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교회 교인은 받지 않아… “부흥하려면 기본에 충실해야”
한국교회에서 ‘수평 이동’이 문제가 된 것은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나친 성장지상주의는 교회로 하여금 불신자를 전도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보다 타 교회에서 성도를 빼오는 방식을 택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하며 이웃교회와의 공존을 시도하고, 그러면서도 꾸준한 부흥에 성공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
큰 나무는 굵은 뿌리뿐 아니라 잔뿌리도 많아야 건강
92년 1월에 개척을 시작한 남서울비전교회(담임 최요한 목사)의 주보 광고란 맨 위편에는 “이웃교회 성도들은 등록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짧은 문구지만 “남의 터 위에 집 짓지 않겠다”는 최요한 목사의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이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최 목사는 구체적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다. 새로 나온 교인들의 교적을 조사해서 인근의 교회에 등록이 돼 있는 이들은 다시 그 교회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신자의 상황이 맞지 않거나 갈등이 있어 도저히 이전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이들도 있으므로, 이전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지 6개월이 지난 이들의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큰 나무에는 굵은 뿌리도 많아야 하지만 잔뿌리도 많아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최대한 주변에 있는 교회들과 협력하고 공존해야 합니다. 대형교회가 이웃교회 교인들까지 흡수해 버리면 개교회적으로는 잘될지 몰라도 한국교회 전체적으로는 좋지 않습니다.”
선교에 대한 욕심은 누구보다도 크지만 이웃교회 교인들에게까진 욕심내지 않는 최요한 목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서울비전교회는 처음 개척을 시작한 분당 지역에서 부흥을 거듭, 어느새 성도수가 5천을 넘게 헤아리게 됐다. 성전도 두차례나 옮겨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위치한 지금의 성전에 이르렀다. 분당지역에서 외부 도움없이 개척을 시작한 4백여 교회 중 이 정도의 부흥을 이룬 교회는 채 다섯이 안된다는 것이 최 목사의 설명이다.
40일 금식기도만 3번… 기본에 충실한 열정적 목회
이같은 남서울비전교회의 저력은 최요한 목사의 눈물의 기도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40일 금식기도만 3번을 했을 정도로 남다른 기도 열정을 갖고 있는 그는, 지금도 매일 직면하는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겸허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성령의 역사를 중시하면서도 말씀과 전통을 잊지 않는 예배 스타일도 남서울비전교회의 힘이다. 예장합동에 소속돼 있는 최요한 목사는 스스로의 목회를 ‘장로교 순복음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총신대 신대원에서 신학을 배우고 젊은 시절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즐겨 들었던 것이 그의 독특한 목회스타일을 낳은 계기가 되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무엇보다 목회자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이기에 생명도 재산도 자신의 것이라 생각지 않고 생명을 주시는 한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기도하고 진실하며 열정을 가지면 교회는 100% 부흥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요한 목사는 이제 이웃 교회들과 ‘공존’을 넘어 함께 발전하고 상생하는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 남서울비전교회는 특히 한국교회가 전체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주일학교’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 오는 가을 쯤 세미나를 열어 공개할 예정이다. 남서울비전교회가 연구 중인 ‘주일학교 활성화 방안’은 아이들의 ‘인터넷 놀이문화’와 ‘주일학교 교육’을 접목시키는 것. 이 방식은 주일학교 교육을 평일에도 쉽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번에 많은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어 특히 중소형교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요한 목사는
최요한 목사는 1953년 4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지만 어머니의 신실한 신앙으로 양육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철저한 기도생활을 계속해 왔다. 최 목사가 군복무하던 시절, 기독교인도 아닌 한 선임하사가 그가 기도하는 모습에 감동해 매일 오전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을 정도로 그의 기도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충현교회 북한선교원 수석목사로 경상도지역을 맡아 활동하던 당시 대구에서 10만여명이 참석하는 대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기도하던 중, 오히려 “대구에서 가장 큰 운동장에서 대성회를 선포하라”는 음성을 듣고 두류산공원축구장에서 성회를 개최했다. 참가인원이 대구지역 집회 역사상 최다였을 뿐 아니라, 집회기간 동안 대구와 주변지역 모두에 호우주의보가 내리고 실제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행사장에만 비 한방울 떨어지지 않았던 것도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는 이후 1992년 분당에서 남서울비전교회 개척을 시작, 세계 각지에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공산권 국가인 베트남에 3개의 병원을 건립하는 등 세계선교에 힘쓰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총신대 신학대학원
-풀러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동문회 운영이사
-안드레신학교 운영이사
-비라카미신학교 명예학장
-국제사랑선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