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대 라은성 교수의 재미있게 배우는 교회사학교 17
1.1.1. 오리겐1.1.1.1. 생애
“다음으로 우리는 초대교부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553년 범교회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은 오리겐을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가 쓴 오리겐의 1백개의 서신을 소개하면 알 수 있습니다. 또 오리겐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생애를 우리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오리겐의 본명은 ‘오리게네스 아다만티우스’(Origenes Adamantius)입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경건한 기독교인 부모의 자녀로 약 185년 또는 186년경 태어났습니다. 그는 7 형제ㆍ자매들 중 맏이였습니다. 부친 레오니다스로부터 처음에 학문과 지식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부친 레오니다스는 202년경 로마제국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 핍박 시에 참수형을 당하면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런 후 오리겐은 판타에누스와 클레멘트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나이 17세에 문법 분야에 큰 두각을 나타내다가 18세에 이르러 클레멘트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교리문답 학교의 교장이 되었습니다. 금욕적 삶을 산 오리겐은 그리스도를 위해 자학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야만 여인들을 가르칠 때에 유혹을 면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오리겐은 마태복음 19:12를 문자적으로 채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랐고 제자들이 생겨났습니다. 212년 그는 제자들 중 헤라클라스를 택하여 교리학교의 초급반을 맡겼고 자신은 고급반을 맡았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만 아니라 그리스 철학까지 가르쳤습니다. 오리겐은 204년부터 230년까지 가르친 후 232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팔레스타인의 카이사리아에서 가르쳤습니다.”
“교수님, 질문이 있는데요. ‘종교회의’라고 늘 말씀하시잖아요? 종교회의와 ‘범교회 종교회의’와 차이점이 있나요?”
“참 좋은 질문입니다. 차이가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종교회의라는 말은 지역 종교회의, 즉 영어로는 synod라 보고요. ‘범교회 종교회의’란 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전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영어로는 Council이라 하는데요. 현재 교회로 보면, 교단마다 ‘총회’가 있잖아요. 그 총회를 ‘범교회 종교회의’라 여겨도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단이 전 세계적으로 수백 개가 있으니 혼동되지만 말입니다. ‘종교회의’에 관해서는 ‘이단들’이란 주제를 배울 때 보다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회사에서는 생소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전체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요. 제가 미국에서 교회사를 배울 때입니다. 한국에서는 ‘플라톤주의’라고 배웠는데 영어 발음에서는 ‘타니즘’이라고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것인 줄 알았습니다. 수업 후에 교수님께 철자를 적어달라고 하자. 바로 플라톤주의(platonism)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사 시험에 어느 교수님은 용어 문제를 내곤 했습니다. 단답형으로 말입니다. 이해되시죠? 언제든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교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항상 학문을 배우는 학도의 자세를 잊지 않았습니다. 25세 나이에 그는 신플라톤주의 암모니우스 사카스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이유는 철학적 지식을 완벽하게 알기 위함이었지요. 그 외에도 그는 성경 말씀을 늘 묵상했으며 히브리어를 배워 원어로 읽는데 노력했습니다. 또 유대인들과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후에 『헥사플라』(히브리어와 5가지 그리스어를 함께 쓴 6가지 성경본문)를 썼습니다. 약 215년에 로마제국 황제 카라칼라의 핍박이 교회에 임하게 되자 그는 팔레스타인으로 도주했습니다. 그곳에서 카이사리아 감독 테오크티스투스를 만나 사귀었습니다.”
“교수님” 하고 전옥녀씨가 질문한다.
“계속하여 교수님께서 카이사리아라고 말씀하시는데 카이사리아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는 ‘가이사리아’를 일컫는 지역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오리겐에 대한 평판을 들은 예루살렘 감독 알렉산더는 그로 하여금 두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사실은 일반 신자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당시에 허용되지 않았거든요. 이 소식을 접한 알렉산드리아 감독 데메트리우스는 218-219년에 그를 알렉산드리아로 되돌아오도록 하고 다시금 교리학교 직을 맡도록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당시에 오리겐은 가장 인기 있는 교사였다고 여겨집니다. 요즘도 그렇잖아요. 인가가 있거나 잘 가르치면 스타처럼 여기저기서 초청하지 않습니까?”
“알렉산드리아로 되돌아온 오리겐은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이미 가르치고 있었기에 여유가 있어 집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약 230년 아카이아로 여행을 했는데 다시금 팔레스타인의 카이사리아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친구인 데오크티스투스와 알렉산더는 그를 다시금 붙잡고 알렉산드리아 감독 데메트리우스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오리겐을 사제로 임명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오리겐을 자신들과 함께 일하도록 하기 원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 같았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은 불법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데메트리우스는 불평하면서 오리겐을 231년경에 교리문답 학교장직에서 파직시켰고 사제직 역시 파직시켰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데메트리우스는 서신들을 써서 여러 교회들에게 이 불법적 처사를 고발했습니다.”
“오리겐은 이제 더 이상 이집트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날 것입니다. 한 직장에서 한 상사에게 잘못 보이면 그것이 꼬리표가 되어 다른 곳에 옮겨갔을 때에 새 직장에서 과거의 경력을 조회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하극상의 경우가 있었다면 아마도 새 직장에서 자신을 채용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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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겐의 연구하는 모습 |
“아무튼 오리겐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을 당하자 하는 수 없이 카이사리아로 가서 자신의 두 번째 경험을 그곳에서 갖게 됩니다. 목회를 할 뿐만 아니라 여러 문학 활동을 아울러 했습니다. 아마도 이곳의 경험으로 인해 거의 3백여 편의 설교를 썼습니다. 오리겐은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로마제국 황제 막시미누스(235-237)의 핍박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잠시 피했습니다. 240년에 다시금 그는 아테네로 여행했고, 244년 아라비아로 여행했고, 그 후 보스트라 감독 베릴루스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로마제국 황제 데시우스(250-251)의 핍박으로 인해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아 거의 죽게 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후 고문 결과 로마제국 황제 갈루스 시기, 즉 254년이나 255년에 69세의 나이로 뵈니키아의 두로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라은성 교수(국제신대원 역사신학, eun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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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당하는 오리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