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박종순 기자  cspark@chtoday.com   |  

부활 소식 안고 전국 도보 일주

				▲61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상암 경기장을 들어서며
▲61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상암 경기장을 들어서며

				▲도보 행진! 이쯤이야

▲도보 행진! 이쯤이야

로버트 제멕키스 감독, 톰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란 영화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속에서 주인공은 아이큐 75에 다리마저 온전치 못해 의족을 차고 다녔던 소위 모자란 사람 축에 낀 인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악동에게 쫓겨 도망가다 자신도 모르게 의족이 풀어져 힘차게 달릴 수 있게 된다. 그가 미대륙을 횡단하며 뛰기 시작했을 때는 매스컴에서 그의 달리는 장면을 보도하며 남녀평등, 인권보호, 에이즈 추방 등의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했던 적이 있었다.

영화 속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부활절과 관련해서 의미있는 도보 행진을 펼친 평신도들이 있었다. 소망교회의 안용민 장로(66)와 비전교회의 민경근 장로(63)가 바로 그들이다.

처음 도보 행진을 생각한 사람은 안용민 장로였다. 안 장로는 현 소망교회의 장로이며 이전에 KBS의 아나운서로 PD로, 기자로 많은 활약을 했으며 37년간 기독교 방송사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방송계의 베테랑이다.

그가 걷는 것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97년 정년퇴임하고 난 후였다. 나이가 들면서 달리는 운동은 불가능해 보였다. 도보는 시간과 의지만 있으면 해결되는 경제적인 운동이어서 안 장로가 할 수 있는 운동으로는 최고였다. 건강관리 차원에서 걷는 것을 평소에 즐겼던 안 장로는 처음에는 1시간을 걷다가 그 이후로 3시간, 5시간 이렇게 점차 걷는 시간을 늘려 나갔다.

처음에는 10km를 걸어보자 해서 성공하고 다음에는 20km를, 그리고 그 다음에는 50km, 100km를 모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점차 걷는 일에 자신이 붙은 안 장로는 자신이 60평생 살아온 이 땅 대한민국 산하를 돌아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생겼다. 이것이 바로 전국 도보 행진의 발단이었다.

안 장로는 사실은 4년 전부터 전국을 순회하고 싶은 마음을 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같은 소망을 품고 나서는 그는 서울에서 춘천, 서울에서 대전까지 도보 훈련을 강행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왕복한 것도 십여 차례. 산행도 험하기로 유명한 지리산을 단일 코스 훈련지로삼고 10시간 혹은 15시간을 쉬지 않고 걷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전국순회를 마음에 두고 나서는 수없이 많은 강행군을 했다. 길에서 잠도 자보기도 하고 남의 집에서 밥도 얻어먹는 훈련 아닌 훈련도 하게 되었다.

2001년 11월에 전국 일주 도보 일정표를 짜고 보니 족히 70여일은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주)예일의 사장인 민경근 장로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두 세달의 공백을 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의 말을 들은 민 장로 역시 자신도 동참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안 장로와 민 장로가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안 장로가 기독교 방송에서 일하고 있을 때 민 장로는 (주)예일이란 옥외광고회사의 사장으로 기독교 방송사를 출입하였다고 한다. 그때 이후로 인연이 되어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기독교 방송사를 정년으로 퇴임한 안 장로는 (주)예일 사장 민경근 장로보다 더 높은 직급인 회장으로 취직하였고 지금까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이 두 장로는 그때부터 전국 일주 도보행진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서울에서 시작하여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그리고 다시 서울로 오는 약 1400km의 완주코스를 72일간의 일정으로 일정표를 잡았다. 이 일정표를 잡는데 만도 종이 400여장이 소모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도보 행진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은 의복과 구급약품과 비상 구급대, 그리고 도보식이라고 해서 걸으면서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간식거리, 양말, 신발 등을 운반할 차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차를 운전할 운전자도 필요했다.

70여일 간의 여정은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 1월말과 2월 사이의 우리 나라의 기후는 변동 또한 극심하고 한파와 바람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추위도 문제였다. 하나같이 쉬운 것이 없었다. 따라서 걷지 않을 때는 충분히 몸을 녹이고 영양을 보충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였기에 숙식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두 장로는 홍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장로가 방송계에 오랫동안 있었던 탓에 언론에 요청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어 모 일보에서 홍보를 자처했고 부활절연합위원회에서도 도보운동을 부활절 기념으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 두 장로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개인적인 성취욕구에서 보다 의미있는 일에 쓰일 수 있게 됨을 감사하여 흔쾌히 받아들이게 됐다.

이렇게 하여 도보 일주는 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와 연계되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그런데 난관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열 군데의 월드컵 경기장을 모두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 위원회에서 내건 조건이었다. 그래서 두 장로는 계획을 전면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3월 31일에 맞추어 서울 경기장에 도착하는 일정을 다시 잡았다. 시간이 부족했다. 차와 운전자도 구해야 했으며 경기장을 돌려면 제주도부터 시작해야 했기에 경제적인 부담감도 더 커졌다.

도움을 요청하는 가운데 이들은 놀랍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차량운행을 관리하는 소망교회의 차량부에 사정을 예기했던 안 장로는 교인 중 한 분의 쾌척으로 차와 운전자의 급료 일체 약 1000만원 상당의 여행 경비를 지원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머지는 두 장로가 모금하여 대장정의 출정길을 마감했다.

두 장로는 제주 서귀포시의 월드컵경기장 옆의 법환교회(일명 월드컵기념교회)에서 출정예배를 드리고 61일간의 대장정에 올랐다.

월드컵경기가 개최되는 열 도시 서울, 인천, 수원, 대전, 광주, 전주, 울산, 대구, 부산, 그리고 서귀포 열 군대를 거치는 순례자의 길이었다. 때론 3일 혹은 4일 식사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걸었다. 가끔 쉴 때도 서서 쉬었지 앉아서 쉬지 않았다고 한다.

목표지점에 도착했을 때는 더이상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이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도 노곤한 몸을 이끌고 욕조에 몸을 담그면 한결 피로가 가셨다. 두 사람은 도보 일정에도 꼭 주일은 지켰다고 한다. 주일이면 인근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가급적이면 걷지 않는 방향으로 신앙과 도보 행진을 따로 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보 행진 중에 두 장로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느끼며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경험했다고 한다. 한번은 길을 안내해준 사람이 잘못 가르쳐준 것이 결국은 더 좋은 길이 된 경우도 있었다. 걸을 때는 이 길이 옳은 길인지 분명치 않았다. 다시 돌아가는 길은 아닌지 아니면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믿음으로 걸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길은 개통된 지 한 달밖에 안된 길로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목표지점에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광주 도청앞의 금란로라는 대로를 월드컵 성공개최와 부활절에 대한 메세지가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일부러 환영하기 나온 400여명과 행진했을 때는 감개무량했다고 안 장로는 회고했다.

도보행진을 할수록 두 장로를 환영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호응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갔다. 하동에서는 어느 젊은 목사부부의 소원이라며 34km나 되는 길을 함께 걷기도 했다.

황칫재라고 하는 해발 600미터의 고개에서는 지리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었고 진동에서는 어느 취객의 따뜻한 정을 느끼기도 했다. 두 장로를 새벽청소를 끝마치고 아침식사를 하러온 청소부원으로 알고는 수고하신다며 약주를 권했던 그에게 비록 사양은 했지만 음식점 문을 나오고 나서 내내 감사했다.

61일간의 긴 여정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 두 장로와 함께 하셨다. 특히 날씨는 이 두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환상이었다. 두 장로가 걷는 날은 비가 오지 않다가 쉬는 날만 골라서 비가 왔던 것이다. 이들이 비를 맞았던 것은 단 한번이었는데 그때도 약 2시간 정도였다고 한다. 마지막 3월 30일도 목표지점인 상암 경기장 전방 4km 지점에 도착한 이후에 가뭄을 달래는 단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목표지점에 도착한 다음에는 모든 맥이 풀려 더이상 걸을 수 없을 때였다. 가급적 길에서 가까운 숙소를 선택하여 기운을 아껴야 했기에 근처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그냥 축대나 담벼락에 기대어 지친 몸을 달래야 했다고 회고했다.

두 장로는 61간의 여정을 통해 15군데의 집회를 참석했다. 모임마다 보고형식의 간증도 했다. "마음과 의지를 새롭게 하는 생활에 있어 부활"을 그들은 강조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안 장로는 말한다. 이번 행진의 주제 격인 '함께 걷자'라는 말은 무엇이든 함께 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분쟁과 다툼도 함께 일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방향으로 'Going Together'(함께 가는 것) 한다면 불평할 일도, 다툴 일도 없을 것이란 말이다.

'나라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걷기 시작했던 전국 일주 도보 행진을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격려로 완주할 수 있었다고 이 두 장로는 겸손히 말했다.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넘쳤던 이 행보가 북한 동포에게로까지 이어지기를 소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들의 발길이 판문점을 넘어 저 먼 북녘 땅까지 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남쪽사람들의 지금의 사랑을 알 수 있기를 이 두 장로는 소원했다.

드디어 3월 31일 상암동 경기장에 당도하면서 1200km를 완주했고 61일간의 일정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두 장로는 자신들이 무사히 하나님의 은혜로 이 기간을 마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도와 후원으로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된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었던 그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 그분들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보답해 주었다는 것에 작은 기쁨을 느꼈다.

상암동 경기장의 부활절연합예배가 월드컵 예비 행사 모임이라는 말이 많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자리에서 61일간의 대장정을 통해 몸소 예수님의 고난을 체험하고자 했던 두 장로에게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나팔소리보다 주님의 들려주시는 '잘하였도다 내 아들아'라는 작은 소리가 오히려 위로가 되었을 것을 생각하며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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