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무릎으로 목숨걸고 기도하는 울보선생

오늘날 한국의 교육은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들 말한다. 기독교인이라고 이런 체념어린 발언을 하는데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가 교육의 희망을 인간이 만든 제도와 기관에 지나치게 걸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작은 일인을 통해서 시작돼왔다. 오늘날 이처럼 기독교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게 된 것도 예수란 한 청년의 죽음이 셀수도 없이 무수한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교육개혁도 역시 제도나 기관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헌신된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 교육의 희망은 바로 이런 교사, 학부모, 학생들에게 있다.
실제로 "눈물로, 무릎으로, 목숨걸고" 기도하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일들을 행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사가 있다. 서울 미아동 영훈고의 국어담당 최관하 교사(41, 평화교회)가 바로 그. 그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로 얼굴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고 해 '울보선생'으로 더 널리 알려져있다.
최 교사 일인의 헌신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됐다. 그를 통해 불치병 걸린 제자들이 기적적으로 치유받고, 비기독교학교인 영훈고에서 오늘날 매일같이 아이들의 찬양과 기도가 울려퍼지게 됐으며, 나아가 많은 기독 교사들과 기독교인들이 말할 수 없는 감동과 도전을 받게 됐다.
최 교사가 기도하는 교사가 된 것은 97년 당시 근육위축증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두 제자, 문석이와 현욱이를 만나면서부터다. 팔, 다리에서부터 근육세포가 말라죽기 시작해 결국 심장까지 이른다는 불치병에 걸린 고1짜리 두 제자는 고3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전교조 활동에 가담하는 등 89년 교직에 들어서면서부터 최 교사는 "정말 아이들 사랑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나름의 인간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렇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선데이 크리스천'에 불과했다. 사실 독실한 5대 기독교 집안의 아내(현재 평화교회 중고등부 간사)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예술하는 이들과 함께 술을 즐기고 몰론교, 불교를 접해보는 등 무신론자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그 어떠한 최선의 노력으로도 불쌍한 제자들에게 일말의 영향력도 끼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그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신자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접하던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도 그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다가왔다.
최 교사는 이후 절박한 심정으로 매일같이 그 두 아이를 붙잡고 복도, 교무실, 기도실, 상담실에서 눈물로 기도했다. 그 과정 가운데 그 두 학생과 양가족 모두 최 교사가 출석하는 평화교회로 인도됐다. 게다가 놀랍게도 고3을 넘기지 못하리라던 그 두 제자가 모두 기적적으로 완치돼 현재 문석이는 신학생으로, 또 현욱이는 유학준비생으로 생활하고 있다. 두 제자가 살아날 때 기관지 천식으로 4살을 못 넘길 수 있다던 최 교사의 둘째 딸 다빈이(4)도 더불어 치유됐다.
그의 이와 같은 감동 스토리는 교정의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와 영훈고 출신 시나리오 작가 나상천씨(신일교회)에 의해 '빈자리'란 연극대본으로 만들어져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 교사의 제자사랑 드라마는 여기가 마침점이 아니라 바로 시작점이었다.
최 교사는 이제 매 수업을 기도로 시작한다. 수업 전 기도하는 그는 어떤 경우라도 학생들에게 욕을 할 수도, 그들을 때릴 수도 없다.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들에 대한 벌칙은 성경구절 책갈피를 뽑아 외우게 하거나 성경을 공책에 기록하게 하는 것이다.
학급운영도 기독교적으로 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등의 축복송을 반가로 제정하는데, 반가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한 아이들도 있다고 최 교사는 귀뜸한다. 또 반드시 가정방문을 해 아이를 붙잡고 기도해주며 가정의 문제를 파악한다.
최 교사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점심을 사주면서 학생들의 성경공부반을 인도하고 있기도 하다. 성경공부반은 현재 5팀 총 5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또 올해는 수업 들어가는 고3 아이들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한 후 250장의 엽서를 사서 "팔이 빠져라" 모든 아이들에게 엽서를 써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기도하는 교사, 영혼을 돌보는 교사로 소문나니 그에게는 상담하고 기도해달라고 찾아오는 아이들이나 교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기자가 취재하는 동안에도 최 교사를 찾는 아이들의 방문과 전화는 계속됐다.
특히나 내년 발간예정인 '영훈학원 40년사 자료집'편찬을 위해 3년전 이사장이 구비해줘 그가 머물고 있는 기록보존실은 겉은 다소 누추하지만 안은 넓은데다가 따뜻한 온돌바닥에 앉은다리 책상까지 구비돼있어 아이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거나 그들을 상담하기에 안성맞춤. 현재 기독교반이 주로 사용하는 옆건물 지하 기술실보다 훨씬 아늑하다. "하나님께서 성경공부하라고 주셨다"고 최 교사는 간증했다.
특히 최 교사는 말썽장이,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더욱 애틋한 정을 쏟아 붓고 있다. 이혼한 어머니가 동거남에게 살해당한 후 호주에서 귀국한 아이, 백혈병으로 고생하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자신마저 급성맹장으로 쓰러진 아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받다 자폐증에 걸린 아이 등 많은 어린 제자들이 최 교사의 눈물어린 기도의 손길을 거쳐갔다. 올해도 최 교사는 모야모야병, 소아마비, 자폐 등의 문제를 지닌 학생 30명의 명단을 뽑아놓고 특별기도중이다.
또 IMF이후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늘어나자 물질적인 지원도 계속해오고 있다. 매년 2-7명의 학생들을 선택해 지원중인데 이런 도움의 손길에는 교회나 기타 뜻있는 이들도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한달에 기독교반 운영비는 80만원, 어려운 아이들 돕기에는 7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한때는 이런 경비를 혼자 감당하느라 한달에 수십만원의 사재를 털어놓기도 했던 최 교사는 이제 "물질은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신다"고 간증한다.
또 아이들을 접하면서 많은 경우 "아이의 문제가 아닌 부모의 문제"라는 깨달음을 얻는 최 교사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사랑스런 스무가지 이유'를 작성해 이를 아버지께 읽어드리고 그 소감문을 발표하게 하는 숙제를 낸다. 그 과정을 통해 눈물 한 방울 흘릴 것 같지 않던 아버지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등 많은 가정이 회복을 경험케 됐다. 또 최 교사는 학생들 아버지나 동료교사들에게 자신이 스태프로 있는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추천하기도 한다. 그는 "가정의 회복이 일어나지 않으면 학교의 회복은 반쪽자리"라고 주장한다.
최 교사가 이렇게 헌신하면서 영훈고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폐증 아이, 자궁에 이상이 있는 아이, 꿈만 꾸면 귀신이 보이는 아이도 온전히 회복됐다. 최 교사는 영훈고는 기도 응답이 굉장히 빠르다고 간증한다.
특히 이러한 최 교사의 체험담은 최 교사가 펴낸 <울보선생>, <병규야, 미안해> 등의 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겼다. 최교사는 지난 97년 등단해 몇편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향한 최 교사의 이런 사랑은 그것이 개인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학교 전체로 확산돼기도 해 특별한 관심을 모은다. 이는 올해 발간된 최 교사의 <영훈고 이야기>를 통해 소개됐다.
비록 설립자가 기독교인이었지만, 최 교사가 불치병 두 제자를 만난 처음 만난 97년 당시 영훈고는 모든 종교반 활동을 금지한 상태로서 기독교반은 불법 동아리일뿐이었다. 그러나 최 교사는 자신이 기적적인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한 2000년 '국기게양대 기도운동'을 시작으로 영훈고에 부흥의 불길을 지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계속되온 매주 월요일 아침 7시의 국기게양대 기도모임에서 최 교사와 학생들은 다른 이들이 등교하기전 학교, 나라와 민족, 북한을 위해 기도한다.
또 점심찬양모임, 성경공부모임 등도 생겨났다. 식당에서 급식을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매일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돌아가며 인도, 진행하는 점심찬양모임은 참 특색있다. 또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방과 후 예배가 진행된다. "영훈고가 기독교학교가 아닌데 기도가 없는 날이 없다"고 최 교사는 간증한다.
120명이 참여하는 매주 금요일의 고3기도회, 한동대의 순결서약을 응용해 시행하면서 이미 1200명의 순결서약자를 낳은 순결서약예배 등 기독교반은 그 활동 사항도 매우 다양하다. 신임교사환영회 등에서는 기독교반 학생들이 신임교사를 초청해 케이크와 엽서, 축복송 등으로 그를 축복한다.
16년간 학교앞 교회를 빌려 예배와 찬양제를 진행하던 기독교반이 갑자기 빈공간이 되어버린 학교안 기술실로 인도되고 너무도 간절히 기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미국 한 한인교회 권사님의 꿈으로 나타나 미국 교회의 지원까지 받게 되는 등 하나님의 이끄시는 손길도 너무나 분명하다. 불신자 교장이 찬양제때 기독교반이 발표한 찬양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췄던 일이나, 피아노, 드럼 등 아이들의 찬양과 예배에 필요한 물건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 둘 헌물로 들어온 것도 최 교사가 잊을 수 없는 간증거리들이다.
게다가 교사신우회, 기독학부모회까지 창립돼, 영훈고에는 학생, 교사, 학부모의 단단한 연합체가 나타났다. 영훈고 연합체2001년엔 기독학생, 교사, 학부모가 연합집회를 갖기도 했다.
학교 인근 신성교회에서 찬양제를 열기도 하며, 미아2동 복지관과의 자매결연을 통해 정기적 봉사활동을 벌일뿐만 아니라 수유리의 '에베다 노방찬양집회'에까지 참석하는 등 영훈고 기독학생회의 활동은 이제 외부로까지 뻗쳐나가고 있다.
영훈고 기독교반이 벌인 찬양제에 참석했다가 감동을 받아 당장 자신들의 학교에서 '국기게양대 기도모임'을 시작했다는 두 명의 고등학생, 영훈고 기독교반 같은 기독교반을 일으키겠다는 타 학교 교사 등 최 교사와 영훈고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한 기독 교사와 학생들도 많다. 최 교사는 적어도 매일 한통 이상의 문의 메일을 받고 있다고 한다. "천성이 내성적이던 사람"이 이제는 집회 간증도 많이 다니게 됐다고 최 교사는 덧붙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핍박도 무척 많았다. 2001년 신자 교장이 오기까지 불법 동아리이던 기독교반은 2001년도에야 '가스펠반'이라는 명칭으로 공인받게 됐다. 그러나 그후에도 이 공간을 폐쇄하라는 항의들도 있었고, 예배와 찬양에 참석하는 아이들이 부모들의 핍박을 경험하기도 했다. 또 최 교사는 기도로 수업을 시작한다는 이유로 불신자 동료 교사들의 반감을 사 교직 생활 존속의 위협을 경험한 적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영훈고 출신이기도 한 최 교사의 본교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오라는 기독교학교들도 있지만 자신은 이런 황무지 같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학교가 아니니 안 믿는 이들이 누르고, 힘겨움이 있지만 그래서 간증이 더 많다"며 "영훈고는 축복받은 학교"라고 자랑한다.
최 교사의 바람은 학교 안에 교회가 서는 것이다. 그리고 영훈고가 온전한 기독교학교로 세워지는 것이다. 당장의 작은 바람은 심방용 봉고차를 얻는 것이다. 최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아픈 학생, 교사, 학부모 심방을 다니곤 하는데 이동이 어려워 심방용 봉고차를 얻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는 기독 교사들에게 "잘하는 1가지만 칭찬해주면 못하는 99가지가 바뀐다"며, "문제아와 부적응아에 대한 인내와 소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는 또 조금 해보다가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성경적인 방법으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성경적인 방법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사에 따르면 또 기독 교사는 눈물을 많이 흘려야 된다. 자신은 눈물을 하도 많이 흘렸더니 눈이 좋아져 안경도 벗게 됐고, 없던 쌍거풀까지 생겼단다. 그는 "이제는 눈물로, 무릎으로 기도하는 것으로는 안 되고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또 한 가지. 교사들이 자신을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꼭 동역자를 붙여주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단다. 최 교사는 활동하는데 있어서는 시간을 쪼개서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세상적인 모든 일들을 다 할 시간은 없다는 것을 감수해야 하며, 특히 하루의 시작을 큐티로 해야 한다. 수업을 열정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수업에는 불충실하면서 성경적 가르침만 강조하면 당장 욕 먹는다"고 최 교사는 말했다.
최 교사와 또 그의 사랑을 입은 아이들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내가 죽어야 우리 아이들이 살아난다"는 최 교사의 제자사랑, 학교사랑 이야기는 형식적이고 표면적인 사랑에 익숙해진 현대인들 모두에게 신선한 감동일뿐 아니라 한국교육의 밝은 미래를 언뜻 엿보게 하는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