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크리스천 윤동주를 말한다 3
윤동주를 다시 읽다
추모 60주년, 세상은 이제 윤동주를 다시 읽고자 한다. 그의 약해보이던 사상의 깊이가 단 한번도 변절한지 않은 절개로 재조명 되고 그 사상의 근간에 기독교라는 뿌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실오라기 같은 자취를 따라 그의 내면까지 침전하고자 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그동안 실천적 저항시인의 빛에 가려 육첩방에 숨어 울던 유약한 청년으로 비춰졌던 시인. 그를 우리는 60년이 지난 오늘 '괴로웠던 사나이 그러나 행복한 크리스천'이라 부른다.
홍장학 선생과 윤동주
홍장학 선생이 윤동주의 신앙에 관한 실마리를 포착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현대시를 학생들에게 소개할 가장 탁월한 텍스트가 바로 윤동주의 그것이었다고 한다. 모태신앙이지만 스스로 성당 땅만 밟고 다녔다고 말하는 홍씨는 윤동주의 시를 통해 시인이 마음 속 깊이 새겼던 십자가의 의미가 본인에게도 조금씩 다가왔다고 말한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절규는 결코 경박하지 않다. 홍씨는 윤동주의 시가 천박하지 않은 절규였다고 말한다.
"아프지도 않은데 시를 쓰기 위해 억지로 비명을 내지르는 현대 시인이 많은데 윤동주의 시에는 그런 거짓이 없었다. 시적 자아의 정직성에 있어서도 높은 수준을 갖출 뿐 아니라 미적 구조면에 있어서도 빠지지 않는 탁월한 시였기에 학생들이 평생 애송하며 위로를 삼을 수 있는 시로 추천해 주곤 했다"
서울 동성고를 거쳐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민족문화 추진회 국역연수원을 졸업하고 서강 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홍씨는 현재 모교인 동성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한참 심적으로 지쳐있고 메말라 있는 고3 지도교사가 되면서 더욱 열심으로 윤동주의 시를 분석하고 연구해 학생들에게 시속에 보이는 그의 삶과 더불어 시의 문학적 가치를 전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윤동주의 작품 중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몇 작품에서 의문을 갖게 됐다.
원본연구에 의해 벗어진 윤동주 시의 비밀
"어떤 작품은 완벽하다 할 만큼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데 반해 몇 작품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현저히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이 필시 어떤 연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만해도 원전에 접근할 경로가 전혀 없어 학계의 연구만 기다릴 뿐 이었다"
그의 기다림에 응답이라도 하듯 마침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보관해 오던 유가족의 용단으로 사진집이 발간되게 됐다. 여동생 윤혜원 권사와 매제 오형범 장로가 38선을 넘어 월남할 때 목숨을 걸고 윤동주의 서재에 꽂혀있던 노트 3권과 지인을 통해 보관되던 육필 원고를 모아 발간했다.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시, 동시 육필원고 8편이 이때 새로 공개되고 생전에 남긴 육필 원고 1백50점, 소장 도서와 메모, 신문 스크랩까지 공개 돼 홍씨의 연구에 큰 전환점이 됐다.
당시 홍씨는 육필 사진집 발간 소식을 듣고 선금을 치르고 매일 같이 서점에 전화를 해 확인을 할 정도로 애타게 기다렸다. 처음 시인의 육필을 대면한 날 밤 그는 그간 풀리지 않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 재미에 밤을 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2004년 KBS 'TV-책을 말한다'에서 선정한 베스트셀러 10권에 선정된 '정본 윤동주 전집 원전 연구'는 홍씨로서는 상상하지 않았던 성과물이다. 그가 다른 이들보다 윤동주의 시에 관심이 유달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육필 사진집이 나온 후 당연히 학자들의 연구보고가 넘쳐날 것으로 예상하고 몇 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사진집의 출판 여부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때마침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게 된 그는 그동안 미뤄왔던 윤동주 원전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됐다.
철저한 원본연구로 윤동주 재해석 작업
"첫째 1차 자료에서 맞춤법상 명백히 틀린 것을 제외하고는 방언을 그대로 살리는 작업을 했다. 함경도는 조선 시대 언어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윤동주 시인이 북간도에서 평양 서울, 일본을 거쳐 생활을 했을 뿐더러 북간도 자체가 팔도 사람들이 다 모여사는 곳이어서 방언사전의 표제어로 등제된 것은 모두 의도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살렸다. 우리나라 사전에 없는 것은 북한어 고어사전까지 뒤졌다"
오형범 장로는 홍장학 선생의 논문과 그의 저서 '정본 윤동주 전집 원전 연구'에 대해 "치밀한 조사로 상당히 다각적인 접근을 했다는 면에서도 가치가 있지만 무엇보다 윤동주의 시를 신앙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의의가 높다"고 평했다.
세상 사람들이 홍씨의 연구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1차자료, 즉 육필과 발표된 시가 차이가 있다는 것 외에도 퇴고의 이유를 추적했다는 것 등이 있다.
신앙의 눈으로 또다른 윤동주 발견
그러나 오장로와 그 가정이 홍씨의 연구에 주목하는 것은 윤동주의 시에 스며든 기독교 사상을 섬세히 추적해 풀어냈기 때문이다.
홍씨는 윤동주의 시가 반 기독교적이라고 해석되는 것이 심각한 오해라고 말했다.
반기독교 시인이라는 오명의 진상
그는 처음부터 윤동주의 기독교 신앙에 주안을 두고 연구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현재 많은 문학 비평가들로부터 반기독교적인 작품이라고 비난받고 있는 '팔복', '태초의 아침', '종시'(산문) 등이 홍씨가 크리스천 윤동주를 발견하는 접촉점이 됐다.
홍씨는 "작품이라는 것이 읽는 이에 따라 저마다의 해석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 작품들이 반기독교 적이라 불리는 것은 명백한 오독이라고 생각해 그 오명을 씻고자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 태초의 아침'에 나타난 선악과의 의미
그는 '태초의 아침'과 '또 태초의 아침'을 일례로 들며 기독교의 원죄를 소재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부도덕하고 반기도교 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것은 역설적 표현을 오독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또 태초의 아침'에서 시인은 선악과를 따먹고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의 추방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현재 죄악된 현실, 비참한 현실에서 한발 물러선 채 그 고통을 다 짐지지 않고 있음을 고백한다.
먼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비참성을 주목해 보자. 윤동주에게 있어 일제 강점기하의 민족현실은 반 기독교적인 죄악된 현실이었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처한 상황과 흡사하다.
반면 자신은 민족현실과 상관없이 여전히 온실에 머물고 있는 것이 양심에 가책이 된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빨리/봄이 오면/죄를 짓고/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여기서 '눈이 밝아 이브가 해산하면 나는 땀을 흘려야 되겠다'는 표현은 자칫 죄를 지어야 한다는 불경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홍장학 선생에 의하면 그 시대 백성들이 메고 있는 현실의 십자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 역시 그 몫의 십자가를 지겠노라는 고백이라고 볼 수 있다.
홍씨는 "이런 표현이 죄악을 에덴 동산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불경건한 표현으로 오독될 수 있다. 그러나 성서와의 맥락을 염두하고 읽어보면 삶의 도전, 위험들을 겁내하는 자기 자신을 추스리겠다는 다짐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종시'는 여리고성 함락을 상징
또 윤동주의 산문 '종시'는 화자가 신촌 연희전문학교 재학 당시 매일 전차라 나갔다 돌아오는 여정을 담은 산문이다. 이에 대해 '현실을 책임질 줄 모르는 무책임한 인간'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홍씨가 이미 논문에서도 밝혔지만 같은 길을 계속해서 돌고 원점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위해 '여리고성'을 함락하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윤동주가 매일 같은 전차를 타고 나가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반복한 것은 '여호수아 군대가 매일 나팔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아무런 저항이나 공격의 액션을 취하지 않은채 무기력해 보일정도로 조용히 여리고성을 한바퀴 돌고, 다음날 다시 한바퀴 도는 6일'과 동일시 할 수 있다.
광복 이후만 해도 한국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 중에 흔히 고난 받는 한민족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시 한 경우가 많았다.
홍씨는 "40년 동안 광야를 돌다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 백성, 특히 남대문은 진입이 금지된 성이었고, 그렇다면 윤동주가 남대문을 여리고성처럼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상징적 장치로 설정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한다.
또 종시에는 '차 유리창 바깥에 서 있는 소녀들을 보고 말하는 것을 보고 경계해야 된다'는 표현이 나온다. 홍씨에 의하면 이것은 험난한 바깥 세상과는 괴리된 채 선택받은 유학생으로서 인큐베이터 속에 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죄책을 느끼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유리창 바깥의 소녀들이 굴절되어 보인다는 대목도 투명한 유리창도 사물을 이렇게 왜곡 시키는데 나의 인식 역시 그렇다, 그러므로 현실을 직시해서 똑바로 봐야 한다는 상징으로 풀이된다.
[기획]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크리스천 윤동주를 말한다(2) 윤동주의 작품..기독교적·성서적 상징 풍부
믿음 따라 살다 간 크리스천 윤동주 시인
[기획]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크리스천 윤동주를 말한다(1) 추모 60주년-십자가를 흠모한 윤동주 시인
호주 신유정 특파원 yjshin@ch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