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에 대한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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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재의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홍성사)를 읽고

				▲곤고한 삶을 새롭게 한 큐티이야기
▲곤고한 삶을 새롭게 한 큐티이야기

큐티에 대한 새로운 도전, 날마다 승리하는 삶의 비결을 찾아서

2003 독후감공모 평신도부분 최우수상

저자 소개의 글, 두 편의 추천의 글, 그리고 머리말을 읽은 후 잠시 책을 덮어 놓았다. 대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어떤 이’의 간증이 들어 있는 책을 볼 때면 “정말 대단하구나.”하는 감탄을 하면서 읽곤 했었다. 그러나 그 감탄은, ‘어떤 이’를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며 결국 크게 쓰시는 하나님께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이’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세상의 것이 헛된 것임을 알았노라고 고백하는 ‘어떤 이’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것은 이미 누릴 것을 다 누려보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쉽게 하는 것이라는, 약간 꼬인 생각까지 하던 때였다.

문득 이 책의 내용을 펼쳐보기도 전에, 오래 전 내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리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세상 가치에 대한 감탄, 세상 기준에 비추어 한없이 초라함을 느꼈던 열등감의 흔적을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사소한 것들에 감탄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에 초라해지기 싫다. 오래 전에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내가 ‘이것만은!’하면서 부여잡고 있는 세상 가치는 없는가. 이 책을 읽는 과정은 거기에 대한 스스로의 해답을 정리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이 책의 1부 ‘내 인생의 큐티’에서는 저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 이후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처음에는, 믿음 안에서 자랐고 교회에서 10년 동안 피아노 반주로 봉사했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결혼에 대한 문제도 하나님께 맡겨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쉽게 결혼을 결정한 것처럼 보여서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저자의 고백처럼 저자 자신이 세상적인 야망을 남편을 통해 이룰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던 상황에서, 더구나 주위 사람들이 저자의 결혼 상대를 보면서 ‘교회 열심히 다녀서 복 받은 것’이라고 말했던 상황에서 당연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 조건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교회 밖에서나 교회 안에서 모두 ‘복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만연한 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저자는 돈과 세상 능력을 보고 결혼을 택한 자신을 하나님께서 그 돈과 능력에 사로잡히게 하심으로 톡톡히 훈련시키셨다고 말한다. 시집살이의 혹독함 속에서 남들에게 착한 며느리, 좋은 아내 소리를 듣는 것을 우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결혼 5년째에 답답한 시집을 나와 막막한 기분으로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 후 내적인 변화로 시어머니를 사랑하게 되고, 시어머니와 둘만의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리고 완고하게 느껴졌던 시어머니와 나눔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가족 전도, 이웃 전도에 나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성경 말씀 에스겔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적용해 간다.

이후 그는 <매일성경>이라는 큐티 교재로 말씀을 묵상하며 남편 구원을 위해 기도해 간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 예수를 믿겠구나 싶어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구원을 위한 순종’으로 인해 내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남편 구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기를 1년 남짓, 건강하던 남편이 갑작스럽게 간암 말기를 진단 받고 죽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목사님을 찾고 회개하며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한 후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된다.

남편이 살아있던 당시, 교회 나가기를 반대하던 남편의 눈치를 보면서 한두 명에서 시작한 모임은 그 후 구역예배 모임, 교구 구역장 모임, 딸아이 초등학교 학부모 모임, 아들을 포함한 고3 모임, 재수생 모임, 대학부 조장 모임, 엘더 모임, 대학부 신입생 모임, 나아가 큐티선교회라는 조직체로 이어진다.

저자는 2부 ‘큐티의 실제편’에서 큐티를 할 때 꼭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다. 먼저, 큐티를 제대로 하는 방법으로 시편 1편을 예로 들어 교재 선택하기, 기도하기, 본문 읽기, 기록하기, 관주 찾기 등의 과정을 차근차근히 설명하고 있다.

큐티를 씹어 먹는 방법으로 인내하면서, 날마다 해야 하는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성령님께 지혜를 구하라는 내용을 제시한다. 여기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복의 개념을 구별해야 하고 옷을 입어도, 물건을 사도, 음식을 먹어도 그들과는 목적이 달라야 한다는 말을 되새겨 본다.

큐티를 내가 주인공 되어 하는 방법으로 나의 잘남이나 못남은 주님께서 선하신 뜻대로 쓰시는 것, 나의 생명과 외모와 능력, 내 삶의 모든 것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 때문에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 자신이 목사님이 아니라 평신도였기에 자신이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고 적용한 것을 말씀드리면 많은 사람이 더욱 도전을 받고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하면서, 각자 영향력 있는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큐티를 작심삼일로 그치지 않는 방법으로 큐티할 환경, 모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어서 큐티를 삶으로 살기 위해서는 말씀을 적용할 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공동체를 세우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큐티를 할 때 말씀을 나의 기도제목 삼는 방법으로 골로새서 1장을 통해 한 절 한 절마다 적용할 큐티의 내용을 제시하였다. 기도는 그날그날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반응하는 것이라는 말이 새롭게 느껴진다.

3부 ‘큐티의 적용 사례’에서는 에스겔서를 통해 저자가 남편의 죽음을 바라보고, 절망의 상황을 극복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태복음서를 통해서는 예수님의 계보가 의미하는 바를 찾아보고, 전도의 열매, 믿음의 조상, 믿음의 배우자, 믿음의 자손 등에 대한 소망을 품어야 한다고 적용한다. 그리고 에베소서를 통해 부부생활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사항들을 말하고, 예레미야서를 통해 세상의 종된 모습, 하나님 뜻이 아닌 내 삶의 바벨론 세력, 내게 주신 십자가 등이 무엇인지 적용하고 있다. 또한 에스더서를 통해 회개하는 믿음, 주변을 돌아보고 구원에 관심 갖는 믿음, 전도 방법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있다. 삶의 구석구석에, 성경 한 구절을 아주 세밀하게 적용해 가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자신의 감상이나 지식이 아닌 오직 성경 말씀을 기초로 생각을 풀어내는 것에 믿음이 간다. 한편으로 나도 성경 말씀만을 의지한다면 저자만큼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긴다.

이 책을 통해 ‘내 인생의 큐티’는 어떠한가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큐티의 실제편’을 통해 내가 주인공 되지 못하고 때때로 작심삼일에 그쳐야 했던 내 큐티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나아가 ‘큐티의 적용 사례’를 보면서 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성경 말씀을 형식적으로 혹은 내 삶과는 무관한 구절로 받아들였던 모습을 이제는 과감히 떨치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 오던 큐티, 내가 살아 오던 삶의 모습을 이렇게 깊이 돌이켜 보게 한 책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 책은 큐티가 저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정말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저자가 기도원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만난 이후 변화되는 모습, 구체적인 성경 말씀을 토대로 삶을 변화시켜 가는 모습을 보면서, 구원 받은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대학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회개하고 말씀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경험했음에도 이후 나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건 참아도 저건 못 참겠다고 말하는 그 부분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훈련시키신다는’ 구절을 보면서 내가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던가 돌이키게 된다. 그것은 남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비교하는 마음이었다. 저자에게는 그것이 남 앞에서 잘 보이려는 교만으로 나타났다면, 나의 경우는 남 앞에서 잘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격지심, 열등감으로 나타났다. 대학 때 이후 줄곧 계속된 큐티와 성경 모임을 통해서도 나는 그런 내 모습을 깨지 않고 끝까지 부여잡았던 것이다.

대학부 성경 모임을 통해 말씀과 삶을 나눈다고 하면서도,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깊이만큼 삶에 대한 적용이 따라주지 않았다. 자연히 교회와 학교 생활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느낌이었고, 그것이 큰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학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재능 있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들으면서, 그 속에서 굳이 하나님이 내 삶에 관여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교만함까지 갖게 되었다. 그저 스스로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면 사람들이 인정해 줄 것이고, 그것으로 내 안에 있었던 깊은 열등감은 해소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입시 위주의 꽉 막힌 생활 때문에 내가 잠깐 주눅이 들었던 것일 뿐, 이제는 자신감을 모두 회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점점 동아리 활동을 핑계로 성경 모임을 빠지고, 예배까지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보내던 대학 2학년 말, 동아리의 임원진을 구성할 시기를 맞았다. 동기들 모두 내가 임원진에 참여하기를 바랐지만 나는 그 때 두려웠다. 모두 내가 잘할 거라고 말했는데 그들의 바람만큼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스스로 생각할 때 재능도 없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을 리더로서 이끌어갈 능력도 안되는 것 같고,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 투성이라서 다른 사람이 내 모습을 보며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잊고 있었던 열등감이 강하게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실망스런 모습을 보일까 봐 두려워서 결국 그 공동체를 등지면서도, 남들 앞에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싶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소홀했던 교회 예배와 성경 모임에 다시 참여한다면 답답한 심정이 위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에 내게 말씀은, 스스로 깨야 할 내 모습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그저 지식과 내적 위안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말씀이 주는 내적 위안, 그저 안정되고 편안한 느낌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 3학년 말, 그룹 성경 모임의 리더를 구성하는 시기를 맞았다. 나를 포함해 3학년 때 꾸준히 성경 모임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서 구성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안 한다고 말했다. 나는 누구를 가르칠 수준도 못되고, 후배들에게 본이 되는 모습을 보일 자신도 없고, 여러모로 부족한 것 투성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리더가 아닌 상태로 성경 모임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소속된 성경 모임의 리더가 3학년 때는 한 번도 안나오다가 리더를 하고 싶어서 나오게 됐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말할 수 없이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과연 지식과 내적 위안에만 머무는 성경 말씀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내가 ‘이것만은!’이라고 하면서 하나님 뜻을 구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부여잡고 있었던 것이 열등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열등감의 문제를 깊이 접어둔 채 이후 직장에서 사우회로 1주일에 한 번씩 큐티를 포함한 성경 모임을 하게 되었다. 성경 모임을 통해 누구보다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잘 설명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이해하고 분석하면서 정작 내 생활에 적용해서 나누려고 하면 막막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선뜻 내어놓기가 힘들었다. 직장 동료들 앞에서 나의 고민을 드러낸다는 게 왠지 자존심도 상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그래서 솔직하지 못한 표현으로 적용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어떨까에 대해 지독히도 신경이 쓰였던 때였다.

성경 모임을 크게 확장해 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의 내 모습이 창피하게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교회의 성경 모임을 학교 생활에 적용하여 동아리 내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시기를 원하셨고, 그 후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데 나를 쓰시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때마다 그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며, 능력도 없다고 그 상황을 피했다. 이후 그 때 내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교만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구하기 전에 내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모습, 그리고 하나님께 의지하기보다 사람의 눈을 더 의식했던 나약한 모습이었다. 사람과 비교해 내 능력을 스스로 모자라다고 생각한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모습은 아니었다는 고백을 뒤늦게 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경 모임에 대한 나의 기억은 저자에 비하면 너무나 빈곤하다. 열매가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열매를 만들어가고 싶다. 내 삶에서 깨야 할 것들과 용기 있게 맞서면서 말이다.

책의 내용 중에서 무엇보다 남편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순종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는 장로님과 권사님의 아들이셨지만 결혼 이후 교회를 다니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셨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일까. 어머니와 결혼한지 30년만에 예배만 참여하시기를 1년 정도, 그 후 다시 교회를 안 나가시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교회를 안 나가시기를 1년 정도,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그리고 입원하시면서 뇌졸중 치료를 받으셨다. 그런데 퇴원하시고 통원 치료를 하시면서도 점점 쇠약해져만 가시는 것이었다. 식욕이 왕성한 분이 전혀 식사를 못하시는 상황에 이르자 뇌졸중 때문에 소화 기능에 약간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 위 내시경 검사를 받게 해 드렸다. 그 때 위암 말기 판정이 나온 것이었다. 마취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지만 전이가 된 상태로 칼로 대지 못했다는 의사의 말, 4개월 시한부 선고, 그리고 정확히 4개월 10일째 되던 날 돌아가셨다. 마지막 이틀은 혼수상태였는데, 그렇게 의식을 잃으시기 전에 목사님 앞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으며,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천국에 가신다는 확신을 분명한 어조로 대답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갑작스런 혼수상태 때 하나님께 울며 기도했었다,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그러면 아버지께 성경 말씀도 읽어드리고, 찬송가도 불러드리고, 아버지 손을 붙잡고 아버지 삶의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겠노라고. 하나님은 그럴 기회를 주시지 않았다. 아니 그럴 기회를 나 스스로 미루어 왔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가신 후에도 오랫동안, 아버지를 위해 많이 기도 드리지 못했다는 것, 간절하고 절박하게 아버지를 위해 눈물 흘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많이 괴로웠다.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완고하다고 생각한 아버지와의 갈등, 그 회복을 위해 생명을 내어 놓고 기도한 일이 있던가. 자신이 경험한 구원의 확신을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전하는 저자의 모습은 내게 뒤늦은 깨달음을 던져 준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나님 곁에 계심을 확신하지만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시기 전에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 드렸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간절해진다.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안타까움의 기억을 만들지 않겠다.

처음에 이 책의 저자 약력, 추천의 글, 머리말만 봤을 때는 선입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저자의 글 중에서, 어떤 사람이 저자가 성경에 대해 많이 알고 잘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서 ‘얄밉다’고 말했다고 했던가. 그런 느낌이었을지 모른다. 세상적 기준으로 좋은 학벌과 환경을 가졌던 사람이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해서 결국 신앙적 기준으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결국 세상적, 신앙적 두 가지 면에서 모두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약간 꼬인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런 생각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그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세상적 기준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미 하나님께 속한 사람에게 말이다.

하나님은 저자 김양재라는 분을 그분이 가진 성품과 모습대로 쓰신 것뿐이다. 그리고 그분 스스로 절박하고 절실하게 하나님께 날마다 다가가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 내게는 커다란 도전이 된다. 그 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가 않다. 큐티의 능력, 나도 그것을 경험하며 날마다 승리하며 살고 싶다. 이제는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식하는 삶을 살고 싶다.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 지금의 난 예전에 비해서 훨씬 열등감을 많이 느껴야 마땅하다. 그토록 풋풋한 젊음의 시절, 난 내 인생은 온통 암흑이라고, 난 할 만큼 다 했고 이게 나의 한계라고, 무엇인가를 하기에 난 너무 나이가 많다고 절망하며 우울해했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지금 난 그 때와 정반대의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은 온통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고, 난 아직 한 번도 최선을 다해서 내 한계를 뛰어넘어 본 적이 없다고, 무엇인가를 하고자 결심했다면 바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희망을 갖는 것이다. 지금은 절망처럼 보이는 현실 앞에서도 더 이상 주저앉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날마다 주저앉고 싶은 또다른 나와 싸우고 있다.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 우월한 상황에서 당당하기는 쉬우나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감을 갖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지금 나의 상황이 그러하다. 내 나이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침표를 찍은 결혼 문제와 진로 문제가 내게는 아직도 물음표로 남아 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나는 청년부도, 장년부도 아니다.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봉사하고 싶어 지원한 성가대 오디션에서는 번번히 미끄럼을 탄다. 세상과 교회 두 곳에서의 철저한 외면,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나 세상도 교회도 원망하지 않는다. 내 탓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평범한 보통 사람이 가고 있는 길에서 한참을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평범하게 남들처럼 어딘가에 소속되어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게 참 복되고 복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내가 물음표로 남아 있는 인생의 문제를 풀지 못한 상태에서는 계속 이런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것이 조금씩 구체화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출발은 하나님과의 일대일 만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인생의 큐티’, 이제부터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글/ 박혜련 (기출협 주최 2003 독후감공모 평신도부분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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