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민수기 14장 9절
<서론>
밥이냐 메뚜기냐 이런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다다를 때였었습니다. 군인들에게 반찬을 해줄 것이 없으니 메뚜기 공출을 했습니다. 우리 학교 간다고 논두렁 길 지나가면 메뚜기들이 굉장히 많이 뛰어 다녀요. 그럼 학교에서 메뚜기를 잡아오라 그럽니다. 그럼 우리가 열심히 메뚜기를 잡았죠. 그래서 그 메뚜기를 삶아서 먹기도 하고 볶아서 먹기도 하고, 찢어서 먹기도 하고 우리가 의외로 군인들에게 보낸 분량보다 많이 잡으면 굉장히 맛있게 먹었습니다. 지금도 세월이 오래 지나갔지만은 메뚜기 좀 먹어 봤으면 좋겠어요. 맛이 있어요.
여기 성경 말씀에 왜 밥이냐 메뚜기냐를 제가 말씀드리고자 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애굽 종살이하다가 나와서 모세를 따라서 광야를 지나 이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열하루만 걸어가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열흘만 걸으면 그 땅에 들어갈 수 있는데, 모세가 그냥 그 백성들을 데리고 진격했으면 좋았었는지 모르겠지만 백성들에게 미리 스파이를 보내서 잘 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상태를 살펴서 오라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데 열하루가 걸리니깐 정탐꾼을 보내서 어느 길로 올라가면 제일 쉽게 올라갈 수 있겠는가, 그 가나안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방어하고 있는가, 그들이 잘 사는가 못사는가 여러 가지 알아보라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열두 정탐꾼이 그곳으로 올라가는데 사람들이 무엇을 볼 때에 척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을 견주어서 봐야 어떻다는 걸 알지 견줄 자세가 안 되어 있으면 아무리 봐도 모른다 말입니다. 그 올라간 열두 정탐꾼이 열 명은 물질주의적이예요. 자기대로 가나안땅의 사람하고 비교를 했습니다. 우리와 가나안땅에 사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자기대로 비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하고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만군의 야훼 하나님을 모시고 계시므로 하나님하고 그들하고 비교해서 어떠한 것이냐 그것을 볼려고 했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광야를 지나오는 동안에 바위가 물을 솟아내고, 메추라기가 와서 고기를 먹게 해 주시고, 만나가 와서 밥을 먹게 해 주시는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셨지 자기들 힘으로는 광야를 지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모시고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과 비교해서 어떤지 그걸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잠언서에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생각으로 잘 컨트롤 돼 있으면 마음이 컨트롤 된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반드시 성공하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생각이 마음을 제어를 하고 마음을 잘 붙들어놓으면, 그 잘 붙들어놓은 그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큰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외롭고 슬프고 우울하고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 걷잡을 수 없습니다.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체적으로 병들어서 아프고 괴롭지만은 마음이 아픈건 굉장히 괴롭습니다. 혼자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우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음이 우울하면 굉장히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근데 열두 정탐꾼이 40일 동안 땅을 정탐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고한 내용이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어요. 그들이 긍정적인 보고를 했더라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게 없어도 주님 의지해서 우리는 그 땅을 소유할 있다.’ 그렇게 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 마음을 사용하셔서 땅을 점령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사물을 보지 않고 인간 중심으로 사물을 보았기 때문에 백성들 앞에 와서 ‘할 수 없다. 못한다. 안 된다. 우리는 이길 수가 없다.’ 그렇게 말을 하니깐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불안해지고 고통이 다가오고 슬픔이 다가오고 헛수고했다고 생각하고 사시나무 흔들리듯이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더구나 그 전체를 결론으로 말하기를 ‘그들 가운데 가 보니까는 우리는 그들과 비교해서 메뚜기 같다. 그들도 우리보고 메뚜기같이 보였을 거니와 우리가 우리를 봐도 메뚜기 같더라.’ 이 사람이 메뚜기 같더라고 하니깐 이 뭐 절단 아닙니까? 여러분 가을에 메뚜기가 논에 뛰어다니는 걸 보면 폴짝 포르르~폴짝~이렇게 뛰어요. 사람이 가면 확 달아났다가 또 사람이 멀리 있으면 확 올라와서 벼를 갉아 먹습니다. 그 메뚜기 같은 인생 하루살이와 같습니다.
이 열 사람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우리 메뚜기 떼들이 무얼 하겠는가?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일어나서 ‘가나안 사람들은 우리가 먹어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밥이다. 밥인데 까짓거 하나님이 요리해주시는 걸 먹으면 되는 일인데 겁낼 것 없다.’ 요 열 사람은 우리가 메뚜기 같아서 그 사람들을 절대 점령 못한다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 보니깐 이미 밥이더라. 잘 불을 떼어서 맛있게 요리해 놓은 밥이니깐 올라가서 먹으면 된다!’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고 나쁜 놈의 자식들, 잘 보지도 못하고 와서 허위보고 한다고 돌로 쳐 죽이려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는 가보니 그 사람들이 밥이라 그래요.
<본론>
1. 밥이 마음에 주는 인상
여러분 밥이라고 하면 마음속에 밥이 무슨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지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밥은 매일같이 먹어야 되는 양식입니다. 우리가 이 가나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강하고 무장이 잘 되어 있어서 우리가 점령할 수 없다 그런 소리 할 필요 없어요. 그들은 가자마자 ‘아~우리 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어서 점령하게 한 가나안 땅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미 우리 먹을 밥이지 걱정할 필요 없다.
여러분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고통이 늘 다가옵니다. 그 고통은 우리 밥입니다. 매일 육체적인 밥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우리가 정신적으로 고난을 당해야 고난이 우리를 성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통계를 보니깐 전 세계에 백만장자가 되어서 큰 부자로서 사는 사람들이 어릴 때에는 모두 다 신문배달을 했어요. 어릴 때 신문배달을 하던 애들이 장성해서 다 백만장자가 됐어요. 그 왜 그러냐 그러니까 어릴 때 새벽에 일어나서 추운데 신문을 끼고 집집마다 신문배달을 함을 통해서 고통을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고난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고통에 불평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밥으로 대했기 때문에 백만장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크고 작은 고통이 인격적으로 자라는 데는 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하려면 고통의 밥을 먹어야 그 고통을 통해서 인격이 자라고 지혜와 총명도 자라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강철왕 카네기는 굉장히 가난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서 초등학교 4학년밖에 못 다녔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하루 종일 노동을 해야 2달러밖에 못 버는 겁니다. 이 사람이 그 고통을 통해서 밥을 먹어서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많이 마음속에 개발해가지고서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된 것입니다. 밥은 기초적인 영양분이기 때문에 매일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밥이라 하면 또 어떤 인상이 생기냐면은 밥은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주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건 먹어도 주 에너지는 되지 않습니다. 밥을 먹어야 몸도 자라고 튼튼하게 되는 것입니다.
힘 있는 사람은 밥을 많이 먹어야 돼요. 요사이 사람들이 저를 보고 왜 몸이 빼빼하냐. 뭘 못 먹기 때문에 몸이 빼빼하냐. 그런 말을 합니다. 요사이 어떻게 됐는지 한 1kg쯤 줄었어요. 그러니 의사선생님이 하는 말이 ‘몸무게 줄이지 마십시오. 당신 지금 20살, 30살도 아닌 80대의 노인이 몸을 잘 돌보지 아니하면 갑자기 몸이 줄어지면 약해집니다.’ 근육은 몸의 방어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근육이 붙어 있어야 감기도 쫓아내고 이번에 생긴 기침병도 이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무게를 일부러 줄이지 마라. 왜냐면 밥은 에너지의 근본이기 때문에 밥을 잘 먹으라고 자꾸 그럽니다. 다른건 못 먹어도 밥을 잘 먹으라고. 그러면 몸에 에너지가 공급이 된다고요. 그런데 밥을 잘 먹을라고 하면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잘 먹는 사람이 늘 같이 먹어야 되는 것이죠. 근데 요사이 우리 성도들하고 제가 점심도 같이 먹고 저녁도 같이 먹는데 언제나 보면 나보다 적게 먹는 사람들이에요. 먹으니까 내게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밥 잘 잡수시는 사람은 내게 신청하십시오. 같이 먹어보게!
밥이라고 말하면 우리 기본적인 양식이고, 우리의 몸에 에너지가 되는 것이고 또 밥은 먹을 수 있도록 요리를 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못 먹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통해서 매일 양식을 먹도록 만들어 주시고 에너지의 근본을 얻게 해 주시고 잘 먹도록 조리해 놓은 음식이 밥인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러므로 굶을 리가 없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적군은 밥이니까는 그냥 먹으면 되는 것이요. 그 적군과 싸워서 굉장한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요리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밥상을 이미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시험과 환난과 고통이 다가오거든 이거 어떻게 먹으라하냐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요리 전문가인 것입니다. 이 고난의 밥상에 요리를 친히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시편 23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밥상 차려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기는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함이라’ 고난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인내가 들어와서 신앙의 근육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근육이 생기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갈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난이 다가와도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면 그 고난이 다 끝에 가서는 합동하여 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게 돼요. 진짭니다. 제가 20살에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해서 70에 은퇴했으니까 50년 동안 주님 사업을 했습니다. 50년 동안 주의 사업을 하면서 좋은 때도 많이 있었고 어려운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이 로마서 8장 28절은 말할 수 없는 보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다 합동하여 나에게 선이 되는 것을 제가 체험을 했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은 체험을 하면 더 굳센 신앙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서 또 맛있는 떡볶이를 만드시는 구나~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잘 먹어야 생명의 근원이 그 마음에서 나옵니다. 생각을 바로 가져야 됩니다. ‘나는 못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버림받았다, 나는 희망이 없다’ 이러면 마음이 들뜨고 요동하고 망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든 생각이 마음을 꽉 잡아 줍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좋은 일이 생겨난다.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 두려워하지 말라.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고통이 있으면 그 앞에서 찬송을 하는 겁니다. 원망, 불평, 탄식하지 말고 고난 앞에 ‘하나님 이 고난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고난은 내게 밥입니다. 먹어서 영양실조가 되지 않고 에너지를 얻게 되고 좋습니다.’ 그래서 고난 앞에는 반드시 여러분 감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를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고난을 통해서 아주 좋은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시련을 매일 먹는 밥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밥 먹는 것처럼 고난과 시련이 매일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을 밥처럼 소화를 잘 시키는 것이 다시 말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난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합동하여 유익을 이룰 줄 믿습니다. 밥은 먹어야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처럼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고난이 필요한 것입니다.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원수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환경은 다 밥이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잡수십시오.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 이 밥을 먹어 영양실조가 되지 않고 에너지가 있어 기운도 있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 메뚜기가 마음에 주는 인상
그런데 열 사람은 자기들을 메뚜기로 봤는데, 메뚜기들을 생각하면 어떠한 마음에 형상이 떠오릅니까? 가나안 사람들이 보기에 이스라엘 사람은 메뚜기 같다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메뚜기는 상대가 안 됩니다. 어떻게 사람이 메뚜기하고 싸울 수 있는 것입니까! 이 열 사람은 자기들 자신을 참혹할 정도로 비하해서 본 것입니다. 나는 못났다 무력하다 무능력하다 메뚜기 같은 놈이다. 민수기 13장 33절에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그들을 지나온 이야기에 보면 네피림이란 천사가 사람들하고 결혼을 해서 거인들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 키가 구척장신으로 엄청난 대장부입니다. 그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정말 네피림이란 천사하고 결혼해서 애를 낳을 일은 만무하겠지요. 그러나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에 거인들이 있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13장 33절)”.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구척장신의 골리앗 같은 대장부들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올라가서 점령을 합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 대장부 후손 아낙자손 거인들을 보았을 때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니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는 것처럼 하나님이 큰 역사를 베풀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키가 구척장신인 것이 무슨 소용 있느냐. 하나님 한 펀치면 다 날라간다. 그런데 이 열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 메뚜기 떼들이 활짝활짝 곡식 밭에서 뛰는 것같이 우리에게 덤벼들면 우리는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메뚜기는 농부들이 잡아서 해충으로서 곡식을 갉아먹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 보기에는 해충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뜨거운 물을 부어도 우리는 다 죽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나갈 희망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결코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꽉 들어찼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으면 가나안이 아니라 어떤 땅도 점령할 수 있는데 이 거인들이 그 땅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은 메뚜기라고... 아 기왕 메뚜기를 생각했으면 메뚜기를 버리고 개구리 같다고 해도 좋아할 것인데... 그 메뚜기가 어떻게 무얼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았을 때는 여러분 다 하나님의 특제품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특제품이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잘 살 수 있는 필요한 은사는 다 주어서 내보낸 것입니다. 여러분 비하해서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이냐?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나 같은 게 무얼 하겠냐? 그런 사람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물질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 살펴보면 대학 공부를 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이 열 사람의 정탐꾼은 자기를 기어코 자꾸 메뚜기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못 들어간다고 자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수기 13장 28절로 31절, 32절에 보면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그러니깐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애굽으로 도로 종살이로 돌아가자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 사람들 40일 동안 가나안땅을 정탐한 것을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년 동안 광야로 돌이켜서 다 늙어서 죽고 그들 자손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사람하고는 절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그런 말 하는 사람은 같이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 이외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말하는 원숭이 보았나요? 사람만 하나님 같이 말을 합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여러분, 창조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나쁜 것을 좋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예수님도 말씀으로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죄를 사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여러분과 나도 예수 믿고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을 창조적으로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성경에 말씀이 많지 않습니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 그 말을 하고서 구제를 하면 그 말이 여러분에게 돌려주는 축복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분께서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 할 수 있는 것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마십시오. 언제든지 창조적인 입술의 선언을 통해서 여러분이 변화되고 발전하고 향상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입술을 통해서 “아유~ 우리는 아무것도 못해. 우리는 조상이 잘못해서 후손을 이렇게 고생시키느냐. 기대할 것 없어. 나쁜 사람이야. 무능한 사람이야.” 그런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일이 여러분 생활 속에 다 일어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다 거기 나타나요. “나는 좋아요. 나는 행복해요. 나는 씩씩해요. 나는 할 수 있어요. 나에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말이 밖에 나가서 여러분을 위해서 역사해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창조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말을 잘 사용해서 여러분 인생을 창조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3. 메뚜기가 밥으로 바꿔지게 되려면 갈보리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메뚜기가 밥으로 바뀌어져야 우리가 생명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메뚜기가 아무리 뛰어다녀도 메뚜기를 밥으로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냐? 갈보리 십자가 밑에 엎드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그리스도의 찢어진 몸과 피를 통해서 여러분 다가오는 모든 메뚜기는 다 밥으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무능력한 메뚜기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의지하고 받아들이면 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술의 신앙고백이 메뚜기를 밥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죄가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할 때 죄라는 메뚜기가 여러분을 괴롭힐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혈을 의지하고 그것을 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로 7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의롭다고 말하시고 하나님 자녀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죄는 이제 상관이 없습니다. 한 길로 오면 일곱 길로 도망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로 명하노니 이 죄악은 물러가라. 그것이 메뚜기가 되어서 우리를 패배시키려고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 죄는 밥이 되지, 메뚜기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병이라는 메뚜기로 치료의 능력이 임하여 메뚜기가 아니고 밥이 되는 것입니다.
병이 들어 죽게 되었어도 어떤 약이 무효라고 해도, 예수님께서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병이라는 메뚜기가 뛰어다니면 그 메뚜기보고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으니 너는 메뚜기가 변하여 밥이 되라고. 명령을 하면 명령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굉장한 담력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파도 잃은 갈릴리 바다를 예수님께서 잠잠케 하시면서 왜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의 제자들도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왜 두려워하느냐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주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지도 아니합니다. 능력이 있는데도 못하니까 꾸짖었죠.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할 수 있는 능력이 여러분 말씀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단호하게 말씀을 사용하면 환경도 여러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저주라는 메뚜기도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면 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3:13-14,5:1)”.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이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 속에서 고생을 하며 살았으나 예수님이 그 저주를 십자가에 매달려서 다 청산해 버리고 이제는 여러분 아브라함의 복이 있지 저주는 없습니다. 여러분 복 덩어립니다. 한번 따라 말씀해주세요. “나는 복 덩어리다.” 그 말이 참 좋은 것입니다. 그 말이 복을 만들어 오는 말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이 사용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영적인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하여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말을 사용할 줄을 몰라요. 여러분은 창조적인 말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정말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운명과 환경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이라는 메뚜기도 천국 낙원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3:16)” 죽었다가 부활하셨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믿으면 영생한다고 하는 주의 약속이 있는데 이 약속을 여러분은 말로서 사용할 수 있어도 안 믿는 사람은 말로서 “나는 영생을 가졌다.” 고 말 못합니다.
그렇잖아요. 예수 안 믿으면서 “나는 영생을 가졌다.” 말 못하지요. “죽어봐야 알지.” 그렇게 말하지. 우리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천당 내 천당, 예수 생명 내 생명인데 아 우리는 죽음도 ‘사망아 네가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평안하게 천사의 인도를 따라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메뚜기가 되지 말아야 돼요. 메뚜기는 세상적인 메뚜기가 온갖 짓을 다 하고 뛰어다녀도 메뚜기를 보고 불안해하지 마시고 ‘메뚜기야 너는 나의 밥이다.’ 그럼 메뚜기가 다 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를 그 무덤 앞으로 데리고 가서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아라.’, ‘아이고 오라버니 죽어서 지금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 말이 옳다, 장례 지내라 그렇게 했습니까? 무릎을 발로써 땅을 치면서 ‘마르다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보리라 하지 않았더냐!’ 그래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놀래가지고서 오라버니 돌문을 옮겨 놓으니까 예수님이 말씀으로 ‘나사로야 나오라!’ 수의를 입은 채 나왔습니다.
여러분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바뀌어져야 돼요. 생각을 부정적으로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절대로 부정적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생각이 마음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켜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십시오. 생각이 바뀌고 그러면 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적은 꿈이라도 꿈을 꾸고 있지요? 꿈을 갖고 있지요? 꿈이 없으면 안 됩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의 십자가를 통해서 오중복음의 꿈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의인이 됐든 거룩한 사람이 되었든 저의 난 병이 고침을 받았다. 아브라함의 형통을 얻었다. 죽어도 천당 간다. 그게 여러분 조그만 꿈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다. 성경을 통해서 꿈을 꾸고 여러분 생활 속에서 꿈을 꾸십시오. 우리 민족이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주먹다짐을 하고 싸우지 말고 우리 국민들이 현재 이만큼 축복을 받아 자신을 가졌은즉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나아진 꿈을 마음속에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바라보고 말을 해야 돼요 말을. 그대로 된다고 말을 하면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의 죽은 말하고 여러분 예수 믿고 난 다음 살아있는 말하고 말이 틀립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바뀌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강하게 되고 안 믿으면 겁이 나와서 못할 짓을 믿으면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입술의 고백이 여러분 생활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고, 꿈이 바뀌고, 믿음을 확인하고, 입술로 말한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한다. 아~이거 정말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 이게 이 진리를 알면은 여러분 미래에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요. 이 삶을 가진 사람은 안 믿는 사람과의 삶의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것입니다. 잠언서 4장 23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시20:4)’,
마음의 소원이 바로 꿈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시21:2)’. 마음에 소원이 있고 입술로 긍정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어지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서양속담에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나니라(막9:23)’.
<결론>
삶이 바뀌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생각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달라진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꿈이 설레이는 꿈이 달라지고 그 꿈이 이룰 줄 믿고 입술로 말한다. 그 말이 기적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님들하고 저는 운동을 종종합니다. 근데 해외선교를 하고 바쁘게 한국으로 돌아오고 또 가고, 그런데 시차가 변하고 하니까 우리 장로님들 내보다는 다 동생들이에요. 피곤해서 절절 매거든 피곤해서.
그래서 저보고 자꾸 말합니다. ‘비결이 뭐냐! 왜 안 피곤하냐 조 목사는. 나이도 많고 한데, 무슨 신약이 있느냐! 신선이 먹는 약을 먹어서 그러냐, 왜 그러냐?’ 나는 생각을 건강하게, 나는 건강하다고 생각을 꽉 묶고 있어요. 그 다음에 말을, 하나님 지금 나는 피곤한데 주님이 같이 계시므로 안 피곤합니다. 나는 건강합니다. 튼튼합니다. 씩씩합니다. 굳셉니다! 노래삼아 늘 이야기 합니다. 오늘 여기 강단에서도 그렇게 속으로 말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진짜로 말했지 않습니까. 나는 건강하다. 나는 튼튼하다. 나는 씩씩하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힘이 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 보십시오. 안 피곤해요. 산삼 안 먹어도 안 피곤해요. 우리 성도들 중에 산삼을 캐는 것을 전공으로 하시는 분이 나에게 산삼뿌리를 캐서 가지고 오시는데 얼마나 사랑하고 좋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그 산삼 캐러 산으로 돌아다니는 것보다도 하나님 주신 말씀 내가 딱 가지고 있는데 산삼을 안 먹어도 나는 피곤하지 않습니다. 나는 건강합니다. 나는 튼튼합니다. 아유~피곤치 않고 건강하고 튼튼해요. 여러분은 말씀을 사용하지 않을라거든 산삼 30만원, 50만원씩 주고 사서 잡수세요. 내 못 먹으란 말은 안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영적인 산삼인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보배덩어리는 성경 말씀, 말씀 중에도 갈보리 십자가 중심으로. 여러분과 나같이 자격이 없는 사람도 주님께서 당신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유자격자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예수 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조용기가 아니라 예수용기. 예수님이 내 성이예요. 그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다 그대로 자꾸 입으로 시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말씀을 입으로 자꾸 시인하면 그게 이루어져요. 만 번, 십만 번, 백만 번 자꾸 계속해도 효과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하나님 성령께서 여러분과 같이 계시기 때문에 감화 감동을 주어서 열 사람의 정탐꾼처럼 우리는 메뚜기라고 생각하는 것을 내쫓아버리고 우리는 세상에 모든 다가오는 것이 좋은 일이나 안 좋은 일이나 다 밥이다. 먹고 씩씩하고 승리한다고 여러분 자신을 보고 말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2015. 7. 12. 주일 4부 설교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