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 설교] 나는 나의 자화상을 본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본문: 고린도후서 5:16~17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는 나의 자화상을 본다” 그것을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죄와 허물을 벗어버리고 질병과 고통의 고침을 받고 축복 받고 형통하고 부활 천국의 백성이 된 나의 자화상을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 한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런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우리 마음속에 죄와 허물을 벗어버리고 질병과 고통과 괴로움을 정복하고 축복받고 형통하고 부활 천국의 백성이 된 나의 자화상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날 불행한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부모님에게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청소년들은 삐뚤어진 자화상을 가지고 평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아이의 성장 발달과 자화상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뒷받침해 주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 UCLA 연구팀이 엄마의 사랑을 꾸준히 받은 3세 아이와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사랑받지 못한 3세 아이의 뇌를 CT로 촬영하여 두 사진을 비교 분석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의 뇌는 크고 잘 발달된 반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의 뇌는 작고 검은 색깔을 띠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구팀의 주장에 의하면, 뇌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는 마약 중독이나 폭력 등 각종 범죄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또 정신적 질병이나 각종 다른 질병에도 더 쉽게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요즘 깨어진 가정이 급격히 늘어가고 그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병든 자화상을 가지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론>
1. 옛 사람과 그의 자화상

우리는 옛사람과 그의 자화상을 벗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 사람과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자화상을 마음속에 가지고 그것을 늘 바라보고 있습니다. 죄와 허물의 노예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죄책과 정죄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약하고 고통스런 자화상이 또 있습니다. 나는 항상 병들고 연약하다. 나는 못한다. 안돼! 부정적인 자화상인 것입니다. 가난하고 저주받은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안돼. 풍성하질 못해. 나는 항상 돈이 부족해. 항상 삶에 여유가 없어. 자화상을 부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8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마음속에 부정적인 자화상으로 돋아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자화상이 아름다운 향기로운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시넝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죽어서 천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천당 갈 자화상이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의 값은 사망으로 사망의 음부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2. 잘못된 바라봄의 법칙

자화상이 잘못되면 그 자화상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생애가 잘못되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바라봄의 법칙을 가지게 되면 정말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항상 바라보고 불안과 낙심과 좌절하고 탄식과 슬픈 말을 하면 그 모습이 생활에 실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큰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한 정탐꾼의 그 자화상을 보십시오.

민수기 13장 31절로 33절에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라고 모세가 보냈는데 그들이 40일 40야를 가나안땅을 다니면서 본 것을 보고하는 것은 완전히 절망적인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본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 메뚜기 자화상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보고를 받은 백성들이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야훼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 14:2~3) 면서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저항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인데 불신앙도 들음에서 나며 적그리스도의 말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로 29절에 보면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사람들만 우리말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이 말하는 말을 듣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네가 말하기 좋아하는 그대로 만들어 주겠다. 항상 우리가 나는 못살겠다. 나는 안 된다. 나는 병들었다. 나는 패배한다.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이 내가 네 말을 다 듣고 있으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마. 왜 우리 집안은 이 모양이냐. 왜 나의 일생은 늘 슬픈 일만 생기느냐. 그것을 여러분 우리말을 통해서 걸러내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말은 굉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입 밖으로 내놓으면 그 말이 에너지를 생산해서 말하는 그대로 되게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너에게 행하겠다고 했으니 우리 정말로 조심해야 돼요. 여호수아와 갈렙은 열두 정탐꾼과 같이 갔으나 보고하는 보고가 완전히 긍정적이었습니다.

민수기 14장 6절로 9절에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야훼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야훼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야훼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굉장히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과연 가보니까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더라. 여러분 땅이 젖과 꿀이 흐르도록 비옥하면 얼마나 좋은 땅입니까? 아주 용기와 힘을 주는 보고를 했는데 백성들이 그 보고를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돌을 들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보고 보다도 부정적인 보고를 좋아합니다. 잘된다는 것보다도 잘 안 된다는 것을 더 말하기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려면 힘을 쓰고 애를 써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꿈꾸고 긍정적으로 믿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말하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부부 관계를 연구한 워싱턴 대학의 존 가트맨(John Gottman) 박사는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대화가 부정적인 대화의 다섯 배가 되어야 된다는 연구발표를 했습니다. 부부간에 한 지붕 밑에 살면서 남편이 부정적인 말을 하든 아내가 부정적인 말을 하든 한마디 하면 아내가 한마디 부정적인 말을 하면 남편은 다섯 마디 긍정적인 말을 해야 그것이 상쇄가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아내가 거기에 반대되는 긍정적인 말을 다섯 배나 해야 부정적인 힘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부정적인 말을 한 번 했다면 최소한 긍정적인 말을 다섯 번 이상해야 가정에 평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긍정을 1로 하면 부정을 5로 가트맨이 비유로 따지는데 긍정적인 것은 한번밖에 없고 부정적인 것은 다섯이나 있는데 1대 5의 비율을 고치지 아니하면 그 가정은 올바르게 서지 못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한마디 하는데 부정적인 말은 25번 하면 그 가정은 무너지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뭐 특별한 조사 없이 부부가 이혼할 확률은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부정적인 말 25번 하면 그대로 이혼에 돌입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도 긍정적인 말을 사용할 때 화목하지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지 아니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바버라 프레드릭슨 교수는 번창하고 있는 사업체 20개와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기업 20개,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 20개를 대상으로, 그곳 회사원들의 ‘말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매우 놀라웠습니다. 각 기업의 회사원들이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비율이 3대 1보다 높은 기업들은 번창하고, 3대 1보다 낮은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회사의 직원들이 잘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3명이고 안된다고 하는 사람이 1명이면 그러나 그것이 거꾸로 되어서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3명이고 그 회사는 망하는 길로 걸어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가정이든 기업이든 긍정적인 말을 사용할 때 잘되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수가 적어도 서로 반가워서 손을 잡고 아이고 오래간만이다. 잘 계세요? 건강하지요? 저번 주일에 봤는데 뭘 건강하기는 건강해? 그러나 서로 만나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손잡고 흔들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안부를 묻고 그렇게 하면 그 교회는 됩니다.

긍정적인 것은 하나님이 그 배후에 있고 부정적인 것은 마귀가 배후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하면 그 배후에 주님께서 꼭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못 한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죽는다. 나는 패한다. 그런 말을 하면 그 말 뒤에 마귀는 웃으면서 잘한다고 칭찬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가정이든 기업이든 긍정적인 말을 사용할 때 잘되고 번창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종교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이 돼요. 예수 믿기 전의 사람하고는 세상이 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라는 유대인의 학자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과 대화한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냥 종교적인 사람이 되어서 하늘나라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야 된다. 거듭난다는 말은 아노덴라는 헬라어를 사용했는데 아노덴이라는 것은 위에서 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래에서 난 사람은 어머니 몸을 통해서 나지 않습니까? 똑같이 아노덴인데 하늘나라 백성이 되려면 위에서부터 나야 된다. 하나님이 어린아기 낳듯 낳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교적인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여러분을 낳았으니 하나님이 여러분을 뜨겁게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거듭나라는 말 자체를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니고데모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처럼 또 어떻게 태어나느냐.

그때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된다. 물은 회개를 말하고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영 아니십니까? 우리가 회개하면 성령이 오셔서 태어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드리고 입술로 시인하면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입으로 긍정적으로 시인하지 아니하면 중생하지 못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다. 입으로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믿으면 의로운 사람이라고 지적을 해 주지만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의 말은 해주지 않습니다. 구원은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 나 구원 받았네. 너 구원 받았네. 우리 구원 받았네. 노래처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았어요.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입 딱 다물고 나는 몰라~ 그러면 모르는 지옥에 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4장 17절로 18절에 보면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해야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이 별들을 바라보고 자기 후손이 그처럼 많겠다고 믿으니까 하나님이 의롭게 여겼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별들처럼 자식이 많다는 것을 마음속에는 믿고 있었으나 자식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언제 자식이 생겼느냐. 입술의 말을 바꿨을 때... 네 이름이 아브람인데 많은 자식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으로 그리고 네 아내는 사래였는데 여주로 사라, 많은 자식의 여주로 이름을 바꿔라.

제가 해외선교를 하는데 교회는 서울에 와서 돌봐야 되겠고 선교는 해외 나가서 해야 되는데 하도 바쁘고 토요일날 서울에 와서 주일날 예배하고 주일날 저녁이나 월요일날 아침에 출발하고 그것이 가까운데 같으면 몰라도 아프리카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여기 주일에 와서 예배 보고 주일 저녁에 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그러한 생활을 하다가 제가 내 팔자가 이럴 수는 없는데 너무 괴로워서 못 견디니 나도 이름을 바꿔야 되겠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그 아내 사래를 사라로 바꾼 것처럼 나는 만성천자 다윗의 이름을 빌려 가지고서 David, yonggi cho! 그렇게 불렀습니다.

다윗이 편안한 생활을 했다고 생각하고 보니까 사울에게 쫓겨다니기를 말로 다할 수 없이 고생을 하면서 쫓겨 다녔어요. 그처럼 제가 쫓기는 인생생활을 사는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권세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에라 이름 하나 보태자 바울을 보탰습니다. 그 다음 보니까 바울은 다윗보다 더 많은 고생을 했어요.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David, paul yonggi cho! 이름이 왜 이렇게 긴지 나도 잊어버리고 내 이름을 잘 모릅니다.

요사이도 세계 여러곳에 가면 세계 사람들이 내 이름을 몰라서 혼돈할 때가 많습니다. 날 소개할 때 David, Cho! Yes! Paul, Cho! Yes! Yonggi-Cho! Okay. 그래서 나를 두고서 한국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가 David, Cho라는 목사를 잘 안다. 다른 사람이 Paul, Cho 말이지? 아니 Paul, Cho 말고 Yonggi-Cho 말이지? 아주 혼돈이 되게 된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을 올바르게 하면 입술의 고백을 따라서 하나님의 성령이 창조적인 역사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가운데 늘 운행하는데 여러분이 기도하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있으면 성령이 곧장 역사하는 것입니다. 입의 말로 묶이고 입의 말로 사로잡히기 때문에 입술에 말을 하도록 성령이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령이 충만하고 있을 때 하나님 말씀을 입으로 고백하면 성령이 대번에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십니다. 그때 하나님께 빛이 있으라. 순식간에 빛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면 성령이 와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그 운행하시는 성령님 앞에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입술의 고백이 그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했는데 우리의 자화상은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서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것을 여러분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갈보리 산 언덕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그분이 예수님이 매달리신 것입니까? 여러분이 매달리신 것입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 때문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누구 때문에 매달리신 것입니까? 나 때문에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이 매달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십자가에 달려있는 여러분 자신을 봐야 됩니다. 십자가에 매달려서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바라보고 내가 예수님을 통해서 죄값을 지불하고 허물을 청산하기 위해서 저렇게 매달렸구나. 내가 병에서 고침받기 위해서 예수님 등이 갈기갈기 찢어지듯이 채찍에 맞은 것은 내가 예수님 통해서 채찍에 맞았구나. 저렇게 못 박혀 매달려 있는 예수님은 나를 대신해서 나를 위해서 매달렸기 때문에 내가 저주에서 벗어나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저렇게 매달렸구나. 예수님이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고 죽은 것은 내가 죽은 것이요 그가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내가 부활한 것이다. 이것은 진실로 이대로 된 것이고 여러분이 바라보고 믿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을 통해서 깨닫고 바라보고 그리고 믿고 말하면 그것이 실제로 여러분 생활 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용서와 의의 자화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저분이 바로 나에게 용서와 의를 주신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기에 못 박혔다고 여러분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용서와 의의 자화상을 보아야 되겠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자화상을 보아야 되겠고 심신을 치료받는 건강한 자화상,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자화상,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자화상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은 청산되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산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마귀가 여러분을 보더라도 예수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보통 사람이 아니라 예수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것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과 하나같이 살며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것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결 같이 소원하는 바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은 잘된다.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내가 잘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범사에 잘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주가 사라지고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였으니 내가 잘된다. 내가 강건하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질병을 다 청산하고 건강하게 되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걸머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예수 믿는 신앙이라는 것은 나를 예수님과 분리시켜 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리 내 승리, 예수 천국 내 천국. 그리스도와 여러분을 완전히 한 묶음으로 묶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몸 찢고 피 흘려 이룩한 모든 것은 다 여러분 위한 것이므로 여러분이 그 모습을 옷 입고 여러분 스스로를 보게 될 때 그렇게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화상을 올바르게 보아야 승리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들은 다 이와 같으니라. 바람같이 성령은 임하여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가자 아버지께 구해서 성령이 오순절날 임하셔서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여러분이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며 보혜사 성령님 이끌어 달라고 하면 성령은 여러분의 생각을 통해서 여러분의 꿈을 통해서 여러분의 믿음을 통해서 여러분의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성령님은 하나가 되어서 역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영원은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합쳤을 때 영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하나님이 같이 계신 여러분이 고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3절에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게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내주한 사람이라고 또 성경에 말씀한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예수 충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째 보혜사요, 성령은 다른 보혜사. 예수님 똑같은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질그릇 같은 우리 몸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7~9).

질그릇은 여러분, 이 세상에서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흙으로 버무려서 만든 그릇인데 이 질그릇인 우리가 왜 귀중하냐! 그릇 자체가 값이 나가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릇 속에 담아 놓은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중요한지 들어 보십시오.

「관계 DNA」의 저자, 게리 스몰리 박사가 미국의 애리조나주에서 세미나를 주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백 명의 청중들 앞에서 열심히 강연을 하다가 갑자기 테이블 위의 낡은 바이올린 하나를 집어 들고 “이 바이올린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청중들은 기껏해야 몇 십 달러 갈 것입니다. 다 낡은 바이올린입니다. 몇 십 달러밖에 안될 것입니다. 그런데 스몰리 박사가 바이올린에 새겨진 문구를 읽어주자 모두의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이 바이올린은요~ 1723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유명한 악기 제조인이 만든 바이올린으로써 그가 만든 것은 오늘날 굉장히 값이 나가는 것인데 스몰리 박사가 바이올린을 청중석에 만져 보라면서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자, 그는 마치 귀한 보배를 받은 것처럼... 사람들이 다 낡아서 상처투성이인 바이올린을 왜 저렇게 모시고 다니느냐? 그 바이올린을 만든 사람이 하도 유명한 사람이니까 몇십억 가치가 있는 바이올린이거든요. 아무리 낡았어도 내용이 그렇게 하니까 호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값은 얼마나 될까요? 천정 모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너무 얕잡아 보면 안 돼요. 여러분은 예수님이 만드신 분인데 값이 얼마나 고급입니까? 그러면 여러분 너무 낮게 자기를 취급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고상한 분으로 스스로를 고상하게 여기고 말도 고상하게 하고 생활도 고상하게 하고 꿈도 고상하게 꾸면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장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작품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게다가 ‘너는 내 것이라’고 하나님의 소유임을 표시하기 위해 성령의 인, 즉 성령의 도장까지 찍으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중 삼중으로 하나님 소유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보통 귀한 분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 저를 찾아와 편지 한 통을 내놓던 부형님이 생각납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를 할 때 한 부형님이 내 보기에는 잘 생겼습니다. 옷도 깨끗하게 입고... 그런데 편지 한통을 주면서 설명할 필요 없이 읽어 보고 답장을 해 주십시오. 그리고 가 버렸어요. 그분이 주신 편지를 호기심이 나서 빨리 펴서 봤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교회를 왔다 갔다 하면서 소외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교회는 형식적으로 왔다 갔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돌볼 수 없다. 나는 세상을 따라 타락한 사람이고 변화되지 못한 사람이다.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나 같은 사람은 사랑을 받을 수 없다.’ 그러한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이판저판 사판이다. 교회와도 지옥 갈 것이고 교회 안 와도 지옥 갈 것이니까 교회를 나오지 않는다고... 그런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뭐라고 답장을 쓸까요? 기도하고 난 다음 답장을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이 잘못 안 것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 위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왔다면 십자가 걸머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의로운데 죄인이 없는데 왜 십자가를 걸머져야 되는 것입니까? 부모가 잘 사는 자식이 아니라 실패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자식의 빚을 갚아주는 것처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의로운 사람을 도와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당신 같은 죄인을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걸머졌지 의로운 사람은 십자가 걸머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날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 편지가 왔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나같이 못난 놈은 하나님이 버린 줄 알았는데 이렇게 못난 놈을 찾아오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다. 목사님 편지를 받고 난 다음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구만리장천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고 매일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맞았습니다. 하나님은 구만리장천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죄인인 것을 깨닫자 구원받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무슨 죄가 있어요? 나는 죄인 아닙니다. 자기가 죄인이 아니니까 용서해 줄 의인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것을 알면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필요하고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쓰고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렸을 때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한두 가지 지은 죄만 담당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다음에 여러분이 지을 제사가 없어요. 주님은 한번 제사로 여러분을 온전케 하사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의 자화상은 빛과 희망과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여러분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죄가 용서함 받고 허물이 씻음을 받고 성령께서 영원히 와서 같이 계시며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므로 여러분을 질병에서 건져 주시고 오늘 내 설교를 들은 여러분 다 백살을 사십시오. 아멘! 그 다음에 우리는 십자가를 쳐다볼 때 나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저주와 가난을 다 십자가에 대신 짊어지고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자화상을 바라보고 나는 저 사람이라고 확실히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자화상을 바라보고 사는데 자기 자화상이 뚜렷하고 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고 살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저는 고생은 많이 했지만 David, Paul, Yonggi-Cho로 이름 짓고 그것을 바라보고 온 결과에 다윗과 같이 축복도 받고 바울과 같이 축복도 받고 조용기와 같이 축복도 받고 이름 세 이름을 가졌더니만 세 운명이 다 내게 찾아온 것 같아요. 우리가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입술로 고백을 하면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여러분 생각과 꿈을 여러분이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 속에 생각을 다스리고 그 생각이 이루어진 꿈을 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많은 변화가 여러분에게 다가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그냥 신앙이 아닙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는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여러분 생각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못났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자화상을 절대로 가지지 마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긍정적인 자화상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용서와 의, 거룩함과 성결함, 치료와 건강,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 영생복락의 천국이 여러분 것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보고 믿고 말하는 여러분 되십시오.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을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빛과 희망과 기쁨과 감사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됨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말하고 노래하십시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아멘.

/2015. 3. 15. 주일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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