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로 보는 신앙세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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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사제적 예언자

이스라엘이 낳은 예언자들 중에서 가장 위급한 국난의 시대에 살면서도 "심판"과 "구원", 그리고 "절망"과 "희망"이라는 상호 충돌하는 대극(對極) 주제를 신학적으로 조화, 융합시켜, "온 몸으로!", 바벨론 포로기 직전과 포로기 직후의 자기 동족에게 야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함으로서 동족들로 하여금 그 국난의 위기를 신학적으로 능히 소화하게 하고 또한 그 동족에게 민족부활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 갈 "새로운 은총의 시대"를 열어 주었던 사제(司祭) 출신의 예언자가 바로 "에스겔"이다. "에스겔"이라는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강(强)하시[실 것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예언자 에스겔은 제사장의 아들이었으며 그가 예언자로 부름을 받기 전에는 그도 또한 제사장이었다(겔 1:3). 그러나, 그는, 비록 제사장 출신이기는 하였지만, 이스라엘의 그 어느 예언자에 못지 않게 역사에 민감한 폭 넓은 역사의식과 절제 불가능한 예언자적 열정을 가진 예언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결코 전통적 사제 유산(司祭 遺産)에 충실하고 신앙의 내면성(內面性)에만 충실한 종교 지도자는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의 내면성을 무시한 사회개혁론자도 또한 아니었다.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 제의 정화(祭儀 淨化)를 위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한 요시야 왕(621BC 종교개혁)의 신명기적 개혁정신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예언활동 전체는 이 제의 정화, 즉 예배 정화(禮拜 淨化)를 신명기적 신학으로 완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겠다. "참 예배는 무엇인가?" "참 하나님 신앙은 무엇인가?" 이러한 명제는 신앙양심에 성실하려 하였던 자로서 막 30대로 들어 선 젊은 엘리뜨 에스겔에게는 최대의 신앙적 갈등과 쟁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이 중대한 물음에 대하여 매우 확실한 대답을 던져 준 것은 논의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였다. 그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는 바벨론의 유다 예루살렘에 대한 침공 사건을 통하여 역사의 지평 위로 등장한 야훼 하나님의 계시(啓示)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 즉 이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 사건 속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啓示)를 읽어내는 이 위대한 신학적 각성은 다름 아닌 에스겔의 인격 안에 일어난 하나님의 소명(召命) 사건으로서 그것은 매우 경이적인 "하늘이 열리는"(겔 1:1) 하나의 신학적 혁명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이 열리는 사건"이라는 표현은 에스겔의 소명 사건이란 인간이 갖고 있었던 최선의 모든 신앙적/신학적 확신이 철저히 "무효화"되고 그 대신 하나님의 영(靈)에 의하여 친히 "전혀 새롭게 계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즉 전혀 새로운 "신학적 혁명"이 일어났음을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신학적 혁명을 초래한 예언자 에스겔의 召命(소명) 사건(겔 1장, 2-3장)은 다음 세 가지의 인센티브(three incentives)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째는 "야훼가 역사의 유일한 주인이시라는 확신"에 의한 이원론적 신앙의 극복이고 그 둘 째는 야훼의 역사 섭리를 통해 새롭게 인식된 야훼의 본질에 대한 바른 인식이다. 그리고 그 세 째는, 야훼의 말씀은 인간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당위의 명령"이라는 인식이었다.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이 사건은 야훼 신이 바벨론 신에게 패배한 사 건, 또는 선신(善神)과 악신(惡神) 사이의 패권(覇權) 다툼에서 선신이 악신에게 패배한 사건이라는 전통적인 다신론적 또는 이원론적 신관(神觀)을 철저한 신학적 반성에 의하여 심판 하는 계기를 가져 왔다. 즉 "신들의 전쟁"이라는 낡은 신화적 관념이 이 예루살렘 멸망의 사건을 통하여 근본적으로 신학적 심판대에 서서 단호하게 심판을 받게 되고 야훼 이외의 "다른" 신들의 존재가 여지없이 폐기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야훼의 영광"(겔 1: 28)만이 홀로! 역사 위에("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겔 1:25) 군림(君臨)하셔서 이방 제국 바벨론"을 역사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셨던 것이다. 야훼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바벨론"도, "애굽"도, "곡"(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도, 즉 모든 이방 나라들도 자신의 역사 섭리의 도구로 삼으셨던 것이다(겔 38장 참조). 그러나, 이 것은 이스라엘의 신 "야훼"에 대하여 제국주의적 논리로 찬양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우주 통치의 다원론적 구조를 심판하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야훼 신이 때로는 애굽 신이 때로는 바벨론 신이, 그리고 때로는 선신이 때로는 악신이 이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cf. God in the fray!)은 아니라는 것이다. 진리의 신은 오직 한 분으로서("그 진리로서!" 요한 14:6 참조) 이스라엘을 심판도 하시지만 구원도 하시며, 그리고 이스라엘도 바벨론도 애굽도 앗수르도 마곡도 그 어떤 나라도 그의 심판과 구원의 대상과 도구(역사 섭리의 도구)로 삼으신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은, 그러므로, "야훼 만이 홀로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모든 인류와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알게 해 주는 사건으로서, 그 모두는 모두 전적으로 야훼의 인류 구원사적(人類 救援史的)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야훼의 유일신성은 힘의 논리나 패권주의 논리와 결부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에스겔의 신학적/예언자적 각성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여기서 발견되기 시작한다. 그 것은, 야훼 하나님의 본질이란 심판의 의(義)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심판을 통한 구원의 의(義)에서 찾을 수 있다는 그의 신학적 각성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야훼는 심판하시지만 그러나 마침내는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비록 마른 뼈(마른 해골)들이 되도록까지 심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야훼 하나님은 "창조의 영"(겔 37:6, 14)으로 그들을 다시 살려 재 창조하시며 또 두 민족으로 분열하여 산산 조각난 폐허로부터도 통일왕국을 재 창조해 내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훼 하나님은 근본 본질에 있어서는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시며, 그러므로 그의 그 모든 심판들은, 사실은, 구원을 위한 "전단계(前段階)"일 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언자 에스겔이 포로기 전과 포로 시기의 양 시대를 오가며 전자에게는 심판 메시지를 후자에게는 신생의 회복에 관한 구원 메시지를 전하여 "새 성전(聖殿) 환상"에 관한 묵시문학적 희망을 포로민에게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초월자 하나님의 유일성과 그리고 심판을 통하여 구원을 완성하시는 야훼 하나님의 "긍휼/자비"의 역설적(逆說的) 본질에 대한 탁월한/깊이 있는 신학적 성찰로부터 비롯되었다 하겠다. 이러한 에스겔의 신학 정립을 우리는 "예언자적 신학을 사제신학의 전통으로 수렴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혹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여하간 선하게 해결될 것이므로 우리는 예언자적 경고나 윤리적 훈련의 필요성 같은 무시하고 숙명론적 낙관주의 속에 안주하여도 된다는 의미의 말인가?" "어떤한 불의와 악도 그리고 어떠한 불행과 재난도 야훼의 사랑(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모두를 해피 엔딩에 이르게 만들 것이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나 그 어떤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는 그런 고달픈 일로부터 우리는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그런 의미의 말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에스겔은 확고한 하나의 입장과 분명한 예언자적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 것은 "말씀에 의한 제의(祭儀) 정화(淨化)[예배(禮拜) 정화(淨化)]를 통하여서만! 야훼의 구원에 이를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야훼의 "말씀"은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 명령이고 동시에 말씀이 생활화될 때(말씀을 먹고 소화할 때, cf. 겔 3:3)에만, 즉 성전종교가 "말씀" 중심으로 정화될 때에만 비로소 인간은 야훼의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언자 에스겔은 이미 요시야의 종교개혁정신(예배정화 운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고 따라서 말씀의 생수가 성전 문지방으로부터 흘러 나와 큰 강을 이루어 세계 각 처를 적시어 모든 생명을 말씀으로 살려내는 소위 "성전(聖殿) 제의(祭儀)를 통한(토라를 통한) 신정정치(神政政治)" 같은 것을 꿈 꾸었던 것이다. 이것은 일종 "사제전통의 예언종교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신명기 법(토라)에 의한 신정정치(theocracy)를 장차 시행할 이상적 성전(聖殿)을 설계하고 있었던 것이다(후기 유대교는 이러한 에스겔의 이상을 현실화시켰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비록 후기 유대교는 실패하였다 하더라도, 이 에스겔의 이 이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성서종교의 영원한 과제로 살아 남아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초월자 하나님 앞에 선 연약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의 대속적 희생 양의 겸비한 속량정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계속적으로 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언자 에스겔은, 실로, 이스라엘역사 최대의 국난 시기에 살면서, 비록 매우 기인(奇人) 같은 이미지를 남겨 놓았다고는 하나, 인자(人子)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나라 운동인 기독교 탄생의 가장 탁월한 산파역할을 한 자였다고 하겠다. 에스겔은 신명기적 예언정신(말씀 강조의 정신)으로 사제종교를 신학화하고 동시에 사제 정신으로 예언종교(말씀종교)를 정련(精鍊)시킨 위대한 신학자였던 것이다. 그는 또한 야훼 하나님의 유일한 역사적 주권을 오히려 바벨론 포로생활이라는 고난사(苦難史) 경험을 통하여 새롭게 확인하였고 야훼 하나님의 역사 섭리의 이러한 역설성(逆說性)을 통하여서는 심판을 구원으로 승화시키시는 야훼 하나님의 긍휼 본질과 사랑의 본질 및 그의 창조주로서의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였었던, 이른 바, 포로기가 낳은 이스라엘 최대의 신학자였다고 하겠다.


김이곤 교수(한신대 신학전문대학원장, 크리스천투데이 편집고문)

(2001년 8월부터 12월까지 총 13회에 걸쳐 크리스천투데이에 연재했던 김이곤 교수의 '구약인물로 보는 신앙세계' 칼럼을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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