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의 한국교회와 성령운동 칼럼(25)]

해방 이후 한국 장로교를 중심으로 한 개혁파 교회 내에는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영향이 점차 강해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카이퍼(Abraham Kuiper)와 워필드(B. B. Warfield) 등의 개혁주의신학에 영향을 받고 유학에서 돌아온 국내 신학자들이 성령 은사의 중단성과 성령세례의 단회성에 강조점을 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을 소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부흥에 큰 영향을 미친 브라이트(Bill Bright)나 그래함(Billy Graham) 같은 인물들 역시 이 노선에 입각하여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저술과 설교를 하였기 때문이다.
카이퍼는 20세기 초엽까지 활동했던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개혁신학자이자 정치가로서, 그의 사상은 현대 개혁주의신학 발전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 그는 성령의 편재성과 연속성과 불변성에 근거해서 볼 때 오순절적인 성령 강림을 다시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핫지(Charles Hodge)와 워필드가 역시 ‘프린스턴 신학’을 통해 카이퍼와 같은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노선을 발전시켰다. 또 개혁주의 신학자인 호케마(Anthony Hoekema)는 기적적인 은사들은 사도시대로 종결되었다고 보면서, 오늘날의 방언을 말하는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유발된 인간의 반응이라고 주장하였다.
한국교회에서 순복음교회의 출현과 함께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강조가 본격화된 60-70년대 이후로부터, 성령론 논쟁은 주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단회성과 지속성 여부의 관점에서 이루어져 왔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인 개핀(R. B. Gaffin)의 신학적 기여는 성령론을 구속사적 큰 틀 속에서 제시하면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단회성을 주장한 것이다. 그의 영향력은 한국 개혁주의 신학계에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학군(學群)을 강하게 형성하였다. 그러나 차영배가 1986년 <신학지남>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의 단회성에 관한 R. B. Gaffin 교수의 견해 비평”을 통해 제시한 바와 같이, 개핀의 성령론은 너무 획일적이고 도식화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개핀은 오순절 성령세례는 오늘날도 적용되는 사건의 일부가 아니라, 단회적으로 성취된 구속 역사의 한 사건이라고 하면서, 그러므로 그것은 다시 반복될 수 없고 또한 개개 신자의 경험의 표본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개핀은 오순절파 성령세례의 근본적인 문제가 신자의 경험 속에서 성령과 그리스도를 구분하는 데 있다고 지적하였다. 은사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방언이나 예언은 교회로부터 사라지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오순절파에서 가르치는 바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은 모든 성도들을 위한 것이고, 성령의 은사는 두 번째 축복으로서 회개 이후에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순절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하였다.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스토트(J. R. Stott)는 성령의 처음 경험으로서의 성령의 세례는 반복될 수 없으나, 성령의 계속적이며 영속적인 역사로서의 성령의 충만은 반복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신약성경에 ‘성령세례를 받으라’는 언급이나 명령이 전혀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성령세례와는 달리, 성경에서는 성령충만에 관해서 크리스천이 어떻게 해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지를 설명하고, 또 모든 크리스천들이 계속해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명령하는 언급들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상과 같이 스토트의 성령세례론은 고전 12장 13절과 연관하여 보편적으로 교회에 최초로 임하신 성령세례를 강조하며, 이제는 교회가 성령세례 받은 보증으로 물세례를 베푸는 것이며, 따라서 이제 교회는 계속적으로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일이 지속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의 성령세례론은 신자의 중생의 체험보다는 최초의 교회에 임한 성령의 축복과 연관시켜 해석한다는 점에서 독특함이 있다. 하지만, 중생을 통해 이 축복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중생과 성령세례의 체험을 구분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스토트의 성령세례론은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노선을 지지하게 된다.
이처럼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노선은 한국교회에 개혁주의신학이 소개되어 발전되어감에 따라 점차 뚜렷해져 갔다. 여기에 한국교회의 대중들과 매우 친숙한 브라이트(Bill Bright)의 CCC 사역과 그래함의 대규모 대중전도 사역의 힘을 받아 더욱 대중화 되었다. 이들의 사역은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 청장년 층의 크리스천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풀러신학교 출신의 브라이트는 1951년 CCC를 조직하여 UCLA(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첫 사역을 시작했다. 그후 이 운동은 미국 전 대학으로 확산되면서 제 2차세계대전 이후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평안과 소망을 심어주었다. 한국 CCC는 1958년 김준곤 목사에 의하여 시작되었는데, 그가 1957년 미국 풀러신학교에 유학 중 빌 브라이트로부터 동역자가 되어달라는 제안에 수락함으로써 태동하게 되었다. CCC는 특히 간결한 「사영리」(四靈理)를 통해 한국 대학생들과 청년들 사이에 크게 영적 영향을 미쳤다.
브라이트에게 있어서 성령세례는 단지 중생과만 관련이 있다. 그는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성령충만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하지만, 결코 이를 성령세례라고 일컫지는 않는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함이란 무슨 뜻인가?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는 것을 말한다.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성령이 충만해지면 곧 그리스도로 충만해진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과 인도함과 능력을 받으면 주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지키시고, 사랑으로 충만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입을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우리를 통해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신다고 하였다.
그래함은 1918년 11월 7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출생한 침례교 목사로서 1944년부터는 국내외의 크고 작은 수많은 집회를 인도하게 된다. 한국인들에게는 1973년 서울 여의도집회(7월 29일-8월 16일)를 비롯한 그의 왕성한 선교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모든 신자가 평생에 꼭 한번 성령의 세례를 받는데, 그것은 거듭날 때라고 확언하였다. 이 성령의 세례는 오순절날부터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는 누구나 그것을 경험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들은 중생을 얻을 때 바로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이다. 이제 그들의 할 일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다.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는 반복적인 것이 아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해방 이후 개혁주의신학에 영향을 받고 유학에서 돌아온 국내 신학자들은 성령 은사의 중단성과 성령세례의 단회성에 강조점을 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을 펼쳤다. 그리고 교회 대중적으로는 브라이트나 그래함 같은 인물들이 역시 같은 노선에 서서 한국교회 부흥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노선은 한국교회 내에 그 전통을 강하게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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