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타나시우스도 이집트 사막으로 물러가서 하나님과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적들은 그를 죽이려고 군사를 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타나시우스는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4차 추방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361년 아타나시우스를 대신하여 감독이 된 아리안 게오르그가 갑자기 이교도들에 의해 살해를 당하자 아타나시우스는 모든 적들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가 죽고 배교자 율리안이 황제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황제 율리안은 전임자에 의해 추방당한 모든 감독들에게 자유를 주면서 자신의 교구로 되돌아 갈 것을 허락했습니다. 이제 정통 감독들은 자신의 교구로 되돌아 갈 수 있었고 아타나시우스 역시 알렉산드리아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는 모든 아리안들을 자신의 교구로부터 추방시켰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배교자 율리안의 동상
“362년 아타나시우스는 니케아 신조를 수용하는 온건한 아리안들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에서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성령의 신성을 부인했던 자들을 정죄하고, 아리안 이단자들을 파직시켰습니다. 만일 회개한다면 평신도로서 교회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하는 사제들은 황제 율리안에게 고발하여 아타나시우스를 다시금 도시에서 추방시켜야 한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에 안정을 되찾을 수 없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황제 율리안은 자객을 보내어 아타나시우스를 죽이도록 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의 양떼들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나일 강변에 있는 데바이스 사막으로 물러갔습니다.”
▲황제 조비안이 그려져 있는 동전
“363년 황제 율리안이 피살당하자 율리안을 이은 기독교인 황제 조비안(Jovian)은 아타나시우스에게 내려진 추방 명령을 철회하였습니다. 조비안은 그의 정통성을 높이 칭송하며 정통신앙에 대한 교의들을 쓸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에 따라 아타나시우스는 학식 있는 동료 감독들을 불러 니케아 범종교회의에서 결정된 정통 교의들을 정리했습니다. 이단자 아리안들이 거짓 교리를 정통교리로 만들려는 계획들은 이제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타나시우스는 안디옥에서 조비안을 만나 조언한 후 알렉산드리아로 되돌아 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6차 추방이 일어났습니다. 불행하게도 황제 조비안은 겨우 8개월 동안 치리한 후 364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로마는 또 다시 나뉘어져서 서로마제국은 발렌티니안에게, 동로마제국은 발렌스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런데 황제 발렌티니안은 아리안주의를 선호하여 367년 아리안 감독 유독수스에 의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같은 해, 그는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 교구를 박탈당한 모든 감독들을 추방시켰습니다.”
“이제 여섯번째로 아타나시우스가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추방당한 그는 여러 교회들, 수도원들, 그리고 이집트 사막 등지를 두루 다녔습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 주민들은 지역 총독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감독 아타나시우스를 복직시켜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아타나시우스는 다시금 아무도 모르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에 대하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정말 겸손하고 낮은 데 마음을 두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덕행은 비길 데 없을 정도로 숭고했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중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쉽게 그분에게 올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설교시 온유했고, 친절했고, 열정적이었고, 그리고 상냥했습니다. 더욱이 그분의 삶은 훨씬 뛰어났습니다. 그분의 삶은 천사적 삶이었고,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항상 부드러웠습니다. 결코 난폭한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삶은 항상 설교의 현장이었습니다. 누구든 그분을 닮고 싶어했습니다. 금식과 기도로 금욕적 삶을 살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유한 자들의 부정을 지적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겸허한 자들에게 늘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말할 수 없는 추방과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교구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46년 동안 지켰습니다. 그는 약 371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여깁니다. 자신의 고난을 통해 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했고, 거룩하고 헌신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성육신 속에서 그는 사랑과 자비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 공의, 그리고 거룩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대단하신 분이 아닙니까? 추방당한 가운데 그가 쓴 『안토니의 생애』는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거스틴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1차 범종교회의, 즉 325년 니케아에서 개최된 범종교회의와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범종교회의 간 사이를 장식했던 인물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타나시우스의 생애는 결정적이라는 것입니다.”
공로상 7인과 조현삼 목사 수여
앨범·워십·CCM 부문별 시상도
2년간 발표된 2,396곡에서 엄선
한국기독음악협회(회장 안민·송정미, 이하 K-CCM)에서 주관한 ‘2024 K-CCM 어워즈(AWARDS)’가 처음으로 지난 11월 25일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담임 송태근 목사)에서 개최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