김경희, 허찬회, 안정애, 한재숙)을 위촉했다. 김은숙 이사장은 “이주여성지원센터는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뜻을 같이할 후원자를 적극 유치해 이주여성들과 이주민자녀를 돕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날 김회선 의원(새누리당, 서초갑), 김성중 전 노사정위원장,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 문애란 지엔앰 대표, 뿌리의집 김도현 목사, 주사랑공동체의 이종락 목사 등도 축하와 격려를 전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180만명을 넘어서면서 외국인들 간 결혼과 동거·출산이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원치 않는 임신에 따른 출산도 늘고 있다. 혼전동거나 혼외관계 등으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경우에도, 국내에선 합법적 낙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는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미혼모지원센터에서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한국 국적 취득이 불가능한 탓이다. 외국 국적의 이주여성들은 국내 미혼모센터나 영아원 등이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딱히 기댈 곳이 없는 처지다. 

이주여성지원센터는 1년 전 김 목사가 받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했다. 15살 된 조선족 여자아이가 낳은 아이를 맡아줄 수 없겠느냐는 국내 한 미혼모센터의 연락이었다. 한국 국적자가 아니면 도와줄 수 없다는 미혼모센터의 설명에 김 목사가 뒤늦게 나섰지만, 소녀는 아이를 두고 중국으로 떠나버렸고 아이는 한국인 지인이 데리고 간 뒤였다. 소녀의 사연을 접하며 김 목사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여성 임산부들의 현실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이주여성 임산부들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될 경우 도움을 받기 쉽지 않고, 심지어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해결책으로 먼저 떠올린 것은 이주민 아기를 위한 베이비박스였다. 김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외국인의 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아이를 보살피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버려지는 생명을 살리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발에 부딪혔다. 입양아 모임 회원들이 “버려지는 아이들의 인권을 생각해 봤느냐”면서 항의방문을 했다. “입양 후 30~40년 뒤 뿌리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을 때 절망감을 생각해 봤느냐”는 말을 듣고, 김 목사는 엄마가 아이를 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목사는 작년 5월부터 이주여성들과 아이들이 마음 놓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하게 됐고, 주변 건물들을 물색해 건물 매입비 13억원에 3억원 가량의 리모델링까지 거쳐 지금의 공간을 마련했다. 단장을 마친 이주여성지원센터는 엄마와 아기가 함께 지낼 수 있는 모자원과 영아원, 조금 자란 아이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룹홈까지 갖췄다. 상담, 정기검진, 양육 지원 등을 제공하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여성들의 출산과 양육을 돕는다. 

이주여성들의 원활한 상담을 위해 베트남과 몽골, 캄보디아, 중국, 러시아 등 15개 언어로 통역이 지원된다. 이곳에는 이주여성 가정 뿐 아니라 난민 여성, 기혼모 가정 등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까지 마음 놓고 생활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받아들일 예정이다. 

이날 개소식이 진행된 빌딩의 4층에서는 3명의 이주민 영아와 엄마가 따뜻한 방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쉬고 있었다. 센터에 가장 먼저 입소한 고지연(가명) 양은 예쁘다고 반기는 사람들에게 연신 방긋방긋 웃어 보여, 보는 이들을 가슴 뭉클하게 만들었다. 또한 법무부 이주민지원센터에 머물고 있는 난민신청 가족 28명이 참석하여 개소를 반겼다. 이주여성지원센터는 난민신청자나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외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할 예정이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주여성지원센터는 개소도 하기 전에 예닐곱 명의 어린이와 이주여성, 난민 지위의 모자가 입소 신청을 한 상태다. 지원센터는 상담과 정기검진, 양육지원 등을 제공하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여성들의 출산과 양육을 돕는다. 김 목사가 이끄는 지구촌사랑나눔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학교, 쉼터와도 연계해 지속적인 지원을 할 방침이다.

김 목사는 “이곳을 찾는 이들은 모두가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방치되는 사람들”이라며 “하지만 이들에게도 자기 뿌리를 지키면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장 생존이 절박한 사람들인데, 우리 정부는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정부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일을 해 온 그는, “이주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한국인의 따뜻한 시선”이라고 강조한다. 김 목사는 “합법·불법을 통틀어 외국인 체류자 200만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약자”라며 “함께 산다는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개소식에는 많은 후원금과 후원물품들이 답지했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엄마와 이기들을 위한 2층 침대를, 크림하우스(대표 허찬회)는 바닥 매트를, 펀비즈(대표 최영)는 아이용품들을 제공했다. 매일유업의 최형식 이사는 우유 공급을 약속했다. 또한 더페이스샵은 개소식에 참석한 모든 내빈에게 고급 화장품세트를 선물했다.

지구촌사랑나눔은 은행 융자와 후원금 등으로 건물을 매입했지만, 융자금을 갚고 향후 운영비를 조달하려면 뜻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어린이 물품이나 후원금을 보내거나 봉사를 하고 싶은 이들은 누리집(www.g4w.net) 또는 전화(02-849-9988)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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