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로마서 8장 28절

<서론>
“흑자 인생과 적자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인생을 항상 손해를 보며 적자 인생으로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인생을 항상 이익을 보며 흑자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적자 인생과 흑자 인생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삶의 환경과 처지에 대하여 어떤 생각과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서 그 삶이 적자가 될 수도 있고 흑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 가계부에 흑자로 또는 적자로 기록되어 사는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적자 인생으로 만들지 않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인생을 만드실 때 적자 인생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마음으로 풍요한 평안과 기쁨을 가지며 죽지 아니하는 건강을 가지고서 살았습니다. 모두 풍성한 흑자 인생이었습니다. 모자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적자로 변화된 것은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반역을 행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쫓겨남을 받고서 적자 인생이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아담의 적자 인생은 우리가 인생 가계부를 들춰보면 영적 생명이 죽었으니 큰 적자입니다. 땅이 저주를 받았고 하와는 잉태의 고통을 당했고 아담은 생계의 고통을 당하고 부부 갈등과 형제 갈등이 시작되고 질병과 죽음의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로 19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참으로 슬픈 우리 아담과 하와의 죄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선고를 읽을 때 마음에 좌절하고 절망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지금 머리에 땀을 흘리지 않고 살지 않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이미 1천 조 원을 넘었습니다. 우리 한국에 동포들이 개인 개인 빚을 진 것이 1천 조 원이 되었습니다. 정부와 기업을 포함한 총 부채는 4천 5백 7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계산을 할 수 없습니다.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개인과 가정들뿐만 아니라 국가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을는지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시작된 부부간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이혼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이혼율은 50년 전에 비해 무려 13배나 증가했습니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이혼율이 아시아에서는 최고 수준입니다. OECD 34개 국가 중에서 이혼율이 최고입니다. 우리가 경제발전도 빨리빨리 했을 뿐 아니라 이혼도 빨리빨리 했습니다. 가정의 기초를 이루는 부부관계가 이처럼 흔들린다면, 가족의 행복 역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반적으로 볼 때 영혼이 잘되지 못하면 범사에 적자가 되고 생활에 적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지 아니하시면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흑자 인생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하나님이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셔야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적자 인생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삶도 적자 투성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되는 사람들 한 사람씩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민수기 13장 17절로 20절에 보면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열두 정탐꾼을 보냈는데 열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보고하는 보고는 적자 투성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에 대한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꽉 들어찼습니다. 부정적 사고의 삶의 태도로 보고를 했습니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아주 부정적인 관점으로 그들은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인 인생을 살고 부정적으로 보고를 한 그들을 다 재앙을 당해 죽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다 죽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열두 사람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흑자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에 온전히 순종했고 긍정적 삶의 태도를 가졌던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7절로 9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긍정적인 보고를 백성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돌을 들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 죽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40년 광야 생활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살아남아 자손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는 백성을 멸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7절로 30절에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말씀만 듣는 것이 아니라 원망하는 말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여러분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부정적인 말을 들은 대로 행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인 말을 들은 대로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어떻게 하느냐.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들은 말대로 시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긍정적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뿐 아니라 말을 할 때도 긍정적인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신 것 같지만 우리와 같이 계시며 우리의 말을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저의 설교를 듣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흑자 인생입니까? 적자 인생입니까? 흑자 인생입니까?
3. 우리의 삶은 흑자냐 적자냐
우리는 일생 동안 많은 시련과 고난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인생을 흑자로 만들 수도 있고 적자로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흑자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항상 우리의 생각에 갈보리 십자가를 끌어안아야 흑자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생, 모자란 인생이라도 하나님은 우리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우리를 청산해주셔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거기에 주님께서 몸 찢고 피 흘려 값 주고 사주신 아름다운 은혜가 넘치는 삶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흑자 인생이 되려면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바라봐야 됩니다 십자가를.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바라볼 때 주님이 전인구원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 생명을 넘치게 얻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죄를 용서하고 의로움을 플러스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내 죄가 용서받고 의로움을 선물로 받았다. 플러스입니다. 성결과 성령 충만이 플러스됩니다. 심신의 치료와 건강이 플러스됩니다. 저가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신 은혜가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이 플러스됩니다. 저주를 청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우리에게 플러스 해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바로 부요에 있는 것입니다. 부요하신 그가 왜 가난하게 되었나. 너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어서 그 대신 당신의 부요를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을 기뻐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잘못 알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의 부요를 버리고 이 땅 험하고 가난하고 가시와 엉겅퀴와 저주가 꽉 들어찬 땅에 와서 십자가를 걸머진 것은 우리를 가난에서 건져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가난한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모든 일에 모든 것이 항상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한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요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아서 그것을 나누면 나누는 대로 다 돌아오는 것입니다. 공을 벽을 향해서 탁 던져 보십시오. 공이 벽속에 들어갑니까? 아닙니다. 탁 때리면 탁 튀어 나옵니다. 여러분이 주면 다 튀어 나온다구요. 여러분의 치마폭에 가득히 부어진다구요. 부활과 영생천국이 또한 플러스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청산해버린 것입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우리 마음속에 청산된 것입니다. 마음을 늘 긍정적으로 하고 부정적으로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봤으면 항상 희망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십시오. 희망을 생각하십시오. 희망이 없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한 국가와 민족이 흥할 것이냐, 망할 것이냐 하는 것은 국민들이 그 마음속에 희망찬 꿈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희망찬 꿈을 가지고 있는 백성은 흥합니다.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희망을 생각하고 희망을 꿈꾸고 믿고 말하십시오. 생활과 환경을 낙관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이 세상 망하겠다. 어떻게 살겠노. 그런 환경이 다가오더라도 여러분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로써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라도 여러분은 그 속에 들어가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축복이 다가온다.
십자가에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꿈꾸며 그 생각대로 축복이 오는 것을 꿈꾸며 믿고 말로 고백하면 여러분이 여러분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운명이 변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 살아계시고 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을 자꾸 하십시오.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신다고 말을 하면 그 말이 기적을 베푸는 것입니다.
존 번연은 비국교도 신앙 때문에 12년간 감옥에 있었지만, 그곳에서 「천로역정」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수년 동안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고통스런 삶을 살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인생의 심오한 질문들을 묻고 대답하면서 위대한 작가로 변화된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고난의 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절망을 버리고 긍정적이고 밝은 면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난의 희생물이 아니라 고난을 변화시키는 4차원의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고난에 들어가서 축복을 생각하고 꿈꾸고 보고 믿고 말하면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운명을 바꿉니다. 주님께서 혼돈하고 공허한 세상을 향해서 빛이 있으라. 궁창이 생겨나라. 물이 나타나라. 말씀하신대로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해서 운명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3차원적인 물질을 지배하는 인생을 초월해서 4차원 물질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 거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30장 18절은 “그러나 야훼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야훼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우리만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은혜 베풀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리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도 좋은 때에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기다리신다. 우리 신앙생활하는데 가장 힘든 것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맡기고 난 다음에 하루를 여삼추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개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기다릴 때 눈 딱 감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께 의지합니다. 주님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주님도 가장 좋은 때 응답하시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심하여 선을 이루도록 반드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종국적으로 원하시는 삶은 여러분 항상 기뻐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기쁜 일이 있기도 하지만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없는 것 가운데 기쁨이 생길 것을 기대하고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현재 일을 기뻐하고 기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 방법으로 응답해 줄테니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라. 하나님 앞에 여러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고 기대를 가지고 꿈을 꾸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맡기고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서 긍정적인 말을 하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연속적으로 여러분 생애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멀리 바라보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바라보라.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참 후에 응답하실 때도 많습니다. 반드시 젊은 인생만 쓰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칠십 오세에 아브라함을 불러서 새로운 땅으로 가게 한 것입니다. 팔십 세에 모세를 불러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나이를 계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알아서 계산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4절로 7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러분 기도를 열심히 하게 되면 어쩌다가 마음에 스위치가 탁 돌아가서 편안해집니다. 실제 들리는 소리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응답했다. 그러한 마음에 생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아무 응답도 안 오는데 집에 돌아와서 밥 먹다가 갑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이 웃으시면서 해결되었다. 그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전혀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는데 평안하게 마음속에 말씀을 하시고 말씀을 들은 사람은 꼭 압니다. 이것 나보고 말씀 하시는 거구나. 그때부터 감사를 넘치도록 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현실화되어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결코 낙심하지 말고 마음에 하나님의 응답이 생각으로 들려 올 때까지 계속 하십시오. 반드시 여러분께서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것이 많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주님이 저의 마음속에서 하하하 웃으세요. 하나님 웃으시는 것 느낄 수 있어요. 그러더니 아직까지 어린애다 어린애. 50년 목회를 하면서 그것가지고 낙심을 하느냐. 응답되었다. 그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뻐지고 좋아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래서 어제 저녁에 생각하기를 내가 우리 성도들에게 말씀드리고 이 기분을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음성을 다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을 행하시는 야훼, 그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야훼, 그 이름을 야훼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리라.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들리는 것입니다.
<결론>
어떤 사람은 사소한 고난에도 좌절하는데 그 이유는 부정적 사고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정적 사고를 하면 조그만 일이 생겨도 그것을 보고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을 총동원하여 절망적 시나리오를 찾고 인생을 비관하며 부정적인 일과 소식을 찾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적자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똑같은 환경과 처지에 있어도 긍정적인 사고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희망으로 가득하고, 마음이 낙관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항상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흑자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여러분 우리를 적자로 만들고 흑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환경에 대처하고 있는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냐, 우리가 내일에 대한 꿈이 성공을 가져오고 창조를 가져오고 좋은 일이 있을 것을 꿈꾸느냐. 하나님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고 기도하고 맡기느냐. 하나님이 듣고 계시기 때문에 말을 긍정적으로 하는 것, 된다. 할 수 있다. 건강하다. 축복이 온다. 승리한다.
하나님이 긍정적인 말을 듣게 하시고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고 꿈을 가지고 기도하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긍정적인 선언을 하면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엄청난 힘을 발휘해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가져오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2015. 2. 1. 성찬주일 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