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지 않고 곧은 성품을 가진 존 크리소스톰은 결국 주위에 적들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들 중에 황후 유독시아가 있었습니다. 남편 아르카디우스보다 인기를 독차지하는 존을 시기한 그녀는 그를 없애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단하지요. 교회사에서 무섭고 대단한 여성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유독시아였습니다. 황후 유독시아는 사치스러운 궁궐생활만 아니라 사치스러운 자들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존은 거침없이 비판했습니다. 유독시아의 음모가 이뤄지는 401년 1월이었습니다. 에베소 성직자들과 근교 감독들의 요청을 받아 방문한 존은 지역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성직매매를 일삼는 6명의 감독들을 파직하였습니다. 그리고 존이 출타하는 동안 콘스탄티노플 감독직을 신임하여 맡긴 카발라 감독 세베리안은 황후와 함께 존에 대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를 몰아내겠다는 심산이었죠. 그러다가 403년 알렉산드리아 감독 데오필로스가 출교시킨 몇 명의 경건한 수도사들을 위해 존이 피난처를 마련해 주자 원한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반죄라는 혐의를 받고 존은 파직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존은 주위에 시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기에 그를 위해 시민들이 일어나자 하는 수 없이 추방 대신에 복직을 시켰습니다. 그런 후 존은 자신을 공격했던 자들의 세속적인 행사를 금했습니다.”
“존은 황제 아르카디우스의 아내인 황후 유독시아의 동상 제막식에 열광하는 청중들을 비난하는 설교를 아낌없이 가했습니다. 그의 적들은 그의 설교들을 과장하여 황후에게 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콘스탄티노플로부터 황후에 의해 영속적으로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수치스러운 추방이지만 이것으로도 존이 성찬식에 참여하는 못하거나 그의 귀중한 글들을 못 쓰도록 하진 못했습니다. 추방당한 가운데 407년 흑해 근교에 있는 폰투스에서 외롭게 죽었습니다.”
▲하이예 소피아 벽에 그려져 있는 시편 98:1~5와 함께 있는 존 크리소스톰
“존이 남긴 귀중한 서신들과 짧은 글들이 현존하지 못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현존하는 몇 편의 그의 글들을 통해서라도 그의 웅변적이고 청렴한 자세와 기독교 사상에 끼친 위대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150cm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의 존은 하나님만 두려워하면서 그 앞에서 세속적 부귀와 편의주의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407년 9월 14일 추방 생활하는 가운데 세상을 떠난 존 코리소스톰은 콘스탄티니폴을 사악한 방법으로 주도하는 황후 유독시아의 음모로 인해 정죄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의 마지막 말씀은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있기를!’이었습니다. 그의 유골은 438년 유독시아의 아들 동로마제국의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408~450)에 의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습니다.”
“다음은 존의 모친인 안투사가 아들에게 주는 ‘이상적인 친구에 대하여’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매우 감동적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를 기억한다. 광택을 가진 물체가 인접한 장소에까지 광채를 발하는 것처럼 친구들은 그들이 있는 장소에서 은혜를 서로 나눈다. 가끔 친구가 없이 혼자 있을 때는 함께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슬픔에 빠지기도 하고 울먹이기도 한다. 친구와 함께 있음으로 얻는 기쁨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을까? 단지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의심을 가지지 않고 호의를 부탁하면 호의를 받을 것이다. 문의를 하면, 친절하게 응답할 것이다. 부탁을 들어주는 데 망설이면 왠지 모르게 섭섭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그들의 것이 아닌 것들이 없다. 모든 세상의 일들을 싫어할지라도 친구들로 인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빛보다도 더 우리에게 필요한 분들이다. 그렇다! 친구는 빛 자체보다도 우리에게 더 중요하다(내가 말하는 친구는 진정한 친구를 말하는 것이다). 친구보다도 태양이 우리들에게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표현에 불평하지 않기를 바란다. 친구가 없는 것보다 어두움에 사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다. 내 의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태양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두움에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로 인해 부유한 사람들은 결코 환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우정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없는 영적 친구에 대해 나는 말하고 있다. 바울과 같은 친구이다. 부탁을 받지 않아도 그는 자신의 영혼을 친구를 위해 기꺼이 드릴 수 있었다. 형제를 위해 지옥이라도 기꺼이 떨어질 수 있었던 분이었다(로마서 9:3). 애정을 불태우는 것은 사랑에 합당한 것이다. 이것을 우정의 예로서 택해 보라. 친구들은 부친들과 아들들 보다 훨씬 중요하다…….
…친구를 갖는 것은 또 다른 자아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일치고 조화이다. 어떤 것도 동등한 것은 없다. 일치 안에서 한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동등하다. 두 사람이거나 열 사람이라도 더 이상 하나이지 못하다. 하지만 그들 각자는 열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지닌다. 너는 열 사람 속에서 한 사람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 속에서 열 사람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적을 맞이한다면, 그 적은 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열 사람을 공격하는 격이 될 것이기 때문에 패배하고 말 것이다. 공격을 받아도 한 사람에게서 공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열 사람에게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결핍을 경험해보았는가? 그럴지라도 결코 황량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분야, 즉 남은 아홉 사람들에게서 채워질 것이기 때문에 부족한 분야가 보호받을 것이다. 작은 부분이 채워질 것이다. 그들 각자는 20개의 손들을, 20개의 눈들을, 그리고 20개의 발들을 소유하는 셈이다. 그래서 자신의 눈으로만 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눈들을 통해 볼 수 있다. 자신이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나머지 아홉 영혼들이 그를 보호하고 있다. 그들이 백 사람이라면, 동일한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에 알맞은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이 89.9%, 20-30대 64.1%
감염 경로 99.6% ‘성적 접촉’
男 56.7%가 ‘동성 간 성접촉’
마약 주사기 공동사용 0.4%
2023년 신규 에이즈 감염자가 1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한국가족보건협회(대표 김지연 약사, 이하 한가협)가 질병관리청이 발…