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목사의 가정칼럼
어느 날 딸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사람들이 점점 무서워지는 것 같아요. 버스 타기도 겁나고, 길 다니기도 무서워요...”
우리는 요즘,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사나워지는 것을 체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참을성이 줄어들고 너무 쉽게 화를 내고 성급하고 짜증스러운 모습들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그 표정 또한 얼마나 무서운지, 감히 말 걸기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하루는 우리 집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 예닐곱 명의 중학생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우 몰려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곳이 사람들이 뜸한 곳에다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의 비좁은 골목길이라 그 아이들은 상습적으로 그곳에 오는 듯 했습니다. 한 아이가 힐끗 나를 쳐다보았는데, 그 눈초리가 어찌나 섬뜩하던지 서둘러 그 골목을 빠져나오고 말았지요. 어른답게 야단을 쳐서 집으로 돌려보냈어야 했지만 도저히 참견할 수 없던 그 분위기... 괜히 끼어들었다가 봉변을 당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타고 다니는 버스 기사의 난폭한 운전은 이미 몸에 익숙해져 버렸지만, 그래도 승객을 무슨 짐짝 취급하듯 함부로 대하는 기사들과 그 귀한 출근 시간에 승차거부를 해버리는 야속한 기사들로 인해 존재 자체가 거부되는 듯한 아픔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재래시장엘 가면 상인들끼리, 혹은 상인과 손님끼리 싸움판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싸움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주위의 사람들은 말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점점 사나와 지는 것은 말세의 한 징조임이 분명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이 말씀이 그대로 오늘날 적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사나운 사람들과의 부딪힘은 언제나 아프게 가슴에 걸려 덜그럭거립니다. 그 모든 사소한 상처들이 사람들의 사나운 말투와 제스쳐에서 비롯됩니다. 사소한 것들에 목숨 걸며 분노하는 사람들... 언제나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시대의 마지막 지점에서, 어딜 가나 사나운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들을 피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눈에 핏발을 세우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달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그냥 피하거나 참는 수밖에는.
성경에는 말씀합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나타나는 현상들을 나열하면서 그 중에 “사나우며”라는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나워지므로 사람들 스스로가 고통스러워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사나워지면 결국 피해자는 자신이 됩니다. 자신이 사나워지면 남도 괴롭히게 되지만 본인 스스로도 고통스러워지게 되는 것이지요.
어떤 이는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특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느긋한 웃음과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고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나운 사람들을 부드럽게 만드는 햇살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니면 타인처럼 차갑게 대하는 풍토와 주중에 교회 내부가 더러워질까봐 교회문을 걸어잠그는 시대에, 비신자가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그런 교회가 그립습니다.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 모교회에서는 일년 365일 문을 잠그는 법이 없었습니다. 매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회에 들러서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늦은 밤에도, 이른 아침에도, 혹은 한낮에도 교회 문은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누구나, 죄인인 누구나, 어느 때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언제나 오픈되어 있던, 나무로 만든 커다란 문, 그 문이 그립습니다.
어디를 가든 만날 수 있는 많은 교회들....그 교회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할 때 느끼게 되는 거부감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도 들어가지 못하시고 밖에서 배회하시는게 아닐지....언제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는 교회, 누구라도 따뜻하게 환대하는 교회, 더 나아가 세상 속에서 허한 마음을 가지고 사나워져가는 사람들을 보듬어 안아주는 교회, 외로운 이, 슬픈 이, 마음이 깨어진 이들을 무조건 환대해 주는 그런 교회를 꿈꾸어 봅니다.
가을 하늘이 저렇게 높고 푸른데, 사람들의 가슴은 먹먹한 쇠창살이 두껍게 드리워져, 그 외로움과 소외감을 알아달라고 사납게 소리지르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의 빗장을 벗기고 녹슨 철문을 열면 푸른 하늘이 바다처럼 밀려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다시 상처받은 우리에게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을 선물하셨습니다. 그 푸른색을 상처난 부위에 바르면 금새 흔적도 없는 치유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푸른 은총이 ‘말세에 고통하는 때’를 줄일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강선영 목사(낮은울타리 가정예배사역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